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일곱쨋날 1월 11일

조회 수 1945 추천 수 0 2004.01.12 17:26:00

< 이 산이 아닌갑다 >

좋다, 좋다, 참 좋다,
이렇게만 써도 충분하겠는 날입니다.
곰 사냥을 다녀왔지요.
모두 다 다녀왔지요,
베개며 이불이며를 털어놓고
곰 나오는 이야기부터 들었지요.
"학교로 곰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나는 학교를 지킬 게."
부엌샘이 하는 말을 영환이가 받습니다.
"우리가 다 지킬 테니까 샘이 곰 잡으러 다녀오세요."

엊저녁 사온 사탕은 아침에 있었던 임시 한데모임에서 나눠먹었습니다.
얘기 없이 학교를 멀리 떠나는 문제,
장애우에 대한 태도,
맘이 상할 정도로 놀리는 일,
당장 얘기가 좀 필요한 일들을 모아서 한데모임하던 자리지요.
"곰이 단 것 좋아해요?"
"'곰돌이 푸'보면 꿀단지 나오던데..."
"아, 맞다, 꿀! 그럼 우리 이 사탕으로 유인해서..."
산을 막 오르기 시작할 즈음
곁에 있었던 혜린이가 곰 잡을 방법 하나 냅니다,
아직 껍질을 까지 않은 그 사탕을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며.

아침 때 건지기 마칠 무렵
운동장 한 켠 긴 의자 위에 아이들 몇과 재철샘이
상자를 하나 세로로 세워 놓고 그 위에 공을 두었습니다.
곰인가봐요.
둘러섰던 녀석들이 우, 하고 소리지르며 달겨들고
재철샘이 재빨리 새총을 쏘고 정한이는 측면에서 나무도끼를 들고 뎀빕니다.
뭐 하는 거지, 하고 멀리서 쳐다보고 있다가 얼마나 웃어댔던지...

장갑에서부터 목도리 옷 따위를 단단히 여미고
죄다 운동장에 모여
오늘의 지휘자 재철샘의 곰 사냥법을 들었네요.
"내가 곰을 잡아본 적은 없었지만
잡는 걸 본 적은 여러 번 있다."
로 시작하더니
곰보다 작아 보이면 안되니까 곰이 나타난 순간 모두 뭉쳐서 크게 보여야 한다,
행동지침 몇 가지가 떨어지고
모두 총연습도 해봤지요.
연습의 마지막 장면은
죽창에다 곰을 매달아 메고 오는 것.
그래서 죽창 끝을 상자(이곳 밭에서 쓰는 상자, 콘티라 부르는) 손잡이에 끼워
기태랑 승찬이가 나서서 메고 돌아서는데,
하하하,
이건 정말이지 글로 그려지지가 않아요.
마침 사진 박아 두었으니 언제 들리면 보시기 바랍니다.
연습 막 끝나 돌아서는데,
우리의 윤슬 선수는 뒤에서 꾸무적댔답니다.
잠바 안주머니에 작은 돌을 꽉 채우고 있더라지요.

산을 오릅니다.
몇 해전 바로 그 길을 아이들과 멧돼지 잡으러 떠났더랬습니다.
눈이 쌓인 가파른 길에서 몇 차례나 구르며 올랐댔지요.
날은 잔뜩 찌푸렸고,
눈비 오락가락했던 돌아오는 길은 멀기도 참 멀었지요.
패들이 학교로 들어서는 족족
그때의 물꼬 2대 부엌샘이 끓여냈던 오뎅국은
그 날씨땜에 더 맛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건 마치 가을산입니다.
그 해에 비하면 여간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물꼬는 늘 날이 도와주지요.
그 땐 고학년들이 많았는데
이 계자는 저학년이 많네요.
그들에 맞게 날씨도 좋고 길도 훨 편합니다.
한참 산판(나무 베어내는 일말입니다)을 한 산은 포도밭으로 개간이 되어있어
산이 한층 낮아져 있었지요.

재철샘은 몽둥이를 움켜쥐고 앞장을 섰습니다.
지주를 때려눕히러 가는 분노한 소작농 같습니다.
물꼬는 늘 사람을 적절하게 쓰지요, 재철샘은 오늘 '날'이었다니까요.
맨 뒤는 열택샘이 원교랑 따르고
우리는 사이사이 적절하게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야, 털이다."
"토끼털이야."
"곰이 잡아먹은 토끼 흔적이다!"
저 앞에서 뒤로 외쳐댑니다.
수상쩍어 보이는 곳에서
일곱의 전사가
(나무갑옷을 앞 뒤로 한 진만이에서 방패를 한 손에 다른 손에 나무창을 한 효석이 하며)
바위 너머 있는 굴에 정탐을 갑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섰고 전사들은 무기를 쑤셔넣어 봅니다.
토끼구멍인 듯 하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다른 정찰병들이 이제 앞서서 갑니다.
서로가 뵈지 않으면 무더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네요.
"어이!"
저 굽이에서 다른 패가 잘 있다 소리를 받습니다.
"어이!"
무슨 심마니들 같습니다.

새끼일꾼들이 우리 모두가 먹을 양식을 지고 있습니다.
밥이며 과일이며 물이며를 지고 가느라 힘깨나 들었을 테지요.
게다가 산꼭대기 가까이 이르러선 경사가 여간 가파르지 않았거든요.
길까지 무너져있어 길도 아닌 곳을 나무 헤치고 기어올랐지요.
이야, 우리의 소곤소곤방 예닐곱살들 씩씩하데요.
가파르기도 가파란 산비탈 중간 어디메서
새끼일꾼 형석이 아이들을 하나 하나 받쳐주고
무열이가 뒤에 있던 이들 다 지날 때까지
삐져나와 걸리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습니다.
산마루터기에서 배를 채우고 다시 산을 넘어갑니다.

산자락 끝에서도 한판 모임이 있었지요.
예린이부터 아픈 놈들이 일어나니 시끄러워죽겠다니까요.
무식한 울 어머니 그러셨어요,
"사람은 새겨(사귀어)봐야 안다."고.
일정이 길다는 건 더 많이 자기가 드러난다는 것,
잠깐 착하기는 쉽지만 오래는 어렵다는 것,
그래서 사람은 오래 만나고 볼 일이지요.
"얘들아, 이 산이 아닌갑다."
그리고 원망의 소리들...
산 하나를 넘고
이제 어찌할까 고민합니다.
어쩜 그리도 모두가, 정말 모두가 왕성하게 의견을 나눌 수가 있는 건지,
이 산이 아니라니 저 산으로 가자,
왔던 산이나 샅샅이 훑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에라 힘들어 죽겠는데 이 무덤 가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
"여기는 추우니까 이렇게 하면 돼요.
민박집을 찾아서 민박하고 가요."
'하다'까지도 열심히 대안을 내놓습니다.
돌아가자고 결정하고
다시 돌아가는 법에 대한 무성한 생각들...
곰 잡으러 온 사람들이 돈이 어딨냐,
왔던 길을 돌아 산을 다시 넘어갈까,
아니면 큰 길로 나가 걸어갈까,
가는 길에 차를 잘 얻어 타고 가면 어떨까,
결국 모두 산 아랫마을 길로 접어듭니다.
영후말입니다, 일곱 살 짜리, 아니 아니 이제 여덟 살,
우리패는 차를 안타고 내내 걸을지도 몰라 하고 형길샘이 말하는데도
그 패에 뛰어가 붙어 열심히 걷더랍니다.
어찌나 씩씩하고 신나하던지...
그 영후가 산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 앞에서
"아, 무거워!"
하며 주머니에서 뭘 꺼내더랍니다.
주먹만한 돌을 댓 개.
오늘 곰이 나타났더라면 그 곰 정말 큰일날 뻔하였습니다요.
궁촌리 하궁촌을 등지고 다리 건너 큰 길로 나왔습니다.
거친 말과 짜증으로 뒤섞였던 우리 재헌이가 곁에 서서
손을 꼭 잡아옵니다.
짜증 섞인 표정도 덜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무척 부드러워졌습니다.
마음을 화악 풀어옵니다.
사람의 선함이 훨씬 많이 드러나는 자리,
그래서 물꼬가 더 빛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모임은 계자의 압권입니다.
오늘 사회는 예님이와 연규였지요.
윤님이가 손을 번쩍 들어 한 마디 하는데
곁의 '하다'가 비죽거립니다.
"그게 어디 한데모임에서 할 소리냐?"
아주 같잖지도 않아요.
얘네들 글쎄, 예닐곱 살 모둠 소곤소곤(이전의 달그락)방이거든요.
동생들도 있는데 먼저 차를 얻어타고 와서 미안하다는 재헌의 고백을 시작으로
(신발이 젖어 실내화를 신고 오른 산행이었거든요. 꽤나 불편했을 테지요.)
형길샘 장갑 안끼고 나무 자르다 손가락 다친 걸로
조심성 없고 도구 잘 못 챙긴다 애들로부터 혼다고
(꿰매고 돌아왔지요.
내참, 이건 이건 숱제 어른들이 걱정입니다.
애들은 하나도 걱정 안된다니까요.)
곰 못잡아 아쉽다는 하다는
사냥할 산을 잘 못가서 안타깝다고 어른들을 야단치고,
책방 책이 널려있는데 어떻게 정리하고 꽂을지,
가마솥집을 잘 쓰는 문제들을 놓고 말도 많습니다.
지들이 처지가 돼보니(청소를 맡아보니) 아는 게지요,
바닥에 귤껍질을 너무 흘린다,
'태울 수 있는 것'을 버리는 휴지통에 귤껍질이 보인다,...
길에서 차를 세우고 태워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오는 길의 아름다움과 마음을 열고 나눴던 이야기들,
곰 몇 마리 잡아 곰탕 먹고 싶었는데 못한 아쉬움들도 꺼내놓고...
좋습니다, 좋아요, 참 좋습니다.
탁월한 한 개인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계를 맺으며 이룬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더 빛나다마다요.

어떤 패는 단 한 번에 궁촌에서 예까지 차를 얻어타고
어떤 패는 네 차례를 갈아탔는가 하면
대전 사는 마음 좋은 아저씨는 학교까지 왔다 다시 다른 패를 실어다 주고,
젊은 할아버지랑 열택샘 동윤샘은 5시간 남짓을 걷고...
저희 패는
대해리 들머리에서부터 2킬로미터 남짓의 학교까지 걸어 들어왔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 안고 햇살 어깨에 달고
뒤에 채경 하다 호준 지후 승진이 재잘대는 소리를 업고.
가끔 눈을 감고 걷습니다.
정토, 혹은 천국은 어쩜 이런 풍경 아닐지 몰라요.

샘들 하루재기에서 무지샘이 그러데요,
"아이들의 변화를 주욱 보면서
물꼬의 장치들이 직접적으로 바로 가는 어떤 영향하고는 다르게
입체적으로 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오늘 드네요..."
첫 며칠 계속 일정이며에 툴툴댔던 샘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듯 하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묘하게 절정으로 주욱 끌고가는 것들이
분명 이 계자에는 있는 게지요.
"다른 샘들 보며 많이 배웁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니라,
저렇게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유상샘입니다.
새끼일꾼 호열,
"영화에서 지나는 차 세우고 하는 거 그거 여자만 하는 줄 알았는데,
와, 되데요."
차를 세워 타본 것에 저가 더 신나하고
"작대기 들고 여러 명 가는데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나와도 다 잡을 것 같더라구요."
무열이 전합니다.
한 아이만 집이 그립다 울고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샘들이 굳이 단일한 행동을 할 것까진 없겠습니다.
그냥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써 보는 거지요."
어떤 샘은 따뜻하게 얼르기도 하고
어떤 샘은 운다고 해서 어느 누가 나서서 데려다 줄 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아이들에게 어느 순간은 아주 냉정하게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지요,
어떨 땐 명확한 포기가 더한 것들을 가져오기도 하니까요.

가끔 밥 굶기를 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다 싶을 때도 하고
몸이 좀 떨어진다 싶을 때도 하고
욕심이 경계가 될 때도 합니다.
지난 달에도 닷새 단식을 했더랬지요.
무릎이 많이 아팠는데
단식하고서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오늘만 해도 깊은 산은 아니나 새 해 들어 벌써 세 번째 한 산행인데,
무릎이 멀쩡하거든요.
샘들 하루재기에서 공동체 식구가 아닌 이들한테도 안내했지요.
2월에 우리 공동체 사람들 단식하니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혹, 관심있으신 분 함께 하시지요.
닷새나 이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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