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8.쇠날. 비

조회 수 1327 추천 수 0 2007.12.31 17:53:00

2007.12.28.쇠날. 비


옛적 며느리 9년 삶을 그리 말하던가요,
소경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
그러다 속에 천불이 나면
빨랫감 들고 나가는 겁니다.
방망이질을 막 해대면서
스윽스윽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에 훨훨 빨래를 헹궈내면서
거기 마음도 같이 보내는 거지요.
물 길러 가서는 두레박을 탁 던지며
시름 한 켠도 거기 던지고,
똬리 위에 물동이 얹어 오직 한 자세로
삶의 균형을 그리 유지하듯 집을 향해 걸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집안일이라는 것들이(청소라거나 빨래, 혹은 부엌일)
어느 순간 빛나지 않음으로 전락합니다.
어떤 생산적 성과(사실은 먹고 입고 지내는 그게 성과 아닌가)가 없는,
특히 이 자본의 시대에 돈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그 일은 그만 무가치한 일이거나
별 중요치 않은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혹은 생태적인 사람들조차
가끔 농사만이 위대한 노동처럼 착각하는데,
농사가 주는 육체적 노동이 주는 기쁨이
망치 들고 톱 들고도 있듯이,
땀 뻘뻘 흘릴 때의 즐거움과 평화가
부엌일을 하는 과정 하나 하나에도 엄연히 들어있습니다.
너무 일상적이어 가끔은 잊어버리고,
자잘한 일이라고 밀리기 일쑤이지만.

꾸질꾸질하고 냄새나는 거름더미 멀지않은 일상으로,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더러 들기도 하고 처마 밑으로 비 들이치는,
또 그을음 이는 아궁이 밖으로 넘어오는 매캐한 연기 앞으로...
단순하되 한편 거칠고 일일이 손발을 많이도 요구하는
‘불편한 복잡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 귀농이라면
그런 삶을 택한 모진(?) 작정 한가운데
밥을 짓고 그릇을 부시는 일이 있겠습니다.
어릴 적 귀찮아서 밥 안 먹는다 하면
할머니는 그러면 고만 살아야지 하셨지요.
귀찮다고 안 먹다니요,
그러면 뭘 한단 말인가요,
무엇을 한단 말입니까.
무슨 행사를 치러도 그렇고
공동체에서 사는 일도 부엌일은 큰 일이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마치 그게 또 모든 일인 양 전권을 휘두른다면,
그렇게 오만하다면 그 진리가 또 무슨 소용이겠으며,
다른 일에 가려 표가 나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는 것도,
무슨 부엌데기라고 비천해지는 것도,
모두 어리석은 일이겠습니다.
귀농 못잖게 귀부엌(?)의 가치관도 참말 중요하다 그 말입니다.
공동체의 모든 부분의 일이 그러해야겠지만
내가 쓰일 곳이 있어 얻게 된 기쁨이,
설혹 빛나지 않아도 스스로 충만한 자긍심이,
특히 부엌일을 하는 이에게 필요하겠습니다.
일을 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좀 서툴더라도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씀이
공동체살림의 어느 영역보다 필요한 곳이 부엌인 듯하더이다.

어디 부엌일의 중요함을 그간 몰랐겠는지요.
문득 귀농의 관점에서 부엌노동을 바라보다
공동체부엌살림까지 생각이 이어간 게지요.

그 부엌일을 논두렁 조희순님이 오늘은 맡아준 덕에
그간 쌓인 피로를 풀었습니다.
조금 무리다 싶게 방학일정을 보내고 있었지요.
게다 사람들이 서울에서 묻혀온 심한 목감기도 앓던 참입니다.
목이 이러면 계자부터 걱정이 되지요.
진행으로 목을 많이 써야 하기도 하고,
꼭 판소리를 들려주고 싶어도 하고,
대동놀이에서 소리소리 함성을 질러도 보고 싶어 하니까요.
덕분에 쉬어갑니다.


참, 스님 한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한 때(상설학교로 겨우 네 해째입니다만) 이곳의 학부모였지요.
절문을 들어가시고 한 해가 흘렀습니다.
아주 젊었을 적 출가를 한 경험도 있으시지요.
지나는 걸음에 이렇게 인사 와주셨습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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