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4. 해날. 마른 비 내리는 위로 따순 바람

조회 수 1346 추천 수 0 2007.03.10 11:43:00

2007. 3. 4. 해날. 마른 비 내리는 위로 따순 바람


대보름입니다.
입춘 새벽에도 서로를 불러 고달픈 봄을 팔았듯
이른 새벽 더위를 파는 것으로 시작된 하루는
오곡밥과 열두 나물로 겨울에 모자랐던 비타민류의 밥상으로 아침을 맞은 뒤
긴 겨울 졌던 구들장에서 기지개를 켜며 종일 움직임이 많기도 하지요.
섣달 끝물에 새해를 앞두고 우물을 치며 하던 해보내기 판굿은
(서로 얽힌 마음이 있을라치면 풀기도 하는)
해맞이로, 그리고 보름을 내내 이 구실 저 구실로 악을 울립니다.
그렇게 보름날에 이르러 집집을 돌아 액을 막아주며 대미를 장식하는 거지요.
그래도 또 아쉬워 하루를 더 놀자 하는 것이 ‘귀신의 날’이 된 거라나요.
개에게 밥을 먹이면 그 여름은 파리가 들끓고 몸을 여의기까지 한다고,
그래서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모든 살림의 뿌리이기에 달 그림자까지 재며 그 해 농사를 점쳐보았고,
온 마을이 다 달집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했지요.
아직도 이 산골 마을은 그 달집을 태우는데,
오늘은 그만 비에 천지가 젖었습니다요.

“놀자!”
어르신들이 섣달부터 얼굴 보일 때마다 달았던 말씀입니다.
일찍부터 경로당에 모여들 계실 겝니다.
한 잔 해요, 하며 건네는 소주가 반병이나 채워진 대접인지라
천하장사라도 당신들을 대작할 수 없으므로
딴에 요령을 피워 점심도 더 지나 건너갔지요.
“그래, 교장은 어디 갔나?”
두어 번 건네준 말씀을 더는 모른 체 할 수 없는 때까정 미적거리다
쇠와 장구를 챙겨 메고 나간 게지요.
벌써 방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들 방에 들어가니 술 한 잔 먼저 엥겨 주시고는
올 해 여든여섯 되는 극중이할아버지가 쇠를 잡고 일어서며
같이 일어나라 압력을 넣으시데요.
대해리의 영원한 상쇠 꺽중할아버지,
이제 네가 이끌어라 눈짓을 주시기 판을 몰기 시작하는데,
남기원할아버지랑 극중할아버지가 부쇠를 맡고,
동섭이아저씨가 장구를,
그리고 저 방에서 건너온 성길아저씨네엄마가 북을,
그리고 조덕만(하이고 성함이 가물가물)할아버지가
자꾸만 소리를 삐걱대면서도 장구가락을 좇았지요.
산골마을에 달랑 둘 있는 아이들인 류옥하다랑 종훈이도 따라와
장구도 치고 징도 쳤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맨날 어색해라만 하는 송종국아저씨도 판에 껴들고,
여간해서 일어선 모습을 볼 수 없는 박희만할아버지까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십니다.
할머니들도 죄 건너오셨지요.
얼마나, 어얼마나 신명나게 두들겼는지,
얼마나 얼마나 어깨춤을 추었는지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창문을 열었습니다.
마른비가 내리던 하늘에서 단 바람이 건너왔지요.
“할멀들 방에는 안 오고...”
할머니들의 시새움 배인 한소리를 듣고 이제 방을 옮기려는데,
“밥 먹고 하자!”
벌써 밥상이 들어오고 있었지요.

쇠를 내려놓고 창으로 가서 땀을 식힙니다.
고개 드니 마을 뒤로 있는 동산의 낙엽송 사이,
흐리되 밝은 하늘이 삐죽삐죽 마을을 기웃거리고 있데요.
뉘 집에선 연기가 오르네요,
일찌감치 불을 지펴놓으려나 봅니다.
좋습니다, 이보다 더 무엇이 좋겠는지요.
설거지는 막내래도 예순 다섯인 성길아저씨네엄마가 하고 계십니다.
“제가 할게요.”
젊어도 교장이라고 늘 앉아 받는 밥상이었지요.
오늘은 한갓지기 꼭 설거지라도 하고 가자 하는데,
혼자 다 하겠기도 한데,
굳이 헹구는 것만 하라며 같이 서서 그릇을 부시는 당신입니다.
인숙이네엄마도 동갑내기 막내라고 이 방 저 방 오가며 심부름을 하지요.
예순이라도 술심부름에 담배 심부름하는, 젊은 것들 다 떠난 산골이라지요.
“동갑이 또 있지요?”
“저어기 저 집...”
“그러게요. 김정옥할아버지네 할머니는 안올라오셨네.”
비가 와서 흘목에서 올라오기가 뭣하셨나 보데요.

다시 노랫소리 높아집니다.
세상에, 어찌 저 가사들을 다 기억하신데요...
“내가 통 나올 수가 없지. 근데 오늘 좀 속이 뒤집어져서...”
뵙기 힘들던 수달이아저씨네아줌마도,
아저씨가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두어 달 전 받으셨지요,
오늘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계십니다.
박희만할아버지네할머니도 이야, 노래 잘하시데요.
“이렇게 4월 21일 모이는 거예요.”
‘학교문연날잔치’도 그리 놀자 약조를 받아냈지요.
“교장도 하나 해야지.”
뭐 하나로 끝날 리가 없는 줄 이미 알지요.
아무래도 올해는 뽕짝이라는 그 노래 좀 익혀두어야겠습니다요, 경로당용으로.

“밤새 놀아야제.”
아무래도 이 어르신들 흥과 체력을 따를 길이 없어
군불 때야 한다는 핑계로 슬쩌기 일어났지요.
아직도 노랫가락 건너옵니다려.
대보름 지나며 거름을 흩치니
새해 농사의 시작이 이렇게 나각을 부는 날이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196 2007. 3.25.해날. 맑음 옥영경 2007-04-09 1188
1195 2007. 3.24.흙날. 비오다 갬 옥영경 2007-04-09 1419
1194 2007. 3.23.쇠날. 맑음 옥영경 2007-04-09 1264
1193 2007. 3.22.나무날.맑음 옥영경 2007-04-06 1185
1192 2007. 3.21.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6 1190
1191 2007. 3.20.불날. 맑음 옥영경 2007-04-06 1158
1190 2007. 3.19.달날. 맑음 옥영경 2007-04-06 1109
1189 2007. 3.17-8.흙-해날. 간간이 해 보이다 옥영경 2007-04-02 1354
1188 2007. 3. 16.쇠날. 가끔 구름 지나다 / 백두대간 '괘방령-추풍령' 구간 옥영경 2007-04-02 1627
1187 2007. 3.15.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1159
1186 2007. 3.14.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1139
1185 111 옥영경 2007-04-02 917
1184 111 옥영경 2007-04-02 996
1183 gs 옥영경 2007-04-02 951
1182 sk 옥영경 2007-04-02 1056
1181 2007. 3.14.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893
1180 2007. 3.14.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947
1179 2007. 3.14.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939
1178 2007. 3.14.물날. 흐림 옥영경 2007-04-02 1009
1177 2007. 3.13.불날. 맑음 옥영경 2007-03-28 125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