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조회 수 2436 추천 수 0 2004.03.10 00:01:00

서울이라면 끔찍해서,
그곳에서도 여전히 밥 잘먹고 일 잘하고들 사는데,
적지 않은 세월을 살기도 했는데,
작년 여름 귀국한 뒤로는 서울 쪽으로 쳐다도 안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첨단의 시대라도 사람 눈을 보고 할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야 일이 되는 것들 또한 적지 않아서 간
짧은 나들이었네요.
무슨 뉴욕 가는 것보다 더 긴장하고
다닐 길들 몇 날을 그려보며 준비를 다 했다니까요.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하는 대해리를 뒤로 하고 떠나있는 동안
다리 짧은 상범샘의 무릎이 빠질 만큼 쏟아진 눈 속에
("어, 상범샘은 다리가 짧은 갑네, 나한테는 발목이 좀 빠졌는데..."하는
열택샘의 증언이 있었지요)
동네 눈도 치우고 눈사람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컴퓨터도 손보며
공동체 식구들은 못다 했던 안의 일들을 하고
잘 쉬기도 했다지요.

영동역에 차를 세우고 기차로 움직였습니다.
선견이 지명이었다지요.
이야, 정말 누군가 하늘에서 눈을 막 던지데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아니어도
그냥 설국, 설국입디다.
기차마저도 40여분 연착이었지요.
옆의 고속도로는 아예 차가 안움직여요.
저녁에 들으니 눈에 갇혀
도로공사에서 공수하는 빵이며 라면이며를 다 먹었다나요.

첫날.
학교 통장 죄다 싸 짊어지고 가 은행 일들부터 처리하고
학교여는 날 무대에 서 달라 백창우샘쪽 공연실장님이랑 만났지요.
근데 이 분이 물꼬도 저도 오래 전부터 알았다 합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한 적이 있다지요.
8년여 전인가 그 곳에서 만드는 작은 책에
2년쯤 글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같은 책에서 마지막 환경음악 꼭지를 그분이 맡아 썼다 했습니다.
이미 안다는 건 일을 진행하는데 얼마나 편한지.
음향이며 조명, 무대에 대한 조언도 큰 도움이었지요.
(큭큭, 아니 하하, 이야!
방금 백창우샘이 오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흔쾌하게, 아주 흔쾌하게 가야지 하셨답니다.
출연료가 없음이야 물론이지요.)
저녁은 시모임 선배이자 물꼬의 논두렁 주영만샘이
노래부르던 해물탕, 아니 찜을 내셨구요,
9시 약속에 맞춰 홍대앞까지 실어다 주셨습니다.
오랜 친구이자 역시 논두렁인 박신길님 만났지요.
술도 마시고 그가 잠자리도 살펴주었네요.
그는 만날 때마다 꼭 CD를 챙겨주는데
지난번 물꼬 방문에 로드리게 음반 두 장을 내밀었댔지요.
그런데 그때 빠뜨린 음반 쟈켓을 굳이 넣어왔더랍니다.
이런 섬세함들이 늘 참 감동인 친구입니다.

둘쨋날.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 이른 아침이면 달려가던
창덕궁 뒤뜰부터 좇아갔습니다.
서울에 오는 부담이 거기 가는 즐거움으로 충분히 상쇄되리라,
기대하던 작은 걸음이었네요.
12시, 그토록 만나고팠던 논두렁 오정택님 만났습니다.
몇 해를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달마다 아주 큰 덩어리를 내놓으시고도
얼굴 한 번 소식 한 번 인사 한 번을 안해 오시던 분이지요.
그 회사의 논두렁비 맡은 이도 절대 어떤 분인지, 어떤 이인지 안가르쳐줍디다.
단추 만드는 작은 공장이라고만 해요.
간곡히 이번 참에는 보자 하였지요.
인사동에서 한정식을 내주시며 얼굴 봬주셨답니다.
학교 문여는 날은 꼭 오신다데요.
잠시 영화 한 편 보러 들어갔다가
곤해서 졸다만 나와
종 3 악기상에서 학교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신림동 친구이자 품앗이이고 논두렁인 함분자님 집으로 옮아갔지요.
좋아한다고 해물탕을 내놓고
새우도 발라주고 게도 발라 올려줍니다.
저는 늘 제 입만 생각하는데
제 앞의 사람들은 늘 이러하지요.
정말 잘 살아야겠다,
다시 다짐하는 밤이었지요.

셋쨋날.
통소모임 갔습니다.
아이들하고 올해 좀 해보려하지요.
그런데 아이들 악기 제작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 좀 걸리겠습디다.

드디어 영동행 기차를 타고 내려옵니다.
아직도 눈을 닷발은 이고 선,
역에 세워둔 차 끌어내
영동 나들목에서 대구로 길을 잡을 참인데
눈으로 막혔던 네 곳 가운데 하나라니 불안해서
황간나들목에서 차를 올립니다.
만나기로 한 경북교사풍물패의 대부(?) 유대상샘과
전통풍무악 예술단 "랑" 배관호 단장님이 맞아주십니다.
경상도에서만 대가라하면 서러워할 이들이지요.
배선생님은 지난번 "랑"의 10주년 기념 공연을 가서 뵌 적이 있었지요.
저녁부터 먹고 사는 얘기들을 나누다
학교 문여는 날로 이야기는 이사를 합니다.
저녁답에 할 공연에 지신밟기로 문을 열어주시고
마지막 삼십여분 공연을 하십답디다.
열 두발 상모돌리는 성룡님도 오시겠다지요.
기름값은 드릴 수 있지 싶다니까
오면서 길에 세워둔 차에서 뽑으며 오신답니다.

대구에서 돌아오는 아침,
잠시 휴게소에서 쉬는 참인데
그만 시간 반이나 잠이 들었댔지요.
화들짝 놀래서 잠이 깼는데,
그곳 소장이라는 분이 막 문을 두드립니다.
혹 질식해서 뭔 일 치나 하셨다고.
어쿠, 영동대 캐나다 교수 마이클을 만나기로 했는데,
날아간대도 이미 지각입니다.
황간에서 마지막 일 하나를 보고
대해리 들어오니 딱 저녁상이 오른 시간...

아이구, 길기도 긴 나흘이었습니다.
이 이가 저 이에게로 서류 인수인계 하듯 넘겨주어서
그리고 받은 이가 제 책임을 다하듯 돌봐주어서
무사히 마친 나들이었네요.
모두 고맙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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