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4.나무날. 오후 비 / 못밥

조회 수 1253 추천 수 0 2007.06.13 08:31:00

2007. 5.24.나무날. 오후 비 / 못밥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구름 지난다 했습니다.
날이 꼬물닥거리겠다 하였더니 멀쩡합니다.
모심자고 날받았는데 다행이지요.
“비가 또 비껴가주네...”

이른 아침부터 상문이아저씨가 이앙기를 돌리고
뒤에서 종대샘 상범샘 젊은할아버지가 모들이를 합니다.
이앙기가 닿지 않은 곳에 모를 심는 거지요.

“못밥 내야겄네...”
며칠 전부터 할머니들이
우리 모내기 소식을 듣고 바람을 잡고 계셨습니다.
모내기할 적 오가는 이들에게
참이며 밥을 나누는 것을 그리 부릅니다.
백일에 두루 떡을 먹어야 아이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말처럼
못밥을 멕이면 멕이는 만큼 풍년든다 하였지요.
“참 들고 하셔요!”
삼거리 집하장 담 그늘 아래로
아이들이랑 먹을거리들을 날랐습니다.
“하이고, 어르신들 길러놓으신 거 이리 자꾸 얻어먹어도 되나...”
“아, 괜찮어, 나 혼자 다 못 다 먹어...”
앞집 할머니네 밭에서 상추도 뜯어오고
물꼬가 구경하기 힘든 고기도 구워내고
술 안 드시는 분들을 위해선 야채효소를 준비하고
해산물로 부쳐낸 전에다 막걸리를 냅니다.
집 지키는 개도 불러다 일을 시킨다는 농사철이라
들에들 나가고 누가 있으려나 싶더니
(산골 아주 나이든 어르신들이어도 자그맣게나마 씨를 뿌리시거든요)
그늘이 좋아 게 늘 앉는 분들부터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한 분 다녀가시고
저어기 또 한 분 걸어오시고...
인숙이아줌마는 잔 권하기를 시작하셨고
정민이네할머니도 선 채로 한잔 마시다 가시고
그냥 지나치려는 앞집할머니는 입에다 쌈을 넣어드리고
박희만할아버지 할머니도 경운기 몰고 가다 쉬시고
착한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으시고
한권사할머니도 나오시고
이재영할아버지도 조병우할아버지도 오늘은 말쑥하게 오셨네요.
이장님도 나오셔서 말을 보태십니다.
“수박화채도 더 있어요...”
“부침개도 더 내올게요.”
“술도 더 있어야겠네.”
아이들과 바삐 바삐 학교 가마솥방과 집하장 그늘 아래를 오갔지요.

“이런 날은 서로 축하해 줘야해.”
화제는 ‘부처님오신 날’입니다.
“벌써 그이는 황룡사 갔어.”
“갔다 와서 여도 간다던데...”
대해계곡 끝자락에 지난 봄 들어선 절을 가리키는 거지요.
궁금도 했습니다.
곧 모여서 나머지 사람들도 간다합니다.
“우리도 가야겠네.”
왜 사람들이 오늘을 축하하는가,
그것이 현재에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해마다 이웃에 있는 절 하나를 찾아 아이들과 되짚었는데
모내기라 갈 수 있으려나 했더랬는데...
“그런 데 가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눈 벌개서 가면 안 되지.”
“난 안마셨어.”
“축하하는 자리는 흥이 있어야제.”
어르신들의 분분한 소란이야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 오가는 말들이 벌써 잔치라지요.
“학교 트럭으로 가면 되겠네.”
“그래, 우르르 한 차로들 가지.”
마침 점심을 낼 일도 없이 다섯 다랑이 논이 일찌감치 끝나려합니다.
“그럼 옷 갈아입고들 나오셔요.”
빈 그릇은 개수대에 일단 쌓아두고 나섰는데
벌써 곱게 차려입고 앉으셨습니다.
“우리도 곧 뒤따라 올라갈게요.”
모들이를 하던 식구들도 점심은 절로 와서 먹겠다 합니다.

대왕암에 닿으니
벌써 떡 한입 베어 먹고 나오는 마을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오는 차편들을 얻어 타고 오셨답니다.
“먹고들 놀다 가.”
걸어 내려가신답니다.
다리가 아픈 착한할아버지는 우리 차 가는 길에 같이 가신다며
바위에 앉으셨지요.
“머리 깎을 사람들 많아.
나는 중 안될텡게 가.”
박희만할아버지가 저런 농담도 하시는구나...
그러며 절 들머리 요사채 담벼락에 슬쩍 감춰두었던 술병을
챙기러들 가셨지요.
“내려가면서 한잔들 할 거라.”
마음을 절아랫마을 돌고개(석현)에서 모여 노시는 거라...
할머니들도 보따리 보따리 상추며 먹을 것들을 싼 까닭이
그것이었던 ‘거디었’습니다.

그런데 온다던 식구들이 소식 없습니다.
품앗이 효진이이모도 들어왔을 텐데...
우리 차에 목이 빠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녀가는 차들에 다 떠나고
뎅그마니 아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았는데,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빈병을 모으네 개미건축을 하네 바쁩니다.
날은 조금씩 꾸물럭대고...
“안되겄다. 가는 차를 붙잡자.”
나가는 차를 세우고 올라타서 가니
하이고, 아직 일이 덜 끝나 있습니다.
“가늠을 못한 거지. 자꾸 빈자리가 보이는 거야.”
부랴부랴 식구들 점심을 차리니 세 시가 돼야부렀습니다.
물론 논에 모야 다 찬 뒤이지요.
“얼마나들 출출할까...”

네시가 넘어 되니 비로소 빗방울 떨어집니다.
“삼촌도 가보셔야지요?”
신심 깊은 불자이신 삼촌도 모시고,
마침 들어온 효진샘도, 목수샘이 모다 태우고
다시 대왕암 오릅니다.
동네에 남아있던 마지막 빈 무논이었던
물꼬논과 신씨할아버지네(오후에는 그 댁이 모를 냈지요)논이 다 차니
참았던 비가 그예 천지를 덮었습니다.

무사한 하루가 다 부처님 은덕이었고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296 119 계자 나흗날, 2007. 8. 3.물날. 맑음 옥영경 2007-08-07 1180
1295 119 계자 사흗날, 2007. 7.31.불날. 맑음 옥영경 2007-08-06 1248
1294 119 계자 이튿날, 2007. 7.30.달날. 간간이 해 나고 옥영경 2007-08-06 1367
1293 119 계자 사흗날, 2007. 7.31.불날. 맑음 옥영경 2007-08-06 1022
1292 119 계자 사흗날, 2007. 7.31.불날. 맑음 옥영경 2007-08-06 1002
1291 119 계자 사흗날, 2007. 7.31.불날. 맑음 옥영경 2007-08-06 962
1290 119 계자 이튿날, 2007. 7.30.달날. 간간이 해 나고 옥영경 2007-08-05 1021
1289 119 계자 여는 날, 2007. 7.29.해날. 소나기 옥영경 2007-07-31 1647
1288 2007. 7.28.흙날. 맑음 / 119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7-07-31 1717
1287 시카고에서 여쭙는 안부 옥영경 2007-07-19 1985
1286 2007. 6.23.흙날. 차츰 흐리다 저녁 창대비 / 시카고행 옥영경 2007-07-02 2598
1285 2007. 6.22.쇠날. 비 내리다 오후 갬 옥영경 2007-07-02 1814
1284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122
1283 2007. 6.20.물날. 맑음 옥영경 2007-06-28 1269
1282 2007. 6.19.불날. 무더위 옥영경 2007-06-28 1184
1281 2007. 6.18.달날. 맑음 옥영경 2007-06-28 1416
1280 2007. 6.17. 해날. 맑음 / ‘전원생활’, 취재 옥영경 2007-06-28 1339
1279 2007. 6.16.흙날. 맑음 옥영경 2007-06-28 1230
1278 2007. 6.15.쇠날. 흐림 옥영경 2007-06-28 1281
1277 2007. 6.14.나무날. 비 옥영경 2007-06-28 116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