2008. 2.25-29.달-쇠날. 눈 며칠

조회 수 1094 추천 수 0 2008.03.18 05:25:00

2008. 2.25-29.달-쇠날. 눈 며칠


산에 들어갑니다.
마침 겨울 막바지 눈이 며칠 내리고
산 속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산식구들 발자국을 빼면
바다 한 가운데 뚝 떨어진 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대해리도 매한가지였다데요.
단식과 수행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했습니다.
올 해는 단식 한 번을 할 짬도 없이 보내나보다 했는데
2월이 다 가버리기 전
새 학년도를 맞으며 준비기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준 식구들이 고마웠지요.

그 사이 물꼬엔
영동 읍내에서 약속도 없이 학부모가 찾아오기도 했고
늦은 입학문의가 계속 되었으며
29일엔 군청 건설교통과에서 사람들이 다녀갔다네요.
학교를 둘러보고, 특히 해우소와 씻는 곳에 대해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 얘기를 나누었다 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와 사진도 찍고 견적도 뽑는다지요.
군수님이 여러 구석으로 마음을 써주신 덕분에
몇 과에서 어떤 방향으로 지원이 가능할까 살펴보고 있습니다.
계자를 다녀갔던 형찬이의 엄마가
새해 예서 귀하다는 탁상달력을 보내오고,
sbs 생방송 모닝 와이드 ‘고맙습니다’ 꼭지에서 작가가 찾기도 하였다네요.
두어 해 전 시카고에 머물고 있던 여름
인터넷뉴스 장에서 생활글을 이어 쓰고 있었는데
한 편이 은사님과 보낸 고교시절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날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주셨던 고 3 한 해.
그 사연을 담아보고 싶다는 거였지요.

답장을 기다리는 메일들도 쌓여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초등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은 아버지가 보낸 글월은 한참을 눈이 머물게 했지요.
‘효율과 경쟁에 내몰려 끝없이 치달리는 자본주의적 산업도시문명의 삶을 포기하고 상생과 공존의 생태공동체를 꿈꾸며 수년 전 이곳으로 귀향을 결행한 입장에서 두 자녀를 모두 공립학교에 보내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입니다.’
첫 아이 때는 아이의 동의를 얻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스스로 준비되지 못한 탓에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던 것을
‘살다보니 조금 욕심이 동합니다.
먼저는 세상 어디서도 생존할 수 있는 자신감이죠.
내가 살아가기 이전에, 자연이 나를 살릴테니까요.
하여 얘들에게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생각합니다.
얘들에게 좋은 곳이면 무엇을 해서라도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할 수 있겠다셨지요.
‘아이들의 입학과 공동체 합류를 원합니다.’
큰 아이 입학 무렵 물꼬를 다녀간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혹여 현재의 열악한 물꼬에 대해 소식 어두울까,
먼저 예 사정을 충분히 전하였고,
차근차근 오며가며 생각을 나눠보기로 하였지요.
짧은 답장을 다시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귀농을 결심하고 나름의 준비 끝에 시골로 터전을 옮기고,
그리고 한 십여 년 열심히 농사를 짓고 집을 짓습니다.
아이랑 더 잘 살자고 간 길인데
사느라 그만 정신이 없다가
이제 좀 준비되었다 하고 돌아보니
아이들은 더 이상 우리랑 놀지 않지요.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
아이들과 뭔가를 해보겠다는 이들이라면
더욱 새겨야할 말 아닐까 싶습니다.
꼭 물꼬가 아닌들 어떻습니까.
서로 좋은 이웃이 되어도 더할 나위 없겠지요.
지금, 어디로든 옮기셔도 되겠더이다.

세상 어디서고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
정말 소중한 것이지요.
강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일 겝니다.
한편 또 강한 사람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는 사람이라 대답합니다.
그래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그토록 강건할 수밖에 없노라고.
스스로 선택한 오랜 가난은
제게 일정정도의 강함을 주었구나 깨달아질 때가 더러 있답니다.
잃을 게 없으니까요.
그대라면 집 지을 수 있고, 농사 알고,
정말 무에 걱정이 있으실라나요.
이제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신 용기,
축하드립니다.
내가 생을 외면하지 않고
생이 나를 잊지 않는데
정녕 무엇이 두려울 일이겠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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