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3.물날. 맑음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2007.06.03 23:48:00

2007. 5.23.물날. 맑음


민들레꽃차를 마셨습니다.
물날 아침마다 있는 ‘찻상 앞에서’ 시간이었지요.
씻어서 물을 충분히 털어내지 못했나,
꽃이 모여 오므라 들어있었지요.
찻물을 부면 꽃이 열릴까 하였으나 웬걸요.
먼지만 털고 씻지는 않았어야 했나 봅니다.
맛이 좀 시금털털했는데,
왜 그럴까,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까가
오늘의 찻상 앞 주제였네요.

달날 저녁 몇 권의 피아노반주책과 지도서를 샀습니다,
‘피아노 곁에서’에서 아이들이 피아노에 한참 흥미를 느끼는 요즘이라
이럴 때 가르치면 더 좋겠지 하고.
이런 저런 책이 없는 것도 아니나
요즘은 악보가 굵직굵직 보기 좋게 나오고,
아무렴 새로운 것들이 좀 나은 점이 있잖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고 말입니다.
오늘 책을 처음 펼쳤는데,
보고 들은 게 무섭기도 하지요,
금새 좇아들 왔습니다.

드디어 아침마다 조금씩 읽던 장편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글을 썼지요.
‘우리말 우리글’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학교, 다른 학년 아이들이
같은 책을 읽고 쓴 독후감도 읽어보았지요.
“네게 바라는 것이 있다.
네 인생이 내가 살았던 것만큼 행복하기를 바란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다시 들추어 읽어보았습니다.
“슬프지 않다. 정말 죽어 가신 건 아니니까, 누군가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 한은.”
죽음이 무섭고 슬픈 강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아주 자연스런 부분임을 아이들이 잘 받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보물들, 낡은 망원경, 잉크, 책들...
소년에게 남긴 할아버지의 유품들은 우리들도 즐겁게 했지요.
“나도 망원경 갖고 싶다...”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가진 소년의 행복으로
글을 읽는 동안 우리도 내내 행복했더랬습니다.

아이들이 점심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소나무 아래 토토로네집 그네에 앉아 학교를 바라보았습니다.
언제 이렇게 그늘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예 앉아보았겠는지요.
‘평화’가 거기 있었지요.
사람이 많지 않아 바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한가롭기도 합니다.
소 아니어도 졸음에 겨웁겠는 한낮입니다.
“따쿠궁따 궁따쿵...”
아이들은 따로 시간을 챙겨주지 않아도
때가 되니 장구를 들고 연습을 시작하고 있었지요.
서둘러 들어가서 같이 칩니다.
“어서 오셔요!”
조중조 할아버지가 장구 소리에 끌려 오셨네요.
같이 장구를 잡게도 해드렸습니다.
아주 작은 무리로도 온 마을의 흥을 돋우는 물꼬 아이들입니다.
할머니들도 학교 문 앞을 서성이셨댔지요.

낼 모를 냅니다.
“막걸리 내야겠네.”
동네 할머니들도 같이 기다리는 잔치입니다.
“모심기 전까지 역으로 해서 차례를 잡아야 되는 일이더라구요.”
상범샘이 농사샘 빈자리를 아쉬운 대로 메우며
한참 농사일을 익히고 있습니다.
“전혀 상반된 의견(동네 어르신들)도 있고...
논둑을 맨 흙으로 해야 돼, 하기도 하고
아니야, 물을 같이 섞어주어야 한다니까, 그러기도 하고...”
결국 자기가 해나가면서 자기 식을 찾는 거겠다 싶더라지요.
장비가 일을 다 하는 건데
정비를 사전에 잘 해두어야 되겠더라,
식구들 모두 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늦은 밤엔 목수샘이 안동 한옥 짓던 공사를 마무리 하고
광주로 옮아가기 전 한동안을 머물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마침 모내기도 한다 하니 빠져서 안 된다며
서둘러 온 걸음이지요.
떠나있던 식구도 불러들이게 하니
모내기가 참말 산골 큰 행사입니다요.

남아있던 강당 마루공사가
어제 저녁 오늘 저녁 이어하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관객용의자 아래 마루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썩어 내려 앉았더라지요.
“뭐 그렇게 하자(瑕疵)가 많아요?”
공사 했던 것들이 한 해를 넘기며 이곳저곳 드러내는 흠을 보며
더러 툴툴거리기도 했습니다만
사는 일이 그렇지요,
문제가 일어나고 그걸 수습하고 그러는 거지요, 뭐.
(공사를)하던 이는 하던 이대로 최선을 다했을 겝니다.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만 같습니다.
비 온다 했는데...
젖더라도 모를 심자 해 놓고,
그래도 자꾸 하늘을 내다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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