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5.물날. 밤 비 / 사과잼

조회 수 1263 추천 수 0 2010.05.23 15:33:00

2010. 5. 5.물날. 밤 비 / 사과잼


사흘 내리 후덥하더니 그예 밤 비 내립니다.
시원하게도 내립니다.

아침, 부엌 개수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목련,
더디게 피워 올리더니 그 자태 단장하느라 더 늦었던 모양이지요.
초여름 같은 날씨가 사흘이었다 해도
여전히 봄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지요.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이은상의 <개나리>

동트자마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어머니였지요.
우리 학교 마당 한 가득
성산포의 분화구처럼 옴팍하니 호수 같은 풀밭 있더랍니다,
그 속에 돼지들이 와글대더라고,
어미는 어미대로 새끼는 새끼대로
‘백바리(마리)도 넘겠더라.’셨지요.
“하도 예뻐서 니한테 새끼 두 바리만 도봐라 그랬다.”
했더니 어머니가 어디다 키우시게요, 그러더라나요.
“우리 농장에 갖다가 집 만들어 키우지.”
그리고는 잠이 깨셨더라 합니다.
덩달아 기분 좋은 꿈이었네요.
덕분에 휴일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잠을 깨
일찌감치 학교 내려와 안팎 잔손들을 좀 보았답니다.

가리배추, 강낭콩을 서둘러 심고
사과잼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어린이날 기념이라 붙이기로 했지요,
마지막 어린이날인 아이에게 슬쩍 좀 미안함이 있어.
기특한 아이입니다.
그래도 일 많은 이 삶을 너무 잘 아니
이렇게 제 욕구를 접고 손을 보태주지요.
광평농장의 현옥샘이랑 아이가 지난 달날에
이미 상처난 사과들을 도려두긴 하였으나
한 이틀 흘렀다고 손을 다시 대야했답니다.
씻고 자르고 속을 파고 흠을 도려내고
그리고 껍질을 벗겼지요.
살은 살대로 얇게 자르고 껍질은 껍질대로 다졌습니다.

“어!”
어르신 한 분이 부탁하신 일이 있어,
정오 되기 전에 다녀오란 일이었는데,
일에 몰두하다 그만 11시도 한참 넘어버렸네요.
얼른 달려갔다 옵니다.
어린이날 행사에 차들이 몰려
김천에서 빠져나올 때는 한참 더뎠더랍니다.
잔치라고 길엔 가판 음식점들이 늘어섰는데
거기서 도넛을 한 봉투 사왔지요.
대해리로 들어서니 멀리 쌍둥이네 할머니가
쉼터에서 이웃집 할머니랑 잠시 다리쉼을 하고 계셨습니다.
면소재지 나가 사셔서 가끔 이렇게 밭일 하러나 들어오실 때 뵙지요.
잔치 때마다 건너오셔서 흥을 돋우시던 당신이셨습니다.
반가움 전하며 빵과 물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쪽파 한 아름 안겨주십니다.
가는 것보다 늘 오는 게 많은 산골살림이라지요.

빵으로 참을 먹고
다시 사과잼 작업은 계속됩니다.
불 앞에서 병들을 소독하지요.
“이번 거는 몇 논두렁 분들한테 보내드려야겠다.”
아무것도 생기는 일이 없는데도
그저 물꼬 살림을 살펴주시고 보내주시는 분들이십니다.
이제 물꼬가 뭘 좀 해야지 않겠는가, 자주 생각하지요.
“오정택선생님께도 보내고, 진업이랑 재은이한테도, 진익샘이랑 아리샘한테도, ...”

아이는 참 즐겁게 일합니다.
놀이처럼, 소사아저씨와 퍽도 즐겁습니다.
“이만큼이나 했잖아.”
남은 일보다 한 일을 생각하는 게지요.
저 아이가 얼마 전 그랬지요,
절명상 백배할 때도 10번이면 10분의 1을 한 거고,
그렇게 열 번만 하면 되니 백배도 금방이라고.
잼을 젓기가 힘들어져
의자를 놓고 올라간 자세에서 주걱을 젓고 있었더니
아이가 건너다보며 소리를 치네요.
“엄마, 의자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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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5.물날(빨간날).더움 / <사과잼 만들기>

오늘은 하루 종일 젊은할아버지, 엄마랑 셋이서 사과잼을 만들었다. 광평에서 얻은 사과로 잼을 만들었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먼저 사과를 자르고, 껍질을 벗겨서 얇게 썬다. 그 다음 껍질은 껍질대로 얇게 다져서 먼저 사과를 냄비에 넣고 끓여서 조리면서 조금 있다가 사과껍질을 넣고, 다시 조금 있다가 계피가루와 레몬즙을 넣고 찬물에 떨어뜨렸을 때 흩어지지 않을 정도까지 조려서 소독한 병에 넣는다.
나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여러 개 냈다. 하나는 사과를 얇게 썰 때 마늘 다지는 수동기계를 사용했고 사과를 썰어서 옮길 때 쟁반을 식탁 도마 옆에 두어서 옮기는 시간도 단축되게 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사과를 일렬로 놔서 한꺼번에 잘랐다. 이걸로 조리는 시간도 줄어들어서 작업시간이 60% 가까이 단축됐다.
아침 일찍 시작했는데 재밌어서 계속 하다 보니 9시가 넘었다. 12시간 넘게 한 것이다.
아이고, 허리랑 손, 아니 온몸이 뻐근하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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