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4.물날. 맑음

조회 수 1568 추천 수 0 2007.10.29 04:55:00

2007.10.24.물날. 맑음


흔히 대안학교, 혹은 물꼬 같은 산골공동체배움터에서는
제도학교에서 쓰고 있는 교과서를 부정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물꼬에선 그렇지가 않답니다.
그간의 인류의 축적물을 나름대로 담고 있는 교과서를
부정할 까닭도 없거니와
그 가치의 유용성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지요.
얼마 전 ‘우리말 우리글’ 시간엔
초등 2학년 2학기 읽기 책의 한 쪽을 펼쳤습니다.
는개, 이슬비, 가랑비.
가늘게 내리는 비들입니다.
굵고 억세게 내리는 비로는
작달비 장대비 채찍비가 등장하였지요.
세찬바람과 함께 내리는 채찍비...
감동이 일었지요.
가만히 읊조려보았습니다,
낱말 하나가 고스란히 시입니다.
우리 말, 그것을 잘 살리고 가르치는 게 국어시간일 테고,
국정교과서는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거지요.
새삼 교과서들을 잘 써야지 싶데요.

오늘 벼를 가마니에 넣어 광에다 들였습니다.
아이들이 큰 일꾼이었지요, 늘처럼.
오전엔 ‘신문이랑’ 대신 ‘그림놀이’를 하였습니다.
탁본흉내였지요.
모든 튀어나온 것들, 혹은 들어간 것들을 종이 위에 옮겨보았습니다.
그걸 오려 다시 스케치북 위에 구성을 했지요.
탁본의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이 나라 탁본의 대가 직지사 흥선스님한테
한 두주 뒤쯤 아이들이랑 가서 탁본하자 조를 참이지요.

‘국화’시간도 있었네요.
고생 무지 하고 오셨습니다.
어제 차가 병원에 갔다네요.
“웬만하면 전화주고 쉬시지...”
“그래도 빠지면 되나요?”
지난주도 물꼬 사정이 있어 빼 달라 했으니
두 주를 다 빠질 수 없다고 오신 것이지요.
임계리에서 영동-황간간 큰 길을 나오셔서
다시 게서 황간까지, 다시 매곡까지,
그리고 상촌까지.
다음엔 그제야 연락을 받고 우리 차가 나가 뫼셔 왔네요.
무려 세 시간 여정이였답니다.
그렇게 오신 길이 또 아이들한테 큰 배움 하나였을 겝니다.


읍내 모처의 주차장에서 도마뱀을 만났습니다.
아주 엎드려 그를 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징그러워 저만치 비껴갔던 그입니다.
사람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줄 알고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하였지요.
그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요?
“나는 늘 다녀도 늘 세상이 넓고 길이 낯선데
너는 이 낯선 세계 어디로 가는 것이더뇨?”
존재를 다르게 보는 법을 끊임없이 배우는 물꼬입니다.
무엇이 징그러운 것이고 무엇이 사랑스러운 것이겠는지요.
오늘, 도마뱀이, 귀여웠습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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