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계자 나흗날, 2008. 1. 2.물날. 맑음

조회 수 1712 추천 수 0 2008.01.06 22:14:00

122 계자 나흗날, 2008. 1. 2.물날. 맑음


“아이들과 사는 일이 참 좋습니다.
책 읽어주고
같이 뭔가를 하고
뛰고 조잘대고...
그 아이들을 설득하는 건 매도 아니고 큰소리도 아닙니다.
잠깐 굴복할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을 결국 설득해내는 건 애정이지요.”
아이들이랑 뒹구는 날들이 참말 좋습니다.

해건지기를 한 뒤 달골 갑니다.
오르면서도 눈싸움 질기게 하데요.
이 골짝 해가 가장 먼저 닿는 곳,
거기 마침 해가 오르고 있었습니다.
새해소망을 빌었지요.
가슴 속에 소망을 품고 잃어버리거나 잊지 않는다면
바램 차고 넘쳐 그 꿈을 이룰 날도 있지 않겠는지요.
달골에서 유기농으로 지은 포도로 짠 즙을
겨울 아침 한 잔씩 마셨습니다.
얼마나 달디 달았을까요.
다녀오니 아침밥상에 야채와 과일과 빵이 있었습니다.
토스트가 이렇게 맛있는 건 줄 몰랐답니다.

손풀기 마지막 날이었지요.
“엄마가 애들 공부하는데 보는 게 이런 기분일까요?”
새끼일꾼 선아형님은 환하게 눈 빛내며 열심히 그리는 아이들이
그럴 수 없이 예쁘더랍니다.
“애들 뛰어노는 것도 예쁜데
이런 것 집중하는 것도 재밌구나 싶었어요.”
선이 조금씩 복잡해지는 동안
자기 그림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앞장을 들춰 보라 했습니다.
“늘었어요.”
정말 그랬을까요?
“그림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래요, 이렇게 그리면 되지요.”
그림이 자신에게 잘 못하는 영역, 어려운 영역이
아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대의 날, 여기 그대를 위해
가난한 내 손으로 빨간 촛불 하나 밝히리...”
노래를 부르며 떡을 시루 채 들고 나갑니다.
굵은 초 하나 불을 밝히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하나 하나 모여들며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김현지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눈썰매장을 갔지요.
김현지 생일 기념 눈썰매장 개장!
“차 타고 가요?”
“뭐 사먹어요?”
질문이 쏟아집니다.
물론 처음 온 아이들이지요.
왔던 아이들은 암 말없이 주섬주섬 장갑이며 외투를 입고
그저 신나게 걸어갑니다.
마을 앞 개울을 지나 저 건너 밭 사이에 있는 경사진 수로에
잘 얼려진 얼음길이 있었지요.
눈까지 쌓여서 그럴 수 없이 좋은 눈썰매장입니다.
짚을 넣은 비료포대에 서너씩 겹쳐 내려오면
그만 속도는 아주 무서워지고 마는데,
몸 좋은 종대샘 희중샘 딱 버티고 있어
걱정 붙들어 맸지요.
그 아래로는 노약자전용슬로프도 있었습니다.
이제 예순을 넘어 한 살을 더 먹은 이 할미도
거기서는 걱정 없이 타다마다요.
“안탔으면 후회했을 뻔했어요.”
민화샘 희중샘도 한껏 신이 났습니다.
멀리 남도에서 온 효빈샘과 상오샘은
아이들보다 더 입이 벌어졌더라지요.
그 때 한 귀퉁이에선 현규가 좌판을 벌였지요.
눈 두 덩이 뭉쳐 올려놓고 외쳤습니다.
“자, 오백원이요!”
눈썰매에 정신팔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에요.”

돌아오는 길.
“상범샘, 이거 좀 들어줘요.”
썰매를 가져오던 수민이 상범샘한테 떠넘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빨리하던 상범샘이 어느새 냅다 뛰었지요.
“게 섰거라!”
하수민 선수도 열심히 소리 지르고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샘, 쟤 썰매 좀 들어주세요.”
상헌이가 동생을 가리키며 샘들한테 말을 건네며 지나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현정 왈,
“오빠야가 나한테 들라고 해놓고선...”
진한 대구 사투리로 상헌이를 흘겨봐서
한바탕 웃음바다 되었더이다.
그 현정이랑 새끼일꾼 지윤이형님은
식구들이며 자잘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겨울들길을 걸어오고 있었답니다.
“눈에 돌 넣어서 오빠한테 던지는 게 목표예요.”
올 때 가졌던 현정이의 바람이었다지요.
상헌이 이눔의 자슥, 좀 잘하지,
여기 와서는 끔찍이도 챙기두만...

지난 ‘보글보글’은 갖가지 음식을 해서 나눠먹었지만
오늘은 만두 잔치입니다.
만두 이야기가 담긴 그림동화 한편으로 시작했지요.
고전은 읽고 또 읽어도 참 좋습니다.
읽어주는 그림 동화책에 모두가 달라붙어
가만가만 듣고 있었지요.
남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두터운 햇살이 담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용하는 용하 닮은 만두를,
정식이는 정식이 닮은 만두를...”
“저도 해줘요!”
아이들 이름자도 책 내용에 슬쩍 끼우니
너도 나도 제 이름을 부르며 올려 달라 합니다.
“승엽이는 승엽이 만두를...”
“쟤두요!”
동생까지 챙기는 상헌이 보셔요.
“그래, 그래, 현정이는 현정이 만두를...”
그리고 만두를 빚으러 갔습니다.
‘착한 만두’, ‘예쁜 만두’, ‘의젓한 만두’, ‘용감한 만두’,
그리고 만두피를 밀 ‘빛나는 보자기’로 나뉘었지요.

용감한 만두네는 태오 용하 상훈이만 보이고
어데들 용감하게 자리를 떠난 것일까요?
아까 지나가며 들으니 그러데요.
“왜 우리는 용감한 만두고 저쪽은 의젓한 만두예요?”
그런데 앞에 있던 하수민 선수가 대답을 해주고 있었지요.
“아, 알았다.
이렇게 못생긴 만두가 지가 감히 만두라고 하는 게 용기가 대단해서...”
또 어느새 모두 용감하게 길이라도 떠난 걸까요,
수민이가 혼자 만두를 튀기고 있었는데,
지나던 형길샘이 물었습니다.
“수민아, 만두 많이 먹었니?”
“내가 많이 멕였다 아이가.”
진한 진주사투리로 농담을 던지고 있었지요.

수현 단아 범순 철순 영범 상헌 현정 용범 채현이는
의젓하게(네, 의젓한 만두입니다) 만두를 빚고 있습니다.
착한 만두는 너무나 착해서 착하게 만두피를 기다리며
끝말잇기 하고 있는데
다른 모둠을 만두피를 직접 갖고 와서 벌써 굽고 있었지요.
세원 세현 우재 승엽 온 유 세인 세빈 윤준 진석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예쁜 만두’에서는
자누 김현지 양현지 해온 수민 경준 동화 성수가 예쁘게 빚고 있었지요.
역할을 예쁘게도 잘 정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그만 덩어리들이 포개진 합체만두가 등장했네요.
“로봇도 합체하면 더 멋있어지는 것처럼...”
만두도 더 맛있지 않겠냐는 경준이의 주장에
모두 동의한 까닭이었더랍니다.

‘빛나는 보자기’.
모두 만두 빚으러 가 혹여 폐강이라도 되면
품앗이일꾼들이며 새끼일꾼들이 죄 붙어서 해야겠다고
모다 준비하고 있는데, 웬걸요,
재은 지인 현진 유나 한슬 재준 슬찬 민규 형식 정식 민상 현규
그리고 류옥하다까지,
열 셋이나 피를 밀겠다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되어도 만두를 빚는 속도를 따를라나 모르겠습니다.
지윤형님 영환형님 희중샘은
넓은 대야에 두 사람이 꼭 붙들고
한 사람씩 반죽을 열심히 치댔지요.
그런데 모아 놓으니 그런 수다가 또 없습니다.
유나 지인 재은이는 마주보고 앉아
남자이상형에 대해서고 남자에 대해서도
아주 찜질방에 앉은 처자들의 수다에 다름아니었지요.
“나는 동갑은 싫어.”
“나도. 연하는 괜찮아, 귀여우니까.”
곁에 있었던 류옥하다가 전하길
“여자들은 대부분 연상을 좋아해. 기댈 수가 있으니까 그렇대.”
그러데요.
가지 가지 대화거리도 많습니다요.
“이명박은 부패대통령이라서...”
류옥하다의 강력한 주장에 유나가 주춤합니다.
“그런 말하면 잡혀가.”
이제 권력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민규는 다른 교실로 배달도 지원해서 가고
군만두나 찐만두가 도착하면
반죽하는 샘들한테 3개씩 꼬박꼬박 챙겨도 주고 있었지요.

연극놀이.
네 모둠이 이야기를 한 장면씩 가져갑니다.
심봉사가 아내를 잃고 어린 심청을 데리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는데
심청역 유는 해온으로 이어져
인당수 푸른 물에 아비를 부르며 부르며 해온이 뛰어들고
이제 야리야리한 청이는
빠알간 원피스를 입은 통통한 5학년 범순이로 변합니다.
그 청이가 연꽃에 싸여 임금을 만나고
임금은 청이를 위해 온 나라 눈먼 사람을 위한 잔치를 벌이지요.
“눈먼 역 할 사람 다 나와라!”
재준이 관객을 향해 외치자
즉석에서 나온 엑스트라들로 무대가 꽉 찹니다.
6학년쯤 되면 심드렁해하며 잘 움직이려하지 않는데
수연이 키를 쓰고 의상을 잘 챙겨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여섯 살 우재도 한 몫하고...
물꼬가 긍정적이기만 했을까만
아이들이 이곳에서
작은 일에 진지함을 더할 줄 아는 법을 익히는 듯합니다.
큰 남자 아이가 여자 역을 맡기도 쉽지 않은데
예서 먼저 나서서 자연스레 역할을 가져가는 것도
그 같은 일 아닌가 싶어요.
지난 여름 상대역이 대사를 잊어 무대에서 당황했던 상훈이는
모둠샘의 배려로 다시 극을 주도하여 끌게 되었습니다.
모둠 아이들도 그런 상훈이를 잘 기다려주고 있었지요.
현규 용범이의 모둠 대표 쟁탈전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 계자가 되는 재은이를 밀어주기로 합의하기도 하고,
막상 공연에서 범순 용범 재준이들의
임기웅변과 용기가 빛을 발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났어요.”
네 모둠의 네 장면의 연극을 이으니
한 편의 이야기의 완성되었지요.
“심봉사가 맹인견을 데리고 나타나고...”
“애들 참 재미나데요.”
우리 어른들에게도 그런 어린 날이 있었겠지요,
신명나게 한껏 웃고 유쾌하게 자신을 발산하던.

겨울 저녁, 구들방에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한데모임에서 손말을 배울 쯤
난로 옆에서 잠이 들었던 우재가 깼지요.
“울지 마.”
민규가 아저씨처럼 달래줍니다.
불과 두어 살 차이인가요.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곁에 있던 민화샘한테 그랬습니다.
“샘은 (손말) 하지 말고 달래세요.”

오늘은 고래방에 건너가지 않고 대동놀이를 합니다.
옛 얘기를 들려주며 놀이를 했지요.
서로 손등을 때려가며 노는데,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신음소리도 못 내고
아픔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며도 지치지 않고 놀았습니다.

태오가 그랬지요.
“안 재밌는 날이 없네...”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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