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1.나무날. 개운치 않은 하늘

조회 수 1233 추천 수 0 2007.10.17 18:47:00

2007.10.11.나무날. 개운치 않은 하늘


‘스스로공부’,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자기가 정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각도로 스스로 접근하는 공부이지요.
하루 종일 저들끼리 꾸리는 이 날은
그 틈틈이 놀이도 하고 쉬기도 하고 책도 읽고 하겠지요.
오늘은 경로당 옥상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나요.
“비닐통로를 발견했어요.”
‘비밀통로’,
그건 어린 날을 보내던 모두에게 상상력의 시작이었지요.
“스스로공부는 좀 했어?”
“오늘 두 명을 했어요. 댓마에서 한 명, 앞마에서 한 명.”
한 아이가 대해리 주민을 인터뷰하며 인물록을 만들고 있는데
어허, 그의 스케치북을 훑어보다 흠칫 했습니다.
“성격이 까다롭다. 마음이 여우같다. 버섯을 잘 아신다.(생략)
인사를 잘 안 받는다. 실제로 아이들을 잘 안 좋아하신다.
아내랑 잘 싸운다...”
그 어른에 대해서 마음이 여우같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묻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아이의 눈에 그리 보였다는 것이고,
관심을 보이면 아이가 뒤로 물러서 버릴까봐
조용히 스케치북을 덮었습니다.
아이들, 참 무섭습니다.
저 아이들이 훗날 이 시간을 생생히 기억하리라,
자주 긴장케 하는 책상 앞의 문구랍니다.

교수문제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교수퇴출을 위한 방법론을 물었고
마지막수습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물어왔지요.
어른의 처신이 참 어렵습니다.
부추길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교수의 행태를 모르지 않으니,
말리지도 못하지요.
저 역시 그 강의를 견딜 수 없어 하였으니.
교실민주화 뭐 그런 일에 용기 있게 나서보겠다는데,
적당히 뭉기적거리다 졸업해도 되지만 뭔가 바꾸어보겠다는데,
그리 마음 먹기가 또 결코 쉽잖았으리라 짐작되어
더욱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한편 용감하다, 하고 격려해야하는 건 아닐까 싶기까지 하데요.
“싸움이라면 공평해야지, 그도 준비할 수 있게 해야지.”
“안돼요. 그러면 그 교수, 또 유치하게 대응하며 빠져나갈 거예요.”
어쨌든 옳은 일이 틀림없다면 도와야지요.
하지만 교수를 향해 마녀사냥식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 싶데요.
그에게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했어야 되겠는지요.
그가 교수로서 잘못한 것이
그에게 다른 이들이 상처를 입혀도 되는 정당성은 아니지요.
누구도 다른 이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하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란 말이 나오지 않았겠느냐 말입니다.
“생각을 좀 해봅시다.”
교수가 상처입지 않게!
무엇보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그런 원칙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교수들이 가만 있겠는가,
명백한 큰 잘못이 아니라면 여간한 명분으로 자리를 끌어내릴 수도 없거니와
교수위원회가 열리면
가재는 게편이지, 더구나 그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이므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학생들만 다친다,..
그런 얘기도 들려줘 보지요.
“제가 사절단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겝니다.”
미리 학과장을 만나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 교수의 변화일 테니까
학생들의 연판장이 자극이 되지 않을지,
그러면 아이들은 그들의 뜻을 일정정도 관철시킨 것이니
그쯤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때리는 뭐보다 말리는 뭐라고요, 뭐.
자칫 되려 가운데서 이쪽 저쪽 다 욕을 먹을 수도 있겠습니다.
(엉뚱한 일에)말리고 싶지 않지만 말렸다면 또 잘 펴나가야지요, 뭐.
무엇이 내 일이고 무엇이 내 일이 아니겠는지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어느 구석이 나랑 무관하겠는지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잘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경험은 중요합니다,
말해 무엇할까만.
특히 아픈 경험은 그만큼 값을 하더이다.
예전 모 잡지사와 겪은 일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교수를 나무라는 편에서
지독하게 분노하며 그를 몰아내자 했을 듯합니다.
이젠 소통, 그리고 최선을 찾고 또 찾는 법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더랬습니다.
그의 상처를 먼저 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는 걸 다시 일깨우게 되었더이다.
불의에 그렇게 목소리 높이던 젊은 날에 낯이 뜨겁습니다.
몸이 상할 지경에 이르던 지독했던 지난해가
그래서 다시 고맙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비로소 제 삶에 여유(심리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시간으로도)가 찾아온 것도
순전히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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