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0.해날. 맑음

조회 수 1299 추천 수 0 2007.06.03 23:46:00

2007. 5.20.해날. 맑음


아침마다 열어두는 된장독이
수위가 움푹 내려갔고 그만큼 까매졌습니다.
햇살이 거기 어떻게 녹는지를 보지요.
그렇게 고운 투명한 검은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담았던 것도 늦었는지라 한 주쯤 더 있다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하려 합니다.
날마다 잘도 익어가는 산골 된장독이랍니다.

달골 창고동을 하룻밤 이틀 동안 내주었습니다.
영동대 봉사동아리 '참사랑봉사단'이 MT를 온 거지요.
“저희도 나눌 게 있어서 기쁩니다.”
지난 번 사월의 잔치에도 물꼬에 도움을 크게 주었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따로 관리인을 붙여드리진 못합니다.”
어제 점심 때 들어올 적
공간에 대한 안내와 청소도구, 하는 법들을 알려주었고,
오늘 점심을 먹은 뒤 돌아들 갔지요.
사람들 다녀갔으니 먼지를 좀 털어내야겠다고 들어갔는데,
이야...
물론 이불을 개는 거며야
남의 집 살림이라 우리가 정리해 두듯이 할 수 없었을 거지만
나머지 모든 것은 정말 최선을 다해 있었던 대로 해두었데요.
쓰레기까지 죄 실어갔습니다.
이런 다면 열 번도 스무 번도 더 내주겠데요.

밥알모임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써래질을 하거나 논두렁을 쳤는데,
엊저녁에 들어온 승현샘도 나가서 한 몫했지요.
그런데 그만 트랙터가 논 한가운데서 멈춰버렸습니다.
트랙터를 주셨던 함안 어르신한테 전화도 닿지 않고,
결국 상촌에서 협성아저씨가 달려와 손봐주셨네요.
결국 기계가 일을 다 하는데,
잘 관리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가마솥방에서 묵혀왔던 먼지며를 털었습니다.
숙원사업이던 냉장고도 정리했지요.
묻혀있던 김장도 꺼내어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박진숙엄마로부터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가진 ‘진심’에 대해 생각게 해주었습니다.
내 일처럼 성을 다하는 것도 감동을 주었지요.

지난 17일에 권정생선생님 별세하셨단 소식을 오늘에야 들었습니다.
조탑리 누옥에 당신을 찾아갔던 이십여 년 전이 오롯이 떠오르데요.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강아지똥’에서)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오소리네집 꽃밭’,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무명저고리와 엄마’, ‘어머니가 사시는 그 나라에는’, ‘바닷가 아이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참 많이도 쓰셨던 동화였고,
역시 많이도 읽었던 당신의 동화들이었습니다.
‘비나리 달이네집’은 최근에 읽었더랬지요.
글쓰기 수업 교재로 쓰며 아이들과 같이 보낸 시간에도
당신이 함께 하셨더랬습니다.
주로 저학년 아이들과 읽었던 ‘하느님의 눈물’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어요’은
구절구절을 욀 정도였더랬지요.
‘초가집 있던 마을’, ‘점득이네’, ‘몽실언니’들은
큰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게 하였더랬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서른 번도 마흔 번도 더 읽은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는
우리 아이가 너무나 사랑하던 책이었지요.
96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뒤로 당신의 글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고개가 들어지지 않는 밤입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광주에서 노래 부르며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권정생 ... 그이가 4.3이고 그이가 5.18이었노라고. 그이의 삶을 닮자고 강요할 순 없지만(어떤 집단의 이름으로 누구를 추앙하도록 강제 조작하는 것 말고)... 그이를 스스로 존경하고 저절로 그러한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늘어나는 일... 그런 관계가 삶의 바탕에 도도하게 흐르는 그런 세상을 일러 혁명이라면 혁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그런 게 광주의 정신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게 아닐까... 권정생 할아버지를 체 게바라를 추념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라고...”

당신을 추모하는 어느 글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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