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조회 수 2054 추천 수 0 2004.01.10 11:43:00
<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

고맙습니다.
날마다 올리는 글 잘 읽고 있다고
여러 어른들이 고맙단 인사를 응답기에 남겨주셨습니다.
작은 글 하나라도 시간을 꽤나 들이는 글쓰기에다
통신에 바로 쓰는 글쓰기 같은 건 정말이지 잘 못하는데,
(하루쯤 묵혔다 교정을 꼭 봐야한다거나)
글쟁이는 더욱 아니고,
그래서 거칠기 이를 데 없을 텐데,
읽으시는 마음들이 부처겠다 싶지요.
그랬겠구나, 정말 아이 보내놓고 얼마나 궁금들 하셨을까,
그 마음 새삼 짐작해봅니다.

샘들은 이제 몸이 흐름을 타는 것 같다합니다.
어제 하루재기에서 그 설전들을 벌여놓고도
새 아침처럼
아이들 앞에서 서로들 앞에서
감정의 앙금 따위 내려놓고
더 가까이 더 자세히 아해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왜냐면
계자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하려 하는가에는
다른 의견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툭툭 터는 '용서'도 아이들이 가르쳐준 힘이겠습니다.

오늘은 운동장 풍경부터 전합니다.
점심 때건지기 끝에는 패를 나눠 공을 한 판 차고 있었습니다.
꼭 하자 하고 시작한 게 아닌데
어느새 책방에 묻힌 녀석들 빼고는 죄다 들러붙었습니다.
재철샘과 젊은 할아버지(학교 아저씨)는 죙일
아이들과 쌓을 돌탑을 실어나르거나
흙 사이에서 삐져나온 돌들을 골라내고 계십니다.
열린교실 한켠 장승을 만든다고 부산한 덩어리들,
어설퍼서, 차라리 우르르 같이 가서 머리 감자하고 몰려가는 모둠 아이들,
무기생산에 여념없는 뚝딱뚝딱 작업실,
역사와 지리에서 짓고 있는 움집,...

저녁답엔 감나무에 연이 걸리고
인석이가 나무를 탔습니다.
아래에서 여럿 애들이 팔랑거리고
더러는 장대로 내려보겠다 들락날락,
달려가서 애를 좀 쓰며 내려주었는데,
대단한 무엇을 한들 그보다 더 신나는 환호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녁 때건지기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 울린 지 오랜데
열택샘이 열심히 강아지랑 운동장을 뛰고 또 뛰네요.
해진 뒤에는 '하다'와 예님, 윤님들 몇 녀석이 나와
애 자전거 어른 자전거 다 차지하고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더니
윤님이 나무 막대를 들고 와 기름 넣는답시고 주유소를 차렸습니다.
해질 녘엔 기태랑 승찬 무리들이 우르르 자전거를 끌고 다니더니.
학교 건물이 공간 효율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은 곳이지만
역시 운동장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 싶어요.

보글보글방처럼 다같이 요리하고 벌이는 잔치말고
'계절살이'의 한 꼭지에서 반찬을 만든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달걀말이가 나오고 배추 겉절이가 나오고 김구이가 나오더니
오늘은 두부가 나왔지요.
손두부말입니다.
정말 두부가 됐데요.
그걸 또 의정샘이 잘게 잘게 잘라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해주더이다.

아픈 아이들이 약 없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열이 났던 나영이가 앉았구요,
예린이도 열 내리고 기운을 좀 차렸습니다.
윤슬이가 머리 찌를 듯이 아프다고 학교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는데
가운뎃 손가락 끝을 따주었더니 나아졌다 하고
목이 아프다던 호준이는 열심히 모과차를 마셔대더니
목을 싸고 있던 손을 풀었습니다.
기껏해야 따뜻한 물과 찬물을 번갈아 발목을 담가주는 각탕,
혹은 족탕법으로 다스려보거나,
아니면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주는 게
치료의 전부인데도 말입니다.
"잘 먹어주어야 해."
저들이 잘 먹고 마실 것들을 잘 마신 덕입니다.
우리 아해들 정말이지 씩씩합니다.

새끼일꾼 호열이 열린교실 가운데 수학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초등 3학년때 무열이 다녀가고
이듬해 친구 셋을 데려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호열이였지요.
무열이가 너무 크게 마음에 남아서
오랫동안 호열이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벌써 중 3 올라가는데...
사람 참 오래 만날 일입니다.
비로소 이번 계자에서 호열이를 많이 봅니다.
퍽이나 미안하고,
한편 지금 더 늦지않게 그를 '볼'수 있어서 기쁩니다.
참 멋진 이입니다.
아이들과 몸으로 얼켜줘서,
말하자면 방패막이가 잘 돼줘서
어른들이 덜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 따스한 품성도 아이들이 닮겠지요.
고맙습니다.
물론 우리 무열이두요.

아이들과 어떤 일정을 꾸리는 것 못지 않게
그 시간 나누는 이야기나
또는 시간표와 시간표 사이에서 둘러앉아 오가는 이야기가
더 큰 떨림일 때도 많습니다.
일정과 일정 사이의 그 무수한 틈새가
어떤 프로그램보다 우리를 더 울리게 할 때가.
일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
여기선 가장 귀한 시간이 되기도 하는 거지요.
가령 실다루기를 하면서
집에서 벌어지는 날들에 대해
엄마 아빠가 좋은 까닭 미운 까닭
뭐 그런 얘기들을 꺼내놓습니다.
동네 아줌마들 부업하러 모여서 수다떠는 마냥.
아무도 허물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일정과 일정 사이 저들이 배운 것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고도 있습니다.
그것이 더한 배움일 테지요.

어제랑 다른 일정이 뭐가 있더라...
손말을 사흘 배웠습니다.
노래 몇 곡을 손으로 부르고
자기 소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오늘부터는 외국어 시간에 점자와 영어 일어로 나뉘어 공부를 합니다.

아침에는 대동놀이를 하다 떨어진 홍주의 모자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녀석 저녀석이 떨어진 단추를 들고 옵니다.
남자 애들 구멍난 양말도 기워줍니다.
속이 상한 아이를 안아주고
문제가 일어나는 사이를 누비면서
혼자만 가진 비밀을 듣기도 하고
속이 상한 일에 같이 찌푸리기도 합니다.
참 좋은 날들입니다.
사람 사는 일 참 별 것 없지 싶어요.
다만 애쓸 일입니다.
다만 살 일입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장점을 발휘해주는 것 아니던가요.
갑동이(물론 가명이지요), 을순이(역시), 왜 얄밉지 않겠는지요,
참 미운 행동들이지요.
그런데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스펙트럼이 있던가요.
아주 선에서부터 악까지
그리고 굉장히 정적인 것에서부터 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결국 그 가운데 어떤 면이 많이 드러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갑동이 을순이도 이 공간에서
그들이 가진 장점을 더 많이 발현할수 있도록 애써봅시다.
그게 안된다면 그건 그들 문제일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더 많이 마음을 더 많이 안아 내주어야겠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관성이란 게 있어서
밉자고 들면 주는 것도 없이 한정없이 미운 법이고
좋자고 들면 한없이 좋은 게 마음 아니던가요.
사랑이 그런 거지요,
하염없이 마음이 그에게로 가는 것.
우리 어른의 몫이 더 크다 생각합니다."
모두, 정말 모두 오래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샘들 하루재기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열택샘이 그러데요.
"이번 계자 제목 '겨울산이 내려와 말을 거네!'를 오늘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화두일까 하는."
서른 여덟 번째 계자의 우리들 구도 제목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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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풍경 몇

석현이 땜에 많이 웃지요.
오늘 대동놀이는 강당에서 안하고 모둠방에서 다른 걸 하겠다는데
손을 때릴 듯이 주먹 쥐고
"왜 대동놀이 안해요?"합니다.
대동놀이 그거 정말 신나거든요.
대신에 오늘은 슬라이드로 동화를 읽었습니다.
따뜻하데요.
"하나만 더해요."
"너무 짧아요."

과학에서 물을 만나러 갔던 녀석들은
그만 가장자리 얼음장이 건네는 말에 저들이 뭐 할지 다 잊어버리고
작디 작은 웅덩이에 물수제비를 하고 오래 놀았다 합니다.
그거면 되지 또 더 뭘 바라나 싶어
과학샘은 또 그대로 두었다 합니다.
정말 아이들은 소박합니다.
작은 일에도 얼마나 큰 기쁨을 찾아내는지,
시내도 아니고 강도 아닌 그렇다고 바다도 아닌 작은 개울 패인 물에서
그리 즐거워하였다 합니다.
정말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아이들이 늘 찾아줍니다.

국어와 문학을 공부하러 떠난 아이들은
얼어붙은 저수지를 갔더랍니다.
우리 희영선수 "아싸!"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저수지 안으로 언덕을 치달아 내려가더라네요.
그 신바람을 모두가 나누었답니다.

새끼일꾼 무열이 뚝딱뚝딱에서 도움샘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못을 뺄 일이 있었다는데,
휘여있어 애를 먹었다나 봅니다.
곁에 있던 '하다;가
"왜 이렇게 못빼요?"
하더라나요.
자기가 하겠다 나섰는데, 그 못이 어디 빠지겠나요.
오래 낑낑대다가 그러더랍니다.
"같이 할래요?"
오지게 웃었다는 무열샘.

혜린이가 도덕에서
친구랑 같은점 찾기를 하는데
"우리는 예비장애인입니다."
그러더래요.
그의 부모님이 많은 걸 가르쳐주고 계시구나 하였지요.
도덕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이 그러하듯이,
실컷 준비한 뭐보다 감자 얼굴꾸미기가 더 재미났다네요.
아이들이 참 그렇습니다.
메인프로가 다르다 뭐 그렇게 표현하면 될까요?
6박 7일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다 채워놔도
지들끼리 감자 볶음에서 덜익은 감자 먹은 걸
더 진한 느낌으로 가지고 가는 존재들 아니던가요.

역사와 지리에는 정욱 지후 영후 삼남매가 들어와
지들끼리 잘 놀더랍니다.
지후 영후로부터 안놀아준다 원성을 샀던 정욱이
비로소 같이 어울려 주었더랍니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다섯가지를 꼽아보자 했다나요.
"물이요."
"물은 어디서 오는데?"
"정수기요."
지후 말입니다.

승진이,
짚다루기에 또 들어왔더라네요.
수강신청 할 줄 몰라 그러나 했더니
둘쨋날에 지 수업 빼먹고 다른 동네(뚝딱뚝딱) 구경갔더랍니다.
그래서 짚으로 만드는 인형을 못했던 거지요.
넘들은 새로 시작해서 새끼를 꼬는데 저는 그게 하고픈 겝니다.
샘이 누나들 형아들 가르쳐줘야 한다 했는데
이 녀석이 그러더래요.
"그러면 누나들 다 가르쳐주고 좀 있다 가르쳐주세요."
먼저, 기다리겠다더랍니다.
애들이 스승입니다.

새끼를 꼬고 있으니 성격이 다 드러난다지요.
다온이는 짚 새낀지 말이인지 모르겠는 걸 정말 많이도 꼬고
재헌이는 지 성질에 짜증내가며 안된다 안된다 하고
현주는 안돼도 꾸역꾸역 하더니 결국 하더랍니다.

순옥샘이 시량이에게 물었더랍니다.
나영이가 집에서도 잘 못참을 때 많냐고, 음식도 가릴 때가 있냐고.
(우리 나영이 캠프라고는 처음 와 봤다는데
부모님은 그걸 열 닷새나 뭘 믿고 보내신 건지.
물꼬에 대한 신뢰하고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량이 그러더라네요.
"집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근데 워낙 오래 됐잖아요."
5일이나 참았잖아요, 라는 말이겠습니다.
다 큰 애기 같지요?

문정이랑 예님이랑 한 잠자리를 놓고 서로 눕겠다고
한 밤중에 실랑이가 있었더랍니다.
결국 예님이가 물러났대네요.
다음날 아침 한 샘이 물었습니다.
"만족허냐?"
"다음엔 제가 양보하지요, 뭐."
문정이 그러더랍니다.
그래요, 양보가 양보를 낳는 법이지요.

"얼굴을 떠올려가면서 들어보세요.
하다, 채규, 진만, 승찬, 호준, 석현, 기태, 문정, 뚝딱뚝딱의 핵심멤버들입니다.
오후가 평온한 3일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동윤샘 말에 한참을 배꼽 잡았습니다.
눈치채셨지요, 어찌나 시끄러울 녀석들인지?

어디 사냐 물으니 어느 녀석인지 그랬답니다.
"3동 몇 호에 살아요."
아파트 이름도 모르고 무슨 동도 아니고 아파트 동수를 대더랍니다.
애들이 없으면 정말 무슨 재미로 세상은 돌아가나 싶어요.

아이들요,
그 농담의 코드를 조금만 이해하면
정말이지 재밌는 존재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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