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11.불날. 흐린 아침이더니 곧 맑다

조회 수 1281 추천 수 0 2008.03.30 20:19:00

2008. 3.11.불날. 흐린 아침이더니 곧 맑다


새소리...
이른 아침 학교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갖가지 새들이 우짖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지요.
봄입니다.
바람 어찌나 다사로운지요.
쏙독새소리인가, 직박구리소리가 나는 듯도 하고,
딱따구리도 바쁘며 해도 솟지 않았는데 검은등뻐꾸기가 울고,
참새도 저리 바쁘며 까치도 목소리 높고...

1962년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이라 그랬더랬지요.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로 새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그를 인용하며 한 생태학자는
새싹을 내고 움을 틔우는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할 줄 모르는 무감각과
나무와 꽃을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무관심에 대해
눈부시게 찬란해야 할 봄이 그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찾아오고 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을에 들에 숲에 계곡에 새 웁니다.
그만 눈물 핑 돕니다.
살아 저 새소리를 듣고 있다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의 ‘새’)


오랫동안 일한 사람의 자리가 커서
전화기 명의를 바꾸는 일에서부터 자잘하게 옮겨야할 서류들이 많네요.
그런 중엔 면사무소 산업계에선 계속 찾습니다.
이미 끝난 상황인데도 군수님이 챙겨주신 덕분에
친환경경작에 대한 보조를 위해
담당자가 열심히 자료를 만들어 주고 있지요.

이번 학기도 아이들끼리 꾸리는 시간이 많습니다.
바깥 수업이 들어오기도 하고 다른 식구들이 샘으로 붙기도 하지만
주중 불, 물, 나무 사흘의 많은 시간은 그러하지요.
오늘은 아이들이 하루흐름대로 주욱 흘러가보고 있었습니다.
마음모으기, 손풀기, 스스로공부(개인연구), 셈놀이 연습,
그리고 올해 쓸 몇 권의 기록장 표지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정말 성의껏 작업을 해서 담임 책상에 올려놓았데요.
참 느슨했던 작년이었으나
그들이 또 그냥 이러저러 보낸 날들이 아닙디다.
스스로 하는 작업을 훌륭하게 익히고 있었지요.
콩을 가리거나 마늘을 까며 일시간도 꾸렸다 합니다.

그리고,
편지 하나 도착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이,
계절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새끼일꾼으로 오래 활동했으며
드디어 대학을 갔고 품앗이일꾼이 되었습니다.
긴긴(중학교 때부터 우린 오직 대학문을 향해 달리니까요) 학업의 날들을 보내고
공백처럼 찾아든 2월 한 달을 보낸 이야기,
그리고 새로 시작한 대학의 며칠을 적고 있었지요.
“... 지난 한 달 동안, 그리웠어요. 영동학교, 밤하늘, 아이들, 샘들. 그곳에 제 삶을 맡길 순 없겠죠. 그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요, 그리고. 물꼬가 내 삶이 된다면 그곳은 내 도피처, 안식처 역할을 해주지 못할 거고, 그럼 제가 넘 힘들테니까요. 새끼일꾼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사실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위안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한 달 지내면서 물꼬랑, 영동에서 본 아이들의 눈동자가 생각났어요. 그 웃음소리와 순수, 인간인지라 모든 애들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서 참 미안하긴 하지만. 순수함이 인간을 얼마나 치유할 수 있는지 느껴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정신이 없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행복해요.”
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있죠, 옥샘. 물꼬를, 그리고 샘들을 알게 된 건 저한테는 엄청난 행운이었던 거 같아요. 참 많은 걸 얻었어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구요.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다는 거 아시죠? 항상 그리워도 하고 있어요...”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었지요.
소중한 시간들 앞에서 물꼬를 향해 그 마음 나누어주어서도 기뻤습니다.
여기도 그 편지로 또 새로워진 듯하였더이다.
모두 잘 살아서 서로 힘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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