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9.불날. 맑음

조회 수 1222 추천 수 0 2007.06.15 12:48:00

2007. 5.29.불날. 맑음


‘보은노인․장애인복지관’을 다녀왔습니다.
물꼬에서 꾸는 꿈이 닿아있는 곳이지요.
기관이야 영동이라고 없지 않으나 굳이 보은까지 가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그곳의 관장님 때문이었습니다.
지성인들의 역할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당신이고
당신이랑 마주 앉는 시간 시간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한 웅변가의 열정적인 연설의 시간이랍니다.
바로 그 연설가가 거기 있고, 그래서 갔지요.

복도에도 그리고 식당에도
벽에는 보은에서 볼 수 있는 들꽃이며들이 사진으로 액자에 담겨있었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들꽃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일어나
어디서나 만나는 야생화사진이 심지어 경박한 느낌까지 줄 때가 있더니,
거긴 마치 제가 만났던 관장님과 같은 이미지로 오데요.
‘한 사람이 한 공간을 대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뚤래뚤래 둘러보며 사람들의 표정을 읽습니다.
시대가 달라져서인지,
오래전 이런 시설에서는 떠밀린 자의 피폐함을 읽었다면
오늘 거기선 다릅디다.
시간 탓일까요, 아님 이 곳의 분위기 덕일까요?
정신지체장애로 보이는 한 친구랑 인사도 나누고,
작업실로 가는 그를 좇아가 차도 얻어 마셨습니다.

1층.
열매 햇살 나눔 정이 송이 어울림 디딤돌 산마루...
아름다운 이 낱말들은
사회교육실이고 사회적응실, 그리고 직업적응실인 그곳 방들의 이름입니다.
입안에서 가만히 읊조리게 하는 이 단어들은
음성뿐 아니라 뜻으로도 되내게 했습니다.
나아가 그것이 복지관 전체의 밝은 느낌에 기여하는 바가 크겠습디다.

화장실을 봅니다.
‘무식한 울어머니’는 어디를 가면
그 집의 걸레를 통해 그 댁을 짐작하셨습니다.
저는 화장실과 쓰레기정리로 그곳의 수준을 가늠하는 경향이 있지요.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시간, 친절, 때로는 위안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게 되기 전에는.”
“선물은 단순하게 물건을 보내는 일. 실제는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
화장실 문에 붙여져 있는 글귀들입니다.
토끼풀잎 사진 아래는 이렇게 씌어있었습니다.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
이런 글에서는 그 공간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 혹은 가치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생리대를 신문에 싸서 버릴 수 있도록 준비해둔 것이며,
깔끔하고 마음을 쓴 흔적들도 흠뻑 만납니다.
아, 휠체어를 탄 이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지요.

2층.
직업교육실, 사회교육실, 조기교육실, 작업치료실, 언어치료 심리치료실, 상담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들, 정보화교실, 건강증진실...
강당에서 스물 댓의 할머니들이 강사의 춤동작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아하, 이게 차밍댄스인가보다.’
쑥스러워도 하겠다 싶은데, 웬걸요,
아마도 오래 해왔나 봅니다,
아니면 오래했던 이들이 먼저 분위기를 만들고 있거나.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예쁘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두울 셋 넷...”
신납니다. 뒤편에서 같이 다이아몬드스탭을 밟아도 보다 나옵니다.
평생학습시간표에는
장구, 서예 한문 영어 일어 한글, 탁구 노래 기체조 에어로빅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참말 재미나겄습니다.

탁구대가 놓인 휴게실에서 다리쉼을 했지요.
통유리너머 길이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런 시간이 고맙고, 이런 공간이 고맙습니다.
마음이 다사로와진 건 잠깐의 여유가 몰고 온 것만은 아닙니다.
복지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단순히 안락한 시설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 유지하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리고 3층 옥상.
“어!”
거기도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작동을 했습니다.
굳게 닫혀져 있을 줄 알았거든요,
옥상까지 가 있는 엘리베이터는 처음 봤습니다.
이게 이 복지관의 절정이다 싶었지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 공간!
3층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한 안내지에
오늘 1시 영화 <허브>를 상영한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입니다.
한 20여분쯤 시작을 보고 갈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시청각실은 비어있었지요.
어제했던 행사의 안내지가 아직 떼어지지 않았던가 봅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비로소 건물 안 들머리에 놓인 여러 인쇄물들을 봅니다.
몸으로 공간을 돌기 전 머리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가는 걸 경계하기 위해
공간 안내지도 말고는 외면한 것들이지요.
첫 소식지(‘마중물’)도 있습니다.
작년 6월 5일인가 개관했다 했으니 꼬박 한 해가 흐른 셈이고,
분기별로 나옴직 하겠다 짐작합니다.
“마중물이란 깊은 땅 속의 맑은 새 물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하는 물로써 지역주민의 맑은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실천의지입니다.”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 되는 행복공동체’라는 부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겠습니다, 이곳의 실천의지가 그러하겠습니다.
굳이 얼마나 이 시설을 이용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서도 있어야 할 곳이니까,
이런 시설은 효율의 문제로 바라볼 게 아니니까요.

오거들랑 꼭 차를 마시고 가라던 인사가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관장실도 들리지 않고 다녀간단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쇠털같이 하고많은 날들이니까요.

대해리 골짝에 물꼬가 준비하고픈 것들을
열심히 요량해보며 돌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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