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5. 달날. 눈비, 그리고 지독한 바람

조회 수 1192 추천 수 0 2007.03.15 09:13:00

2007. 3. 5. 달날. 눈비, 그리고 지독한 바람


< 형님 되는 날 >


눈비가 지독한 바람에 흩날립니다.
어쩔이거나요, 어제 길바닥을 뛰어다니던 개구리들을?
엊저녁 울어대던 맹꽁이는 어디로 잘 몸을 들였을려나요?
이 산골의 썬데이서울 류옥하다는
바삐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벌개져서 들어옵니다.
“보고하겠습니다.
길에 개구리들이 얼어서 널려있구요,
표고버섯장 비닐하우스들이 일부 날려갔구요,
우리 거름장비닐하우스도 지붕이 다 날아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무도 나와있지 않고,
이 기세로 봐서 아무래도 피해가 더 있을 것 같애요...”

새학년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산골에
이제 갓난쟁이를 포함한 아이 셋만 남았습니다.
마침 상설 3년을 보내며 이제 좀 가늠이 된다 숨결을 고르는 해이기도 하지요.
고마울 일입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몸 쓸 일은 많으나 마음 쓸 일은 또 덜어
한 해가 풍성하겠습니다.
올해는 새로 들어오는 아이가 없어
‘첫걸음 예(禮)’(입학식쯤 되겠지요) 역시 없는데,
대신 한 학년을 올라가니 아이들의 ‘형님 되는 날’이 있지요.
아이가 하나여도 학교는 학교이고
혼자 살아도 한 살림이듯 학교 한해살이는 그리 돌아갈 것입니다.

낮 2시, ‘형님 되는 날’ 예를 치릅니다.
십 년의 새로운 학교 꿈꾸기가 2004년의 ‘학교 문 연 날’을 맞았듯
다시 십년의 생태공동체마을 꿈꾸기가 이어지는 ‘달골’ 들머리에다
벚나무 두 그루를 심기로 하였습니다.
“날이 이래서...”
우리가 어디 갈 것 아닌데 며칠이 늦어진들 무슨 대술까요,
날 좋은 날 모여 심자 하였습니다.
아이들과 모여 앉아 무수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 고움으로 즐거움으로 고마움으로 느꺼움으로
한 해를 살자 합니다.
다음은 장을 보러 나갔지요.
아랫마을 동섭이아저씨가 어제 경로당에서
장구와 쇠 징소리를 공양한 아이들에게 큰 돈을 주었더랬지요.
농협마트에서 우리끼리 잔치를 할 준비를 합니다.
“너무 비싸.”
주어진 돈이 있으니 규모를 그려가며 물건을 담아야 하니,
아이들은 나름대로 까탈스럽게 굴게 됩니다.
과일샐러드와 떡볶이가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는데,
장을 훌륭하게 보데요.
부엌일도 낯설지 않은 그들인지라
금새 앞치마를 매고 들어와서 과일껍질을 벗겨 토막을 내고
야채를 다듬어 썰었습니다.
어른들을 불러 참을 내었지요.
어른들은 덕담으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라, 즐겁게 지내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라, ...

“설거지는 아이들이 하지?”
지나가는 말로 그러고는 쏟아져 나온 빈그릇들을 개수대에 담아두었지요.
어차피 저녁밥을 준비하면서 되니까요.
저녁을 지을 때까지 교무실 일을 좀 해야겠다 하고 다녀왔는데,
누가 설거지를 한 것일까요,
깔끔하게 해놓았습니다.
설거지 해놓은 품새가 아이들 손인 것 같지는 않고,
상범샘은 일찌감치 교무실에 들어간 것 같앴는데,
그럼 젊은 할아버지가 하셨나,
요새 희정샘이야 아이를 돌보느라 거의 부엌에 오는 일이 없고...
그때 류옥하다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혹시 설거지 누가 했는지 아니?”
“내가, 아니 우리가.”
종훈이랑 둘이서 했답니다.
커다란 압력솥까지 말꿈히 씻어서 엎어놓았데요.
“밥하기 좋았지? 내가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
이 아이들과 보낼 일년은 또 얼마나 유쾌하려나요.
“어, 엄마!”
저녁에 군불을 때며 솥단지를 열어 물을 채우는데,
마루문을 열던 아이가 기겁을 하며 봉당을 내려섰습니다.
무거운 걸 든, 가끔 무릎앓이와 어깨앓이를 호소하는 엄마를 보고 놀란 거지요.
물통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으며 물을 채웁디다.
아이들이 잘 자랍니다.
고맙습니다.
이 산골 아이들 모자라는 거야 어디 한두 가지만 될까요,
그러나 저 생이 선할 것을 굳게 믿습니다.
크게 어긋나지 않고 살아가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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