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계자 여는 날, 2008. 1.13.해날. 맑음

조회 수 1525 추천 수 0 2008.02.18 20:11:00

124 계자 여는 날, 2008. 1.13.해날. 맑음


서른여덟의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예서 사는 둘을 더하면 마흔의 아이들이
백스물네 번째인 이번 계자에 함께 할 것입니다.

오전, 영동역으로 아이들을 맞으러 간 뒤
남은 이들이 예제 청소를 했습니다.
‘평소 무심결에 사용할 땐 좁아보이던 곳도 정성을 들여 닦아낼 부분이 참 많았다.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다. 무심코 지나쳐버릴 아이들의 작은 행동과 말을 내 마음을 기울여 찾아낼 수 있을까.’
무열샘은 하루 평가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더이다.
우리 어른들에겐 찬찬히 여러 생각을 해보는
이 같은 귀한 시간이 되기도 할 테지요.

영동역에 나갔던 희중샘은
형길샘이 그리 부러웠더랍니다.
“(부모님들 질문에, 혹은 아이들 물음에) 대답도 잘하고
10년 넘게 다니면서 잘할 수 있게끔...”
그런다지요.
“고속관광 사장님은 늘 나오셔서...”
아이들을 역에서 예까지 실어오는 버스회사의 사장님은
꼭 나와 가방도 넣어주고
곁에 선 부모님들께 나름대로 여태 보아온 물꼬 얘기를 한다 합니다.
여기는 오는 애들이 또 온다,
커가며 애들이 일 도와주러도 온다,
부모가 있으니까 이러지(부모 옆에 있지) 없으면 안 찾는다,
그런 말씀들을 전하는 당신은
물꼬의 훌륭한 홍보대사시랍니다.

“첫날은 그냥 재밌고, 둘쨋날은 조금 재밌고
셋쨋날은 정말 재밌고 넷쨋날은 미친듯이 재밌어요.”
오는 버스에서 세훈이가 했다는 말처럼
그렇게 신명날 계자를 향해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큰대문을 향해 뛰어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이번 계자 아이들 첫인사의 대세입니다.
얼마 전 물꼬가 담겼던 EBS의 <다큐여자> 얘기이지요.
해서 예순한 살이라는 제 나이도 먹혀들질 않습니다.
“에이, 마흔이잖아요.”
“이눔아, 내 나이를 내가 잘 알지...”
“대학교에 가서 뭐 배우는 거 재밌어요?”
그 화면에서 동작교육 강의를 듣던 모습을 기억한 민준이는
그런 질문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였지요.
왔던 아이들의 비율이 높은 물꼬의 다른 계자들과 달리
이번은 동휘 세훈 인영 인 지훈 재희 채현 동하를 빼면
다 처음입니다.
아, 재희에겐 채현이 말고도
두 동생 덕현 동현이가 있다네요.
우와, 동생을 셋이나 거느린 어깨가 크게 무거웠던 장녀였지요.
또 오는 아이들은 새로운 사실들을 더하며
그만큼 가까워진답니다.

애들이 바글거리면 막 행복해집니다.
새끼일꾼 계원이도
아이들 만날 때마다 새롭고 반갑더라나요.
“희중샘이 첫 번째 계자부터 왜 지금까지 계시는지 알 것 같애요.”
가벼운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신체장애우가 오기는 가능치않은 곳이지만.
“아이들이 갈 데가 없다.”
작은 지체장애에도 갈 수 있는 캠프가 없다는데
이렇게 올 수 있으니 좋습니다.
크게 어떤 특별한 치료법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어떤 접근보다 큰 치유법 아니겠냐 묻는 이곳입니다.
무엇보다 거대한 품인 자연이 있잖아요.
때로 똥바지를 빨아야 하고
자면서 몇 차례 깨기도 하고
문제가 툭툭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들이 주는 기쁨에 비할 수 있을는지요,
아이들 서로 서로가 그 속에서 배우는 것에 비기려나요.

“너 입술이 왜 커?”
“응. 내가 옛날에...”
눈이 조금 큰 아이처럼 입술이 조금 두툼한 세현이에게
채현이가 물었습니다.
세현이는 또 잘 설명을 해주데요.
그래, 그렇게 그렇게 만나는 겁니다.
교양이라는 어줍잖은 이름 아래서
궁금한 데도 모른 척,
혹은 알고 난 뒤 무시하면서 아닌 척,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던가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 산의 품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숱한 존재들처럼
그리 조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긴장감이 작진 않지만
그들이 가진 자연의 속성이 드러날 것을 알기에
또 한없이 즐거움이 확대되기도 하답니다.

들어오는 버스에서 이미 아이들은 친구를 엮습니다.
거기서부터도 넘치고 넘치는 이야기이지요.
세훈이,
오래 사랑스런 한 아이를 본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요.
형길샘이 형찬이를 보며 웃는 모습이 백만 불짜리라 하니
세훈이, 소희샘을 가리키며 1원짜리라 했다나요.
그래서 형길샘이 샘들 이름을 대며 물었답니다.
“나는?”
“10원!”
“상범샘은?”
“1억!”
“옥샘은?”
“9억 만원!”
아, 누가 이 세상에서 날 그리 값 매겨줄 것인가,
말 한마디로 하늘을 납니다.

대문에서 맞았던 아이들이 모두 방으로 모여들면
예서 지낼 시간과 공간에 대해 안내를 시작하지요.
코앞에서 몸이 엉키는 녀석들이 있고
끊임없이 조잘대는 이들도 있고
아, 이번 계자도 만만치는 않겠구나,
그래, 또 어떤 날들일 것이냐,
가만가만 따져보며 말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일곱 살 민석 선수,
나무에 기어오르듯 원숭이처럼 매달려옵니다,
업히기도 하고.
보다 못한 샘들이 떼어내 주기도 하지만
이내 또 올라오지요.
“괜찮아요.”
노구(老軀)인지라 나중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아플 만치였지요.
그런데 잘했습니다.
그게 그 아이의 사람 만나기 방식일 테니까요.
“물꼬에서 젤 쌔(새) 게 있는데...”
아이들이 혹 돈이며 제 물건에 마음 쓰여 놀지 못할까
금고 하나를 마련해두었지요.
게다 아이들 귀중품을 보관케 합니다.
“저어기 소나무 아래...”
그런데 지난 번 계자의 귀남이처럼
큰 아이들까지도 소나무 아래 금고를 여는 버튼을 눌러봐 달라합니다.
동하는 소나무 둘레를 어슬렁거리며
금고 어딨냐 파보라 샘들을 조르더라지요.

점심을 먹고 움직이는 시간은
아이들이 공간을 익히거나
마당에 쏟아져 나와 공을 차거나 책을 읽거나
이래저래 분위기를 살피고 젖는 시간들이지요.
이어진 ‘큰모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집이 탄생합니다.
바램을 담지요.
좋아하는 걸 그려놓기도 하고
하고픈 말을, 이곳의 인상을 담기도 합니다.
세훈이는 샘들을 하나 하나 그려 넣고 있데요.
세영이는 자기 예쁜 모습을 그렸습니다.
(인영이가 왔고 동생 세훈이가 왔고
그리고 이제 그 동생 세영이가 왔지요.
“동생 이제 끝이야?”)
송휘는 그림을 참 잘 그리데요.

옷을 단단히 입고 ‘두멧길’에 나섰습니다.
예서 아이들은 모다 밀착합니다.
마을길을 돌고 동네를 감아 돈 뒤
학교를 끼고 뒷마을을 지나 산기슭으로 가지요.
상원이랑 재우는 어지간히 힘이 넘칩니다.
산을 넘어가자데요.
거기 ‘티벳길’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명상의 길이지요,
짙은 나무 그늘일 땐 히말라야 고지대의 어느 자락 같은.
생각이 복잡할 때 걷는 길,
그래서 새끼일꾼 진주는 예 사는 류옥하다가 부럽더라나요.
“티벳길에서 샘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즐거웠어요.”
저녁에 이정이는 그랬지요.
세훈이는 대나무 숲에 갔을 즈음
맨 뒤에서 힘들다고 지친 할아버지마냥 터벅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자”
뒤로 돌아가랬더니 젤 먼저 뛰어가더라는 무열샘 증언이었지요.
“회춘했나 봐요.”

일정과 일정 사이의 틈바구니 시간들이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라고도 하지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주절이 주절이 열리던지요.
예현이가 밥을 먹으며 그랬답니다.
“그럼, 우리가 하늘을 먹는 거예요?”
아이들은 설거지도 잘합니다.
“세훈아, 우리 모둠 다섯 명만 모아와 봐.”
그런데 함흥차사더라지요.
한참을 있다 나타난 세훈,
아이들을 모아 반을 가르고 설거지, 행주질,
이것저것 역할을 나누어왔더랍니다.
와 본 놈이 뭐라도 다를 밖에요.
“뭐 할 것 없어요?”
다 하고 묻던 눈 뎅그란 세훈이었지요.
6학년 요한이는 말없이 제 일을 참 잘 하더라 합니다.
형들이 잘할 거다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여러 학교 샘들이 모여 보면
뺑실뺑실한 고학년들로 힘들다 하소연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어, 어, 어...”
“걸려, 걸려!”
그때 모둠방에선 희안한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새끼일꾼 아람이랑 계원이가 뭘 잡고 있고
아이들이 더러는 조심조심 넘어가고 더러는 기어가는데...
“물꼬 발명품이야.”
“눈에 안 보이는 실이지.”
또 그걸 진지하게 넘어가는 아이들이었지요.
정말 정말 별 게 다 놀이입니다.
빈곤 속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풍성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자주 깨우쳐지는 이곳입니다.

노래를 부르며 시작하는 ‘한데모임’.
손말도 배우고 의논도 하고 알리기도 합니다.
“이게 모임이에요? 시장바닥인데...”
어디고 참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런데 공을 들여서, 이 사회 온 구석이 안 되는 말하기 듣기
바로 그걸 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다면
어떤 훈련보다 필요한 것이 그것일 것이므로.
저기 재영이는 일곱 살 윤찬이를 앞에 앉고 있었습니다.
첨엔 같이 온 동생이어 돌봐줄 의무라도 있는 줄 알았지요.
재영이는 조금 더딥니다.
또래모임은 때로 얼마나 적나라하게 허물을 들추는 지요.
기준치에 조금만 미치지 못하면 표가 나버리니까요.
그래서 행정편의로 이루어진 또래학년 문화는
때로 잔인하다 싶습니다.
조금만 못해도 두드러져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데 옛적 마을 문화, 서당문화 같은 이곳은
존재 하나 하나가 제 역할을 갖습니다,
저 모습처럼.

‘대동놀이’하러 고래방에 건너갑니다.
우리들의 체육관이지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노곤해지던 한데모임에서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던 이들도
우두두거리며 달려 나갑니다.
이어달리기로 시작하여 닭싸움도 하고
허물을 벗고 사람이 되는 놀이도 하고 동애따기도 하고...
진화하지 못한 상범샘의 좌절은
우리 모두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았습니다.
형길샘도 종대샘도,
이곳 샘들은 늘 아이들 속에서 그렇게 흥을 돋웁니다,
스스로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이 번져가도록.
현우며 채현 채윤이 저 얼굴들 좀 보셔요.
소리만 들어도, 보기만 해도 즐거운 대동놀이랍니다.
그런데 우리 이정이는 이런 분위기가 싫다네요.
그는 조용한 걸 참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아이들이 하루를 돌아보며 날적이를 씁니다.
‘모둠 하루재기’라 부르지요.
둘러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얘기도 나누고 글도 씁니다.
호열이는 한 줄을 썼네요.
‘무열샘과의 무열한 전투’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내가 이미 여기에 있기에 여기를 잔뜩 즐기기로 했다.’
인영이는 그리 썼더라데요.
‘엄마,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많히 해어져서 슬펏어요.’
윤찬입니다.
슬프지만 예서 친구도 사귀고, 만나고 좋았다네요.
엄마 아빠 사랑한다고 덧붙이고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찬 선수
인천에서 한사코 혼자 왔다는데,
어찌 어찌 왔다는데 긴가민가 싶더니
“누가 예뻐서 데려가 버리면 어쩔려구?”
“(안 그래도)어떤 나쁜 아저씨가 데려갈라 그래서 제가 발로 뻥 찼어요.”
아하, 아무래도 이 녀석 소설 쓰고 있구나,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이 깜찍한 녀석...
그런 아이들과 닷새를 보낼 겁니다,
환상과 사실이 공존하는 그 아이들 세계에서.
“책방에서 예현이가 제게 춥다니까 잠바를 벗어서 덮어주었는데...”
사랑이 넘치는 계자라는 새끼일꾼 진주의 평처럼
우리 모다 그리 푹한 날들이 될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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