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 해빙 2.

새로 양변기를 들인 일이

써보지도 못하고 정화조로 들고나는 관이 얼어버린 사고가 났다.

배신이 없는 이 멧골 모진 겨울이라.

어제부터 녹여보고 있다.

준한샘도 오고 이웃마을 기사 건진샘도 불려왔다.

다행히 해빙기를 가져와 녹혔네.

부엌 안 한 쪽 싱크대의 수돗물은 여전히 쫄쫄.

그건 날이 좀 더 풀리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바탕 소란을 떨고 먹는 저녁밥상이

모두에게 얼마나 따숩고 맛났던지.

그런데, 해빙기를 보낸 뒤 배수 쪽 끝자락이 꽝꽝 언 걸 발견했네.

일단 내일 다시들 해결을 보기로.

녹혀 보거나 그도 안 되면 배관을 아주 잘라내고 새로 이어 붙이거나.

 

저녁답에 펄펄 날리던 눈은 밤 10시 함박눈이 되었다.

와인을 한 잔 놓고 전화기를 들고 앉았다.

작정한 통화라.

엊그제 교무실 자동응답기에 긴긴 음성이 남겨져 있었고,

오늘 무려 2시간, 자정까지 이어진 대화였다.

30년 세월 압축.

사람은 쉬 변하지 않는다.

우리 그렇더라. 그 시절의 패기를 잊지 않고, 잃지 않고 있었더라.

뜨겁게 거리에서 살다 스무 해를 봉쇄수도원에 가 있던 그는

다시 나와 노무현의 역사를 기록했고, 지금 한 국립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 앞에 쉐어하우스를 지어 젊은이들과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도 살아가는.

20대 내가 했던 말과 표정과 뜻과 꿈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그였네.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노래 한 구절처럼 우리 그리 살고 있나...

삶이 구체적이다!”

단순하고 낭만적인 시절을 지나 지금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물꼬의 시간이 그리 설명이 되데;

삶이 구체적이던, 그리고 구체적인 공간인 거다.

60을 바라보며 우리 또 무언가로 연대할 수 있을.

 

1시간 동안 책을 가지고 진행하는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서

초대를 했다.

저자라면 sns도 활발히 하고 책 홍보에 힘도 써야 할 것을

출판사의 노력에 별 돕는 일도 없었는데

TV라면 모를까 라디오라는데 이쯤은 해야지 않나,

2월에 움직이기로 한다.

일이 그리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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