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96 둘쨋날, 8월 3일

조회 수 1469 추천 수 0 2004.08.07 10:27:00
< 모든 배움은 물에서 이루어진다? >

소나기가 지나고 운동장에 만국기처럼 널린 빨래를 걷느라
부산한 낮이었습니다.
새끼일꾼들과 도움샘들이 푸드득거렸겠지요.
금새 말개진 하늘 아래
아이들은 곳곳에서 배움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풀잎과 꽃을 따느라
형준 희원 해인이 인영이 민재 나해 희정이가 꽃밭을 헤맵니다.
풀잎 동화책을 엮으려는 이네들 가운데 희정이는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출판사 편집장같앴다지요.
요 때부터 인영이는 나해의 좋은 언니 역할로 나섰습니다.
수연이랑 호연이 종헌 우진 재웅 종한이는
무열이형이랑 부채에 붙일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연이 호연이는 포장지 무늬처럼 그려 넣고 있고
나머지는 어김없이 여름이야기를 그려넣네요.
한땀두땀 바느질을 하고 있는 교실로 가봅니다.
류옥하다는 엄마한테 줄 쿠션을 만드느라 미연이형을 못살게 굴고 있고
정하도 보이고 강은이도 보이고 정후도 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매듭을 매는 정후는
쳐다보는 이도 용을 쓰게 하고
강은이는 구도자처럼 무릎을 딱 꿇은 채 바느질에 열심입니다.
"선생님, 이거 집에 갖고 가도 돼요?"
자랑스러움이 배여나는 정하의 질문입니다.
책방에선, 열린 과목이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공유점으로 모인
다 싫다 모둠, 열호 경록 희민 하준이 책에 묻혀있고
목공실에선 뚝딱뚝딱 하러 모인 이들이 정말 뚝딱대고 있습니다.
석현이는 세원이랑 어느 틈에 다른 교실을 기웃거리느라 나가버리고
용수 이호준 범규 정훈이는
온통 제힘으로 저마다 하고픈 걸 만드는데
범규는 각목과 대나무와 나뭇가지가 어우러진
도대체 짐작할 수 없는 것에 못을 받고 있더이다.
양파껍질로 옷감을 물들이던 소정 다혜 윤호 정호준 강이 지호는
골고루 스미지 않은 물을 걱정하기에
조물닥거리는 걸 보여주었지요.
한 패는 그늘에서 말려본다 하고
다른 패는 햇볕에서 말려보겠다 합니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선 신문지로 다시쓰기를 하는 이들이 있네요.
동형 동호 경은 경민 지선입니다.
동형이랑 짝이 되어 신문을 찢던 동호는
자꾸 딴전을 피는 그가 못마땅해서 채근을 하고 또 합니다.
어, 승호는 어딨지,
아, 저기 자전거 한 번 타보고 있네요.
그런데 지준이는 왜 안보이는 거지?

넓어지는 교실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가지 중심생각을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연구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물은 물이라 시내로 가고
돌은 물 바닥의 돌을 알아보러 시내로 가야한다 하고
나무는 시내 쪽에 자란 나무를 본다며 따라가고
흙은 시내 곁 논에 간다며 그 길로 가고
종이는 일단 몸부터 식힌다며 같은 길로 갑니다.
물놀이 한바탕 하고서야 열리는 교실입니다.

아이들, 참 재밌습니다.
춘향가 한 대목을 불러보자고 앉았는데
정작 소리보다 판소리를 둘러싼 '이야기'에
눈동자도 굴리지 않는 아이들이랍니다.

보글보글방은 음식 끓는 것으로보다
저들이 더 보글거렸지요.
만두도 빚고 부침개도 부치고 떡도 볶고
수제비도 끓이고 볶음밥도 하고 호떡도 구워내고
아, 화채도 나왔지요.
그리고 양갱이 만드는 패도 있었습니다.
"양갱이 뭐예요?"
"모르는구나, 니네 어머니가 비싸서 안사주셨구나."
옆에서 다른 이가 받습니다.
"얼마 안하던데, 500원..."
"그봐, 어머니가 비싸서 못사멕인 거 맞지, 제과점에서 파는 거?"
그렇게 웃고 넘어지다가 책방으로 먼저 갔더랍니다.
책방이 있으니 좋데요,
한천이 뭘까 궁금했던 게지요.
함께 요리를 하는 과정은 먹을거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자리입니다.
무방부제, 그거 그리 믿을 거 못된다,
만들 때야 안넣는다 하더라도
그게 수입산이면 오는 가운데 원료에다 방부제를 이미 묻혔을 것이다,
황색 4호는 말이야,
황색 5호는 또 어떻구....
한천이 굳기를 기다리느라 저녁 후식으로 내마 하였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렸겠지요.
그런데 백설탕 무지무지 쏟아넣는 파는 것에 비하면
그 달기가 택도 없는 데다
설컹설컹한 게 썩 내켜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헌데 산골소년 정훈이, 그리고 종한이,
많이 먹데요, 먹고 또 먹데요.
"아이고, 어머니가 그런 것도 하나 구경시켜주지 못하셨구나..."
놀림을 받으면서도.

승규가 외로워라 했지요.
3학년 아홉을 다 불렀습니다.
이름도 불러주고 아는 체 해보자고.
때로는 관계에 어른이 그리 개입해보기도 합니다만.
하룻밤 하루낮이 흐르니 저들끼리 이래저래 익혀갑니다.
아이들이 그런게 있습디다.
일곱 살 류옥하다만 봐도 그런데
자기보다 명백하게 약하다싶으면 돌봐주는 게지요.
대동놀이할 때 성찬이가 한켠에서 앉았는데
류옥하다가 다가갔더이다.
나중에 그러데요.
"성찬이는 두 번 말하면 알아듣는다.
내가, 저기(탁구대) 위에(턱에) 앉아 있어서
내려와서 앉아 내려와서 앉아 했더니
내려와서 바닥에 앉았어요."
아직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말을 잘 안하는 성찬이거든요.
서로의 삶에 또 어찌 스밀지
슬금슬금 재미가 일고 있답니다,
여기는 대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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