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계자 나흗날, 2008. 1.16.물날. 맑음

조회 수 1515 추천 수 0 2008.02.18 20:14:00

124 계자 나흗날, 2008. 1.16.물날. 맑음


“거기는 아주 얼어붙었지요?”
몹시 춥습니다.
서울에서 한 어르신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기온이 엄청 내려갔다는데, 그런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춥기 마련이니까요.
또 아이들이 같이 뒹굴고 있으니까요.

해건지기를 끝낸 아이들과 달골에 간 아침입니다.
바람이 맵긴 맵습디다.
그래도 투덜거리며 잘도 가고
좋아하기까지도 합니다.
움직이기가 어렵지 움직이고 나면
또 움직여지는 게 몸이지요.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지 않더이까.
하지만 매운 바람은 어린 녀석들을 더러
발 동동거리게도 했지요.
그런데 큰 아쉬움 하나 있었습니다.
호젓한 길인데, 산 속 한적한 길인데
산판하고 나무를 실어내던 트럭이 있었네요.
아이들이 다 지나가면 움직이라 부탁도 했지만
두어 차례 지나간 트럭 소리가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기계음이 아니라 딱따구리며 바람소리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로 채워주고팠거든요.
하지만 떠오르는 해 앞에 소망을 담아 보낸 간절함은
훗날에도 바람을 이뤄 가는데 힘 하나 돼주지 않을지요.

온 동네 모두가 만두 빚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동화책 하나 같이 읽고
‘보글보글’을 시작합니다.
‘용감한 만두’방엔 요한 재우 윤찬이가 들어갔습니다.
면면해진 윤찬이는 이제 땡강도 좀 부리고,
요한이는 여전히 말없이 움직입니다.
너무나 예쁘게 만두를 빚어냈지요,
윤찬이가 터뜨려놓은 만두를 영화샘이랑 보수도 하고.
“개성 있는 만두예요.”
윤찬이는 거기다 깨끗이 한다면서 행주로 닦기도 했습니다.
“니 이름 써놓지?”
“더러워서(* 주. 더러워지니까?) 싫어요.”
재우는 보기와 다르게 꼼꼼하고, 열심히 만듭니다.
보기엔? 글쎄...
재우네 엄마가 아이 다친 발가락을 걱정하던 게 생각났지요.
“재우야, 너 발가락 괜찮아?”
“네?”
“너 발가락 다쳤다며?”
“쪼금 다쳤는데...”
보니 상처자국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 엄마는요, 거짓말을 해도 믿어주세요.”
지혜로운 분이신가 봅니다.
그래, 어디 몰라서 모르는가요.
속아주는 어른의 지혜는 또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던지요.

‘슬기로운 만두’에는 재희 채현 일우 민준 성열 재영이가,
‘착한만두’는
윤정 채윤 세영 윤지 수진 인영 형찬 세혁 예현이 같이 했습니다.
“우리가 왜 착한 만두일까?”
“이런 만두를 우리가 먹어주니까요.”인영이의 재치였지요.
예현이는 뭘 할라치면 옆에서 얼른 손을 듭니다.
“저요,저요.”
참 예쁘게 자란 아이랍니다.
(미순샘은 정말 막둥이를 잘 키워놨어요. 좋겄다!)

‘고운만두’,
지훈 성건 세아 세훈 서현 동휘 현우 송휘.
대체로 여자아이들이 더 잘하지 싶지만
성건 세훈 지훈 현우가 끈덕지게 앉아 만두를 빚은 반면
여자애들은 좀 귀찮아라 했다네요.
성건이는 만두 빚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모으기,
그리고 마무리 청소까지 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합니다.

만두를 빚는 네 모둠에 들어간 아이들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너그러운 보자기’에서 만두피를 밀었지요.
어김없이 밀가루가 난무했고
장난까지 더해져 모두 얼굴이 허얘져 있었답니다.
“아이구, 아이구, 이거 우리밀로 빻은 밀가루인데...”

‘연극놀이’.
그런데 연극을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연극도 들어간 ‘끼리끼리교실’을 열면 어떻겠냐 물었습니다.
저들도 하고픈 게 있겠다 싶어,
게다 올 겨울 마지막 계자가 끝나가는 아쉬움에서도
뭔가 좀 더 많은 걸 해보고픈 욕심에.
우리가 어떤 교실을 열 수 있을지 의견을 다 내놓고
가능할 수 있도록 통폐합도 시키고 하였습니다.
세훈이가 어찌나 열심히 머리를 짜내던지요.

아이들이 스스로 꾸려나가는 시간입니다,
필요하면 샘들이 불려가기도 하면서.
약속한 시간에 모여 펼쳐보이기를 하였지요.
서현이는 맛뵈기 작은공연이 먼저 있었습니다.
수줍음 많이도 타던 서현이,
여자애들 앞에서만 한다던 서현이,
종대샘이 준비해준 음악에 모두 앞에서 그예 발레공연을 하였네요.
샘들의 개막공연이 이어졌지요.
새끼일꾼 우리의 계원 선수가 꼭 자기 닮은,
놀이치료에서 흔히 쓰는 거라며 ‘깜찍이’를 샘들한테 가르쳐주었고
그걸 모든 샘들이 나와서 열심히 해보였습니다.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마다요.

다음은 아이들이 보낸 시간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1강 ‘만들기(뚝딱뚝딱)’와 7강 ‘나뭇가지로’는
나무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같이 모이더니
자연스레 한 교실로 덩어리가 져 있었습니다.
세훈 지훈 윤찬 재우 동하 성건이와
성열 상원 성혁 수민 대용 일우 민준.
나무에 수도 없이 박힌 못자국을 보며
원 없이 해봤겠구나 짐작하고도 남았지요.
도중에 위험하다는 제보에 형길샘이 수습하러 나가
도끼와 전정가위로 뭔가를 자른다는 호열이를 말린 뒤
톱질 망치질만 하라고 다시 일러주고 온 일도 있었습니다.
대장이었던 성건이는 그 시간 끝에
도구 공구들을 제자리에 다 정리하는 책임을 확실하게 완수하였지요.
긴 가지를 무릎을 세워 잘라주는
민준이의 친절 덕을 본 아이들을 여럿이었답니다.
아이들은 새총 나무망치 창들을 무대에 서서 내밀었댔지요.

2강 ‘그림’에선
허드렛종이에다가 그린 그림들을 들고 나왔습니다.
인 세아 재희 현우 이정 태현 민석 류옥하다가 같이 했지요.
그림을 그린다고 둘러앉아
새 정부가 꾸려지는 이즈음의 사안의 영향으로
저들도 그리 놀았더랍니다.
대통령에 인, 부통령 세아, 대구시장 광주시장 이정, 교육인적자원부 태현,
퇴직 부통령이던 재희는 나중에는 부산시장에 등극했고,
대통령비서 대구서울대전시장 농림부랑 나머지들은 류옥하다가 했다네요.
대통령모독죄 탈옥수는 현우였다는데,
그건 또 무슨 뜻이었는지, 원...
여튼 참 유쾌한 그들의 세계입니다.

3강 ‘연극’은 예현 현주 세영이가 했습니다.
<사냥꾼과 말하는 토끼>.
커다란 종이에 대본을 썼고,해설과 사냥꾼, 토끼역들을 맡았지요.
류옥하다와 세훈이가 나가서 대본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해요.”
예현이의 해설에 예현이의 사촌오빠 세혁이 마뜩찮아 합니다.
“그럼 너 해봐라.”
관객들의 반응에 또 나가는 세혁이네요.
목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하는 세혁,
말이 꼬입니다.
그래도 너그러운 관객들,
한번 더 하는 걸 기다려주지요.
“네가 더 이상해.”
맨앞에 앉은 세훈이가 예현이 편든다고
세혁에게 면박을 주기도 하였는데,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하고 내려온 세혁이었답니다.

4강 ‘그림책’은...
세상에! 일고여덟 살 셋이 교실을 열고 꾸렸습니다.
물론 저들끼리.
시간 ‘5분 전’에 정리도 다 하고 나타났지요.
“책방 다 치우고, 색연필은 파란색 옷한테 치우라 하고...”
이름도 여직 모르고 같이 했던가 봅니다.
채현이부터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내일이 됐습니다.”
이튿날이 됐다는 말이겠지요.
호열이 동화가 조금 밋밋했던 느낌이 있었던 걸까요,
다음으로 읽던 형찬이
자기 동화책을 읽기 전 하는 말 좀 들어보셔요.
“전 좀 재미있겠습니다.”

5강은 ‘자원봉사’였네요.
종훈이와 요한이가 들어갔습니다.
추위에 아랑곳 않고
책방 정리와 쓰레기 줍기, 갖가지 도움, 심부름을 하러 다녔는데,
매운 바람 몰아치는 운동장에서 맨손으로 쓰레기를 줍고 있는 그네들은
지나던 형길샘이 내민 장갑도 마다하고 움직이고 있더라지요.

6강 ‘재주(특기)’입니다.
춤이었지요.
윤지 채윤 윤정 수진 인영이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완성된 텔미였지요.

7강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를 신청했던 재영이는
스스로 취소해버렸고
9강이었던 판소리는 형찬이 신청하였는데
가르쳐주기로 했던 류옥하다가 수명이 적다고 저는 그림으로 가버린 바람에
폐강이 되어버렸더라지요.
물론 이름 없이도 들어간 아이들이 있었고,
더러 책방을, 마당을 달리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샘들의 폐막공연으로 ‘펼쳐보이기’가 끝났습니다.
십년 전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가르쳐주었던 노래를
초등학교 계자 때 배웠던 그들이 이제 어른으로 자라
아이들에게 선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익힌 것들은, 혹은 음으로 익힌 것들은
유효기간이 얼마나 길던지요.
모여앉아 짜맞춰보더니 정말 완성을 해냈네요.
댓마(뒷마을) 사는 그 시절의 품앗이일꾼 희정샘도 불러다가 말입니다.

형길샘: 특히 어린 아이들이 뭔가 그 시간을 보낸 흔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매듭 모습 놀랍기도 하고 예뻐기도 하고...
무열: 정말 많이 놀랐고 많이 감동했다. 솔직히 마음 속으로는 아이들이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 발레한 서현이, 7~8살에 불과한 채현이, 형찬이, 성열이 등등. 아이들의 발표를 보자 내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한편으로 얕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충격과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용기 있었고 멋졌고 빛나고 있었다.

샘들이 공연을 보고 쓴 글들입니다.

“민준아, 니네 ‘나뭇가지로’는 누구누구 했니?”
“음...”
“신청 종이 보관하고 있어랬잖아.”
민준이는 목공실에 그 종이를 두고 왔다며
어둑해준 바깥으로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러 갔는데...
없다고 돌아온 민준이 그 명단을 어디서 찾았을까요?
호열이가 모자도 장갑도 어디서 찾았던가요?
네, 민준이 주머니에 들어있었습니다.
딴에 잘 챙긴다고 꼬깃꼬깃 접어 넣었던 게지요.

펼쳐보이기가 끝나자 마침 징이 울렸습니다.
저녁 먹으라는 종소리이지요.
“그런데 연극은 언제해요?”
지훈이와 성열이만 그리 물은 게 아니랍니다.
분명 연극교실 대신 끼리끼리교실을 하는 거고
연극을 하고픈 이는 연극모둠을 만들면 된다 하였거늘...

아이들이랑 밥상에서 퍽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지요.
오늘은 민석이랑 태현이랑 밥을 먹었습니다.
“옥샘, 이것을 무어라 부르는지 아세요?
생선을 가리키는 민석입니다.
“이면수라고...”
“집에서는 엄마가 이런 거 다 발라줬는데,
여기서는 내가 해야 되네.”
이 이쁜 녀석들을 예 보내놓고 부모님들은 얼마나 보고플까요?
“엄마는 빵을 만들면 바닥을 태우구요.”
옆에서 태현이도 보탭니다.
“우리 엄마는 쿠키는 다 태워요.”
이눔의 자슥들,
엄마가 뭘 두 번 태웠으면 온 부엌을 태웠다 할 겝니다.
아, 얼마나 애정 어린 아이들인지요.
가만가만 듣고 있으면
그렇게 들여다보는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요란한 큰 동작보다
그런 소소함 속에 사람을 만나는 게 참말 좋습니다.
(첫날부터 하루재기에서
할 말 없음, 집에 가고 싶음, 재미 없음으로 일관하던 태현이
오늘 드디어 신나게 하루재기를 해줬다나요.)

한데모임을 하고
오늘은 또 좀 다르게 대동놀이를 엽니다.
슬라이드로 동화 한편을 보지요.
겨울 숲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마침 이 산골의 겨울밤과도 잘 어울립니다.
겨울밤, 고요하게 바라보는 영상은
고스란히 잘 만든 영화의 한 장면만 같습니다.
오늘의 대동놀이는 모둠방에서 이어졌지요.
온몸을 데굴거리며 이어달리기를 하고
손으로 무릎으로 어깨로 씨름도 하고
엉덩이를 줄 밖에 밀어내기도 합니다.
가만 가만 누구 엉덩이가 최고더라
일우?

무열샘이 이번 계자에서 빨래를 맡았습니다.
돌리고 널고 말리고 개키고 돌려주는 일이지요.
그런데 어찌나 바지런한지
어제 내놓은 걸 오늘 말려 내주고 있습니다.
지지난해 여름 계자 이후로 없던 일이지요.
우와,
저 성실맨 장가가면 마누라가 좀 고달프지는 않을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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