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1.달날. 눈

조회 수 1395 추천 수 0 2008.02.20 19:15:00

2008. 1.21.달날. 눈


알아서들 먹자던 아침입니다.
엊저녁 미리 아침거리들을 준비해두었더라지요.
계자 뒤 묵었던 이들이 떠나고
비로소 이제야 계자의 피로를 이불에 묻는 아침입니다.
군불 땐 방에서 늦도록 뒹굽니다.
아, 눈 내리는 산골의 적막은
‘사무치다’라는 말이 어떤 어감인지 사무치게 합니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 ‘속절없이’란 낱말을 그만 이해해버리듯.
백석의 나타샤가 생각나고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이 겹쳐지고
브뤼겔의 돌아오는 사냥꾼들을 따르는 사냥개들 꼬리가 흔들리고...

“빵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눈밭을 실컷 뛰어다니던 아이가 돌아와
살며시 방문을 열며 에미를 살핍니다.
“빵 한 조각만 먹을까?”
식빵 딱 한 조각만 먹지 싶데요.
눈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시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정말 빵 한 조각만 먹을 생각이었고,
심부름을 시키면 큰 애들조차 딱 그것만 하는 경우가 흔한지라
빵 꾸러미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이는 커다란 쟁반을 두 손으로 받치고
한 손에 빵 꾸러미를 걸쳐 왔데요.
그것도 눈 온다고 다른 그릇으로 뚜껑을 덮어
요걸트와 물을 챙겨왔습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우리 어른들이지요.
이만만 하면 되지 싶더이다.

저녁에는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고래방에 모여 영화를 보았지요.
정말 계자가 끝났군요.

.
이 시대 최고의 음악영화로 꼽기에 주저치 않는다 합니다.
때론 음악이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존 카니 감독의 확신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지지요.
꾸밈이 없는 연출은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뮤지션이기도 한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음악적연기’(그들은 음악으로 연기하므로)는
어떤 배우보다 빛났지요.
내용요?
그 남자에겐
자신의 마음을 전부 헝클어놓고 떠난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에겐
사랑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남편이 있지요.
그리고 아이도 있습니다.
둘이 만나 음악을 나누며 점점 묘한 감정을 쌓아가지요.
남자는 솔직하고 여자는 현실적입니다.

그 남자: 그를 사랑하나요가 체코어로 뭐죠?
그 여자: 뮬뤼에 셔
그 남자: 뮬뤼에 셔... 뮬뤼에 셔.
그럼 뮬뤼에 셔?
그 여자: 뮬뤼에 떼베
그 남자: 뭐라구요?

뮬뤼에 떼베(당신을 사랑해요)...
소박한 영화지요.
아름다웠습니다, 노래도, 그들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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