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계자 닷샛날, 2008. 1. 3.나무날. 맑음 / 까치산

조회 수 1708 추천 수 0 2008.01.07 22:14:00

122 계자 닷샛날, 2008. 1. 3.나무날. 맑음 / 까치산


옛적 경상도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데
저어기 추풍령고개는 길이 가까우나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하여
급제 방점이 찍힐 것만 같은 요오기 괘방령을 넘어갔지요.
그런데 그만 길을 잃고 날까지 저물게 되었는데
옛 얘기가 그러하듯 멀리 불빛이 보였겠지요.
역시 여인네 하나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밥을 잘 얻어먹고 잠을 자는데
꿈결에 쓰윽쓰윽 웬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가만히 내다보니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칼을 갈고 있더라지요.
놀란 선비 그만 달아나려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아니겠어요,
뱀을 물리쳐 새끼들을 구해준 선비가 고마워
절집 종을 제 머리로 쳐주었다는.
그런데 그 뒷 얘기가 골이 깊은 이 산골에 전해오고 있지요.
종 아래 피 흘리고 있는 까치를 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 피 흘리는 짐승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사는 데 필요한 기술 하나 가진 게 없구나,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더냐며
절 아래 병들어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이들과
몸을 써서 삶을 일굴 작정으로 산으로 들어갔는데,
까치를 묻은 산이 차츰 까치를 닮아가
이름 없던 그 산을 사람들은 까치산이라 불렀고,
그 아래 마을을 까치마을이라 일컬었답니다.
바로 그 산을 찾아 길을 떠났지요.

새벽, 샘들이 김밥을 싸고 있었습니다.
주욱 둘러보고 다른 준비를 하러 나올 참인데,
엉, 다시 돌아보았지요.
샘들 틈에서 성수가 김밥을 말고 있었습니다.
벌써 새끼일꾼 몫을 하고 있었지요.
모두 든든히 먹고 옷가지 단도리를 하고
남의 집에 가는 자의 예의에 대해 잘 들은 다음
학교 뒤란으로 해서 산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늦은 햇살이 퍼지고 있는 산골 마을의 아침이었지요.
무지 춥게 시작했던 계자였는데
다행히 날이 풀리고 있습니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문을 나서며 승엽이가 지윤이형님 가방을 들어줍니다.

가고 또 가는 길인데,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립니다.
지난 해 겨울 이 편으로 올랐으니
겨우 한 해만인데 말입니다.
산골마을까지 농로라는 이름으로
시멘트포장에 쓰이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더니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랍니다.
산 아래까지 포장된 길은 자꾸 낯설기만 했지요.
어느새 1지점.
다리쉼을 하며 눈밭에 누우니
찌를 듯 섰는 낙엽송들 끝에
하늘이 매달려 있습니다.
잎을 떨군 나무란 늘 경건함을 부르기 마련이지만
거기 흔들리는 가지 끝에 이는 바람이
더욱 경이로움을 더하고 있었지요.

낙엽이 두툼하게 쌓인 곳을 기어오르니
능선입니다.
산에 사는 것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위험한 상황 앞에서 취해야할 행동들에 대해
다시 잘 짚은 뒤 능선을 따라 걷다가
다시 아래로 꺾습니다.
눈에 묻힌 길을 찾기는 쉽지 않으나
산짐승들 발자국이 길을 안내해주었지요.

다시 경사가 급한 오르막으로 길을 잡아
돌아가더라도 능선을 타자 합니다.
“옥샘, 얘가요, 산너머 취소안하면 다시는 안온대요.”
현규가 제 옆의 누군가의 의견을 전합니다.
“오지 마라 캐라. 여기 올 사람 많다.
나는 재밌는데...”
승엽이가 소리를 질러주었지요.
“그래?”
“네, 진짜 재밌어요.”
“뭐가?”
“참 이상해요.
집에서 산에 갈 땐 재미가 없는데 여기서는 스릴 있어요.”
미끄러지기를 몇 차례 하며 능선을 잡고 이어 오는 사람들을
먼저 닿은 이들이 응원합니다.
“어서 와.”
“애썼어.”
재은이는 그예 우는 소리를 내며 올라옵니다.
양현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한 마디 던졌지요.
“무슨 애기 데꼬 온 것도 아니고...”
아홉 살짜리가 열세 살 아이에게 준 핀잔이었지요.
모두 모이자 봇짐 하나 풀어 파이를 꺼냅니다.
초코파이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들 하지요.
집에 가면 꼭 사 먹을 거랍니다.
글쎄, 그 맛이 나 주려나....
철퍼덕 앉아 하늘 또 한 번 쳐다봅니다.
빠르게 구름 흐르고 있었지요.

“자, 출발합니다!”
“저길요?”
“응.”
“다른 데로 가면 안돼요?”
“둘러 봐라, 여기 말고 길이 될 데가 있는가.”
오릅니다.
네발로 뻘뻘 기어오릅니다.
곧 능선 길이어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겝니다.
이제 길이 편해지니 말도 많지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짐승들이 길을 먼저 알고 걸어간 흔적들을 따라
소풍길처럼 걸어갔지요.
그래도 오르고 내림이 만만치는 않네요.
죽은 자들의 집 곁에서 우리도 다리 한 번 쉬지요.
“몇 고개 넘었어요?”
저들끼리 세 개를 넘었다고도 하고 네 개를 넘었다고 합니다.
양지 바른 쪽에 쓴 뫼이겠으나
겨울 햇살이 구름에 가려 비껴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꽤 쌀쌀했구요.
“펭귄처럼...”
형길샘이 아이들이랑 펭귄 떼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런대면서요, 겹겹이 붙어 서서 바람을 가리고
안에서 밖으로 돌아가며 추위를 견딘다지요.
“야, 신기하다...”
우리도 서로를 에워싸고 그렇게 몸을 덥혀주었습니다.

오르고 내리며 능선이 깁니다.
잎을 떨군 숲은 나무 사이사이로
얼핏설핏 양쪽으로 늘어선 마을을 보여주기도 하였지요.
마을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사람 다닌 지 오래기도 하여 숲은 이 겨울에도 짙기만 하였지요.
오름 서넛 지나 다시 쉽니다.
“어!”
거기 대나무가 흰 눈 속에 청청하였더이다.
왜 솔과 대나무를 절개에 견주는지
그들 앞에 서 보면 아다마다요.
“바람이 맵지 않아 다행이다.”
삶에 성실하고 긍정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늘 우리에게 깨쳐주는 우리의 형길샘,
이 정도는 견딜 만한 거라고 대수롭잖게 던져주었지요.
제 무릎 양쪽에 우재와 앉아있던 슬찬이가 대꾸합니다.
“바람에 고추장 발랐어요?”

자, 이제 슬슬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능선이지만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봉우리가 앞에 섰지요.
진퇴양난(進退兩難).
돌아서 가자고 보면 가파르기 여간 아니었지요.
그래도 용케 짐승들이 살짜기 지나간 자국,
비스듬히 앞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들보다 안전한 길을 더 잘 알고 있겠지요.
한 발 한 발...
삐끄덕 할라치면 그대로 곤두박질이지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더는 늦출 형편이 아니기에 이릅니다.
“가면 죽어요.”
우리의 재준 선수, 그만 딱 버티고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저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거지요.
“못 가요. 죽어요.”
“여기 있으면 얼어 죽는데...”
뭐 어쩝니까, 가야지요.
“내가 옥샘을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재준이 한탄하면서도
낭떠러지 같은 길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수현이며 태오랑도 서서 저 앞을 하염없이 봅니다.
전부 하얀 눈 뿐이지요.
앞에 길 만들고 가는 샘을 미워하면서 미워하면서
그래도 어쩐답니까, 가야지요.
해온이는 단아를 뒤에서 밀어주고 잡아주며 갑니다.
어디 그만 그랬겠는지요.

자, 이제 아예 절벽 같은 길을 내려서야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잘도 갑니다.
어찌나 귀엽던지요.
이야기를 나누며 가던
용하 세빈 세인 유나 지인 현정이랑 영환이형님은
노래까지 부르더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노래 부르니까 더 힘들다.”
그런데 서서는 두어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죄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러져갑니다.
눈썰매장이 따로 없지요.
그것도 고난이도 말입니다.
“이런 거 찍어서 홈피 올려놓으면 아무도 안 올 거다.”
“이런 건 왜 안 찍노?”
누가 그 낭떠러지에서 사진을 찍겠습니까,
종대샘도 기어오르느라, 혹은 내려가느라 정신없는데.
“동네 산 돌아다니는 거 우습게 봤다가 엄청 혼났네.
말로만 듣던, 길을 찾아서 가는, 낭떠러지, 모험...
정말 만만찮았어요.
길이 아닌 길을 만들어 다니는 샘들의 모험정신,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도전,...”
종대샘이 나중에 그리 말하고,
하루 정리글에도 이리 남겼습니다.
“눈이 왔었고 바람도 불었고(겁나게) 힘겨운 산행이었다. 마을에 도착해선... 그 반가움이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반가웁고 정겨운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엔 몰랐었다. 어서 시골 촌놈이 되어 물꼬에서 척척 해내는 참된 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어디메쯤일까,
보다 못해 여섯 살 우재를 들춰 업고 올랐습니다.
부상병처럼 발목이 젖은 아이들이 늘어갑니다.
더 빠른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특공대를 선발했지요.
우재를 업고는 속도가 안나니
현진이며 하다며 대여섯을 먼저 올려 보내봅니다.
다행히 찾는 능선이 맞습니다.
그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점심을 먹었습니다.
“까치산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대해리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했지요.
서둘러 가봅니다.
머잖아 사람 손이 닿은 산판 흔적이 보이고
다시 얼마쯤을 가자 마을로 이어지는 호두밭이 보입니다.
“길 맞아요?”
“그런데 왜 이래요?”
“사람이 안다녔으니까 그렇지.”
저들끼리 대답도 해가며
그래도 바짝 붙어 내려옵니다.
“와!”
네, 덤불을 빠져 나오자 거기 우리 마을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의 노고를 어디서 전해들은 걸까요?
KBS 청주 보도국에서 찾아와
산을 빠져나오는 우리를 찍어댔습니다.
무슨 현장르포처럼 말입니다.
담당샘을 찾데요.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되고,
메일도 보내고 문자도 보냈는데 연락이 안돼서...”
그래서 그냥 왔다는 겁니다.
아이들을 따라 움직이더니
살구나무 아래서 인터뷰도 하고
잠시 아이들 노는 사이를 누비다 돌아갔네요.

모두 살아 돌아왔습니다.
밀어주고 당겨주며 같이 해서 돌아왔지요.
어느 부모님은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전하며
각별히 당부말씀을 주시기도 했던 산오름이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 험한 산을 갔던 걸까요?
한데모임에서 아이들에게도 물었습니다.
혼자서 했다면 못했을 거다, 같이 해서 다녀왔다,
지나가면 쉽다, 우리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움도 그러할 거다,
가지 않은 길을 헤쳐가고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갔다,
살아가면서 남이 간 길만 편하게 좇지 말자,
힘든 길을 넘었던 경험이 다른 어려움도 그리 넘게 해줄 거다,
그런 얘기들을 했더랬습니다.
“옥샘을 원망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좋았어요.”
재준이가 그랬지요.
“지나면 추억이 될 텐데 투덜거리고...”
수연이도 그랬네요.
한 관계가 맺어지는 한 지점,
우리 그곳을 관통해왔더랍니다.
여섯 시간 조금 못 미쳐 돌아온 걸음이었지요.

잘 쉬고 잘 씻고
(늘 그렇지만, 돌아와서도 아이들 팔팔 날아다니고
샘들은 추욱추욱 흐물거렸지요)
강강술래하고 우리 보낸 온 일정을 돌아보며 촛불잔치도 했습니다.
“촛불도 좋더라구요, 장작놀이보다 멋졌어요.”
선아형님뿐 아니라 해온이며 여자 아이들도
또 더러 남자 아이들도 참 좋은 시간이라 하더이다.
“또 올게요.”
태오가 멋있게 한마디로 시작했고
무슨 대장정에 올랐다 내려온 사람들처럼
한 마디 한 마디 무게 있게들 담았습니다.
그 끝이야 장작놀이와 다름없는 감자싸움이었지요.
상범샘패와 상오샘패로 나뉘어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승엽이의 시커먼스 공연도 빼놓을 수 없지요.
갈수록 멋을 더하는 아이입니다.
산골 마을의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별이 저만큼 보였으면...”
현진이입니다.
“저는요, 여기 행정수도를 세운다면
저는 죽을 거예요... 여기만은 지켜야 해요!”
산도 올랐고, 무지 뛰기도 했으니,
게다 시커멓게 얼굴에 검댕도 묻혔으니
오늘쯤엔 씻지 않았던 아이들도 죄 물을 묻힙니다.
그런데 태오만 안 씻었다지요.
하도 안 씻겠다 하여 상범샘이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 했는데,
졌답니다.
태오가 이긴 거지요.
예, 물론 기어이 씻지 않았습니다.
추줍은 녀석 같으니라고...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아이들이 잠이 들고
샘들은 불가에 모였지요.
“애들 자유롭게 풀어주면서
큰 소리 안내고 모아내는 것 보며 신기하고...
일하러 가서도 참고가 될 것 같애요.”
이곳에 처음 걸음한
어린이집 교사로 있는 효빈샘의 전체 갈무리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아이들과 함께 해서
좋았던 계절학교 경험이었다 합니다.
“잘 가르치는 역할보다 잘 중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배로서.
다 자기가 살아가는 것, 자기가 배우는 거죠, 주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재자의 역할이 참 어렵더라구요.”
종대샘의 소회였지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많이 친해져서 기뻤고
저랑 노는 아이들이 재밌어 해서, 더 놀아주고 싶어...”
처음으로 품앗이샘으로 온, 유아교육을 전공하는 희중샘은
그리하야 이 겨울을 쭈욱 예서 보내기로 하였답니다.
“집에 가면 동생이랑 평생 안 싸울 자신 있어요.”
영환이형님, 이 말 책임질 수 있을까요?

이번 계자는 순한 느낌이었다,
어른들도 애들도 그러했다는 게 중론이랍니다.
“2008년 시작을 행복하게 이곳에서 했습니다.
좋은 일 가득한 2008년 되세요.”
지윤이형님이 모두에게 주는 덕담을 하루 갈무리 글에 쓰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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