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학술제가 있는 매듭잔치-셋

조회 수 1260 추천 수 0 2005.01.02 23:37:00

12월 25일, 학술제가 있는 매듭잔치-셋

학술제가 이어집니다.
개미를 연구한 채규(책이 있다고 책유라던가)가 나오고,
(후드 모자 끌어올려 기어이 쓰고 나와서)
앵두나무와 뽕나무를 주제로 령이가 나오고,
류옥하다 등장.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하며 제가 뭘 연구했는가 어찌 했는가 무엇을 했는가를 시작하자
"그 놈 참 또릿또릿하네(이 말이 맞나?), 누구 아들이야?"
빼규의 모가 추임새를 넣습니다.
나중에야 김이 샜습니다만.
"어딨지, 아이 참 어딨더라..."
류옥하다 선수 제(자기)가 정리한 쪽을 찾느라 정신없었던 게지요.
서서히 분위기가 오릅니다.
의도적으로 질문을 하던 부모님들이
이젠 정말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하고
아이들도 저마다 물음이 이어집니다.
잘난 체 하는 그런 질문 말구요.
그런데, 서로들 이미 주제를 공유해오던 게 있는지라
"그건 제가 알아요!"
답변을 대신해 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놀라웠어요. 일반학교 같으면 자기 것 하느라 바쁠 텐데..."
정미혜님이 그러셨지요.
혜린이의 토끼풀이 나오고,
도형이의 감자 얘기,
혜연이의 대나무 연구가 이어집니다.
"대나무가 가장 크게 자라면 어느 정도입니까?"
"그건 예린이한테 물어보셔요. 예린이가 담양에 다녀왔거든요."
그렇게 질문한 이는 예린의 아버지 한동희님이었답니다.
아,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만 아이들 분위기에 몰입하느라
저 또한 다른 때 잘도 하던 기록을 놓치고 만답니다.
나현이의 토끼 연구,
그리고 여유만만 개구리 연구가 정근이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채.
하이고, 저게 왜 저러나,
대충 하려나보군,
아마도 우린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놈 어릴 땐 한정 없으나
배포란 게 있거든요.
지나쳐서 객기가 될 때도 많지만.
"개구리와 두꺼비는 어떻게 달라요?"
정근이 잠시 주춤했습니다.
"음... 개구리는요, 개굴개굴 울고 두꺼비는 두껍두껍 울어요."
잘도 넘깁니다.
모르는 건 모르겠다 하고
더 연구해보겠다고도 하며
여유롭게 모든 질문에 친절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올챙이는 누가 낳아?"
그리고, 우리는 류옥하다의 질문에
그의 잘난 지적수준을 기어이 의심하고야 말았더랍니다.

너무나 자유롭고 따스했습니다.
언제 이토록 재미나고 유연한 학술제를 본 적이 있었던지요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제 한계를 인정하고도).
학술제, 딱딱하기 이를 데 없고 지루하기 한없기 대부분이었으며
너무 진지해서 정작 묻고 싶은 것도 그냥 넘어가거나
이미 준비한 잘난 질문이나 해대던,
무엇보다 잘난 사람들 잔치이기 일쑤였던 자리에 견주어,
학술제가 얼마나 좋은 배움의 잔치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버리고야(?) 말았더이다.

학술제가 끝나고 한 자리에 다 둘러앉았습니다.
- 류기락: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했구나,,,
서로 도와가면서 한 것들이 보이더라.
(기락샘은 사석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렇다'는 치하도 잊지 않으셨지요)
- 김주묵: 아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토론에 익숙하더라.
1년 한 것 보며 많이 컸구나...
- 한동희: 놀랬다. 정리도 안되고 잊어먹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애들 성장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 김애자: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배웠다. 애들이 노력했구나...
- 모남순: 마을 잔치에서 손발이 척척 맞아서...
<오래된 미래>의 잔치 구절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아이들 하는 것보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1년 동안 심도 깊게 한 것 보며 어른들 공부 많이 해야 겠구나,
어른들은 세미나 하면서 많이 힘들어하는데...
모르는 것 알게 돼서도 좋았다.
- 김정희: 가슴 뭉클했다. 너무 잘했다. 학술제 분위가 너무 좋았다,
질서 있고 자유롭고.
해마다 큰 공부가 되겠다.
- 안은희: 애들이 싸우느라 뭘 했을까 싶더니 놀랬다. 남의 것까지도 알고 있고.
어른이 돼서도 잊히지 않는 지식이 될 것.
남에게 보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옥샘이 올 첫해 일년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한댔는데...
- 김경훈: 새삼 많이 컸구나...
주제 발표하고, 그걸(그 많은 내용을) 또 요약했다는 게...
- 김영규: 다른 학부모 다른 학교라면 혹여나 실수할까봐 긴장했을 것,
그러나 즐기게 되고, 일상으로,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이게 또 물꼬의 저력이라고 하지요...)
- 김준호: 많이 발전했구나.
- 김현덕: 놀랬다. 질문도, 다른 사람들 연구에 대해서도 문외한이 아니고.
열명이 했으니 열가지를 안 건데...
- 문경민: 애들 정말 많이 컸구나.
1-2학년 학예회 보면, 애들 가진 것보다 많이 보여주는데,
저게 다 쟤들 실력이 맞나 의심,
그런데 우리 아이들, 우리애들 실력이겠구나
고 3정도 되면 얼마나 멋진 학술제가 될까 기대
(우리들이 가진 것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토를 달아주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류옥하다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한 해 동안 잘 돌봐줘서 고맙구요, 곶감 맛있었어요."
아이들을 대표해서 담임한테 보낸 찬사였던 게지요.

눈시울이 오래 뜨거웠습니다.
마을잔치를 보면서는 이네들과 뭐라도 하겠구나,
아이들을 보면서는 어떤 시련도 건너겠구나,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느꺼움으로 목젖이 떨렸더랍니다.

아 그리고, 밥알 식구들이 마련한 공동체 식구들을 위한 선물,
그리고 한 어머님이 넌즈시 건네준 가난한 공동체 아이 하다를 위한 선물
(당신 자식 거 성탄 선물 사면서 같이 사셨다합니다),
귀하게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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