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7.물날. 맑음 / 조릿대로 조리를 엮었지요

조회 수 1347 추천 수 0 2007.02.08 11:51:00

2007. 2. 7.물날. 맑음 / 조릿대로 조리를 엮었지요


학교 앞집 할머니네 마실을 갔습니다.
한 해내내 살아도 겨우 2월에나 있음직한 일이지요.
단식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랑 날마다 산책을 가자던 길이었습니다.
된장집 앞집 이모님(여는 다 우리식으로 그리 일컫습니다)도 와 계셨지요.
학교 농가 곶감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이들이
달걀을 잘 나눠주고 갔다며 고마워라셨습니다.
“어째 그리들 갔어? 하기야 산골 사는 게 힘들어.”
안타까워도 하셨지요.
어르신들의 이 겨울 근황을 물으니
경로당에서 복조리를 엮기 시작했다 합니다.
“아유, 저도 불러주잖고...”
이모님을 앞세우고 경로당으로 갔지요.
남기원할아버지, 신동훈할아버지, 송용석아저씨, 윤극중할아버지, 윤상언할아버지...
어찌나들 반겨주시던지요.
“오늘은 안 만들어?”
“이제 팔아야지. 다 팔면 맹글지.”
가르쳐달라 조릅니다.
정말 조릿대로 조리를 만들데요.
조릿대, 조릿대 부르기만 했지 그걸로 조리를 만드는 건 첨 보지요.
그 왜 키 작은 대나무로 보이는,
대나무 이파리를 달았으되 키가 작고 가느다란 나무 있지요,
그게 조릿대랍니다.
조릿대 잘라오는 이, 쪼개는 이, 다듬는 이, 그리고 엮는 이로 나뉘어
온 경로당 회원이 다 같이 한 작업이시랍니다.
“화투 치고 술 마시고 하릴 없이 그럴 게 아니라...”
건실하게 놀자는 취지라데요.
“백 번 잘하셨어요.”
저도 덩달아 힘이 났지요.
이 어르신들, 물 설고 땅 설은 곳에 처음 왔던 십년 전부터
얼마나 큰 언덕이 되어주셨던지요.
목소리 큰, 젊은 축 노인네 하나 몇 해를 심하게 텃세를 부릴 때도
개의치 말고 살아라 용기를 주셨더랍니다.
“교장선생님도 좀 사.”
“아무렴요, 우리가 딱 세 개만 사께.”
매듭을 묶은 게 곱지 않아 한 짝 한 짝 다시 리본을 매드렸더니
그 중에 가장 고와뵈는 세 짝을 내주십니다.
이제 더는 안 만들거라신 걸 또 졸라 기어이 잡으시게 했지요.
짐작했던 대로
윤극중할아버지와 조중조할아버지가 엮은 역할이었던가 봅니다.
이 어르신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이 귀한 기술들을 묻혀지잖을까,
그래서 늘 마음이 조급합니다.
“교장선생 가르쳐주고 나면 우리 장사 이제 고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지.”
인숙이네 할마씨가 흥을 돋우셨지요.
“그래 배가 안고파?”
단식 나흘째라 하니
그래도 자꾸 잊으시고 술을 권하셨지요.
한 잔만 해, 하시며 대접에다 소주 반병 부어 내미시는 이 마을 술잔 말입니다.
저 아래 황토산장의 목수 동섭이 아저씨 올라와
어르신들과 술을 나누고 계셨네요.
“어르신들, 학교도 좀 도와주고 그래.”
취기 오른 동섭이 아저씨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십니다.
“우리가 뭘 돕겠어? 학교가 술 먹으러 오라고 하면 가고...”
“맞아요, 바로 그거야.
요새 못 먹고 사는 사람이 있어? 그냥 술 한잔 나누고 싶다 마음이지.
우리가 차리면 얼마나 차리겠어요? 그냥 어르신들 그렇게 뵙고 싶은 거지.”
“나는 학교 오라는데 빠진 적이 없어.”
“나두야.”
“그러고 본께 여는 다 가는 이들만 있네.”
방에 저녁답까지 남은 분이
그렇게 남기원할아버지, 신씨할아버지, 꺽중할아버지셨지요.
어르신들과 얘기할라면 목소리를 키워야 합니다.
꺽중할아버지만 해도 올해 여든 다섯이거든요.
세 시간여 앉았다 돌아왔더니 기진맥진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학교랑 귀신날이나 정월 어느 날쯤 놀자셨는데,
정월 대보름(3월 4일)에 그러자 약조를 하고 왔지요,
달집도 태우고.
작년엔 눈이 많아서였던가, 말이 많아서였던가,
어찌 어찌 대보름잔치도 그냥 지났더랬거든요.

달골 창고동 2층 보일러가 모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터진 일이 있었습니다.
햇발동은 심야보일러고 창고동은 기름보일러인데
(날이 다사로울 땐 햇발동 온기로만 창고동까지 데울 수도 있지요),
기름 좀 아낀 일이 화근이 되었지요.
오늘 공사가 있었고,
이사를 나가 어수선한 햇발동 부엌 냉장고에서 나온 것들도
마침 실려 내려왔습니다.

부엌 앞 복도에 쌓여서 옷방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을
희정샘이 죙일 끄집어내서 헤집었습니다.
일을 잘하기도 하거니와
공동체식구로 오래 살았던 손이라 정리가 좀 되고 있었지요.
아이 키우는 동안 말만 마을식구이겠습니다.
가만히 앉았을 사람도 아니고,
여전히 공동체의 큰 식구이네요.

연탄을 500장 가까이 들였습니다.
젊은 할아버지랑 상범샘, 류옥하다가 힘을 썼지요.
이제 쓸 일 없다고 싸게 가져가라,
저 건너 대식이할아버지네 연락이 왔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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