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21.흙날. 맑음 / 세 돌잔치-<산이 사립문 열고>


먼저 올라와 쉬겠다던 이들도
달골 햇발동과 창고동에서 늦도록 이야기를 끊지 않았고,
아래 학교 고래방에서도 새벽 네 시에 이르는 이적지
불이 꺼질 생각을 않습니다.
오늘 묵어가기로 한 이들만도 일흔 가까이나 되네요.

잔치했습니다.
<산이 사립문 열고>- 자유학교물꼬 세돌잔치!
산골 마을이 들렸다 내려졌지요.
“어데서 그래, 이리 다 모였대?”
꼭 같이 준비하신 축하인사처럼
대문을 들어서던 마을 어르신들이 모다 한 마디씩 건네오셨지요.
“이 애들이 어디서 다 온 거야?”
한 해 가운데 가장 한산했던 2월에 들어와
한갓진 물꼬만 보다가 사람들이 몰린 걸 본 종대샘,
오늘은 이곳 풍경을 찍으며 연방 감탄사입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물꼬의 저력이란 말이지요?”
이 작은 마당에 이백여 명이 넘어 되게 모였으니...

이른 아침부터 수선스러웠겠지요.
교문과 고래방에 현수막부터 걸고
뒤풀이에서 먹을 포도주도 독에서 퍼내고
마당 여섯 개의 평상에 장판도 다시 깔고
잔치에 쓰일 그릇들이 나오고
장터에 낼 효소 담을 소수병이 씻겨져 소독되고...
음식 할 이들이 붙기 좋게 부엌정리도 한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묵을 학교안의 고추장집, 된장집
그리고 밖의 곶감집에
이불 비누 세숫대야 자리끼도 미리 챙겨 넣어두었지요.
접수대부터 대문 바로 안쪽에 자리 잡히고
그 곁은 장터자리가 차지합니다.
밥을 낼 곳에 잔치천막(면사무소에서 얻어만 쓰다 올해 기어이 장만하였지요)을 치고
국선도 시연을 할 자리와 밥 먹을 평상이며 천막들도 깔았습니다.

세 차례 들어오는 버스 가운데 12시 버스가 닿았습니다.
한 무리의 풋풋한 대학 초년생들이 내렸지요.
특강을 했던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다섯,
유아교육학과에서도 다섯,
그리고 버스 꽁무니에 따라 들어온 작은 버스도 학교로 들어왔지요.
영동대 참사랑 봉사단에서 여섯이 그 차에서 내렸습니다.
점심상에 앉은 이들이 서른 가까이 되데요.
(이 때 벌써, 대처에 나가 사업을 한다는 두 어른이
고향의 좋은 학교에 뜻 깊은 행사 있다고 인사를 왔다하기 차를 냈지요)
모두 본격적으로 맞이 준비를 할 자원봉사자들이지요.
밥을 먹고 간단한 움직임에 대한 안내가 있고 나니
저마다 자리로 가서 움직입니다.
부엌에선 잔치음식이 익기 시작하고
뒤란에선 우거지가 들어간 가마솥에 불도 지펴졌습니다.
잔치에 쓸 그릇들 설거지부터 한 젊은 친구들은
본관과 ‘작은 씻는 곳’ 청소도 하고
열여섯 개의 밥상에 술과 과일, 컵을 미리 채워놓았으며
오늘 잔치의 차례를 알리는 안내장을 복사하고 접었지요.
상범샘은 공연시설점검을 하고
김점곤아빠는
술과 떡과 밥(사람이 이리 많을 땐 쌀을 가져다주고 쪄오지요)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이 달골 공사를 맡았던 정부장님과 오이사님이 와
접수대 둘레 필요한 안내문들을 붙여도 주고
논두렁 황인숙님이 영인이 세인이랑 두어 해만에 걸음을 했으며
선아, 나은이랑 논두렁 장은현님도 같이 들어섰습니다.
비어있던 운동장에 차츰 사람들이 채워지니
때가 된 모양입니다.
진주의 논두렁 문저온님 부부가 수민이랑 동생이랑 오고
서울의 구름아저씨 윤춘수님과 우리의 윤빈이도 왔습니다.
모두 모두 안았지요, 꼭 안았지요.
끝마을 돌고개에서까지 마흔 여분도 넘어 되는 어르신들이 들어서고
흘목 황토방산장 동섭이아저씨도 흔쾌히 걸음을 하셨네요.
이 골짝 끝집 논두렁 김용관님댁에서도 왔습니다.
면장님이랑 산업계장님이며도 보였지요.
한국문인협회 영동지부에서, 지구별여행에서도 왔습니다.
지난 여름까지 교육장으로 계시는 동안 물꼬의 큰 도움꾼이셨던 이명섭샘도
퇴임하면 꼭 거기 가마던 약속대로 오셨고,
품앗이 선진샘이 친구랑,
그리고 품앗이 승현샘이 우리의 농사샘 열택샘과 바삐 왔습니다.
“퍼즐이랑 티셔츠랑...”
아이들이 승현샘한테 받았다고 자랑이었지요.
심천 호탄에서 황대권샘댁의 황애경님이 두 분 지인들과,
민예총의 양문규님이 가족들이랑,
그리고 한살림생산자 모임의 회장을 맡고 계시는 조정환님도 오셨습니다.
“이거 액자에 넣어도 되고...”
‘농군의 집’에서 정봉수님이 도반과 손 꼭 붙들고 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천 벽걸이도 내미셨지요.
생명탁발순례영동모임식구들이 우르르 오신 겝니다.
구들교육동기들이 딸기며 찐빵이며를 잔뜩 안고 오고
처음으로 왔다는 송미경님네가 화장지를 한 아름 내려놓기도 하셨지요.
풍수학회에서도 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소백산 산고을에서도 홍삼즙을 들고,
고자리 이영건님네에서 산야초효소며 된장도 들고 오셨답니다.

종일 적당한 긴장이 외려 일을 잘 짚게 해주고 있었던 듯합니다,
소수정예부대가 일을 더 훌륭히 수행하기도 하는 것처럼.
“나중에 못 챙겨 드실 것 같애서...”
정작 안에 있는 식구들이 많지 않은 해여서
오달지게도 바쁘겠구나 싶더니 웬걸요,
상범샘과 제가 먼저 밥을 챙겨먹는 여유가 다 있었네요.
오늘 가마솥방지기가 된 박진숙엄마가
미리 부엌 곁 평상에 상도 차려주셨답니다.

5시가 훌쩍 넘으며 공연팀들도 입성했고
어느새 음식천막 앞에 줄이 길었습니다.
여기서 행사 때마다 만난 연들이 또 굵지요.
그것 아니어도 이곳이 또 좋은 연의 장이 되어 누구라도 친구입니다.
먼저 밥을 먹은 이는 차를 마시거나
뒤에 오는 이를 안내하기도 하였지요.
물을 떠오거나 밥을 나눠주거나
온 사람이 뭐라도 손발을 보태줍니다.
“첨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붙어서 (일)하는 것 보고 놀랬어요.”
서울에서 처음 걸음한 이가 그랬다던가요.
잔치가 돌아가는 모양새에 너나없이 흥이 났습니다.
마을잔치가 그렇지요, 주인이 따로 없고 손님이 달래 없는,
같이 준비하고 같이 즐기는 신명의 자리이지요.
“(늘 이 사람들이 있어)큰 잔치 준비할 때 힘을 덜기도 하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계속 물꼬 생각하고 지지하고 아껴주는 것 많이 보이더라구요.
참 큰 힘이예요!”
공동체식구 하나가 그랬지요.
종혁이랑 종훈이랑 가래떡을 실어왔던,
해마다 이 잔치에 꼭 오는 양강의 이숙님이
어느결에 훌륭한 농사꾼답게 새끼를 꼬아
잘 축여서는 마당에서 줄넘기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모였더랬지요.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살짝 바람이 불데요.
조금 세다 싶더니 먹구름이 잠시 긴장을 일으키며 빗방울 두엇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내 맑아버렸더이다.
그렇게 또 하늘이 넉넉한 그 마음을 드러냈지요.
전화가 울렸습니다.
대구 진영풍물놀이마당의 배관호샘입니다.
“그래 우짭니까? 하필 내일 우리 공연을 하게 돼서...”
울림의 대상샘네에서까지 집안에 우환이 생겨 못 오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쇠잡이로서 맘이 많이 쓰이셨던 모양입니다.
리허설이 어땠냐고 물어줄 만큼 예 사정이 좋노라 대답 드렸지요.
황대권샘도 연락주셨습니다.
김조년샘의 표주박통신 20주년 기념행사가 있는 대전에 있다십니다.
경황이 없을 터인데도 그리 이곳에 함께 해주셨지요.

어스름빛이 봄날 꽃그늘처럼 깔렸습니다.
시작은 패러글라이딩이지요.
그런데, 어쩌나, 작년에는 바람이 없어 날지 못했던 글라이더가
올해는 또 바람이 많아 엄두를 못 내게 했네요.
“내년에는 될 게야.”
그래서 임열샘은 내년 이 날 다시 대해리에 와야한다지요.
국선도 시연이 이어졌습니다.
영동대 레저스포츠학과 국선도전공의 김기영교수님이
학생들과 같이 오셨지요.
러시아에서 온 베로니카, 루드밀라, 일리나도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시연이라기보다 물꼬의 건승을 비는 기원제에 더 가까웠답니다.

7시, 풍악이 울립니다.
지신밟기로 시작된 길놀이입니다.
부산추임새국악예술원의 도근샘이 상쇠가 되어 굿을 끌었습니다.
입담 좋은 그니가 비나리를 걸게도 하였지요.
추임새 단원들과 대구교사풍물모임 울림, 구밈교사풍물모임 너름새,
그리고 물꼬식구들이 악기를 맸습니다.
그 뒤로 손님들이 잡색이 되어 따랐지요.
굿패가 고래방으로 길을 잡았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관객석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김태규님이 그린 그림동화 ‘술떡’이 화면에 올랐습니다.
사회를 보기로 한 조희순님이 슬라이드동화를 어찌나 맛나게 읽어주던지요.
모두 흠뻑 빠졌더랍니다.
엄마가 아픈 누나를 보살피는 동안 외가에 있게 된 일곱 살 진성이가
이웃 아이들에게 엿으로 상한 마음을,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술떡을 나누며 위로받는 이야기였지요.
“계절학교, 상설학교 아이들, 다 나오지요.”
계절학교 아이들이 예닐곱 나와 손말로 자유학교노래를 부르며
드디어 오늘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상설학교 아이들이 판소리 한 대목과 단소를 불기로 했지요.
그런데 아이 하나가 없습니다.
모두가 창밖을 향해 불렀지요.
“종훈아! 조옹후우나!”
아무래도 무용단이 먼저 무대에 서야겠습니다.
명지대 하늘빛무용단이 화선무에 사랑가에 바구니춤에, 장고춤을
누구나 접근하기 좋은 길이와 명쾌함으로 풀어놓자
어르신들이 어찌나들 좋아하시던지요.
아리랑춤으로 출연자 모두가 같이 무대를 채울 때는
구경꾼들도 무대로 쏟아져 함께 어우러졌더랍니다.

아이들 공연이 끝나고
너름새의 사물 ‘산아’공연이 선보였습니다.
북이 화려한 무대였네요.
“다음은 물꼬 식구들이 준비한 손말 공연입니다.”
연습 좀 했지요, 두레상마다.
누구는 손전화에 영상으로 담아서 연습을 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또 어디들을 갔답니까.
종종거리며 전체 행사 시중을 들고 있겠지요.
과감히 생략입니다.
오늘이야 내년도 있고 후내년도 있으니까.
다음 차례는 축하객들의 덕담과 공연인데,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뭐, 이것 역시 내년에 하지 합니다.
그러면, 올해 함께 한 이백 명이 다시 모여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사뿐사뿐 설장구가 나와 좌중을 고요로 몰더니
이내 모든 치배들이 나와 대동한마당이 이어졌네요.
누구랄 것 없이 어깨춤을 추었겠지요...

“아이구, 잘하데...”
“진짜 재밌네요.”
“너무 좋았어요.”
“참 따뜻한 자리였어요.”
“물꼬 인상 그대로예요. 소박하고 훈훈하고...”
“준비하느라고 얼매나 애를 먹었으까이...”
“아이고, 고생했어요.”
“너무 너무 잘 봤어요.”
떠나는 이들 걸음이 더디기도 하였지요.
등 뒤에서 감흥이 자꾸만 따라붙었나 봅니다.
봄밤이 참말 다사로왔거든요.
마을어르신들은 못내 아쉬워
마당 평상에서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그예 노래 한자락 하고 가셨답니다.
“어, 언제...”
서송원에서 온 이무연님네 가족들처럼
돌아갈 녘에야 얼굴을 본 이들도 더러 있었지요.

“고래방에 술상 봐놨는데...”
마당에 흩어져 도란거리던 이들이 다시 뒤풀이를 위해 고래방으로 들어갔지요.
길게 상이 두 줄입니다.
구들학교, 풍수학회, 산고을님들이며가 앉은 자리 접대는 목수샘이 하고,
물꼬랑 오래 익어온 이들, 오늘의 자원봉사자들은 다른 편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산에서 진주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안양에서 서울에서 청주에서 전주에서 풍기에서,
참 멀리서들도 왔습니다.
이미 불콰해진 얼굴들 앞으로 이제야 들어서는 이들도 있었지요.
“선생님!”
“어머!”
승아입니다.
“저 녀석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는데...”
3년을 가르쳤던 아이입니다.
존경하는 사람란에 제 이름 석자를 써주었던 아이,
그래서 저를 더욱 곧게 서게 했던 아이였지요.
그 아이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특수교사일을 하고 있다 합니다.
친구와 남자친구, 그리고 동생이랑 함께 왔지요.
오늘 행사의 마지막 손님은 논두렁 신호일님입니다.
친구분과 왔지요.
“야, 7년여 만에 얼굴 보는 거냐?”
좋습니다, 이런 날 이리 만나는 거지요.

밤새 부른 노래와 춤이 얼마이던지요...
가끔 아이들은 잘 자고 있나 들여다보러 왔다갔다하며도,
자리가 바뀌거나 얼굴들이 바뀌어가며도,
자리가 길고 길었습니다.
‘물꼬’를 매개로 오늘 그냥 다 친구 되야부렀습니다.
문저온씨랑 나란히 앉았더랬지요.
재작년 전유성아저씨가 사회 보던 봄밤동요잔치였던가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떠났던 그였는데
오늘은 밤을 지샙니다.
삶의 이런저런 푸념들이 막걸리향에 이끌려 나왔지요.
고마웠습니다.
제가 위로였듯 그도 그러하였기를...


산길을 걸었네
소리 없이
피었다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이 봄, 소리 없이 피었다지는 꽃을 보며 참 스승 곁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 나날입니다.
가까운 곳에 계셔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물꼬 샘들께.


손수 그린 그림엽서에 아름다운 글을 담아 남겨놓으신
고자리 호두나무골의 김혜경님의 엽서가
‘오늘’에 같이 한 우리 모두를
따숩게 건너다보고 있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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