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5.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4구간 8소구간

조회 수 1632 추천 수 0 2007.06.13 08:32:00

2007. 5.25.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4구간 8소구간



운산리 백운초등을 끼고 큰 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긴가민가하며 중재까지 한참을 차로 오릅니다.
“차가 저 길로 산까지 가.”
동네 할머니 들려준 그 말만 믿고 가는데,
아무래도 차로 계속 나아갈 길은 아닌듯합니다,
차가 어찌어찌 굴러야 가겠지만.
“그런데, 또 언제 이런 길을 차로 올라볼까나...”
가지들이 차창 안으로 말을 걸어오는 걸,
울퉁불퉁 흔들리며 말도 울퉁거리는 길이 준 운치를
정말 또 언제 느껴볼 수 있으려나요.
“그래도 더는 안 되겠다.”
굳이 출발지를 보고프다고 차를 몰던 종대샘도
이제 걸어갈까 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의견을 더는 모른 체 못할 무렵
마침 차도 더 이상 못 가겠는,
거기 바로 몇 발치 위가 대간이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지나고 있었지요.
딱 반나절 길이니 얼추 잘 맞춘 셈입니다.
여섯의 일행이 그렇게 둘러섰습니다.
"어디서 올랐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벌써 대간 저편 어디께서 마주 오는 이들이 인사를 건네 왔지요.

이른 아침 가마솥방에 모여 떡국을 먹었습니다.
학기의 시작과 끝이 이렇게 산오름으로 채워지지요.
종훈네서 점심을 준비했고
대신 학교에서는 아침 떡국을 냈습니다.
8시도 더 전에 대해리를 나와
무주에서 잠시 쉬고 서상나들목에서 빠져 빼빼재를 지나며 쉬었지요.
그 와중에도 효진샘과 아이들이 하는 팔씨름대회가
고개에 선 정자에서 잠시 열렸네요.

다시 차에 오릅니다.
인월 표지판이 나옵니다.
“어, 저기는 벌써 지리산을 가리키는 건데...”
“지났어.”
길을 조금 헤매는 사이 아이들과 옛이야기에 빠집니다.
“논개 있잖아...”
“기생인데,
임란 때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적장을 안고 남강물에 빠졌어요.”
아이들의 말처럼 흔히 그리 알려진 이이지요.
“부산에 상륙한 왜구가 진주성에 이르기까지는... ”
류옥하다는 기회를 놓칠세라 임란의 역사도 한 판 꿰었겠지요.
“오늘 우리가 육십령까지 가진 않지만...”
영취산 북쪽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난 논개의 성씨는 주씨였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가
당시 장수 토호에게 민며느리로 팔려고 했지,
그러나 논개 모녀가 반대하자
장수 현감 최경희에게 자식이 아비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했고
다행히 지혜로왔던 현감이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았겠니,
그 인연으로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했는데
부인이 세상 떠난 뒤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 거라...
최경희는 임란 때 경상우병사로 진주성을 가게 되는데
성이 함락되자 책임을 통감하고 장수들과 남강물에 자결을 하였답니다.
그 때 논개가 기생으로 꾸며 적장을 안고 물에 뛰어들었다지요.
의병들이 최경희와 논개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묻어주고자 하였으나
왜적의 추격과 보복이 두려웠다던가
기생이었기 때문이라던가
주씨일가가 반대하였다 합니다.
하여 백두대간 동쪽 삼남대로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았고,
의병들의 후손들에 의해 설화처럼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한 향토사학자의 끈질긴 헤매임 끝에
1975년경 400여년이 지나 무덤 둘이 세상에 알려졌다지요.
“그 무덤이 육십령 가는 길 깃대봉 어디께 있다더라.”
백두대간 제4구간 중재~육십령까지의 구간 가운데
오늘은 제8소구간 중재~영취산까지 길을 잡을 량입니다.

대간 길에 들어서자마자
애기나리, 둥글레, 윤판나물들이 맞았습니다.
“와, 천남성도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뿌리씩 나타나는 그입니다.
보라색, 회갈색 나비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길을 잡아주었고,
소나무 우거진 길을 지나니 동네 뒷산처럼 밤나무 늘어섰지요.
“새알이다...”
머리 위를 한참 올려다봐도 둥지는 뵈지 않는데
아직 따끈한 큼직한 새알이 툭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미가 안전한 곳에 물어다 놓으려고 가다가...”
아이들이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혹여 사람들 발에 깔리기라도 할까
풀 섶에 가만 옮겨놓았지요.

중고개재에서부터는 숨이 턱에 닿습니다.
계속 가파른 오름길이지요.
대간은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을 가르며 북으로 향합니다.
산철쭉 져서 곳곳을 수놓았습니다.
하늘보기도 쉽지 않은 가지 사이를 헤치며 숨을 몰아쉬다
발길 멈추고 고개 들어 매달린 꽃에게 아는 체도 하려는데,
어, 갑자기 탁 트입니다.
백운산에 거의 이르렀을 때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난다는데,
이쯤이겠습니다.
장수가 내려다뵈는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지요.

이제 계속 암릉입니다.
병꽃나무는 정상에 오를수록 진분홍색 핏빛입니다.
진달래나 철쭉처럼 이 핏빛은 파르티잔들을 연상케 하지요.
곧 닿을 백운산만 해도 지리산과 덕유산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고
그런 만큼 빨치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을 겝니다.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 서정춘님의 ‘봄, 파르티잔’ 전문


“대단하구나...”
공무원이라는 아저씨 하나를 만났지요.
이렇게 또 우리를 확인해주어야 신이 더해집니다.
물꼬표 포도즙을 나누었습니다.
“네가 어찌 클까 궁금하구나...”
그래요, 이렇게 산을 타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내일이
저도 참 궁금습니다.

“무덤이다!”
노루오줌이 예제 자리를 한껏 잡은 무덤 두기입니다.
곧 백운산(1,279m)이 나타난다는 뜻이지요.
동으로 금원 기백산, 북으로 덕유산,
서로는 장안 팔공산, 남으로 지리산을 병풍처럼 둘러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는 그 백운산말입니다.
"정상이다!"
날이 뿌옇습니다.
황사인 모양입니다.
멀리까지 보이진 않으나
사진 좋은 안내판이 친절하기도 하였지요.
1,915m의 천왕봉을 시작으로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세석산장 덕평봉 형제봉 영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이
한 라인에 늘어선 사진입니다.

그 아래 그늘 좋은 곳에서 점심밥을 펼쳤지요.
“김밥 무꼬잡다 도시락 열어보니 부침개만 가득...”
전화기가 생각나 꺼내보는데,
문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하이고, 하필 하고 많은 도시락통 가운데
어이하여 달랑 하나 있는 부침개통을 넣었더란 말인가요.
산 아래서 기다리는 종대샘으로부터 온 연락이었지요.
화장실도 찾아보고
다시 언제 또 오냐며 꼭대기에서 이 편 저 편 되둘러보고 내려섭니다.

내리막이라 속도가 꽤 붙습니다.
오르막에서 좀 더디다 싶던 종훈이가
거의 처지는 일 없이 따라옵니다.
산앵초가 폈고 옥잠화와 산비비추 잎이 넓기도 하여
가끔 빠른 걸음을 잡아주었지요.
어른 키보다도 한참은 더 큰 무성한 산죽밭이 이어지더니
싸리밭이 또 한참입니다.
영취산(1076m)이 금방이데요.
빗물 내려 동으로 흘러들면 낙동강이 되고
서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에 더해지는 세 강의 분수령이 이곳입니다.
예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무령고개는 겨우 200여 미터,
차를 끌고 돌아와서 기다리는 종대샘을 만나러 갑니다.
1대간 1정간 13정맥,
지리에서 백두까지 1800km,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가 670km,
그 가운데 어데쯤을 우리가 걸었답니다.
오늘은 9km가 채 못되는 거리를
쉬엄쉬엄 다섯 시간정도 들였네요.

“와, 호수다!”
장수 장계 대곡리를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대곡호가 펼쳐집니다.
“오리배도 있네.”
수상 스키를 타는 호수에서 그 배에 올랐지요.
젊은할아버지와 종대샘과 타고 내렸던 아이들이
땅에 오르기 못내 아쉬워하기
이번에는 효진샘과 제가 다시 태웠지요.
저들끼리 저어라 두는데,
운전대를 잡은 하다선수는 그저 취했고
종훈 선수는 가끔 힘들다 뒤로 벌러덩거립니다.
하도 졸라 효진샘이 앞으로 건너가 죽으라 젓기도 하였습니다.
그 배에서 우리는 평생 할 얘기를 다 나누었던 듯합니다.
얘기하기 좋데요.
살랑대는 바람,
화창한 늦봄,
그리고 호수 위 아주 아주 작은 섬 같은 오리배 안...

영동 읍내 와서 종대샘이 밥을 사고,
다른 식구들이 술을 사서 들어와 한 학기 갈무리를 하였네요.
2007학년도 봄학기가 산오름으로 이렇게 맺어졌지요.
낼부터 ‘찔레꽃방학’의 시작입니다,
찔레꽃 흐드러지고, 그 그늘 아래를 걸어가는.
6월 4일 달날 아침에 만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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