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7.물날. 맑음

조회 수 1099 추천 수 0 2007.10.26 07:07:00

2007.10.17.물날. 맑음


일 시간에 아이들이 감을 땄습니다.
가을입니다.
상범샘은 아랫다랑이 논에 물고랑을 팠습니다.
아직 덜 빠진 물은 추수를 늦출 거니까요.
가을입니다.
기락샘은 장작을 팼습니다.
겨울을 날 단도리를 합니다.
가을입니다.
삼촌은 연일 달골에 올라 포도밭을 갈무리하는 중이지요.
“닭이 추워서 알을 덜 놓나...”
닭장에도 겨울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해줍니다.
가을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겨울준비 해주러 오라고 말을 넣습니다.
산골 겨울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지요.
가을입니다.
이국으로 떠나-버-린 이도 그리운 이 시간이겠습니다.
감나무, 감나무 천지로 붉습니다.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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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있는 풍경 >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게
그리 어려울 것도 아니었지만 쉬울 것 또한 아니었지요
상처투성이인 땅 떠나고 만다 할 때
지니고 온 것은 가족들 사진도 아니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아니고
감나무가 있는 어느 가을날의 산사 엽서 한 장
굳이 챙긴 것도 아니고 수첩에 끼워져 있던
가을이 올 때마다는
이곳도 나뭇잎 물이 들고 겨울은 닥쳐서
이 맘 때면 꼭 그 가을이 복받쳐 오르는 거예요
잎 진 감나무에 아직 두런두런 매달린 주황색 감은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어찌나 선명하던지
해방구에 세워둔 붉은 깃발의 반가움 같을 때마저 있어요
비바람 지나던 봄 한참도 늦자락
후두둑 떨어져 내린 감꽃으로 목걸이 만드노라면
다 만들기도 전에 속절도 없이 멍이 들어 버렸댔지요
태풍 지나면 여물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리던 감을
소금물에 삭혀 먹어본 어린 날이
혹 당신에게도 있었을라나요
이른 가을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느새 익고 또 익어대던,
감을 따는 게 놀이였고,
감이 친구였던,
좋아하지만 수업시간 대답 한마디 못해보고
선생님 떠나실 적 선물이라고 들고 간 감 바구니
당신이 가끔 그 바구니의 탐스런 감 하나가 되어
가을 산사를 저만치 등에 지고
버리고 온 사진 속에서 이 먼 나라로
성큼 성큼 걸어 나옵니다
가을입니다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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