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계자 닷샛날, 2007. 8. 2.나무날. 맑음 / 1,242m 민주지산


< 다섯 골짝 지나 거기! >


“난 진짜 산이 그래 큰지 몰랐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막 올라갔는데 올라가도 끝이 없고, 바위는 발바닥을 쑤셔대고 보이는 건 오르막 길 뿐이고, 진짜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뿌듯하고(이런 산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재밌었다.”
새끼일꾼 예진이던가요.

예, 산에 갔습니다.
아이들 마흔 일곱에 어른 열 셋(새끼일꾼 다섯 포함)이 올랐지요.
샘들은 5시 50분부터 김밥을 싸기 시작했더랬습니다.
물론 가마솥방의 박진숙엄마 손경화엄마는 더 일찍부터 준비를 하셨겠지요.
험한 산이라고 단단히 일러주었고,
더러는 지레 겁을 먹기도 했지만
강단지게들 마음을 먹었습니다.
동네 뒷산도 준비 없이 가면 위험할 수 있지 않더냐,
접시 물에도 빠져죽는다지 않더냐,
위험한 산이 문제겠는가,
안내자의 안내에 귀를 잘 기울이고 어깨 겯고 오르자,
우리들의 각오가 무사히 다녀오게 해줄 게다,...
그리고, 산에 사는 것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니
손님의 예를 다하자는 말도 덧붙였더랬지요.

“마음을 내서 들어주실 분 혹 계신가요?”
엊저녁 그리 물었습니다.
그럴 때 작은 아이고 큰 아이고 마음을 내는 걸 보면
살맛이 나지요, 살고 싶어집니다.
산에 짊어지고 갈 도시락이 든 가방 말입니다.
떡국을 먹고 가방을 나눠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입성을 확인한 뒤
흘목에서 8시30분에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선호와 단을이의 피아노연주가 오늘 아침은 건너뛰었네요.
산 들머리 주차장에서 내려
산 그림을 놓고 산을 어찌 탈지 안내를 하니
아홉시에야 오를 수 있었지요.

계곡바람이 어찌나 달던지요.
나무그늘이 만든 시원함과 물이 올려주는 싱그러움,
그리고 귀에 달려가는 물소리로 온 몸이 젖습니다.
이래서 또 여름 산오름을 하나 봅니다.
어느새 1지점에 닿았지요.
“어서 오세요.”
“애쓰셨습니다.”
뒤에 오는 이들을 그리 맞는 아이들입니다.
지나가는 등산객을 향한 인사 또한 놓치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구, 어디서 왔어?”
기특해하며 등산객들이 지나갑니다.

“2지점에서 사탕 가지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개미처럼 나아갔지요.
“잣나무 숲이다!”
하늘을 찌를 듯 선 잣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이나 다 치유가 되겠는 울창한 잣나무 숲.
2지점, 또 금새들 모였네요.
물가이지요.
“물이 달아요.”
이 더위에 한기가 느껴질 만큼 골바람이 달디 답니다.
“여기 참 좋아요. 공기도, 식수도 있고, 시원하고,...”
감탄이 어디 단을이에게서만 나왔을까요.

3지점으로 향합니다.
차암(참) 입심들이 좋기도 합니다.
말로 산을 다 오릅니다.
“옥샘은 한 마디 대답할 힘으로 한 발짝을 더 가셔.”
나중에는 시키는 말에 대꾸도 않았더니
어필이가 그러데요.
그의 어록집에 오늘 실린 말이 되었네요.
필요한 말이야 한꺼번에 모였을 때 하면 되지요.
오직 올랐답니다.

3지점.
물을 채웁니다.
지금부터 1킬로미터 넘어 되는 꼭대기까지는
먹을 물이 시원찮으니까요.
“사탕껍질 열 개면...”
가게문이 열렸습니다.
사탕껍질이 화폐입니다.
그거 열 개면 사탕 하나를 살 수 있었지요.
우리라도 버리는 것을 더하지 않도록 애를 썼답니다.

4지점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릅니다.
쪽새골에서 능선에 오르는 절정길이지요.
아직도 입이 여려지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꿈이면 좋겠다.”
현진이네요.
“안돼. 그럼 여기까지 오른 게 아까워. 아깝잖아? 꾸자마자 깨야지.”
원하였지요.
죽겠다 죽겠다 하며도 꾸역꾸역 올라들 갑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애요, 죽을 것 같애요, 다리가 마비가 와요,...
능선 오르기 막바지에도 아이들은 입을 늦추지 않고,
앞장을 서며 등 뒤로 노래처럼 그 소리를 듣고
어느 결에 제 숨소리만을 듣습니다.
그 소리만 모든 소리 같았지요.
사람들과 오르는데 홀로 걷는 고독감이 왔습니다.
순례길이고 명상길입니다.
아이들도 어느 순간 그 질감을 알게 될 테지요.
동진(5년)이가 저어기 뒤에서 무슨 말 끝에 욕설입니다.
“욕은 하지 말고!”
현지(2년) 쳐다도 안보고 누나처럼 오빠한테 말했지요.
그런데 (거칠기도 거친) 동진이 대답이 단정하기도 합니다.
“알았어.”
말 잘 듣는 동생처럼 말입니다.
또 한바탕 웃음이었지요.

생태계가 변하지요.
해마다 다른 꽃들이 무리를 이룹니다.
사람의 삶이 조금씩 변화를 겪듯 그들도 그렇겠지요.
갈수록
사람의 삶과 다른 존재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크게 느낍니다.
올해는 유다르게 정상 둘레에 동자꽃 지천이데요.
1,242미터의 산 봉오리.
‘예까지 양지꽃이 숨 쉬는구나...’
잠자리는 어느 높이까지 나는 걸까요,
심심했던 그들이었겠습니다.
꼭대기를 뒤덮은 잠자리랑 눈 마주하고 한참을 놀았지요.
그늘에서 물꼬표 김치김밥에 사과에,
숨겨두었던 초코파이도 찾아내 먹었습니다.

내림길,
민주지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 무주로 가는 능선에서 쪽새골로 빠지는 곳,
가파르기도 가파르지요.
“밧줄 잡고 가다가 넘어진다아-”
종대샘이 말하기가 무섭게 새끼일꾼 태우가 넘어졌네요.
무릎앓이가 도져 처음으로 일행의 맨 뒤를 맡았는데
뒤에서 아이들의 흐름을 보는 것도 또 재미입디다.
꼬래비여도 역시 넘치는 수다겠지요.

3지점에 죄 모였을 땐데요,
어른 세 아름은 되겠는 오래된 나무둥치가 있었는데요,
거기 이끼 들고 덩굴식물도 오르고 있었지요.
작디 작은 새 한 마리 게서 울었습니다.
낙엽이 엉키고 뭉쳐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떼 내어 줘 보지만 이미 한 다리가 상해 있었더라지요.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할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니 비야 네가 알고 있니
무엇이 이 숲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노래/‘아름다운 것들’ 가운데서)

상범샘이 다시 둥치에 올려놓고 물통 마개에 물을 떠주었습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자리를 떴지요.
아이들이 모두 떠난 물가에서
진희랑 좀 늦도록 도란거리기도 하였네요.
열두 살, 이만한 나이면 이제 친구 같은 아이들입니다.

올라올 땐 상범샘이
뒤에서 계속 소리치며 애들을 앞으로 몰았(?)지요,
혹여 소나기라도 만날까 해서.
지난 해 여름의 한 계자는 집중호우로 불어난 계곡물이
두려움으로 우리를 몰아넣기도 하였더라지요.
“큰 애들이 더 못 올라가고,
새끼일꾼들이 더 힘들게(못 오르고) 하고...”
늘 그렇지요.
어릴수록 자연에 더 가까워서 그런 걸까요.
현지라든가 자그만 녀석들이 우리를 감동케 했지요.
단을이랑 같이 내려오던 태석샘,
부모님 이야기, 꿈, 미래,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내려오던 둘은
1지점 돌탑 앞에서 함께 돌을 얹고 소원도 빌었다합니다.

흘목에서 이웃 김점곤아빠가 트럭을 가져와 주었지요.
버스를 타고 내려와 다시 마을길을 걸어올라 오자면
그 길이 얼마나 길고 길지요.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물론 범순이가 모두를 대신해서 조금 다쳐주었지요.
부모님 공덕이 컸나봅니다, 그 돌산더미에서 그만만 다친 걸 보면.
저도 씩씩하데요.
“건장한 사람들이 같이 가니 안심이... 종대샘 경민샘 열택샘...
47명, 쉬운 일 아닌데 매번 잘 다녀옵니다.”
“투덜대면서도 끝까지 올라가고, 올라갈 땐 쓰러질 듯하다 쉴 때는 모두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치고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상범샘과 경민샘이 그랬습니다.
경민샘은 ‘전우애가 생기더라’데요.
선진샘은 수환이랑 내내 같이 올랐는데
다 큰 녀석이 어리광이 심해서 몇 학년이냐 물었더라나요.
“그런데 (덩치만 컸지) 3학년이더라구요. 힘든 아이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지, 내가 마음 열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생기는 오해와 편견이지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은 신경도 못쓰고 그냥 저만 올라간 듯해버렸습니다.”
새끼일꾼 태우의 하루재기이네요.
다리가 불편한 태석샘은 더딘 걸음이 못내 미안했나 봅니다.
“내가 짐이 되진 않는지, 다음 계자를 하면 산오름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를 통해 또 얼마나 자극을 받는지요.
그이처럼 선하게 순하게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물꼬는 하늘이 많이 도와줘요.
4-5년 동안 산을 같이 갔는데 작년 소나기 때조차 좋았습니다.
1주 계속 비와도 산에 가는 날 딱 하루 햇볕이 나기도 했고,
우리 애들(상설) 봄 가을 일년 네 번 산 가는데,
젖고, 춥고 하지 비 눈은 피해갔어요.”
물꼬의 기상예보관인 젊은 할아버지의 전언이었지요.
하늘의 지지는 어떤 빽보다 크지요.
가끔 우리는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가난할수록 그게 강하려나요.

저녁, 어둑해져오는데,
산을 다녀온 아이들이 씻거나
혹은 마당에서 공을 차거나 예제 놀고 있는데,
마당가에 애들이 한 무데기 모여 있는 겁니다.
공을 차는 거라면 가운데 있을 텐데
튜울립나무 아래 둥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게다 한 번씩 함성이 나오기도 해요.
나가보니 열택샘과 종대샘이 한바탕 장작패기 시합을 하고 있었네요.
장작놀이에 쓸 장작더미가 다 굴었던 모양입니다.
양 편에서 도끼를 휘두르는데 둘러선 애들이 자극을 했겠지요.
샘들한테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며
링 위에 선수를 세우는 것 같았지요.
시간과 시간,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를 채우는 이런 시간들의 재미가
얼마나 풍성한 물꼬를 만드는지요.

한데모임.
“이눔의 자슥들!”
하도 소란해서 정색을 하고 부릅니다.
그러면 또 암소리 안해요, 순한 아이들입니다.
등짝을 때려도 애정이 어렸음을 압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같이 한 진한 고생이 그런 걸 만들어주었을 겝니다.) 앉았습니다.
산오름에 얽힌 얘기들을 두루 나누고
우리는 왜 산으로 갔는가 물었지요.
오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할 말들이 많기도 하더이다.
“초코파이가 맛있었어요.”
“공기가 좋아서 행복했어요.”
생의 기쁨이 뭐 대수로운 게 있을까,
소소하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
깨치고 놀라는 시간이었더이다.

장작놀이.
수환이 울었습니다, 샘들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여기 있는 일정 자체가 배움이었노라 경민샘이 인사를 했지요.
불을 보며 상범샘은 물꼬에 처음 왔던 98년 가을계자가 떠올랐답니다.
“여기가 충격이었어요!”
애들을 가르칠려고 들지 않고 보살피는데 있어서 권위가 아닌,
(보살핀다는 명복 아래 억압하고 못하게 하고 기회를 뺏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애들 에너지가 전 일정의 흐름을 지배하는
첫 대면의 충격을 어른들 하루재기에서 전하데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 짠하고 부엌이 만들어지고
(지금은 안정적이지요. 서울과 영동 살림을 합쳤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물꼬 색채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사람마다 참 다른 듯합니다.”
그러면서 계자 14년 동안 처음으로
오늘 아침 품앗이일꾼 둘을 보내는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꺼냈습니다.
“안 가겠다고 방에서 버팅기고 있는데 화가 났어요, 애들처럼 고집피우고.
아팠겠지만 그걸 전하는 방식이 막무가내였습니다,
아이들이랑 움직이는 사람들이...”
같은 것에 대해서도 어떤 이에게는 생의 방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겐 형편없는 시간이 되기도 하지요.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이겠습니다.
‘자기 몫’이란 것 말입니다.

한꺼번에 온 새끼일꾼들이 조금 시끄러웠지요.
모아놓으면 애들보다 더 소란하기까지 했답니다.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어찌 문제가 될까요.
다만 어떤 자리에서 할 역할을 해치면서라면 문제이지 않겠냐,
그렇게 야단을 치기야 했지만 그만만해도 장한 줄 아다마다요.
“내가 그 나이에 상상도 못할 일을 한다.”
줄곧 한 종대샘의 감탄이었지요.
“겨울 때 아님 내년 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
그들은 이리 쓰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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