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입니다.

가랑비가 슬쩍 지나기도 했지요.

그리고 바람, 황사 짙은 바람입니다.

 

아이들 있을 적 연탄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연탄은 이곳의 몇 가지 난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마솥방, 책방, 교무실의 난로, 그리고 된장집과 고추장집의 부엌 아궁이.

가을일을 미리 좀 덜어놓으면 좋겠지요

(10월이면 3천 장을 들여온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먹는 것이 내게 이르기까지,

그리고 따숨이 내게 이르기까지 고단한 손발 있음을 생각해보는 시간 갖고 싶었지요.

우리 너무 쉽게 먹고, 너무 편하게 따뜻하게 자니까요.

그런데, 오전으로 약속했던 연탄이 오지 못했습니다.

여는(여기는) 날이 좀 말꿈해졌는데,

읍내엔 계속 어둡고 부슬부슬 비 내리니

아저씨가 연락도 없이 날씨 그렇다 미루신 게지요.

전화 넣으니 부랴부랴 실어온다 했다가

다시 아무래도 무리겠다 연락 왔네요.

낼 꼭 오마십니다.

하여 일하겠다고 내친걸음이라 달골 오르지요.

집 둘레 배수로가 시원찮거든요.

비가 살짝 내리는 데도(연탄 아니 오길 잘했지요)

각자의 연장으로 배수로를 파는 아이들.

일을 잘 하네 못 하네, 하네 않네, 해도

어찌어찌 일이 돼갑니다.

기특한 아이들.

 

재미 붙인 한국화를 끝내고

무서운 속도로 먹을거리며 매운탕 끓일 짐들을 챙겼습니다.

4시 출발!

밤낚시를 갑니다; 이것도 지역 어르신 특강?

(한 날 영동 저 쪽 끝의 승마장에도 데려간다 하였답니다!)

원래 쇠날에 잡았던 일정인데,

준환샘이 휴가라 이왕이면 담임이 있는 날로 해야겠다 싶어

정작 진행키로 한 분이 안 된다는 걸 어렵게 날 바꾼 게지요.

그런데, 곁에 앉았던 해수가 달리는 차의 기어를 바꾸었습니다.

“천천히 달렸기 망정이지...”

순간 얼마나 당황했던지요.

제가 좀 기계치인데다 겁이 여간 많은 이가 아닌지라...

미리 단단히 일러주지 않았던 탓입니다.

놀란 저로 저(해수)가 더 놀란 거는 아닐는지...

 

옥천 구읍지로 갑니다, 전영호님이 진행해주십니다.

지역 사람들만 아는 알짜배기 낚시터이지요.

버들 출렁 드리웠고 잠긴 가지들도 뵙니다.

불어난 물이 넘실대고 산 그림자 그림이 좋아도 보였지요.

바람 부는 들녘에 선 것 같은 느낌을 안은

그런 바람속에 우리들을 둑에 펼쳤지요.

황사를 피하라 하였으나

목에 두른 등산용 스카프가 마스크 역할을 하기 어렵지 않았네요.

 

아이들이 끊임없이 재잘대자

먼저 와 있던 한 패의 낚시꾼이 자리를 뜹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거 정말 보기 좋습니다.”

되려 격려를 주고 갔지요.

고기가 낚이긴 하려는지...

 

네 패로 나눠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그런데 낚싯대를 던지자마자 찌가 걸립니다.

그렇게 세 개를 줄줄이 끊어먹자

결국 전영호님 것만 냄겼네요.

바람 계속 불고,

아주 가끔 이슬비가 지나기도 합니다.

그 속에 선재와 하은이, 끝까지 찌를 보네요.

하은이는 곁에서 책을 더 많이 봤던가요.

진하는 전영호님 턱 아래서 낚시꾼 흉내 한창입니다.

다운 선재 강유 가야는 김유가 시작한 옹알이를 해석하는 놀이로

또 한 재미를 보고 있고,

해수는 이곳저곳 해찰입니다.

준과 다형이는, 비슷한 둘이 비슷하게 툴툴대며 어슬렁거렸지요.

 

“화장실은 어디로 가요?”

물어 뭐하나요.

저 돌아가는 길이, 저기 나무 숲 뒤, 저 언덕 아래가

다, 다 해우소인 게지요.

그런데, 신기하고 시원했다는 강유가 아빠 생각이 났다 했는데,

그 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둠이 서서히 내립니다.

서둘러 물을 끓이지요.

아이들이 노래하던, 사랑하는 라면입니다.

몇 차례 끓여내는데,

서른 개 박스를 다 먹겠는 참이지요.

밥도 김치통에 한 통 실어왔는데 말이지요.

현정샘이 네 개를 남깁니다,

이제 좀 그만 먹어도 되겠다고.

그것까지 마저 끓여도 다 먹었을 걸요.

 

달빛 내립니다.

켜두었던 빛을 거둡니다.

어둠에 눈이 익고,

저마다 또 다른 무언가로 신이 납니다.

“추워요.”

율무차를 끓이지요.

차 한 잔의 온기가 이리 크던가요.

달빛 아래서 현정샘이 아주 고생했습니다,

먹는 것 바라지로도, 추워서도, 아이들 숱한 부름으로도.

이럴 때 노래 잇기를 하면 마치 난로처럼 온기가 번지는 걸,

아이들과 이렇게 나와 나무와 풀과 강물과 달 노래도 좀 부르고 싶었는데,

선뜻 하려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이랑 밤낚시를 가면

밤이 내린 강가에서 공연을 합니다.

저마다 준비한 노래를 물소리에 섞지요.

달빛이 꼭 한몫하구요.

그런데, 이동학교 아이들은 노래를 잘 부르지 않습니다.

마음 같아선 저녁마다 노래하고픈데,

그게 또 이동학교식의 진행이 있는지라

물꼬가 선뜻 그리 하자 뜻대로 다 못할 밖에요.

물꼬는 늘 노래가 넘치지요.

해지는 저녁 방에서 한데모임을 시작하며 30여 분은 노래를 부릅니다.

도대체 멈추지 않을 기세로.

어쩌다 해우소를 가거나 빨래를 널러갔다가

마당을 가로지르며 그 노래들을 듣노라면

거기 천국과 정토, 극락에 다름 아니지요.

“애들이 정말 노래를 좋아하네요.”

가끔 합류하는 제도학교 교사들이 하는 감탄입니다.

“그래요. 그 사랑하는 거 그거 좀 많이 하면 좀 좋아...”

결국 우리들의 밤 낚시터 공연은 좌절되었답니다.

 

고기는 한 마리도 오지 않았습니다.

물이 너무 찼어요.

아이들이 소란도 까닭 아니다 못하겠지요.

매운탕 준비는 저수지만 구경하고 물꼬로 고스란히 다시 실려 왔지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칼이 없었어요.

순전히 고기 다듬지 못할까 걱정하여 낚시 바늘이 우리 사정 봐주었다니까요.

낚시는 고기를 낚기보다 시간과 분위기를 낚는 일.

그래서 저는 낚시가, 특히 밤낚시가 좋습니다!

그곳의 바람, 그곳의 물, 그곳의 나무, 그곳의 하늘, 그곳의, 그곳의, 그곳의...

그리고 아이들!

 

‘결국 우리는 물고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나 보다. 그리고 우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배만 채우고 다시 달골로 왔다. 별 이득이 없는 하루였다.’(다운의 날적이에서)

 

‘오늘은 밤낚시를 했다. 창우형네 아버지가 우릴 위해 낚시 터도 마련해주시고, 낚시하는 법과 낚시 체험도 시켜주셨다.

처음에 4개 조로 나눠져서 4개의 낚싯대를 놨다. 그러나 곧 해수가 낚싯대 한 개를 걸리게 하더니 뒤를 이어 강유와 다운도 낚싯대를 바닥에 걸리게 하더니 끊어먹었다. 그래서 결국 낚시는 아저씨가 하시기로 하고, 우린 먹고, 놀기로만 했다.

라면도 먹고, 율무차도 마시고, 랜턴도 비추며 놀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해수는 그 상황에서 어두운데도 책을 읽고 있었다.

고기는 한 마리로 건지지 못했지만, 즐겁고, 추억이 될만한 밤낚시였다.

또 하고 싶다. 그치만 지금은 잘 시간~’ (하다의 날적이에서)

 

달빛 아래 둘러서서 갈무리를 했습니다.

아쉬우나 좋았던 시간임을 그 말들이 아니어도 알겠더이다.

모를 일이지요, 누구의 가슴에선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처럼

다랑어랑 84일간 씨름을 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야간근무를 들어가는 전영호님의 배웅을 받으며 옥천을 떠나

아이들을 달골에 바로 내려놓고

준환샘이랑 가마솥방에 가 설거지를 했습니다.

오던 걸음으로 정리해두어야 다음날이 또 가뿐하지요.

 

음... 입안이 헐었습니다, 몇 곳.

여러 날 되었습니다.

곤했던가 봅니다.

담임교사도 있고 보조교사도 있는데,

덩달아 바쁘기라도 했던 모양이지요.

한동안 고생하겠습니다, 으윽!

고단함을 다른 샘들에 견줄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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