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11.흙날. 맑음 / 봉창

조회 수 460 추천 수 0 2021.10.28 15:14:11


 

9월 들어 가장 볕이 좋았다. 그런 만큼 뜨거웠다.

영상 29도까지 올라갔더라지.

볕 아래 가만 서있는데도 등으로 땀이 흘렀다.

 

마을이 술렁였다.

곳곳에서 호두를 털고, 벌초를 하고.

백로(7일이었다)가 있는 주말이면 자식들이 들어왔다.

명절보다 사람이 더 많지 싶다.

 

아침뜨락을 걸었고, 뽕나무 둘레와 달못 아래 낫질을 했고,

나와서야 수행.

올해 고3 수험생 둘을 위해 특별히 하는 기도이기도.

다른 건 못해도 이건 쉴 수 없는.

 

9월 집짓기 덧붙이 공사 이틀째.

사이집 현관 바닥 만들기.

그거 하자고 믹서트럭을 부를 것도 아니고.

햇발동 곁에 포도나무 키울 때 썼던 가장자리 철사를 고정하던 콘크리트 기둥을 쓰기로.

언젠가 장순샘이, 잘 쓰이겠다고 어디서 실어다주었던.

민수샘이 눈여겨보았던 거다.

그걸 가져와 잘라 쌓다. 석재용 톱이 마침 또 있었던 거라.

틈은 시멘트 몰타르를 넣고, 맨 위 면은 곱게 미장.

기초 외벽 쪽은 굳이 미장할 게 아니라

콘크리트 기둥의 거친 면을 그대로 노출하는 걸로. 외려 멋스러웠다.

다시 사이집 남쪽 베란다 쪽으로 옮겨와

주춧돌에 앙카(앵커볼트)를 박은 자리 쪽이 낮아 물이 고일 수 있기 시멘트를 바르다.

시멘트 가늠을 잘 못해 두 차례나 면소재지를 다녀와야 했네.

 

오후에 준한샘이 나무자재를 싣고 왔다.

온 걸음에 잔디깎는 기계를 돌리다.

에구,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뜨락의 아침 낫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것대로 또한 수행이었으니 그 움직임 값은 한.

모두의 일들이 잘라서 하기에 편안하지 않아 마저들 하고 저녁을 먹기로.

하여 늦은 밥상이었다.

그야말로 멧골다운, 멧골에서 나온 고사리며 취나물이며 망초며들로 산채비빔밥.

 

봉창!

그저 시골 옛집 뒷창이려니 했다. 오래 그리 알았다.

기본은 창틀이나 창살이 없이 토벽에 구멍을 뚫어 통풍 혹은 채광하는 창.

벽을 칠 때 봉창이 될 곳을 미리 뚫는다고.

당연히 열고 다는 창이 아닌. 봉한 창문이라 봉창.

방에 내는 봉창은 종이가 흔해지면서 창호지를 발라 바람을 막고 채광만 되도록,

부엌이나 헛간의 봉창은 통풍이 되도록.

부엌 봉창은 처마 밑에 내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거나

(댓가지·수숫대·싸리·잡목 따위를 가로세로로 얽음)를 촘촘히 엮어 길게 내거나

약간 굵은 나뭇가지를 세워 살을 만들거나 대나무를 짜개 가로대 대고 가는 새끼줄로도 엮는.

방과 부엌 사이 봉창을 내어

고콜(불씨의 보존을 위하여 약쑥이나 뜬숯을 두는 기능을 겸한 화창)을 만들기도.

집 둘레 토담이나 토석담에 봉창을 내기도.

밖의 경관을 내다보려고도 밖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도.

 

입알못(입시도 알지 못하는) 혹은 의알못(의대도 알지 못하는)이라고

식구들이 자주 핀잔을 주고는 했다.

의대를 다니는 자식이 있으니 같이 밥을 먹던 이가 내게 물었다.

인턴은 몇 년이냐, 레지던트는 몇 년이냐, ...

그게 참... 제 일이 아니라...”

그래서 찾아보았네.

전문의가 되려면 11년이 필요하더라. 고교 졸업 뒤 한 번도 유급하지 않을 때.

의대 6(또는 학부 4년에 의전원 4)을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의사면허가 나오고

수련과정 중인 인턴(1)과 레지던트(4)는 피교육자이면서 임상의사로 전공의라 불린다고.

의사면허로 개업하면 일반의사라 한다고.

그 얘기는 들었다, 인턴을 쥐어짜서 대학병원이 돌아가는 거라는.

인턴제 폐지가 논의된 적이 있지만 흐지부지할 밖에.

긴 수련과정이라지만 어느 분야나 한 십 년은 해야 뭐 좀 안다 하잖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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