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9.쇠날. 아주 괜찮게 맑은 / 생명평화탁발순례단과 함께 걸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3월 6일 불날부터 영동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이 나흘째,
물꼬 식구들이 더해졌지요.
날이 차거나 궂은 며칠이더니
아이들 걷기 좋으라고 하늘이 짱짱합니다.
용화에서 800고지 도마령을 넘어 가도 가도 그 자리라는 고자리를 지나
상촌면소재지 임산에서 만나기로 하였더랬는데,
웬걸요, 도마령이 얼어붙었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영동 읍내에서 양강 학산 쪽으로 걸었던 순례단이
다시 그 길을 되돌아 임산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두령을 향해가는 궁촌에서 길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진행차량과 물꼬 차가 다시 움직여 일행을 부려주었지요.
“어, 여기네!”
물꼬 아이들이 반가워라 했습니다.
겨울이면 산을 넘어 이 마을로 들어오는 물꼬 식구들입니다.
겨울 한 가운데서 하는 세 차례의 산오름에서
두어 번은 예로 오는 거지요.
예서 걷고 또 걷다가 용케 차를 얻어 타고
임산에서 다시 물한계곡쪽으로, 그리고 대해리를 돌아왔더랬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고, 끼리끼리 더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
그리고 우리가 이 땅 오데 만큼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나를 생각해보지요.
계절자유학교를 다니러 온 아이들로서도
새로운 경험의 자리였다마다요.

다리를 건너 산 아래 마을에서 시작하여
구불구불 논두렁도 걷고 밭두렁도 걷다 다시 마을길로 나와서는
큰 도로로 이어진 다리를 다시 건너 나왔지요.
도법스님, 생태공동체 운동가 황대권샘, 민예총의 양문규샘,
순례단의 김지훈님 백선희님 양승룡님 박한용님 이상환님 이문희님 윤민상님,
어제 용화에서 결합한 강원도에서 이사 온 수행자님,
물꼬의 소사아저씨, 목수샘, 통합교과샘,
그리고 아이들이 그 길을 어깨 겯고 걸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들도 있으니 둘씩 둘씩 짝이 바뀌가며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설전이 오고가기도 했지요.
말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들을 줄 아는 좋은 귀를 가진 서로입니다.
이런 자리여서 더욱 그러할 겝니다.
7km쯤에 임산이 있었지요.

어느새 점심입니다.
매곡의 시인 박희선님이 공양을 한다셨습니다.
차가 와서 직지사 아래 보리밥집까지 사람들을 실어갔습니다.
밥 한 번 먹자고 게까지 20여 분이나 차를 타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손을 대접하려는 마음 깊음을 모르지 않아
모두 즐겁기만 합니다.
“대해리 이장이 내 친군데...”
박희선님은 울 동네 이장님이랑 초등 동창이라십니다.
생명탁발순례가 이러합니다.
지역의 사람 사람을, 마음 마음을 엮어내는 계기가 되는 게지요.
“이장이 못됐게 굴면 당장 나한테 말해요.”
“우리 동네에서 딱 한 사람이 자꾸 발을 거는데,
하필 그 분이 이장님이시라니까요.”
물론 친구 분이라시니 면면하게 던진 농이였지요.

다시 면사무소로 이동해 매곡을 지나 걸었습니다.
사실은 오늘 저녁밥을 공양할 이가 사는 곳이 매곡이라는 잘못된 정보로
우리는 이미 반나절치의 량을 넘어 걷고 있었지요.
옆으로 이어지는, 큰 물난리가 난 뒤 정비한 하천이
여느 곳처럼 이만저만 흉물스럽지 않아 이미 가벼운 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어쩐답니까, 어쩐답니까.
길 역시 걷는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
아슬아슬 차를 피해 외줄로 걷고 있었습니다.
“100년에 한 번 올 수해를 대비해서 맹 시멘트로...”
“100년에 한 번 오는 건 맞아야지, 그걸 피하자고 저리 만들어?”
“문제는 과거 100년 만이던 것이 기온변화로 수년 만에 일어난다는 거지.”
말이야 않지만 위기감을 느끼지 않은 이가 없었을 테고
우리가 이 지구 위에서 온전히 살아가자면,
아니 적어도 다음 세대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으로 뭔가를 해야지 않은가
스스로 묻고 있었을 겝니다.

하루 15-20km를 걷는다 하니 반나절이면 7-10km,
족히 그 양이 넘어섰지요.
“광평이라는데, 황간도 더 지나야 된다네...”
이런, 아직도 2km는 가야할 걸요.
그래도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아래로 굴다리가 있다 하니
지름길일 것이라 발이 가벼워집니다.
황대권샘은 긴 억새를 꺾어 아이들을 간질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리를 질질 끄는 이를 업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이의 팔짱에 매들려 걸을 때도 있습니다.
짝을 바꿔가며 서로 속내를 나누기도 합니다,
때로 주절주절 자신의 이야기를,
아님 상대를 향한 질문으로,
아니면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유의 언어들로.
어느새 모두 집안 식구처럼 마음 언저리의 경계들이 그만 흐릿해졌습니다.
이렇게들 그간 걸었겠습니다.
묵언 속에 그저 걸으며 자신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가기도 했겠고,
걷는 거룩한 행위 안에 서로 부딪히겠다 싶음직한 점이 그만 무색하기도 했겠고,
어느새 형제처럼 애틋함이 배기도 했겠습니다.

걷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풀려고 했던 모순과 문제들이 풀리기는 커녕 왜 더 복잡해지고 위험해지는가,
평화롭고 행복하고 싶은데 왜 더욱 피폐해지고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걸까,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했지만
세상은 더욱 험악해졌습니다.
왜 그럴까, 물으며 걷습니다.
“평소에 내 삶의 현장에서 생명평화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키우고,
풍토와 문화를 가꾸어내는 것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도법스님) 안되겠기에
생명평화의 문화를 일상문화로 만들어내자는 순례입니다.

영동한살림생산자모임을 이끄시는 조정환샘댁에 이르렀지요.
황간 광평농장입니다.
집앞의 잘 가꾼 잔디밭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절명상을 하였습니다.
백배서원이지요.
떨어지는 해가 나누는 빛이 절하는 이들의 몸 위로
초가지붕 달빛처럼 앉았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하루입니다.
준비한 저녁은 오늘을 걸은 이들 뿐 아니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과도 나누었습니다.
“어, 예서 뵙네요.”
물꼬도 영동에 산 시간이 적지 않아
이래저래 안면이 넓었더랬지요.

순례단은 어제 걸었듯이 오늘 걸었고
오늘 걸었듯이 내일 또 걸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계속 걸을 테고
어떤 얼굴들은 바뀌어져 있겠지요.
그가 누구이든 밥을 얻어먹으며 아래로 내려가는 연습을 하겠지요,
걸으며 자신을 돌아볼 테지요.
밥을 탁발하고
나눔과 헌신을 탁발하고
이해와 보살핌을 탁발하고
사회모순을 해결할 힘을 탁발하고
이 사람을 만나서도 탁발하고
저 사람을 만나서도 탁발하고
이곳에 가서도 저곳에 가서도 탁발하고...
“...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봐야 더 잘 싸우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더 비정하게 싸우자는 얘기뿐입니다... 이런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미래를 다루면 그동안 우리가 되풀이해 온 모순을 확대 재생산할 뿐입니다... (이 일이)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싸워서 이기는데 바쳤던 에너지의 50프로만 이곳으로 돌리면 됩니다... 우리가 왜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가야 하는가는 간단합니다. 그 길로 가면 문제가 줄어들고, 풀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죽어도 간 것입니다... 부처 간디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뜨고, 충실하여 인간적 품위를 살립시다. 고층 아파트와 고가의 자동차, 수십억의 통장은 우리 삶을 평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뜨고, 상대방의 개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이런 신념과 철학을 내 본업으로 생각하는 자질을 가꾸어 내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을 하자는 것입니다.”(도법스님)

저녁을 먹고 마을회관에서 늦도록 주민들과 하는 대화모임이 이어졌지만
물꼬 식구들은 9시가 못 미쳐 대해리로 들어왔네요.
이 귀한 일을 시작한 분들에게 감사했고,
이 귀한 일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고마웠고,
이 귀한 일의 한 자락을 잡아 기껍고 또 기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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