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8.쇠날. 천둥번개에 창대비 내리는 저녁

조회 수 1441 추천 수 0 2007.06.22 23:11:00

2007. 6. 8.쇠날. 천둥번개에 창대비 내리는 저녁


“아...”
딸기향입니다.
가마솥방 앞 꽃밭을 지나노라면 누구라도 한마디를 하지요.
몇 포기 되지 않던 딸기는
세 해를 지나며 온 꽃밭을 딸기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재작년엔 한약재찌꺼기도 먹고
작년에는 계분도 먹더니
더 더욱 실해져 저보다 더 큰 돌단풍보다 금낭화보다 자주달개비보다
심지어 나무들보다 더 눈길을 끌고 있답니다.
그냥도 따 먹고 쨈도 좀 만들고 파이도 한 번 구워먹고,
그래도 딸기는 아직 사람 손 한 번 타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노래도 함께 부른 아이들은
‘숲이랑’ 시간 매실을 털기로 하였습니다.
나무를 탑니다.
아이들이 장대를 올려주었습니다.
매실이 된장집 헛간지붕을 치고 데구르르르 구르거나 튀면
좇아가 줍고
혹은 언덕으로 흘러내린 것을 따라가다가
고개 들며 본 딸기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기도 한 아이들입니다.
손이 안 닿는 건 큰 마당에서 일하던 종대샘이 와서 장대를 휘둘러 주기도 하였지요.
(종대샘은 또 일터로 가기 전 이곳저곳 손을 보고 있지요.
사람들이 다녀들 가고 나면 꼭 그네가 성치 않아
오늘은 그네를 고치고 있습니다.)
적다 적다 해도 우리 먹을 만치의 효소 한 항아리는 되겠습니다.
나온 김에 표고장에도 들지요.
그 사이 또 성큼 자란 표고로 점심을 준비할 참입니다.
오디도 따먹고 왔습니다,
효소로 쓸 만치 털어올 시간은 아니 되길래
다른 날을 잡자 하고.

“Let's make a sandwich.”
오늘 영어주제였지요.
단소로는 ‘밀양아리랑’을 배웠습니다.

저녁에 그예 씨를 뿌렸습니다!
달골 윗다랑이 밭 가운데 200여 평만 갈았더랬습니다.
관리기 날이 말을 듣지 않아 간 밭이 영 형편없어
읍내 다녀오는 길에 날을 사다 바꿔놓고도
내내 다시 돌아보지 못하던 밭이었는데,
어제 종대샘이 패주었지요.
일 만든다는 식구들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태평농법으로 해보자며 있는 씨니까 심자 했었습니다.
“새도 주고 짐승들도 주고 땅도 주고 우리 쬐끔 먹고 하지, 뭐.”
구덩이를 파고 거름 섞고
(땅을 갈 때 미리 섞어야했는데 미처 챙기지 못했지요.)
다시 그 위에 골을 판 뒤 콩을 넣고 덮었지요.
한 귀퉁이 호박 구덩이도 세 개를 팠습지요.
하다랑 종훈이가 골을 파고
젊은 할아버지가 거름을 섞고
제가 다시 고랑을 파서 씨를 넣은 뒤 덮고...
“분업이 잘 되네.”
종대샘도 나와서 거듭니다.
그러게 오래 함께 산다는 게 이런 건가봅니다,
그냥 자연스레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거.
두어 이랑 남겨놓고 빗방울이 비쳤습니다.
“이래저래 미뤄지다 오늘 하니까 비 오네.”
날씨가 신기해라며 종대샘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요.
뭐, 덕분에 구미교사모임을 또 못가고 말았네요.
아무래도 이번 학기는 영 불성실입니다요.
해가 길면 농꾼은 볕이 아깝기 마련이지요.
어둠 오기 전까지 들에서 뭔가를 기어이 하려지요.
이렇게 산골아줌마가 되어갑니다.

비 달기도 한 초여름 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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