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에 종일 있었다.

여느 날보다 일찍 해건지기(아침수행)를 끝낸 7시였다.

8시께는 물건이 들어온다고 했더랬다.

뜨락에서 눈에 걸리는 것들을 정리하며 대기.

문자가 닿았다. 고속도로에 사고가 있어 늦어진다는 소식.

종종거리던 걸음을, 보폭을 늦추다.

 

말뚝이 왔다. 아침뜨락의 옴자를 따라 박을 거였다.

일부이기는 했지만 대나무를 잘라 박아두었던 자리.

봄이 오면 땅이 들썩거리며 썩은 대나무가 넘어졌고,

다시 잘라 꽂기를 여러 해.

반복되는 일에 이미 힘을 빼서 더는 이어가지 못했던 지난 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마침 나무 말뚝에 아래 쇠꼬챙이를 단 물건을 찾게 되었다.

말뚝에 구멍이 둘 뚫렸고 말뚝과 말뚝 사이는 줄을 이으면 되는.

말뚝은, 너무 두껍지도 그렇다고 가늘지도 않을 크기면 좋겠다 했는데,

눈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위태롭지도 않아 보이는 걸 발견.

직접 통화를 하니 좋은 가격을 내놓은.

로프도 넉넉하게 보낸다는.

돈이 좋다, 하시던 한 어른의 우스개를 따라했다.

 

옴자 가장자리로 말뚝을 박아 나갔다.

직선 부분은 듬성하게, 둥근 부분은 성기게.

돌을 만나면 피하고,

가끔 꼬챙이가 큰 돌을 만나 휘기도.

앗, 살짝 모자라는 개수.

하여 눈썹 부분은 한 쪽을 포기하다.

그 몇 개를 다시 주문할 것까지는 아니고.

일정한 높이의 말뚝이 나란히 나란히 옴자를 따라 흐른다.

그 말뚝에 끈을 끼우는 작업은 또 다른 날을 엿보기로.

 

잘 들지 않는 낫을 갈아 아침뜨락의 실개울 옆이며 둘레 마른 풀들을 벴더랬는데,

하필 자루가 미끄러운 낫이어 꼈던 목장갑을 빼고 하다 그만 손가락을 다치기도.

낫질은 대나무 수로와 몇 곳의 마른 풀에 이르렀는데,

담이 와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음처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저마다 느끼는 지점이 있을 터인데,

내겐 자주 오는 담이 그 지점인가.

오른쪽 갈비뼈 쪽으로 오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담을 잘도 피해 왔는데,

그래서 조심조심 몸을 살살 움직이고 있었건만

왼쪽에서 복병처럼 후욱 몸으로 들어와 버렸네.

"아아악!"

고통으로 소리를 다 지르게 되었던. 낫을 놓고 들어와 잠시 누웠기도.

마사지도 하고, 파스를 붙이고, 약도 먹고.

날에 기대야 나을 수 있는 것이기도.

 

전화가 먼 이곳.

여러 날 손전화로도, 교무실 응답기로도 남은 문자였다.

오늘에야 통화를 했다.

낯선 곳으로 아이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가 뭐라고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사람을 아는 양 느끼게 되는 게 있다.

어미가 되고 나니 부모님들 그 마음이 이해되는.

말의 번드르르한 속성처럼 혹 내 말에 과장은 없는가를 살피며 상담.

좋은 연이 좋은 연을 불러주더라.

한 엄마의 소개였고, 서로가 그 엄마에 대한 신뢰를 더해 따뜻하게 말하게 되더라.

올 여름 계자에 볼 새 얼굴들이겠다.

봄 오면 여름이 또 금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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