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자 닷샛날, 2008. 1.10.나무날. 맑음 / 달못

조회 수 1735 추천 수 0 2008.01.17 23:08:00

123 계자 닷샛날, 2008. 1.10.나무날. 맑음 / 달못


“옛적 이곳은 아주 너른 분지로 대궐 같은 집이 즐비하여
이 마을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부자가 됐나 궁금도 하였는데...”
달못이라는 곳에서 금은보화를 조금씩 캐내
나누며 사이좋게 살아가던 마을이
어째서 모든 걸 잃게 되었던 걸까요?
골이 깊은 이곳은 이야기 또한 많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달못’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 달못을 찾아 길을 떠났지요.

예, 산에 갑니다.
“산너머가 없으면 매번 오고 싶을 텐데...”
정우가 고민된다는, 지옥훈련이라 소문난 바로 그 산오름이지요.
새벽부터 샘들도 나와
가마솥방 식구들과 김치김밥을 쌌습니다.
잠이 일찍 깨버린 소빈이 샘들 따라 내려와
그 곁에서 같이 싸고 있었지요.
웬만한 샘들 못잖데요.

마을 앞산이라고는 하나 겨울산을 오르는 거라
단단히 준비들을 합니다.
물꼬 옷방은 얼마나 고마운 공간인지요.
요새 어디 낡아버리는 옷이 있더이까.
이곳저곳에서 얻어다 놓은 것들을
예 사는 공동체식구들도 잘 입고
이렇게 찾아오는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도 유용하게 씁니다.

달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갔지요.
요새 산판을 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어디 저어기 먼 덴 줄 알았더니
바로 달골 햇발동과 창고동 바로 위더라구요.
에그머니, 나무들이 뿌리를 잘 내려
땅을 꽉 하니 움켜잡아 무너져 쏠리는 것을 막고 있을 것인데,
장마비라도 시작되면 걱정 이만저만 아니겠다 싶습디다.
그렇게 나무를 판 사람도, 또 그렇게 나무를 잘라 가는 사람도
여러 사정을 잘 살피지 못하였구나 하여 안타까웠지요.
두루 형편을 봐가며 일을 하는 지혜를 길러야겠다 합니다.

사람 다닌 지 오래인 길이나
용하게 짐승들이 오간 흔적이 있기도 하고,
또 더러 뫼를 깊이 쓴 곳이라도 찾아가는 후손 발길이 있으니
우리들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었지요.
늘 그러하듯 첫 쉼은
죽은 자의 집 앞입니다.
무덤 2기가 있는 곳에 다리쉼을 하며
모두가 모였지요.
높은 가지들 사이로 둥그렇게,
그 묏자리만큼 텅 빈 하늘을 보며 누워봅니다.
산, 숲, 나무, ...
아름다운 낱말들입니다.
?'이제는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긁적긁적. 맞는지... ;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구절이 떠올랐지요.

길을 잡습니다. 곧 가파른 경사지를 기어올라
능선을 타게 될 겝니다.
벌써부터 죽으라고 소리치는 녀석들이 있었지요,
죽는다구요.
그 힘으로 오를 일이지...
“사탕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게요.”
그게 힘이 되기도 할까요?
뒤를 도니 서정이며 윤서며 막대기 하나씩 어찌 다 구하여
허리 숙여 짚으며 따라 오르고 있었습니다.

능선길 어드메서 도시락을 풀었지요.
일찍 닿은 이는 낙엽 더미에서 곤함을 풀고 있기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 나무들을 굽어보고도 있었습니다.
일어설 무렵,
무리의 가운데 깨에서
마침 새끼일꾼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전 국토를 춤바람으로 덮은 바로 그 유명한 곡,
아예 공연을 하라 주문들을 하였더이다.
흥을 못 이겨 더 신명을 낸 도연이는
어느새 무대를 저가 다 장악하고 있었지요.
참나무들 사이 울퉁불퉁한 무대도
흥에 가려 아무런 장애가 아니더이다.

계속 능선을 탑니다.
길이야 뚜렷하지만 높고 낮음이 여간 험하지 않습니다.
간벌한 흔적으로 사람 손을 타고 있어
그리 거칠지 않다는 느낌도 주었으나
깎아지른 봉우리 두어 개는
오늘 산행도 그리 쉬운 길이라 할 건 아니다 했지요.
“말없는 친구들에게 말도 시키고...”
늘 그렇듯 산길에서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집니다.
평지를 벗어난 다른 공간은 하나의 기점이 되어
그간 잘 부딪히지 않았던 이들을 만나게 하지요.
산오름의 갖가지 의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도 있는 게지요.
그런데 서너 명이 한꺼번에 제 말 들으라 하는 아이들로
샘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지요.
힘들다 힘들다 하는 소리도
얼마나 표현이 다양하던지,
게다 힘들대면서도 생각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게 다 말이 되어 자잘한 녀석들이 열심히 흘리고 있었답니다.
듬직한 아이들이 제법 두드러진 몫을 하는 것도
바로 산오름에서입니다.
정우는 소연형님 가방을 들어주기도 하고
정훈형님은 오르막에서 재현이를 번쩍 들고 오르고...

아이들은 그예 똥을 쌌습니다.
화장실이 불편하여 참았던 이들이
몸을 움적대기 시작하니 신호가 오는 게지요.
나무 뒤에서 바위 뒤에서 힘들을 주고 있었습니다.
“보는데 내가 다 시원하더라고...”
할머니랑 사는 채민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같은데
말은 시골마을 노파입니다.
‘잘난 체하면 다치고 까불어도 다친다’고도 하고
‘인생은 원래 이런 일도 있는 거’라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낭떠러지 같은 외길이 아슬아슬도 한데
누군가 까불락거리다 미끄러지기도 했나 보지요.
“언니, 결혼할 때 됐어?”
새끼샘들한테 그리 묻기도 하더라지요.
“커서 결혼할 때 사람 잘생긴 것보다 마음을 봐야...”
할머니의 전언이랬지요.
“니네 아부지는 어짜고?”
“저기요.”
다리쉼을 하며 샘들이 정우에게 묻습니다.
정우랑 희중샘은 며칠 동안 부자지간이 되어
산길에서도 나란히 부자산행을 하고 있었지요.
희중샘은 이번 산길도 만만찮았습니다.
어째 좀 덜 고생할까 하여 가방을 작은 걸 챙기긴 하였으나
지유도 가방을 건네주고 수아도 잠바,
서정 혜지도 샘한테 짐을 다 넘겼지요.
몸이 좋으니 힘도 세겠다 여겼나 봅니다.
그런데 산을 어디 힘으로 합디까.

죽은 자의 집 뜰에서 또 한참을 다시 쉼을 했지요.
“갈까요? 이제 만만찮습니다.”
아주 가파른 길을 내려섭니다.
설 것도 없지요.
바로 엉덩이가 먼저 닿아버립니다.
주욱 죽 낙엽 미끄럼틀을 타고 흘러내렸지요.
‘산 너머를 두 번 해봤는데, 산너머의 묘미는 내리막길 인 거 같다.
오르막길은 힘들지만 내려갈 때는 순식간에 뛰내려 가서 재밌다.’
(희중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그러다 아랫부분에서는 눈을 만났습니다.
겨우내 녹지 않을 곳이지요.
거기 또 무덤 하나 있었는데,
볕도 안 드는 그 곳에 망자가 누운 사연은 또 무엇일까요?
이어 마치 이야기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조금은 으슥하기도 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노송나무와 낙엽송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치 키를 세운 곳,
그 나무들을 타고
오랜 세월을 말하는 듯 길게 길게 늘어진 덩굴들을 헤치며
우리는 눈밭을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이다.”
곧 마을이 아래 들어왔고
그 윗목 호두나무 밭에서 산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쉼이 있었지요.
너른 평지에서 나무에 매달린 채 서리 맞고 겨울바람 맞은
곶감이 된 고욤을 따먹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게 아이들만이 아니라데요.
모여 앉아 노래도 부르고
아껴두었던 파이도 먹고
재잘거림이 볕에 부서져 날렸지요.
산 아래 첫 집에서 올라온 강아지 한 마리의 마중에
아이들의 즐거움이 더해졌더랍니다.
재잘재잘재잘재잘...
아, 거기 정토와 천국이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와 아이들 뛰노는 풍경 속에서 이곳이 천국 같다던 옥샘 말씀에 ‘아, 그렇다. 내가 천국에 있구나!’ 새삼 감사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의 내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말입니다.’
현애샘은 하루 평가글에 그리 쓰고 있었지요.

이 골짝 끝마을인 돌고개를 빠져나옵니다.
닭과 오리와 염소가 내 준 소리들이
아이들의 산오름의 마지막 재미를 배가시켜주었지요.
걸어 내려오는 길은 죄 포장입니다.
게다 차 두 대가 빠져나갈 수 있기까지 한 넓이이지요.
차라리 가팔라도 산길이 편합니다.
아쉬워라 하며도
그래도 해발 600에 가까운 마을은
바로 곁으로 산을 양편으로 두고 걷게 하니
아무렴 읍내길 같지야 않지요.
그런데 저학년이 많다고 너무 쉬웠던가 봅니다.
가을산행 같다던가요.
아직도 힘이 남아돌아
뜀박질을 해서 돌아왔지요.
산오름이 가뿐해서 좋았다고도 하나
생사고락을 같이한 연대감은 아무래도 덜한 듯합디다.
무릎앓이로 산만 들었다 내려올라치면
아주 초죽음이 되어 드러눕는데
무척 편했던 일정이 맞나 봅니다.
팔팔한 게지요.
오랜만에 샘들 밀치고 설거지를 해볼 여유가 다 있었으니...

아, 마을로 오는 길,
먼저 간 아이들이 날린 파이 껍질을
찬이랑 소연형님이 줍기 시작했습니다.
보기 시작하면 어디 그것만 눈에 드나요.
예 제 쓰레기들이지요.
어느새 큰 비닐봉투가 다 찼더랍니다.
그런데 곁에 오던 예찬이도 하고 싶어 했지요.
“안돼.”
찬희가 그랬네요.
“우리 파가 아니라서...”
“우리파가 뭔데?”
“쓰레기파!”

강강술래로 마지막 대동놀이를 합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노는데,
도원이와 지호 계속 ‘얼음땡’을 하고,
바름 채민 가야는 너무 재밌게 재잘대고,
은결 경서 서정 웃음을 못 참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게 전체 진행을 방해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대보름날 달 아래 온 마을이 들썩이는 그런 분위기였지요,
보면서도 같이 즐거운.
다시 모둠방으로 돌아와
슬라이드로 우리가 지낸 닷새를 돌아보았습니다.
지난 계자부터 생긴 일정인데,
지난 번엔 마지막날 갈무리글을 쓰기 직전에 하였으나
이번엔 어둠을 이용해 보았지요.
밤에 보는 영상이 더 선명할 밖에요.
“나 열일곱 번 나왔다!”
꼭 그런 녀석이 있지요,
이번에도 예외 없이 열심히 등장 수를 헤아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도원이 생일이래요.”
그냥 가자니 아쉽지요.
도원이 생일잔치로 가마솥방에 모여 곶감을 먹었습니다.
곶감 쌓아진 커다란 접시에 사과촛불이 켜졌더랬지요.

마침내 오늘의 마지막 일정, 촛불잔치!
마당에서 하는 장작놀이를 대신하는 것이었지요.
젊은할아버지는 어느 아궁이에선가 감자를 구워내
장작불을 못 피운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물론 감자를 하나씩 쥔 아이들,
몰려다니며 얼굴에 검댕을 묻혔겠지요.
너무나 순한 저 아이는 동주입니다.
숯을 묻혀도 얼굴 숙이고 씩 웃기만 하지요.
“장난 아니었어요. 변태로 몰리고, 쌍코피도 나고, 오늘 참 암울한 날예요.”
온 아이들의 공격대상이 된
새끼일꾼 정훈형님의 엄살도 있었답니다.
“여긴 안전지대야.”
그렇게 놀기를 원치 않는 아이들을 위해
감히 구운감자를 들고 들어갈 수 없는
보호막도 만들어졌다지요.
도연이가 형님노릇을 제법 한 순간이었답니다.

그리고 샘들 갈무리.
고학년 애들이 조그만 애들을 잘 챙겨줘서
새끼일꾼들이 편했던 것 같다는 새낌샘들의 고마움이 있었고,
‘이제야 애들 이름을 거의 알았는데 끝났다고 슬프네.’라고 쓴
정훈형님이 있었지요.
“참과학 때문에 수업(물꼬 고유의 것들)이 안돼서 아쉬웠다.”는 것도
그가 보낸 물꼬에서의 옛 시간에 대한 그리움일 겝니다.
지난번에 영환형님이 와서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역시 새끼일꾼으로 첫걸음한 정훈형님 또한
물꼬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사람을 보는 것이 좋다.”
다들 입을 모았더랍니다.
“그래도 학교에서 다른 샘들에 비해 항상 애들 입장 생각하려고 하는데,
눈 오면 밖에 나가고 싶겠구나 하고...”
그러나 제도권 안에 있으면
그런 게 생각만큼 잘 안 된다는 현애샘은
여기서는 자연스레 같이 힘들어하고 배고파하고
그래서 섞이기 좋고 지내기도 좋다 하였습니다.
“그들이 즐거워하고 그들이 편해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그런데 물꼬를 만들어가는 일꾼들이 줄 수 있는 편안함으로...”
샘들에 대한 종대샘의 찬사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건 좀 아쉬워했습니다.
“물꼬에 와서 다른데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그 가치가 있을 텐데...”
무슨 말인가 하면, 밥을 남기지 말자 그런 구호도
이곳에서는 이곳으로의 방식으로 잘 접근하여
아이들을 설득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일정에서는 밥을 남기지 않고 잘 먹는 것에 대해
그만 놓치고 지나버렸네요.

날마다 배가 아프도록 샘들이랑 웃어댄 갈무리 자리였습니다.
물꼬는 이제 젊은 에너지에 기대던 방식을 벗어나
(주축들도 나이를 먹었지요)
변화의 전환기인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던 계자였지요.
또 새 날들을, 새 역사를 기대합니다.

우리들이 안에서 뒹굴 때
젊은할아버지는 밖에서 아궁이 여덟 개를 돌보셨습니다.
본관 뒤의 화목보일러, 책방 교무실 가마솥방의 연탄난로,
간장집 곶감집 고추장집 아궁이들이 그것입니다.
역시 우리들이 엉켜있을 때
가마솥방엄마 아빠를 가스렌지 앞에 계셨더랬지요.
모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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