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2일, 밥알 모임

조회 수 1261 추천 수 0 2005.06.17 17:28:00

6월 11-2일, 밥알 모임

오늘 저어기 고개 너머에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문득 장에 나갔다가 궁금해졌더랍니다.
내가 꿈꾸는 건 뭐지,
공동체 공동체 말해왔는데 공동체가 맞긴 맞나,
공동체란 게 도대체 뭔가,
내가 하려는 게 합숙소는 아닌가,
그래도 먼저 시작했다고 물꼬에다 전화를 해온 게지요.
"왜 오늘 나는 그게 궁금해졌을까요?"
"문제-딱히 갈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가 돌출했겠지요,
물을 때가 된 게지요.
이놈의 인간이라는 게 어찌나 삐쭉거리는지
마음이 열둘이거나 쉬 잊는단 말예요.
그러니 한 번씩, 가끔씩 그리 물어봐 주어야 하는 거지요.
처음을 그리 되짚어보는 겁니다
(처음이란 게 무슨 시온주의처럼 원형을 지키는,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묻고 또 묻는 것은 '과연 그러한가' 하는 점검이겠지요.
살피는 것, 깨어있는 것 말입니다."
언제 넘어와서 곡차 한 잔 하며 공동체에 대해 새김질 해보자 합니다.

아이들을 이곳 상설학교에 보낸 부모님들의 모임이 밥알모임이지요.
학교랑 만나는 자리기도 하고.
우리는 오늘, 다시 물었더랍니다.
나는 처음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냈는가,
내 기대는 무엇이고, 거기서 학교가 할 수 있는 건 뭐고 아닌 것은 무언가,
서로의 관계에서 요구하는 건 무어고 나는 얼마큼 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을 내고는 있는가, 그 낸 마음만큼 움직이고는 있는가,
내 맘에 도사리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것인가, 공동체의 것이기도 한건가,...
우리는 더러 그리 묻겠지요.
"내가 생각하는 물꼬가 맞는가?"
그렇다면 이리 되물어줄 수 있지 않겠는지요.
"내가 생각하는 당신은 맞는가?"
아니면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겠지요.
"'내'가 생각하는 물꼬는 '내'게 있는 거지, 물꼬가 생각하는 물꼬는 아니지요,
물꼬는 물꼬가 생각하는 물꼬가 맞는지를 묻고 또 물으며 나아갑니다."
사람이 자고로 잊기 쉬운 존재인 까닭에
우리는 다시 이 공동체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네요,
밤늦도록.
어떤 이는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되돌려 하고 또 해야 하냐며
서글퍼져 더덕주 뚜껑을 두어 차례 열었다는 얘기도 있고,
그걸 마셨다나 어쨌다나 소문도 났더라네요,
누구는 그걸 물잔이었을 뿐이라고도 하고.

흙날엔 한 켠에서 논둑을 돌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죄다 고래방과 목공실(창고)을 채우고 있던 것들을 꺼냈습니다.
6월 마지막 주면 고치는 일을 시작할 거거든요.
문화관광부에서 지원하는 사업비로 말입니다.
부려 놓으면 너절하기 뭐나 다르지 않지요.
내노라 하는 집의 이삿짐이라도 꺼내놓으면
쭈글거리는 우리의 일상만 같은 걸,
아무리 새살림이라도 그러할진대
물꼬의 지난 9년 대해리 살림 흔적이라니...
끝도 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짐들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처럼.
그런데도 창고를 짓지 않아도 또 어데로 어데로,
그래봤자 곳감집이고 조릿대집이고 빨래방이고 컨테이너겠지만,
구석구석 자리를 잡아 들어갔답니다.

이튿날 오전도 이어져 나온 짐들이
기어이 텅 빈 고래방과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목공실을 보았으니
더는 나타낼 모습 없었겠지요.
오후엔 달골 아래 포도밭에 가지치고
위 포도밭에 풀을 베고
풀섶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트럭 빼내느라 애를 먹고 나니
어스름녘이데요.

세상에, 있잖아요, 그런 일이 다 있습디다.
밥알모임에서 다른 사람, 그러니까 품앗이 혹은 방문자가 한 밥을 얻어먹다니...
나흘 방문자 정은영님과 유영숙님이 점심 밥상을 차렸더랍니다.
그것도 아주 거방지게.
이러면 퍽 사이좋고 싶어지지요.
모든 밥알들이 다 나가서 같이 어불러 일할 수 있었더이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다가
피아노를 둘러싸고 있더니 어른들 일하는 밭에 위문 공연을 나왔다가는
우르르 물놀이를 떠났습니다.
한껏 즐거운 날이랍니다.

참, 옥천에서 손님들이 오셨지요, 아저씨 셋.
한철 마늘 장사를 하고 좀 남겨 몇 곳을 돕는 중이라며
마늘 세 자루를 끌고 오셨댔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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