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6.불날. 맑음 /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영동 들다


싸락눈 내려 흩날리는 거친 바람 속의 아침입니다.
한낮의 볕이 꽤나 다사로워 눈이야 금새 달아나버렸지만
사나운 바람 기세는 종일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있었지요.

오늘부터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고 있습니다.
어디고 급식을 하고 있는 이 시대에
새삼스레 도시락을 싸며, 것도 괜찮다 싶데요.
엄마와 나누는, 꼭 엄마 아니어도 싸는 이와 먹는 이가 나누는
진한 정감을 되살리며 참 좋은 것이구나 잔잔해집디다.
공동체 밥상에 아이 둘의 도시락이 더해져 펼쳐지지요.
이른 아침 아이의 도시락을 쌌습니다.
엄마가 아빠에게 싸주는 도시락을 보며
저(아이)도 도시락 싸주면 아니 되겠냐 해서
집에서 먹는 밥상에도 도시락을 놓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이의 도시락을 쌀 수 있어 마음 푹했습니다.
날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챙겨주던 제 고교 은사님이 계셨더랬지요.
그 도시락이 저를 키웠던 날들이었습니다.
참 재미없는 세상을 살고 싶게 만들던 당신이셨더이다.
도시락을 열어 먹는 점심,
내년 학년도에도 계속 해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걷기 시작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오늘 영동군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개발논리, 힘의 논리, 경쟁논리, 독점논리로 풀어왔다.
그럼에도 위기가 더 커졌다면
이제는 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순례단장 도법스님이 길을 떠나며 물으셨던 말씀이 이러하였지요.
순례단은 생명평화의 기운을 나누며
한 주 동안 영동 구석구석을 걷게 될 것입니다.
황대권샘과 양문규샘이 낮 4시에 온다는 순례단을 맞으러
일찌감치 군청에서 기다리자며 3시 약속을 만드셨습니다.
마침 읍내에 나가있던 길이어 좇아갔다가
들고 있던 일이 있어 민원실에 들러 PC를 쓰려는데,
이런, USB를 꽂을 데가 없네요.
마침 한 계장님을 만났지요.
우리 공동체에서 필요한 일을 서너 차례 돌봐주신 적이 있었는데,
양보한 책상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이는 서 계셨지요.
지역에서 뿌리를 잘 내려가는 것만 같아 마음 흡족하더이다.
고맙기야 무에 말을 더할까요.

4시, 군청 마당에서 영동의 생명평화를 위한 백배서원이 있었습니다.
막 닿은 도법스님과 순례단원들,
그리고 생명평화를 나누려는 지역의 여러 어르신들이 함께
둥글게 서서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몹시도 거칠었으나
그보다 더한 ‘각성’이 우리를 후려치고 있었지요.
“우리나라의 의지처인 이웃 나라의 중요성을 간과해온
내 나라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그렇게 한 배,
“우리 가족의 의지처인 이웃 가족의 고마움을 외면해온
가족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그래서 한 배,
“내 생명의 어버이신 그대의 존귀함을 가볍게 취급해온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삶을 참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배,
“인간 중심의 이기심, 내 나라 중심의 이기심, 내 가족 중심의 이기심,
자기 중심의 이기심으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한 배, 한 배, 한 배...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없어지고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평화라 하였습니까.
미움을 걷고자 하지요,
정녕 평화롭고자 하지요...

저녁을 먹으며 들어온 이들과 맞이한 이들이 언 몸을 풀며 인사를 나눈 뒤
7시 영동문화원으로 옮겨 도법스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순례단이 걸었던 길에서의 만남과 나눔을 보여준
2부작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이었지요.
“‘생명이 정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인가?”
그리 물으셨습니다.
막연히 생각할 때는 그저 막연하지만, 구체적으로 내 문제로 가져오면
그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우선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 생명이라셨지요.
어쩌면 우리는 이 한 목숨을 위해 사는 것인데,
오늘날 그 생명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이 생명이고 저 생명이고 온통 문제 투성이지요.
그걸 어쩔까, 어디서부터 풀어갈까, 그 뿌리는 무엇일까,
그리 보자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투자하자,
자기를 아는 데에 성찰하는데 투자하자.”시데요.
즐거움을 돈 벌어 하려는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안하고
안 되는 일에 왜 목을 매는가 다시 물으셨습니다.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나부터 하고 이웃에게 하자,
마음을 먹고 마음을 내자셨습니다.
“지역에서 우리를 도구로 성찰의 기회로 삼고 모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그리 말씀을 하시데요.
영동은 지역그물망이 약한 곳인데
이번 탁발순례를 위한 모임이 연대의 끈을 마련하는 훌륭한 장이 되겠구나 짐작합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는 날이 또 얼마나 있던가요.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뜨고, 낮추고 비우고 나누고,
상대방의 개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이런 신념과 철학을 내 본업으로 생각하는 자질을 가꾸어 내는 것!”
그대도 여기서부터, 당장, 걸어보지 않으실는지요...
(아, 게서 우리 학교 행사 때마다 마음 나누러 오는 양강의 종훈네를 만나
늦은 밤에 댁까지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답니다.)

오후, 댓마할머니들이 급히 학교에 좇아오셨습니다.
종훈이네 수도가 터졌다네요.
아빠는 수원에 가 있고, 엄마는 읍내에 나가 있으니
사람이 없을 밖에요.
그래서 수도보수가 오늘 아이들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일이야 어른들이 하지요.
종훈이는 바닥 물을 닦고
류옥하다는 열심히 왜 터졌는가를 연구하였다데요.
종훈이는 손님들 왔다고 땅콩과 달걀후라이를 해서 내기도 했답니다.
잘도 크는 아이들이라지요.
일을 마치고는 조릿대집 곶감집 뿐 아니라
동네를 돌며 혹여 터질 것 같은 수도는 없나 살피기도 했다 합니다.

공동체어른들은 새학년도 아침해건지기 첫모임을 했습니다.
잠시 놓았던 영성훈련의 시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 아는 공동체식구들로서는
너무나 자연스레 새해 시작을 이리 하는 게 맞다 방향을 잡고 있었더랬지요.
하필 그 시작이 무척 찬 날 이른 아침이긴 하나,
그래서 한편 날카롭게 의식을 잘 깨우게도 했습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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