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 5.불날. 흐림

조회 수 1274 추천 수 0 2006.12.07 10:03:00

2006.12. 5.불날. 흐림


“신이 되고 싶습니다.”
무자비하게 살육당하는 유대인들을 눈앞에서 보며 한 랍비가 그리 말했다지요.
아우슈비츠의 아수라장에서도 누군가 그리 되내었을 겝니다.
“저 악을 선으로 바꾸시려구요?”
"아니요."
그럼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 그토록 간절하게 온전한 ‘이해’를 화두로 삼고 있는 요즘이랍니다.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한줄 쫘악!”
아이들을 하나 하나 끌어안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어제 아침 심각하게 주고받았던 이야기에 취해 안는 것을 잊었는데
오늘 아이들을 안으며 좋고 또 좋았지요.
마음이 온통 환해지는 겁니다.
어른들 모임에서도 시작이 그러해도 좋겠다는 생각 들데요.

아침에 읽어주는 장편 동화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지요.
“아아...”
안타까워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느 순간 다음 이야기가 뭘까 숨죽이며 듣기도 합니다.
평화 나눔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도 불렀지요.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소년들은 어른 되나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갈매기는 쉴 수 있나
얼마나 긴 세월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 얻나...”
쉬운 곡인데다 피아노로 두어 번 친 적 있다고
바로 따라 부르고들 있었습니다.

“‘숲이랑’ 시간은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을까?”
숲에서 만났던 것들, 자기에게 특별히 의미를 가졌던 것들을
모두 숲을 이루고 서서 전하기로 합니다.
청솔모를 봤던 동희,
꿩 소리에 놀랐던 종훈,
산초와 초피나무에 흠뻑 빠졌던 류옥하다,
난티잎개암나무를 안 뒤 그 아래서 개암을 찾았던 나현,
비탈길에서 노박덩굴을 발견했던 창욱,
싸리버섯을 따내던 령,
대나무가 좋은 신기,
소나무를 소개하겠다는 정민,
까마귀밥여름나무 열매를 인상깊어하던 승찬이었지요.

교무실에서 교사회의가 있는 잠깐 사이
국화샘이 어느새 다녀가셨습니다.
가마솥방에서 김장김치도 나누었다지요.
아이들이 있는 마지막 주까지 걸음을 해주실 참이십니다.
정기적인 다른 바깥수업은 11월 낙엽방학 전에 모두 끝났는데
국화만 잔치의 달에 이어지고 있지요.
쉬십사 말씀드렸으나
당신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하겠다셨더랍니다.

낼 공동체식구 하나가 생일을 맞았는데
마침 오늘 벌써 네 해를 넘게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기락샘이 오기도 한 날이라,
또 마을 식구들이며 밥알들이 이래저래 학교에 모이기도 하여서
국수 본 김에 혼례라고 잔칫상이 마련되었습니다.
공동체식구인 기락샘은 연구소에서 일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대학에서 나오는 학비와 생활비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 빠듯함에도 가족들 용돈까지 챙긴다지요).
해마다 두어 차례는 학회에서 논문도 발표하며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행운도 누리고 있지요.
부부동반이 가능하도록 항공권과 숙박비를 지원받는데
방학조차 계절학교일정으로 보내는 물꼬로서는 짬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밖에요.
이제 식구들과 더는 떨어져 지내지 않으려고
미국에서 자리 잡는 좋은 제안 하나도 결국 버리고
내년 여름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려 한답니다.
정운오아빠가 돼지껍데기를 찾아 김천까지 다녀오고
김점곤아빠가 상촌막걸리를 실어왔으며
마을식구들이 과일을 내고
가마솥방에서 엄마들이 표고며 이 안에서 그동안 애써서 얻은 것들로 갖은 음식을 냈지요.
두텁떡에 들어간 대추며 잣이며 밤이며 은행이며 호두까지도 말입니다.
그런데 동희가 제게 무언가 챙겨주며 그랬던가요,
“귀하신 분이잖아요.”
라고 했지요.
순간, 저는 정말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귀해질 수도 있지만
타인을 통해 귀해지기도 한다지요.
제 앞에 선 ‘그’(일반대명사)를 귀한 사람으로 여기도록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침,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다 맞은 편 방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달골 햇발동에선 방문을 닫는 일이 드물거든요,
이 주에 들어서야 추위에 문을 닫고 있지만.
“안녕히 주무셨어요?”
고개를 끄덕여주다 문득 생각키는 일 있어 다가갑니다.
“혹시 내가 아침에 말을 잘하지 않는 까닭을 아니?”
“고요를 깨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3년이 다 되어가는, 함께 사는 동안 설명을 한 적은 없었을 겝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가 그리 짐작하고 있었지요,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은 성대결절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예방책이기도 하답니다.).
어쩌면 함께 오래 살았던 아이가 올해 같이 살기 시작한 어른보다
이 곳에 대해, 혹은 이 곳의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많겠다 싶데요.
사람 사이의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됩디다
(하기야 세월이 흘렀다고 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가며 더러 생기는 오해, 혹은 관계의 어려움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삶에 대한 통찰,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레 물에 푼 잉크마냥 불편한 마음이 번지고 퍼지고 엷어져서는
그만 편안해(무색해)지기도 하지요.
닥치는 문제마다에 반드시, 그것도 말로 다 풀겠다 안달할 것도 아닌 것이
또한 그 까닭이기도 하겠습니다.
물론 당장의 설명이 이해를 더 많이 하는 기재가 될 수도 있겠지요만.
말하다보니
잘 이해하고 산다는 것도 결국 자기성찰, 깊은 사색이 전제되는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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