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자 나흗날, 2008. 1. 9.물날. 맑음

조회 수 1571 추천 수 0 2008.01.15 18:30:00

123 계자 나흗날, 2008. 1. 9.물날. 맑음


재래식인 화장실이 요새 아이들에겐 쉽지가 않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쓰는 곳을 모양으로는 양변기를 놓아도 보았지만
내용이야 여전히 재래식입니다.
물이 얼지 않도록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에너지를 허투루 쓰는 일이요,
그것 아니어도 쓰레기로 버려지는 배설물이 아니라
거름으로 되살려 쓰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고백하면 실상은
물이 들어가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고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이곳 역시 위생업자에게 맡겨 퍼낼 때도 있답니다.
어쨌든 똥오줌 문제는
집을 떠나 산골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큰 숙제이지요.
먹었으니 나오는 거야 당연할 진대
참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쯤엔 풀 수 있는 계기를 주어야 겠다 하지요.
물론 내일도 산에 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움직이는 몸에 따라
바위 뒤에서 나무 뒤에서
힘을 주며 시원하게 볼 일들을 볼 겝니다만.
“옛날에 숙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화장실 가고픈 걸 참다가 얼굴에 독기가 번져
푸르뎅뎅한 점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나갔는데,
물론 모든 점이 그리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쯤 되면 아이들의 반응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촌 형아도 그래서 점 생겼어요.”
현수였지요.
얘기가 점점 깊어 가는데,
“나도 두 개 생길라 해요.”
현수가 분위기를 더욱 살려줍니다.
그때 성빈인가 현빈인가가 말을 보탰지요.
“화장실 잘 가면 없어지기도 해요.
저도 한 달인가 변비가 있다가 나으니까 점 두 개가 없어졌어요.”
하여 오늘은 유달리 화장실을 많이 갔더랍니다.

몇 차례 계자를 온 도연이는
첫날 점심, 달골에 가는 날 아침, 산오름 점심 도시락,
그리고 마지막 날 나갈 때 먹는 끼니 정도의 메뉴는
확실히 꿰고 있지요.
상범샘이 일부러 도연이를 살살 흔들어 깨운 아침이었습니다.
“도연아, 토스트 언제 먹지?”
아주 환하게 웃으며 그가 대답했지요.
“오늘 아침이요~”
예, 해건지기 셋째마당은 달골에 오르는 거였습니다.
달골에서 난 유기농 포도즙도 마시고
떠오르는 해에 소원도 빌고
물꼬가 품고 나아온 바램도 들으며
‘꿈’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끝에 새끼일꾼 다옴형님의 클라리넷 연주도 있었지요.
“사노라면 언젠가는 흐린 날도 오겠지...”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달골에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더해졌지요.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따순 아침이더이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라
계자 기간에도 이곳 치과(?)는 성업 중이지요.
꼭 흔들리는 이가 있고
그리고 그 이를 빼고 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도구야 거의 명주실이지요.
토스트를 놓고 이가 흔들려 계속 먹지 못하고
댔다 말았다 하던 현조는
스스로 빼겠다고 혀로 밀고 당기고 하더니
결국 부엌 엄마가 뺐다네요.
참, 지붕엔 던졌나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칠 줄 모르는 현조의 수다와
곁에 앉아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하영경의 대조는
재미난 풍경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림이 훌쩍 늘었다는 스스로들의 평가를 끝으로
(지들이 한 건 익지 않은 감자도 맛있고,
지들이 한 건 너덜너덜 접착제가 떨어져도 멋있는 작품이고,
다 그렇습니다요.)
‘손풀기’가 끝나자
모두가 같이 참여하는 ‘참과학 2(1은 달날 오후)’가 있었습니다.
풍선을 불어 벽에 붙이며 마찰에 대해 익히다가
(도현이가 성공했지요)
두 자루의 볼펜으로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는
전기의 특성에 대해 배웠지요.
모두 스포이트 병 검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답니다.
마찰로 만들어진 전기로
스포이트 병 안에서 스테이플러 두 다리가 벌어졌다 모아졌다 하는데,
모두 환호성을 지릅니다.
참과학 김인수샘의 진행이 아주 돋보인 시간이었지요.
해마다 여름이면 일본까지 초청되어 가는 샘의 명성을
가까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더이다.
“이제 필름통으로 총을 만들어 볼 텐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하는 것이어 선별된 넷만 대표로 만들고,
나머지는 광전효과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원자가 너무 많은 걸요.
결정이 어려울 땐 아이들에게 맡겨놓는 게 가장 쉽습니다.
첫날 참과학 때 두 사람 분의 재료가 모자라
가장 큰 희영이와 여기 사는 하다가 양보한 일이 있었는데,
그 덕으로 두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로 했고,
나머지는 지원하는 이들이 모여 결정하라고
저 뒤로 보냈더라지요.
그런데 금새들 나타났습니다.
어려운 실험이니 1, 2, 3학년 빼고,
아직도 숫자가 많아 4학년도 빼고,
5, 6학년 가운데 남녀로 나누어 가위바위보로 결정!
산뜻했지요.
뜨겁고 유쾌하고 실속 있고 흐뭇했던 오전을 끝으로
참과학샘들이 돌아가고,
우리는 겨우 예서 기른 농산물 조금 나누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지요.
다시 고맙습니다.

점심 때건지기.
한 녀석이 울었습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전화하겠다고.
전화 한 번 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모질게 넘겨보라고 하는 게 그 아이에게 더 좋은 길일 수도 있을 겝니다.
그런데 때로는 아이들을 빨리 포기시키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하데요.
여서는 엄마아빠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워보는 거다,
엄마아빠는 늘 거기 계신다,
그 마음을 한 번 넘어가 보자,
전화 안 된다 하는 거지요.
많은 경우 정작 어른들이 애가 보고 싶어 더 못 견디고,
애는 잘 있는데 걱정이 더 많고는 하데요.
샤워를 시켜줘야 했던 3학년 사내애 하나에게
얼마 전 너무 힘이 들어 너 혼자 해라 했더니
그 다음부터 저가 하는 거니 하고 홀로 하더라나요.
때로는 포기를 통해 더 강건할 수도 있겠습니다.

축구 한 번은 하고 보내야지,
샘들이 아이들을 운동장에 그러모았습니다.
가기 전에 주고 싶은 것들을 그리 챙기고 있었지요.
책방에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방바닥에 배 깔고 재잘거리기도 했으며
난롯가에서 도란거리고도 있었지요.
한편, 혜원이는 문득 자기가 좋아하는 샤브샤브가 생각났나 봅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금요일날 저 사주라고 하세요.”
뭐 어렵겠습니까.
혜원이 고기샤브샤브 좀 멕여주세요~
경이가 아파서 잔 것도 이 때쯤이었던가요.
도연이는 누구랑 만나느냐에 따라 참 다릅니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한 친구가 놀러왔는데,
여태 순하게 잘 지내던 그의 말이 바로 거칠어지데요.
혜송이랑 현수는 자기 모둠 차례도 아닌데
계속 설거지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그리고 하고 있지요.
“많으니까 즐겁게 해야지.”
혜송이는 정말 신나게 때마다 앞치마를 매고 있답니다.
연을 만들 때 자꾸만 해달라고만 하던 아이들 앞에서 난감해하며
저학년이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하고 고민하던 종대샘,
그 두 녀석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지요.
“첫째는 신뢰다!”
현조는 쪼르르 달려가 수민샘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왜?”
“나 뜨개질 가르쳐줘요.”
채민이랑 현조, 오랜 시간 낑낑대다
결국 해냈더라지요.

‘들불’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온 논을 채우며 놀고
샘들이 불을 피워 고구마도 굽고 은행도 구웠지요.
예찬이는 샘들이 빼먹은 떡을 가지러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새끼일꾼들도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요.
몸으로 같이 뒹굴어주는 것이 새끼일꾼 최대의 직분입니다.
“다음번엔 정말 큰 가래떡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먹어야겠다.”
어른들이 불가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윤섭,
다음에 또 올 거라네요, 그거 먹으러.
은행이 맛없다던 태현이는
까주니깐 마지못해 하나 먹는 듯하더니
재현이 주는 것까지 뺏어 먹고 있습디다.
찬희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지요.
간밤부터 아주 살판이 났더니,
넘들 얼굴에 열심히 검댕을 묻히고 다녔습니다.
그걸 또 윤섭이는 열심히 지워주고 있데요.
그 윤섭이 이젠 제비 에미처럼
불가에서 먹을거리를 굽고 있는 샘들한테
은행을 열심히 까주고 있었습니다.
종대샘 앞으로 고구마를 먹으러 길게 줄은 섰던
승연이와 현조가 속닥거립니다.
“언니, 내가 비밀 알려줄까?”
“뭔데?”
“이 샘이 언니 좋아한대.”
“알아.”
“어떻게 알았어?”
“하는 것 보면 알 수 있어.”
하는 짓이 예뻐 누구라도 딸 삼고 싶은 현조를
아들만 있는 종대샘은 엄청 예쁘라고 했거든요.
요즘 아이들은 정말 웃깁니다요.
하는 것 보면 알 수 있어...
참말 평화로운 들이었습니다.

시간에 없던 들불을 놓고 나니
그림놀이 시간이 좇겼습니다.
저학년이 많아 연극놀이보다 낫겠다고 둔 시간이었더라지요.
밥 때까지 겨우 한 시간여입니다.
좀 무리겠다 싶게 준 공동작업이었지요.
그런데도 하는 것 보면 퍽 대단합니다.
지점토로 땅을 표현한 다음
거기 자연물에서부터 온갖 가지들로 학교를 표현했는가 하면,
그림으로 물꼬를 담기도 했고
빨간 다리가 호수를 가로지르는 공원이 나오는가 하면
놀이터가 등장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보면 무척 재밌어요.
자기가 관심이 관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와...”
우리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지도처럼
크게 눈에 보이는 것 중심으로 공간을 표현하는데,
아이들은 보물찾기 하듯 구석구석을 뜬금없이 옮깁니다.
“자기네가 관심 있는 것으로 공간을 채우지요.”
장순이집을 반짝이로 표현하고,
학교 귀퉁이의 쫄랑이집이 크게 등장하고,
된장집 뒤의 계단이 자세히 나오고...
때로 상자 속의 선물보다 그것을 포장한 종이상자를
더 잘 갖고 노는 게 아이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좋습니다, 참말 좋습니다.

저녁.
이수와 바름이와 선아가 아팠습니다.
배도 쓸어주고 열이 가라앉게 약도 이겨주고
약초를 빻아 약도 만들어 멕였지요.
이럴 땐 따뜻한 아랫목이 크게 몫을 하지요.
희중샘이 다들 데리고 숨꼬방에 좀 재웠더랍니다.
현애샘은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지요.
“승연이와 현수 처음 달래며,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 참 당연한데
참으라는 사람 밖에 없으니 얼마나 서러울까,
그래서 울어라 실컷 그랬어요.”
지유와 윤섭이의 진행으로 한데모임을 했고,
비록 답을 맞추지 못했지만 설명을 들어 좋았다는 가야처럼
참과학의 재미들에 대해 입을 모았습니다.
책방의 널려진 책을
지호 주원 경서 은결 윤섭 채민 가야 경이 성빈 현빈이 꽂겠다 나서고
도연이는 또 책 안 꽂는 애들한테
일일이 얘기를 하겠다 했지요.
고래방으로 건너가지 않고 모두방에서 대동놀이를 하는 날,
슬라이드로 겨울 동화(어, 이건 어제네요)를, 이 아니라
손으로 시작해서 좁은 방에서 몸을 뒹굴기 시작하니
열기와 환호성이 더 커집니다.
결국 숨꼬방에 있던 ‘환자(?)’들도
궁금해서 건너오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오자마자 희중샘은
정우랑 엉덩이 씨름장에 불려나가 어리둥절하였지요.
그 천하무적 정우가 그만 밀려나가고 말았더이다.
그래도 정우는 엉덩이가 셉-니다요!

곶감집은 감을 깎아 걸어 곶감을 만드는 감타래가 있는,
밤이면 불을 땐 흙집입니다.
이번 계자는 여자아이들이 많아
학교 안이 아니라 거기서 자고 있지요.
“아빠가 5박 6일이 긴 것 같다고 걱정했는데...”
그 선아가 배앓이를 해서 아랫목에 누웠는데
아랫목이 정말 효과 있는 것 같다며 벌떡 일어났지요.
언니는 광주(*경기도일 듯) 별자리캠프 갔는데,
하루 종일 별자리 공부만 한다며 여기 오길 잘했고,
TV만 보는데 여기서는 TV 생각이 안 난다고
수다까지 떨고 있었습니다.
경이와 은결이는 마사지솜씨를 발휘하여
고단한 부엌엄마를 도왔지요.
“이제야 정말 물꼬에서 노는 방법을 알았어요.”
여기 세 차례 온 은결이가 그랬다나요.
“나는 여기 싫어.”
서정이는 화장실도 불편하고 사는 거 참 힘들 것 같아
곶감집이 싫다 합니다.
“찜질방보다 낫다.”
“좁지만 여럿이 자니까 좋아.”
“나무 타는 냄새가 좋다.
그리 반응하는 다른 아이들의 반론이 있었더랍니다.
참, 가야는 잠귀가 밝더라지요.


얼마 전 서울 가서 어르신 한 분 뵙고 온 일이 있지요.
무슨 얘기 끝에 멀리 비행기 타고 자원봉사 가는 것에 대해
차라리 그 돈을 그곳에 보태는 게 더 도움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들이 가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들을 욕하려는 목적이 결코 아닙니다.
뜻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된 예일 뿐입니다.),
봉사는 진실로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느냐셨지요.
그러고 보면 물꼬는 참 훌륭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주말에 포도 일을 도우러 오면서 외려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식구들 먹을거리를 죄 싸오는가 하면
일상을 밀쳐두고 이렇게 계자에 와서
커다란 불편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을 다 쏟아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꼬가 선해지는 건
바로 그들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러하듯 샘들 분위기도 때마다 다르지요.
지난 계자가 성실하고 진지하고 순했다면
이번 계자는 웃고 떠들고 화기애애합니다.
다음 계자는 또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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