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12.해날. 밤새 내리던 비 개다

조회 수 1224 추천 수 0 2010.09.29 17:47:00

2010. 9.12.해날. 밤새 내리던 비 개다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던,
밤새 내리던 비였습니다.
오전이 지나면서야 갰지요.

천장 공사로 뒤집어졌던 가마솥방,
자욱하게 내린 먼지를 털고
어제는 큰 것만 자리를 잡아두었고
오늘은 구석구석 청소를 했습니다.
덕분에 묵은 먼지도 닦았지요.

며칠 전 진돗개 장순이 밤새 서럽게 울었습니다.
주인 잘못 만나 새끼 한번 낳아보지 못하고
긴 세월을 학교마당을 지켰습니다.
2003년 늦가을에 와서 이적지 말이지요.
상설학교가 문을 열고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았고,
그 아이들이 가는 것을 보았으며,
계자에서 쉼 없이 아이들 오고 가는 걸 지켜보았던 그입니다.
그날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을 꺼나요.
날이 밝아 보니
장순이 집 지붕이 무너져있었지요.
고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지붕 지주로 쓰인 쇠장대에 목줄이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다녔습니다.
영리한 녀석입니다.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아무래도 먹는 게 어설픕니다.
그걸 핑계로 저녁에
식구들 모두 면소재지로 바깥밥 먹으러 갔지요.
바깥 음식 먹고는 대개는 속이 좀 불편하다며
식당을 나서면서는 꼭 밥은 우리 밥이 최고라 합니다.
그런데도 또 이렇게 나가게 되는 건
내내 밥상을 차려내는 이에 대한 배려이지요.
서로를 헤아려주는 이런 마음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데 무엇보다 앞서 필요하지 않냐 싶습니다.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겠다고 보기를 미루던,
언제부터 읽어야지 하고 꼽던 책이었더랬지요.
수학의 아름다운 질서가 황홀하게 그려집니다.
80분만 지속되는 기억을 가진 천재수학자와
고용주의 관심사에 부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이 좋아서 머리에 수학이 쏙쏙 들어가는 가정부,
그리고 루터라 불리는 가정부의 아들,
야구를 교집합으로 세 사람의 따스함이 더욱 공고해져가는 말미에서
장이 얇아질수록 그들의 생활을 더 들여다보고 싶어 아쉬웠더랍니다.
이야기는 이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읽는 책이 많지도 않지만,
오랜만에 종이가 아깝지 않은 책이었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걸 보면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지요.
그게 바로 작자의 품을 떠난, 독자의 해석일 테구요.
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으로
가장 깊이 마음이 울렸던 한 부분을 옮깁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박사가 어린아이에게 쏟는 애정의 순수함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그것은 오일러의 공식이 불변한 것처럼 영원한 진실이다.
박사는 어떤 경우에도 루트를 지키려고 했다. 루트는 늘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어도 루트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무를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여겼다.
박사의 생각이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전해지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루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느꼈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받아넘기거나 모르는 채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는 박사의 배려가 고귀하고 고마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루트는 그런 능력을 갖춘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자기 반찬이 루트보다 많으면 박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주의를 주었다. 생선 토막이든 스테이크든 수박이든, 제일 좋은 부분을 가장 어린 사람에게 준다는 신념을 끝까지 관철했다. 현상문제에 대한 고찰 때문에 가경에 빠져 있을 때조차 루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무한정 시간을 할애했다. 루트가 질문을 하면 어떤 질문이든 기뻐했다.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로 고민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정확한 답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질문한 당사자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루트는 스스로 찾아낸 답 앞에서, 그 답의 정확함뿐만 아니라 질문 자체의 훌륭함에 황홀해했다. 박사는 또 루트의 몸에 대해서도 천재적인 관찰력을 보여주었다. 눈을 찌르는 속눈썹을 발견한 것도, 귓불에 난 뾰루지를 발견한 것도 나보다 빨랐다. 빤히 쳐다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도 루트의 어느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간파했다. 게다가 본인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내게만 살짝 가르쳐주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귀띔을 하던 박사의 목소리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네, 알았어요. 병원에 데리고 갈게요. 그렇게 말할 때까지 박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루트를 소수만큼이나 아꼈다. 소수가 모든 자연수를 있게 하는 근원이듯, 아이는 어른에게 필요불가결한 원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도 다 아이들 덕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가끔, 나는 메모지를 꺼내 본다. 왠지 잠이 오지 않는 밤, 혼자 있는 저녁 시간,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을 때, 거기에 쓰여 있는 한 줄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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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12.해날. 비 조금.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인디언 아이의 이야기로 일종의 자서전이다.
줄거리는, 작은나무(인디언 아이의 이름)의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인디언인 할아버지 곁에서 3살부터 10살까지 산속에서 자연과 놀고, 농사를 짓고 하는 것이다. 쟁기질도 하고, 위스키를 불법으로 만들어 판매해보기도 하고, 여우몰이를 하기도 한다. 아! 중간에 잠시 ‘법’에 끌려가서 고아원에서 며칠을 지낸 적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10살까지 있다가, 결국 할압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옛 인디언 연방’으로 떠난다.
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이 필요한 이상으로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자연과 대화를 하는 체로키 인디언족의 생활이 신기하고, 좋았다.
작은나무가 할아버지에게 배운 지혜는 나도 교훈이 되었다. 무슨 생물이든 자기가 쓸모있게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과, 작은나무가 위선자에게 병 걸린 송아지를 샀다가 50센트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할아버지가, ‘너는 그때 송아지를 안 샀으면 평생 아쉬워했을 거란다.’라고 하는 것 등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의 감사함과,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중에 또 읽고 싶은 책이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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