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 5.쇠날. 흐릿하더니 걷히다 / 대전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


좋은 가을날,
사람들은 도시를 빠져나가지 않았을지요.
산골 우리들은 되려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과 대전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을 갔지요.
딱히 챙겨서 무슨 전시를 보겠다고 간 건 아니었습니다.
마침 대전에 볼 일이 있어 가는 길,
시립미술관이라면 상설전시관쯤 있을 테고
뭐라도 휘 돌아보면 좋겠다 싶었고,
이응노미술관이라면 그의 그림쯤 만날 수 있으리라 했지요.
오전에 잠시
이번학기 같이 공부해나가고 있는 버섯구경을 위해 숲에 들었다가
열한 시쯤 대해리를 빠져나갔습니다.

이런, 개관한지 몇 해되지 않아 아직 소장품이 없어 그런지
상설관이 없다네요.
아, 전시실 들머리에 있는 백남준의 ‘거북선’이
상설전시를 대신한다 해도 되겠습디다.
기획전으로 <모자이크 시티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여는 새로운 미래’를 모토로 도시의 속성인 모자이크에 주목하여, 현대 도시를 이루고 있는 여러 조각들, 제각기 자신의 빛으로 반짝이면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대전시 전체를 캔버스로 놓고, 전통적인 매체가 아닌 과학기술 시대의 새로운 매체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도시의 속성들을 탐구해온 작품과 관련 행사를 통해 도시의 이질적인 요소,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요소들을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미술관 측의 얘기였지요.

콜코즈의 작품으로 전시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방식을 진행해온 작가라지요.
실재의 기념비와 도시,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양 만든 기념비와 도시를 견주어
우리에게 한 번 생각해보라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지평선 위에 수평적으로 퍼져있는 빈민가들이
그의 작품에서는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고,
가장 빈곤한 사람들, 혹은 건축적인 실수들이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통렬함 같은 감정이 막 일어서데요.

“영화 봐두 돼요?”
컴컴한 공간에서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거기부터 달려들어 갔지요.
작품 해설, 혹은 비디오작품이겠다 짐작하며 들어갑니다.
도시의 인구 배치를 마치 야경처럼 보여주는 10분짜리 영화였지요.
“저게 뭐예요?”
“각 도시의 한 층이 십만 명의 인구를 나타내는 거래.”
아시아에서 시작하여 북아메리카에서 끝난,
도시의 풍경위로 날아가는 야간비행은
(파퓰러스케이프(팀)의 ‘도시화되는 세계로의 야간비행’)
싱글채널 비디오인데도 환상적인 디지털 세계의 아름다움을 잘 전하고 있었고
영화 같은 감동이 일었습니다.

비디오실을 나오자 벽을 다 차지한 작품 셋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도시의 거대한 구조물들을 조감도 이미지를 빌어 보여주는 권순관의 작품은
마치 연출된 것 같은 장면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나게 읽으며 보았습니다.
도시의 구성원들이 외형적 형태와 표면으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고
또 어떻게 변화되어가는가를 나름대로 설명하려 했다나요.

2전시실로 넘어가는 길에
황록색의 전선이 그래픽디자인처럼 벽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거 끼고 가세요.”
안내인이 헤드폰을 주었지요.
크리스티나 쿠비쉬의 ‘새 나무’앞을 그렇게 걸었습니다.
전선은 마치 커다란 나뭇가지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듯한데
온갖 가지 새소리까지 들리니
이제 틀림없는 나무가 되었지요.
우리는 나무에 걸터앉아 바로 곁에서 우는 새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후엔 어떤 새의 노래는
이 지구 위에서 더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버린집’이라는 박정선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개발로 곳곳에 버려진 집들 가운데
어느 한 집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찢어진 벽지, 버려진 옷장, 낡은 찬장, 무너진 담벼락, 깨진 창문,...
거기 해골도 하나 있었지요.
그런데 가운데 아주 오래된 듯한 텔레비전에서
작가가 버려진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이 흐르고 있었는데,
역시 버려진 곳으로부터 왔겠다 짐작되는 소파에서 그걸 볼 수 있었는데,
작가가 문을 열고 집을 떠나고 있을 때
‘내’가, 그려니까 보는 이가 그 버려진 집에 남겨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공허하고 슬픈, 버린 집이 된 것입니다.
작가도 바로 이 효과를 노렸던 걸까요?

조선호텔 옥상에 설치된 마이크에 입력되는 부산 해운대 바람소리가
인터넷으로 전송되어 영상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나
바람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 이미지를 영상으로 보여준
변지훈의 작품도 재미났습니다.
박준범의 작품들은 텅빈 공간에 도시가 혹은 도시의 한 공간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해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역시 흥미로왔지요.
그밖에 카예타노 페러가 대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고
쿄타 다카하시의 ‘하숙생’, 민지애의 ‘어떤 풍경’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겐 어땠을라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공원의 일부인 미술관은
그 둘레를 걷는 것만으로도 전시회관람이 되고 있던 걸요.
길을 건너 이응노미술관으로 좇아갔습니다.
고암 이응노이라면 동백림사건과 수덕여관이 생각납니다.
“야, 류옥하다, 너 지난 번에 수덕사 갔었잖아...”
수덕사에 다녀온 게 올 초던가요.
그 아래 수덕여관은 새 단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더니
곧 복원기념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엽스님이 절집 문을 열고 들어가 스님이 된 곳이 거기입니다.
흔히 근대시의 효시가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알려져 있지만
그 한 해전 ‘동생의 죽음’으로 신시의 지평을 열었던 이가 그이지요.
나혜석이 절문에서 거절당하고 머문 곳도 거기였으며
고암의 본부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이 또한 거기였더랬지요.
지금도 넓적바위에 암각화로 남긴 고암의 흔적이 있는데
한글 자모들이 풀어져 춤을 추지요.
유명한 그의 문자추상입니다.

‘고암의 수행적 드로잉-難·好·髓’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려울 난, 즐거울 호, 마음속 수. 이번 저시는 고암이 마주한 세상을 예술로 담아낸 그의 탁월함을 대변해보고자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작가적 의지, 사랑과 예술과 생각의 그 어느 사이에도 경계 없는 고암의 철학을 보고자 한다.”
미술관의 기획의도입니다.
예술을 도(道)라고 생각했던 고암이지요.
그가 마주했던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은
장애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원동력이었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통로이자 자극이었다 합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세계를 4기로 분류하고 있었지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전후기, 옥중시기, 파리 시기.

1전시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예술정신과 개성도 모두 다 일본화풍에 빼앗겼다고 한탄하며
고암은 격랑 속을 붓으로 지나가고 있었지요.
해방전후의 혼란스러움과 전쟁직후의 고단함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취야’는 일을 끝낸 노동자들의 저녁풍경으로
마치 그 술자리의 소란이 들리는 듯했고,
‘행상’은 그 시절의 고달픔이,
‘영차영차’와 ‘재건현장’에서는 전쟁 뒤의 움직임이 겹쳐졌습니다.
그런데, 어째 공간이 익숙치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 온 곳이긴 하나
도무지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예의 익숙함이 없는 겁니다.
아하, 전시실에 바깥풍경과 빛이 들고 있었지요.
상품에서 눈이 떼지지 않다록 백화점이 흔히 그러하듯이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갇힌 벽에 그림 중심으로 떨어지는 조명이
이곳엔 없었지요.
구미가 당깁디다.
재미난 관람이 될 것만 같았지요.
모서리로 만나는 다음 전시실로 넘어갔습니다.

2, 3전시실.
“...형무소의 마당에서 못을 주워 알루미늄 세면기랑, 식기에 힘껏 구멍을 내어 마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피의 관철을 조각하기도 했다. 그림은 벽에 거는 장식으로 끝나는 것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림에 생명을 불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림이 변하여 가는 과정 속에서 옥중체험은 한번 더 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했다.”(고암의 ‘옥중그림에 붙여’ 가운데서)
너무나 그림이 그리고파서 간장을 물감삼아 휴지에 그렸다던 그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구성이 많습니다.
통합교과 프로젝트 ‘버섯이랑’ 시간에 아이들과 구성작업을 하려는데
마침 고암의 구성을 봅니다.
큰 수확이겠지요.
꺾이며 긴 통로가 이어지는데
역시 통유리 바깥엔 물이 흐르고 있었고 대나무 섰습니다.
마치 일본의 한 정원에 있는 듯도 하였고
산사의 어느 모롱이를 도는 듯도 하였네요.

4전시실.
고암은 형(동백림 사건으로 2년여 옥중에 있었던가요)을 마치고 다시 파리에 갑니다.
그곳에서 작업한 구성과 입체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요.
한지에 채색을 입힌 것이 많았고
벼루와 벼루뚜껑이라든지에 새긴 문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비스듬히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바깥으로 이어집니다.
자연광도 자연광이지만
별다른 문이 없이 하나의 열린 구조로 모든 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곁에 흐르는 물과 바깥에서 건너오는 풍경이
그 자연의 결을 더하고 있었지요.
독특합니다.
제법 이곳저곳 미술관을 기웃거리는데,
한국에서 이만한 미술관을 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고스란히 고암의 그림을 닮은 것만 같았지요.
나오면서 다시 이응노미술관을 둘러봅니다.
누구일까요, 미술관을 마치 산사에라도 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고암미술관임을 잘 말해주는 이 집을 설계한 이는?
그제야 안내지에서 건축내력을 발견합니다.
“고암의 문자추상에서 영감을 얻어 고암의 예술세계를 풀어낸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드엥이 설계했으며, “빛과 자연”이란 주제처럼 자연광에 대해 인색했던 국내미술관과는 차별화된다... 국내 최초 백색 콘크리트 공법의 실현과 그간 국내 미술관 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396 2007.11.14.물날. 맑음 옥영경 2007-11-21 1425
1395 2007.11.13.불날. 맑음 옥영경 2007-11-21 1198
1394 2007.11.12.달날. 맑음 옥영경 2007-11-21 1323
1393 2007.11.11.해날. 맑음 / 낚시 옥영경 2007-11-19 1569
1392 2007.11.10.흙날. 썩 맑지는 않지만 / 지서한훤(只敍寒暄) 옥영경 2007-11-19 1900
1391 2007.11. 9.쇠날. 맑음 옥영경 2007-11-19 1284
1390 2007.11.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11-19 1515
1389 2007.11. 7.물날. 낮은 하늘 옥영경 2007-11-19 1274
1388 2007.11. 6.불날. 가라앉은 하늘 옥영경 2007-11-19 1257
1387 2007.11. 5.달날. 오후, 고개 숙인 볕 옥영경 2007-11-13 1666
1386 2007.11. 4.해날. 맑은 날 옥영경 2007-11-13 1211
1385 2007.11. 3.흙날. 흐려지는 오후 옥영경 2007-11-13 1205
1384 2007.11. 2.쇠날. 바람 옥영경 2007-11-13 1277
1383 2007.11.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11-13 1319
1382 2007.10.31.물날. 들여다보면 비치겠는 하늘 옥영경 2007-11-13 1489
1381 2007.10.30.불날. 맑음 옥영경 2007-11-09 1258
1380 2007.10.29.달날. 세상 바람이 시작되는 대해리 옥영경 2007-11-09 1389
1379 2007.10.28.해날. 흐린 오후 옥영경 2007-11-09 1422
1378 2007.10.27.흙날. 맑음 / 작은 잔치 옥영경 2007-11-06 1326
1377 2007.10.26.쇠날. 맑음 옥영경 2007-11-06 121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