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7.쇠날. 갰다가 비 / 가지산 1,240m

조회 수 1425 추천 수 0 2007.09.23 16:59:00

2007. 9. 7.쇠날. 갰다가 비 / 가지산 1,240m


가을학기 시작 산오름입니다.
날이 갰습니다.
이런 말간 볕을 언제 보았더이까.
꼬박 열하루를 내리 내렸던 비입니다.
7:50 학교를 나섰습니다.

가지산.
지리산 자락의 산들을 빼면
경상도 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입니다.
밀양을 지나 울산 언양 방향에서 얼음골 거쳐 석남고개를 넘으니
길은 아래로 가팔라지는데,
“어,어 저기 저기!”
푸른 산에 툭 불거져 오른,
마치 잠깐 던져놓은 것 같은 삐져나온 바윗덩어리가 일품입니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석남사들머리,
차를 놓고 우리가 오늘 잡은 등산로를 확인했습니다.
버스 종점~주능선~가지산~쌀바위~상운산~귀바위~운문령갈림길~석남사~버스종점.
어른 걸음으로 5시간은 족히 걷는다 합니다.
가지산과 석남사를 두루 구석구석
죄 둘러볼 수 있는 장점으로 손꼽히는 등산로이지요.
그래서도 굳이 북쪽 청도에서 오르는 길 대신 여기로 왔지요,
물론 차를 둔 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도 그러했지만.
그런데 가지산 정상에서 다시 갔던 걸음대로 돌아와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작이니까요.

11:50 석남사 옆 주차장 공비토벌작전기념비를 왼편에 끼고 출발합니다.
해발 275미터에서 시작입니다.
패인 길이며 깊이 드러난 나무뿌리들,
비가 무지 무지 다녀간 흔적들이겠습니다.
버섯이 또 유달리 많네요.
올 가을 중심생각공부(집단 프로젝트)의 주제여서도 그렇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이렇게나 많이 그것들이 있었나 놀라기 마련이니까요.
류옥하다랑 앞을 맡아 오르는 동안 허리는 종대샘이,
뒤는 젊은할아버지와 종훈이가 걷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살이 더 붙은 종훈이는
그 무게로 또 힘이 들었던 듯합니다.
하다가 살이 더 붙었지요.
능선은 뚜렷하고 반반한 오름길만 따라가면 되지만
주능선(795미터 이정표) 닿기 전 10여분이 무척 가파릅니다.
가파른 그 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돌로 된 벤취(자연이 만들어놓은)가 있었지요.
우리를 지나쳐 먼저 오르던 한 아저씨,
그 돌의자에서 땀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다가 갑니다, 일주일이 두어 번.”
홀로 그렇게 산을 밟고 간답니다.
굳이 꼭대기 아니라도 산은 얼마나 위로일까요.
저어기 아래로 낮은 산 몇을 지나 울산이 펼쳐지고 있었지요.

주능선에 닿으면 왼쪽은 신불산 청황산에서 석남고개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리는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갑니다.
낙동정맥의 마루금답게 길은 더욱 넓고 뚜렷해졌지요.
10여분 산사로 가는 길 같은 자갈밭을 오르니 간이매점이 나타납니다.
오랜 우기 같은 빗날 속에 산지기 떠난 지 오래이지 싶데요.
테이블과 의자만 지키고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정상을 밟기 전에 점심을 먹는 학기 산오름도 처음인가 봅니다.
20여분 더 가니 990미터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펼쳐지는 풍경은 자욱해진 안개가 먹어버렸으나
금강산 절경과도 같은 바위들이 가파른 곳에 늘어서있습니다.
안개가 더 짙어집니다.
발아래도 분간하기 어려워집니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는 길이 좋았다가
기울기가 심해졌지요.
금강산을 옮겨놓은 듯한 바위들을 다시 두어 차례 더 만납니다.
또 한 번 가뿐 숨을 내쉬며 20여 분 오르니 1165미터 중봉; 3:30

너른 바위도 있고
지금은 묵직한 안개로 뵈지 않으나 훤하게 전망도 좋겠습니다.
누구나 한참을 쉬어가겠는 곳입니다.
정상도 예서 조망된다 했지요.
가나 못가나 기로에 섭니다.
4시에는 닿아서 길을 틀어야 안전하게 아래에 닿을 것입니다.
4시까지 산꼭대기에 이를 수는 있을까요?
종훈이가 퍼집니다.
“못가요.”
“알지, 갈 거라는 거? 가자!”
그예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그러면서도 손을 잡으니 일어섭니다.
‘이 아이 이렇게 또 컸구나...”
못 간다고 버팅기지 않습니다.
이제 종훈이와 후미를 갑니다.
주로 선두만 지켜왔던 산오름입니다.
늦은 아이들은 대개 젊은할아버지의 차지였지요.
오늘은 역할을 바꾸어 봅니다.
종훈이라 좋아라고 따라붙습니다.
이 아이도 늘 담임샘이랑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겝니다.
희안하리만치 날쌔게 붙어옵니다.
오늘은 내려올 때도 이 아이랑 호흡을 맞춰보리라 하지요.
아이들과 하는 산오름은
늦은 아이도 모두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어느 한 지점 한 번 선두가 멈추면 모두 다시 또 ‘시작’이 될 수 있지요.
그러면 더딘 아이는 또 힘을 바짝 내보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산에 들면 눈이 밝아집니다.
땀으로 모자 아래 훈김이 안경에 입김을 만들어 자주 벗어야 하다
어느 결에는 아예 안경을 벗고 오르지요.
그런데도 밝습니다.
평지에서라면 한 걸음도 두렵지요.
밝아지는 감각은 눈만이 아닙니다.
귀도, 다른 감각들도 살아납니다.
하기야 무에 그리 ‘보려’들까요...
거의 다 왔지 싶습니다.
넋을 빼앗는 주변 풍광으로 힘드는 줄 모르는 코스라는데
발아래만 겨우 보며 걷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낮은 키의 나무들이, 오솔길의 단란함이.
10분도 안돼 용수골로 빠지는 안부 1110미터에 이르고
다시 10분을 좀 넘기며 3:50 정상을 밟았습니다.
산행한 능선과 왼쪽 영남알프스 서쪽종주능선(운문산방향),
그리고 북쪽 쌀바위 운문령 능선으로 이루어진
1240미터의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
날개를 단 개미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었지요.
침입자들에게 못마땅하다 툴툴거리는 그들이었습니다.
먼저 닿은 종대샘이 사과를 깎아놓았지요.
산 너머 쌀바위 쪽으로 잠시 내려 대피소에 들립니다.
따뜻한 거라도 입에 대자고 들렀는데
음료수와 맥주 캔 하나로 정상에 이른 기쁨을 축하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지요.

쌀바위와 어디를 돌아 안부로 해서 석남사 경내로 휘돌아 가는 길,
그러나 아무래도 시간이 안 되겠습니다.
다시 오르던 길로 내려오자 합니다.
안부에서 중봉을 지나 바삐 내려갑니다.
그런데 990미터 이정표에서 그만 길을 잃었지요.
“아니지 않아요?”
종대샘은 일찌감치 자신의 몸을 치워주는 게 돕는 거라고 내려갔고
남은 이들이 헤매고 있었지요.
다시 되짚어 올라 이정표를 보고 가건만
또 헤매던 아까길과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석남터널’의 방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는데,
달랑 하나 있는 그 안내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지요.
내리 이어진 길에서툭 불거져 내려가는 길이 낯선듯했던 건데
다시 이정표에 이르러 이곳저곳 지형을 살피니 게가 맞는 거였습니다.

795미터 이정표.
시간은 5: 40에 이릅니다.
곧 어둠이 쏟아질 겁니다.
바짝 긴장하지요.
지금부터는 산에 남은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내려 보낼 이들은 다 보내야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보내놓고
종훈이랑 달립니다.
한참을 내려오고 나니 이제 적어도 헤맬 일은 없다 싶습니다.
어둠이 짙어져도 그리 어려울 길도 아니었지요.
비로소 여유가 좀 찾아들데요.
개와 늑대의 시간, 긴장을 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 고요와 사색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이제 마치 산사람이 해저물녘 산마을로 내려서듯
평화가 찾아듭니다.
또 결심하지요.
산에 살리라 산에 들어가리라 하며 걷습니다.

6:45.
출발지로 다시 돌아왔지요.
4시간 30분에서 5시간정도로 잡는 길인데
아이들 꼬리까지 결승선에 들어오는 시간으로 7시간.
양호합니다.
간간이 내렸으나 금새 멎던 비는
이제 아주 작정을 하고 쏟아집니다.
“하아, 비네요.”
절묘한 날씨에 젊은할아버지는 또 감탄하였지요.
그래요, 마치 다들 산을 안전하게 벗어나기를 참고 참다가
뿌리고 있는 비같았습니다.
금방 후두둑 빗방울 거세졌지요.
주차장의 2층 한 가게에서 다리를 뻗습니다.
청국장을 놓고 앉았지요.
갈무리를 합니다.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그 다음 다리가 안 따라주고
겁나게 힘들고
짜증 팍 나고...”
종대샘이 다 말하고 있었지요.
8시께야 대해리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래도 자정을 못 미쳐 도착했네요.

산을 오르면 어느 지점의 고비가 있지요.
그걸 넘으면 한결 수월해집니다.
생도 그러하지요.
산이고 또 산이어도 고비를 넘고 나면 힘이 덜 든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 맛에 또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 거구요.
우리 아이들이 생에 잠복해 있는 산들 또한
그리 훌쩍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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