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10-11.흙-해날. 눈보라 / 달골에서 묵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이 비에 어쩌나...’
흐리던 날이 오후 3시 무렵 그예 비를 뿌렸습니다.
황간에서 추풍령을 걸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다시 황간으로 이동해 노근리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는 시간입니다.
금새 눈보라로 변했지요.
걷기도 만만찮은 하루에 축축해진 몸으로 곤하기 더하겠습니다.
“지금 올라갑니다.”
4시에 전화가 울렸지요.
오늘 밥공양은 물꼬생태공동체(자유학교물꼬)가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생명평화탁발순례단과 같이 걸었던 걸음은
늦은 아침을 불렀지요.
아이들이야 물어 무엇합니까,
이른 아침부터 마을을 펄펄 뛰어댕깁니다.
달골에서 손님을 맞자하고 이러저러 정리를 좀 하고,
식구들과 점심을 먹은 뒤 장을 보러 다녀오는데 울린 전화였지요.
막 마을로 돌아오던 참에 화들짝 놀라며 받았습니다.
많은 식구 치르기에 만만한 월남쌈을 차리려는데,
준비랄 것도 없겠다고 너무 여유를 부렸던 모양입니다.

가마솥방에서 짐을 풀자마자 사람들도 들어섰습니다.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부산해졌지요.
마흔은 되겠지 싶습니다.
오고 있는 이들도 있다 했지요.
“조직국 모임도 있고, 청년모임도 있고...”
진행을 총괄하던 윤민상님이 주말이라 사람들이 몰리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었던 바가 있습니다.
물꼬에서 젤 넉넉한 거야 김치와 밥일 진데 못 맞을 까닭이 없다마다요.
잠자리 또한 올해는 얼마나 넉넉한 이곳인가요.
아이들집(기숙사)만 해도 이번 학기는 아이들이 제 집에서 다니고 있으니
손님방(게스트 하우스)이 더 늘었지요.
부랴부랴 교실에 난로를 켭니다.
하루를 정리하며 백번 절하는 절명상을 하는 동안
한 방송국 카메라가 열심히 돌아갔고,
걷지는 않았으나 저녁모임을 위해 들어온 객들은 가마솥방에 모여 도란거렸습니다.

“도와드릴 것 없어요?”
임산보건소의 장은희님이 양문규샘이랑 오셨다 부엌으로 들어오고,
마을식구 희정샘도 내려와 손을 보탰습니다.
앉았던 이들에게 양송이 껍질을 좀 벗겨 달라 부탁도 하였지요.
“간 사람들도 있는데...”
황대권샘은 음식이 남을까 걱정하셨는데,
웬걸요, 그래도 족히 마흔은 저녁밥상에 앉았습니다.
한살림의 조정환님이며 농부시인 박운식님, 서송원농장의 내외분,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과 몇은 서둘러 돌아가셨네요.
눈 때문에 길이 어려울까 미리 나선다고는 하였으나
불어난 공양객들로 혹여 준비하는 쪽에서 곤란하잖을까, 배려도 들었겠습니다.
공동체아이 류옥하다가 열심히 먹는 법을 설명했고,
식은 물을 갈아가며 모두 넉넉하게도 먹었더랬습니다.
“정말 자꾸 들어가네...”
도법스님, 황대권샘, 박한용샘, 양승룡님 자리가 젤 길었지요.

7시, 달골에 오릅니다.
창고동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소 치는 이철수님도 오고
양강의 종훈네도 오고
상주의 환경농업학교 오덕훈님 가정도 오시고
평화의 마을 권술용샘도 오시고...
(아, 고자리에 귀농해있는 분들이 오는 길에 차가 미끄러졌다 했는데,
어째 몸이 상하진 않으셨을 라나요.)
순례단의 여정을 영상으로 본 뒤
물꼬도 인사를 좀 해달래데요.
“사는 일이 늘 멀고 또 멉니다.”
마음을 더 내지 못하고 시간을 더 내지 못해
찬 곳에서 맞아 죄송하단 말씀 먼저 전하였지요.
창고동도 그제야 무쇠난로를 폈더랬거든요.
논두렁 오정택님이 며칠 전 보내오신 멋진 피아노와
봄이 머지않은 곳에 있다 전하는 후레지어 다발이
공간의 썰렁함을 그나마 좀 덜고 있었지요.
올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노라,
그 여유 속에 귀한 손을 맞아 기쁘다 전하였습니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좋은 자극으로 삼겠다 다짐도 하였지요.

황대권샘의 ‘대안사회의 모델 생태공동체-생태마을 만들기’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자본주의는
상품이라는 물질적 관계를 통해 인간사회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삶의 근본이랄 수 있는 인간성(영성)의 상실과 자연의 파괴를 불러 왔지요.
인간성 회복은 공동체를 통해,
자연성의 회복은 생태주의를 통해 이룰 수 있겠는데(하여, 생태공동체)
그것을 만들어가는 일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셨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전통마을과 급조된 도시환경을 토대로 다양한 공동체적 실험들이 행해지고, 다음으로 한국 특유의 교육 열기에 힘입어 대안학교를 통한 다양한 공동체 실험이 눈에 띤다. 예컨대 충북 영동의 산골 오지에 있는 ‘자유학교 물꼬’의 경우,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들을 위한 실험학교가 아니라 학교가 자리고 있는 지역 마을들을 묶어 하나의 생태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소수의 도시 아이들(도시를 떠나온)을 데리고 실험적인 대안교육을 하는 주제에 너무 황당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이들이 추구하는 교육목표를 달성하자면 그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지역성이 결여된 전국구 학교라는 것이다. 제도교육에 실망한 도시의 학부모들이 친환경적 분위기에서 전인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기대로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나와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를 바란다. 부모들의 기대는 그것뿐이다. 부모들의 기대가 그러하니 대안학교 본래의 이념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타협하고 만다... 대학이란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기껏 대안학교를 나와 기존의 대학에 가버리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대안이란 말인가!”(강연록에서)
‘지역성’은 대안 프로젝트의 핵심요소이지요.
학생만 달랑 지역에 보내놓고
졸업하면 다시 도시로 돌아와 경쟁적 자본주의 체제에 복무하게 한다면
대안학교는 또 다시 있는 자들의 사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진정으로 대안적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삶의 터전을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옮겨와 지역을 생태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같은 글에서)
그런데 이 일은 대안학교 교사나 부모들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과 뜻있는 외부 인력이 결합하여 해낼 수밖에 없다셨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가 오늘의 중심 이야기였더이다.

술상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그래도 밥을 먹어야...”
그래서 누룽지도 나왔지요.
전골에 두부김치, 물꼬산 은행, 젯상에 온 사과와 곶감도 놓이고,
포도주 도가지는 아예 통째(?)로 달골에 실려 왔습니다.
유명한 상촌막걸리가 또 빠질 수가 없지요.
생명평화를 어떻게 나누어나갈 것인가,
지역 안에서 어떤 작업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밤이 하얘지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마을 이사 권술용샘이 여러 번 불러주셨는데,
손님들 바라지로 자리가 다 끝나갈 무렵에야 함께 했습니다.
올해는 물꼬에서 단식프로그램도 하나 꾸리자 하는데,
평마단식(평화의 마을 새해 단식과 여름 단식)이 또 좀(조옴) 유명(?)한가요.
한 번 뵙고 조언도 들어야 겠다 하고 있을 적
이렇게 당신을 뵈었습니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첫만남을 말씀하시며
동지를 만난 감흥을 그리 표현해주셨지요.
저야말로 무어라 기쁨을 전할 수 있었을 려나요.
영원한 청년이신 당신이 또 물꼬 삶에 길눈을 밝혀주시겠습니다.
대안학교를 거친 두 아이가 이제는 사회에 진출한,
귀농 십 년차 박한용샘이랑도 자리가 길었지요.
물꼬 식구들 하나 하나 사연을 물어주시고
살아온 날들의 지혜를 나누어주셨지요.

눈보라가 짙어졌습니다.
내일 산길이 얼어붙기라도 할세라
차를 평지로 다 내려놓았지요.
강연 막바지에 생명평화결사의 청년모임 식구들이 닿았고,
햇발동 거실을 차지한 뒤 새벽을 부르데요.
아래에서 회의를 마친 조직국 사람들도
자정을 넘기며 올라와 자리를 더했는데,
시인 박두규님, 백두대간연구소의 김하돈님도 같이 계셨네요.
노래하고 화답하는 소리가 달골의 밤을 채웠습니다.
대해리로 들어왔다 먼저 간 이들, 저녁을 먹은 이들, 늦게서야 들어온 이들,
예순쯤 이 골짝을 찾았나 봅니다.
햇발동과 창고동의 잠자리에도 스물 댓 명을 넘어 갔지요.

이튿날,
이른 새벽 도법스님은 서울로 강연을 떠나셨고,
오늘도 순례단은 길을 나섰습니다.
스물 남짓 사람들이 누룽지를 먹고 창고동에서 백배서원을 하였지요.
세 해를 넘게 순례길이 가능했던 것은
걷기와 절하기 덕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탁발한 이들에게 전하는 ‘생명평화등불’이 물꼬식구들에게 건네지는 것으로
밥공양 임무가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심천을 향해 떠났지요.

느지막히 일어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누룽지 상을 보고,
청소기를 돌리고 정리를 합니다.
“하루는 청소, 하루는 몸살?”
애썼다는 인사가 길었습니다.
기둥뿌리를 뽑고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들 걱정도 해주셨지요.
잘 쓰여 기뻤습니다.
오래 잘 쓰이고 싶습니다.

아, 논두렁 행운님이 먼길 오신다셨더랬는데,
이 봄날 봄처럼 오신댔더랬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마음 쓰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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