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1.달날. 맑음

조회 수 1107 추천 수 0 2006.12.15 13:40:00

2006.12.11.달날. 맑음


기온이 쑥 내려갔습니다.
서리가 눈처럼 내려있는 아침입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속도가 느린 올해입니다.
그런데 겨울준비를 이 안의 손으로만 하는 게 아니랍니다.
달골 햇발동 거실에 한기 가득하단 소리를 들은 류옥하다 외할마씨는
카펫을 챙겨 보내주셨고,
한성종합기술단의 김황평대표님은 커다란 상자 하나를 보내오셨지요.
공동체 아이 겨울 옷가지와 양말들, 털부츠에 학용품,
그리고 조립상자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내오는 소식도 푸근하지요.
십여 년은 족히 된, 계절학교에 오던 안동의 초등생 여정이와 수정이는
대학생 고교생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연락을 해왔고,
역시 십년도 전에 가르쳤던 제자 종창이는
스물여섯의 청년이 되어 늦은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스한 날들입니다.

우리말글에서 썼던 시를 담아 작은 시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쓰면 안돼요?”
공책에 남아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승찬이는 새로 시를 썼고,
동희랑 창욱이도 더 좋은 시상이 떠올랐나 봅니다.
“우리는 뭐해요?”
1학년들도 뭐라도 하겠다네요.
“하고 싶은 말!”
종훈이도 한 줄, 신기도 한 줄씩 써서
형님들 하는 걸 곁눈질 하며 도화지에 옮겼지요.

깜짝 축구경기가 있었습니다.
말로 하던 축구가 이제 입으로 되고 있다 합니다.
상범샘과 기락샘이 아이들이랑 쏟아져나가
점심시간의 한 자락을 보냈지요.
얼었다 풀린 땅이 질퍽거려 모두 진흙범벅이었더이다.

오후 2시.
큰 줄기만 잡아주면 아이들끼리 꾸려가는 요즘의 배움방입니다.
하나둘 들어온 아이들은 연극배경을 마저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를 다 하고 다음 걸 하는 것보다는
두 장을 동시에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마디 말을 던지고 나왔을 뿐인데
5시도 되기 전 배경그림이 끝났다 합니다.
“숲이 더 쉬웠어요.”
지난 시간에 그리던 용궁장면과 새로 시작한 숲장면이었지요.
승찬 동희 종훈이가 #1, #3에 붙고,
나현 령 정민 신기 동희 하다가 #2, #4를 했다네요.
“침대 위에 곰돌이도 넣었고요...”
“보물 상자 열쇠도 그리고...”
“용왕 베개에는 임금왕자도 넣었어요.”
“촛불도 그려 넣구요...”
"숲은?"
아직 그림을 보지 못하고 물었지요.
“구석에 바위 그려 넣고...”
“나무 몇 그루, 풀, 나무에 새집도 그리고...”
물감 섞기, 걸레 빨기, 물감 닦기, 스케치, 물 갈아오기...
역할들을 잘 나누었다 합니다.
그런데 갈색을 만들려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네요.
“첨에 빨강색이랑 검은 색을 섞었는데 이상한 색이 되어서...”
“그래서 노란색을 섞었거든요.”
“더 이상한 색이 됐어요.”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은 어떤 색이 만나면 갈색이 되는지,
또 다른 색이 만나면 어찌 되는지를 익혀갔더랍니다.

구미에서 하던 풍물모임 하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당장 우리 아이들 수업에 큰 도움이었답니다.).
영신샘과 삼희샘한테 감동받은 시간이었지요.
진심으로 같이 하는 동료가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어떤 건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꼭 두 분만은 아닙니다만.
뭔가를 배우러 가서 그리 열심히 해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같이 하는 모두가 그 같았지요.
어디 모임이라고 나가면, 혹은 어떤 단체에 들어가면
누가 어떠니 뭐가 어떠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을 보아왔습니다.
무언가를 하러 갔으면 그 목적에 충실한가가 가장 문제시 돼야할 것입니다,
학교라면 배움의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배우러 갔으면 그것이 목적이 되어
그 목적 앞으로 모두 잘 향하는 게 관건이어야겠다는 거지요.
다른 문제는 분명 곁다리일 것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바로 그 목적에 집중했고
그래서 내세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익힐 수 있었던 모임이었답니다.
여러 가지를 깊이 배운 시간이었고,
그리고 감흥의 시간이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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