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6.흙날. 가라앉더니 그예 눈발이

조회 수 1067 추천 수 0 2006.12.25 21:45:00

2006.12.16.흙날. 가라앉더니 그예 눈발이


“이런, 리허설 해야는데...”
10시 30분에 아이들이랑 모여 어찌 움직이라 알려만 주고
11시부터 교무실 난롯가에 앉았습니다.
저들끼리 내일 있을 매듭잔치 전체연습을 하라 일렀지요.
2006학년도를 같이 보낸 학부모들의 2007학년도 준비면담이 계속되고 있었거든요.
오늘은 네 가정이 면담이어달리기를 했네요.

12월 밥알모임(학교 +학부모)이 있었습니다.
늦은 면담 마무리로 역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시 쉬는 사이
교무행정 상범샘이 면담 한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먼저 있었습니다.
마을식구들은 대해리에 스며 산골 삶에 뿌리내리느라 힘겨웠겠고
학교를 포함한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나날을 살아내느라 고달팠겠습니다.
행복했고 소중했던 순간들이, 아이들과 환했던 시간들이,
팍팍하고 거친 산골살이에 묻혀버린 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학교에 중심을 두고 시작한 삶이었으나
차츰 우리 어른들의 삶이 주가 되어버린 것은 또한 아니었을지요.
그래서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표현처럼
정작 우리가 마주 앉아 문제제기하고 있었던 것들이
정말 문제의 본질이기는 했을지...
우리가 이곳에 사는 ‘본질’은 진정 어디에 있는 걸까요?
‘소통’이 한국사회 어디서나 화두이겠습니다.
같이 자리를 하지 않아 다는 모르겠으나
교무행정담당은 두세 가지로 면담을 정리한 듯합니다.
같은 ‘안’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한 경우도 많았으며
그것을 명확하게 잘 설명해주지 못한 학교의 책임이 컸다,
너무 성급하게 살고 성급하게 결론 짓는
한국사회의 병폐가 우리 안에는 없었는가,
사소한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보는 지혜가 필요한 반면
사소한 문제가 화근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는 지혜 역시 필요하였다...
꼭 같은 순간을 살아낸 이들의 기억이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준
영화 <오, 수정!>의 뛰어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본 것, 내가 믿는 것이 다가 아니다?
참으로 좋은 텍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밥알모임 둘째마당을 진행하러 들어갔습니다.
10여분의 짧은 정리면 될 것 같다던 면담 정리 자리가
무려 시간여는 되었지 싶습니다.
기다리다 지칠 무렵에야 갔네요.
“귀한 얘기들 잘 들었습니다.
내년을, 혹은 앞으로 사는데 좋은 자료를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 말문을 열었습니다.
“고생하셨지요.
무어라 무어라 해도 2006학년도는 분명 여러분들이, 우리가 꾸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아쉽고 안타깝다,
마음을 어지럽혔던 여러 까닭을 들으며 때로는 유감이었다고.
“거대한 바다에서 같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밥알모임을 한 이래 가장 짧은 말이었던 듯합니다.
이사를 가는 이도 있고 계속 살아가는 이도 있겠지요.
모두 잘 살면 고마울 일이겠습니다.

늦은 밤, 한 해 마지막 자리가 길었습니다.
박진숙엄마, 김점곤아빠, 김상철아빠, 김호성아빠, 이광열아빠,
이은영엄마, 전승경고모, 상범샘, 기락샘이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엉킨 마음이 혹여나 있었다면
애를 써서 같이 지킨 그 자리가 위로였겠다는 생각 들 만치
유쾌했던 시간이었지요.
“우리도 방학 때 모나코 가(자).”
전승경 고모랑 나현이, 령, 창욱이가 한 농을 진담으로 받은 류옥하다의 말과
아이들이 세계의 작은 나라들로 데려가 줄 내일의 어느 시간에 대한 기대로
‘모나코’가 화제이기도 하였답니다.
‘모나코여행’은 우리들이 밤새 난롯가에 둘러앉아 하는 놀이가 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옆에 티코가 있고 그 옆에 싸만코가 있다는 모나코.
잘은 몰랐지만 모두 마음을 다해 한해 막바지를 잘 보내려 했던 듯합니다,
새해에 이사를 가게 되는 이도 그리고 남아 그들을 보낼 이도.

새벽이 오는 대해리에 조용히 눈이 덮히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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