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4.나무날.맑음 / 샹들리에

조회 수 1263 추천 수 0 2005.11.25 00:40:00

2005.11.24.나무날.맑음 / 샹들리에

이럴 때 그런 말을 하던가요,
아주 '날'이라고.
뭔가 좀 꼬였다 싶은 날요.
교무실에서 두어 가지 일이 그러하더니
아이들 속에서도 수영에서 돌아오는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여직 마음이 어수선하여 한참을 책상 앞에 망연히 앉았더라지요.
사는 일이 참 멉니다.

책 두 권을 가지고 간, 어리지도 않은 녀석이 오늘은 중심에 있었지요.
수영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이었습니다.
"형, 나 저거 봐두 돼?"
"......"
"형 지금 다른 책 보잖아."
역시 대꾸를 않습니다.
저러다 싸움이 되겠지요.
"저거, 내꺼!"
늘 먼저 보는 것을 '찜'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언제나 어쩜 저리 '쪼잔'할까 쳐다보게 되는,
같은 일의 반복으로 또 평화가 깨지는 찰나입니다.
한 소리 했지요.
"날마다 '내꺼야' '내꺼야' '내꺼야'하는 싸움 소리에 살 수가 없어."
하며 두꺼비의 굵은 목소리를 장난스레 흉내냈을 테지요, 여느 때 같으면.
어느 날 건너편에 두꺼비가
개구리 순이 돌이 철이의 싸움에 그리하던 것처럼(레오 리오니의 <내꺼야>).
그리고는 씨익 흘겨보고 말았을 겝니다, 다른 때라면.
아이들이야 싸우면서 크는 것일 테고
그 속에서 날마다 자라날 것이니
새삼스레 이야깃거리도 아닐 것을
하필 어제 오늘 마음을 더 쓰게 했음은 필시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 지요.
불날 공동체어른모임에서
지난 두 해의 물꼬 밥알(학부모)이란 존재에 대해 얘기를 나눈 뒤로,
또 2006학년도 입학과정 가운데 학부모들을 면담하면서,
밥알에 대한 부정성이 마음에 적잖은 소요를 일으키지 않았나,
그 불편한 마음이 일상의 모든 일들에 반응을 달리 일으키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디다.
아님, 이제 그만 지쳐버린 걸까요?

"차암 만만찮은 아이들입니다."
작년 4월 학교가 시작되었을 때
열흘을 넘게 우리를 쫄쫄 따라다니며 촬영을 했던 프로듀서가
돌아가면서 걱정스레 먼 산을 보며 해준 말이었지요.
그에 견주면,
또 늘 싸움의 중심에 있던 한 아이가 예서 살았던 시기에 견주면,
요새 같은 이런 평화가 또 없지요.
헌데 오늘,
내가 여태 무얼 했나,
별 마음이 다 들었겠지요.
보람 없는 일을 하는군, 그러기도 했을 게고.
세상에, 겨우 이태를 보내고 하는 엄살이라니요.
사람이 그리 쉬 바뀔 수 없음을 몰랐단 말인가요.
심술덩어리는 얇아졌고
징징덩어리는 작아졌는데,
거기서 오는 기쁨이 왜 허물을 덮을 수 없었는지...
사는 일이 참 길다마다요.

공동체식구모두한데모임이 있는 나무날이지요.
앞마당과 뒷마당을 나눠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이 이번 학기 '불이랑'에서 보낸 시간을 갈무리하는 이즈음,
오늘은 단추 샹들리에를 만들고 있었지요.
물꼬엔 큰 논두렁 오정택님이 보내주셨던 단추가 어마어마하거든요.
망가진 자전거 바퀴도 하나 빼내 축으로 삼으려 들고 들어와
이 샹들리에에 어른들도 손품 하나 덧대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의견을 모았더라지요.
그리하야 한데모임 앞마당은
낚싯줄과 가운데 쌓아놓은 단추들을 꿰는 일이었답니다.
무슨 구슬 꿰고 봉투 붙이는 부업하는 아줌마들 마냥
수다스럽기 그지없었지요.
"어머, 아홉 시다!"
그 저녁까지 그러고 있었더랍니다.
낼 가을학기 갈무리 산오름 할 건데...

방문자 이지은님 장인천님이 단추를 꿰던 앞마당에서 일어서며
예서 머무는 동안 들었던 마음을 꺼내놓으셨네요.
아이들이랑 알까기와 오목을 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조율과 조화에 감동하고,
우두령에 함께 오르며
정말이지 열심히 일하시는 젊은 할아버지와 열택샘한테 감동했다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맛있는 밥도 고맙다 하였지요.
아무쪼록 좋은 사유의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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