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13.쇠날. 맑다가 빗방울

조회 수 1174 추천 수 0 2007.04.24 00:19:00

2007. 4.13.쇠날. 맑다가 빗방울


바람 부는 숲에 갔습니다.
바람은 가지와 가지 사이, 돋는 잎과 잎 사이,
어느 한 곳도 그냥 가기 섭섭하다
휘돌고 돌고 있었습니다.
햇살도 어찌나 다사롭던지요.
차오르는 것들 천지였지요.
뱃속에 든 아이가 발을 차는 감동이 그러했을 겝니다.
불과 며칠, 그 사이에 발치까지 덮쳐 왔습니다, 봄!
가르마 같은(이상화의 시 구절이 이러하였지요) 산길 따라
아이들과 꿈속을 가듯 걸었지요.
‘숲이랑’ 시간이었습니다.

구미 갔습니다.
지난 학기 풍물공부를 같이 한 ‘구미교사풍물모임 너름새’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운 거지요.
새 학기 연습을 시작한 게 언젠데,
아침에야 겨우 소식 전했습니다.
당장 닥친 공연 때문에 걸음을 하지만
계속 주에 한 차례씩 갈 엄두가 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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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황, 그리고 초대... >

여전들 하시지요?
옥영경입니다.
늦은 인사입니다.
사는 일이 늘 이리 더디고 서툽니다.
지난 겨울 다녀가신 뒤로
통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게 싶게 하는
살구꽃 복사꽃 벙그는 산골의 봄이니이다.

굳이 사람 손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산에 들에 먹을 것 지천이지요.
지난 주말, 식구들과 언덕에서 머위를 캤습니다.
살짝 데쳐 쓴 기를 빼고 두부를 으깨고 된장을 넣어 무쳐먹었지요.
쑥국도 끓이고 냉이튀김도 냈습니다.
작년에 베어 먹던 자리에 다시 솟은 부추도 잘라
겉절이를 해서 밥상을 차렸지요.
우르르 쏟아져 나온 표고를 따와
삼시 세 때 잘 먹고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표고목하우스에서 일하는 남정네들을 위해
묵은 김치로 부친 전과 막걸리를 새참으로 내고,
얼려두었던 인절미를 구워
포도밭에서 어른 일손을 돕는 아이들에게 내기도 하였지요.
이러자고 들어온 산골에서
걸음은 늘 바빴고, 흙 한번 묻히지 못하고 지나는 일이 흔했더랬습니다.

상설로 4년차에 드는 학교입니다.
한 3년 꾸려보니 이제 좀 보이는 게 있는 듯도 하고
그래서 가늠이 되는 바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또 아득한 일 많겠지만.
명백하고 단순한 가치였건만
구현해내는 일은 복잡한 것이 사람살이더이다.
“꽃 보기가 민망한 생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지난 봄 벗이 보내온 문구를 읽으며
민망한 생이 다른 데 있지 않구나 싶을 만치
서로가 스스로 평화가 되지 못해 시끄럽고 불편하게 보내기도 한 한 해였지요.
그래도 고맙고 감사한 것은
그런 일이 인간에 대한 실망, 혹은 존재에 대한 서글픔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나날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려놓는 것도 용기이지요.
올해는 좀 쉬어간다 했습니다.
산골 들어와 살던 아이들도 다시 도시로 돌아가거나 제도 학교로 떠나고
올해는 새로 들인 아이 없이 두 아이만 마을에 남았습니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이라고 필요한 건 또 다 필요해서
작아진 규모의 공동체 식구들이 많이 종종거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본 가락이 있어 아이들이 논밭에서고 교실에서고 잘 움직이고,
어른들은 또 살아온 가락이 있어 빈 손발을 채우며 잘 흐르고 있습니다.

바빴습니다.
이번 학년도를 시작하고 여유로와 더 바빴습니다,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챙기느라,
그리고 하려 별렀던 일들을 하느라.
“공부 좀 하라는 분위기네...”
이게 또 찾아온 귀한 기회다 싶게
식구들이 두루 산골 삶의 기술들이며 못다 했던 것들을 익히고도 있지요.
치유프로그램, 장애아프로그램, 단식일정, 국제유스캠프, ...
쉬어가는 해를 채울 것들로 막연히 준비하던 것들이
용케 올 여름 일정으로 또 자리들을 잡았네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구나,
이러하라고 올해를 주셨구나,
물꼬 일을 하며 늘 하는 생각입니다.
날마다의 영성훈련이 왜 중요했던가에 다시 생각을 모아(아이들은 늘 했건만)
이른 아침 명상과 몸 수련도 잊지 않고 있답니다.

올해도 ‘학교 문 연 날’이 다가왔지요.
동네 어르신들 뫼시고 예년처럼 작은 잔치를 엽니다.
물꼬에 관심 있는, 혹은 돕는 분들도 더러 오실 겝니다.
고운 봄밤에 밥이나 먹자는 거지요.
지나간 겨울, 악을 울려줄 수 있나 너름새에 부탁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가마 하고 여태 소식 한 줄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시겠지 했지요.
4월 21일을 위해 구미에서 준비하고 있는 북소리 장구소리가
예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지요, 하하.

어디고 봄꽃이 넘치지 않는 곳이 있으려나요.
기쁨 또한 그러하소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는 봄비 다녀가는 새벽의 대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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