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계자 사흗날, 2007. 1. 2.불날. 반 흐림

조회 수 1303 추천 수 0 2007.01.05 09:35:00

115 계자 사흗날, 2007. 1. 2.불날. 반 흐림


< 오늘 평화는 어디에 있었는가 >


“코를 하도 곯아서...”
“우리 방도 그랬는데...”
“우리 애들은 하도 굴러다녀서 몇 번씩 차이기도 하고...”
샘들이 잠을 설치고 아침모임을 나왔습니다.
“책 읽어주는 시간이 참 좋은가 봐요.”
아주 큰 놈들조차도
잠자리 머리맡에서 책 읽어주기를 기다리더랍니다.

아침에 젖은 이불이 나왔습니다.
먼 길을 온 어린 녀석이 그린 지도지요.
낮에도 오줌똥을 싼 바지가 서너 개 나옵니다.
재래식 해우소가 저들에겐 굉장한 어려움입니다.
“어른이라도 집을 떠나, 혹은 힘들면 그럴 수가 있어.”
그래놓으니 오줌 싼 이불이나 똥 묻은 바지를 내놓는 일도
마음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전 하루에 서너 차례나 옷을 적시고 냄새피우던 아이도
이번 계자에 와서는 하루에 꼭 한차례만 그러고 있네요.
고마울 일입니다.

고요하게 겨울 아침을 시작합니다.
잔잔한 음악을 깔고 아침도 먹었지요.
샘들은 ‘손풀기’를 하러 모인 녀석들이 아무래도 신기합니다.
사물을 다만 쳐다보고 옮기는 그 단순한 시간을
제법들 즐기고 게다 묵언도 하고 있거든요.
하준이는 진지하고 사물을 보는 눈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현지는 스케치북의 중앙에는 그리나 그림이 너무 작아서
그 아이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드러나는 걸까 눈여겨보기도 하였지요.
원하 또한 사물을 크기보다 자꾸만 작게 보아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승훈이는 인상처럼 참 꼼꼼하데요.
영후며 수나며 해가 갈수록 데생을 배운 아이들이 많습니다.
정말 요새는 아이들이 별별 걸 다 배우나 봅니다.
심지어 체육활동도 과외를 한다 들었지요.
같은 뱃속에서 나와도 은영이와 원일이의 그림은 아주 극이었습니다.
연호는 참 자유로웠지요.
지석이는 구석에다가 그리는데
아직 도화지가 그에게 커서 그런 게 아닐까 싶데요.

‘들불’이 있었습니다.
겨울들에 나갔지요.
형길샘과 상범샘이 손수레(리어카)에
장작토막이며 버너, 후라이팬, 먹을거리들을 실었지요.
“피난민 같애.”
형길샘 뒤를 쫄래쫄래 따라들 갑니다.
다른 집 논을 가로질러 논두렁을 타고
지름길을 만들며 오는 녀석도 꼭 있기 마련이지요.
마을길을 조금 내려가 물꼬 논에 닿았습니다.
날이 너무 좋아 질퍽거리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딱 밟기 좋았지요.
한 편에서는 버너에 은행을 구워낸 뒤
이제 굳어있던 인절미를 얹었습니다.
곁에선 불을 피워 고구마를 넣었지요.
은행과 떡을 잘 먹고 나니 고구마가 익을 때가 되었네요.
아이들은 먹을 걸 좇아 병아리들마냥 몰려들거나
참새들처럼 먹이가 있는 곳에 쪼르르 달려갑니다.
논두렁 밭두렁을 밟으며 놀기도 하고
땔감을 구해 오기도 하고
불가에서 불을 쬐거나 도란거리다
샘 하나를 끌고 계곡으로 내려가기도 하였지요.
쨍쨍하지는 않은 날이라 볕이 봄날일 수는 없었지만
기온이 푹하여서 ‘날이 받쳐주었다’고들 했지요.
오늘 세상의 모든 평화가 물꼬 논에 있었더이다.
“안가면 안돼요?”
“그래?”
“책방 정리해놓을 게요. 다시 어지러워졌는데...”
그래서 동효 동휘 성진이는 책방에 남았는데,
아무래도 심심하였던 겝니다.
결국 들로 나왔데요.
“작은 먹을거리에서도 치열한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경험(논에서 놀고 불을 피워 구워먹는 거며)이 애들에게 엄청난 추억 될 것 같다.”
보름샘은 그리 쓰고 있었지요.
“완전 하이라이트!
이곳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인 줄서기가 없다.
우루루 가서 논에 샘들이 불을 지폈다. 고단수다!
... 그리고 인디언소년처럼 변했다.
고구마까지 절찬리 매진되고 남은 숯으로 팩하고 놀았다.”
현진샘은 하루 갈무리글에서 그리 썼데요.

무엇에도 별 흥미 없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집을 그리워했습니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과 잘 교통하지 못하는 듯하였지요.
“저는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힘든 거예요.”
여기는 새장이랍니다.
자기는 자유롭고 싶다 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규정한 말에 자기를 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데요,
자기 언어가 아니라.
그래서 아이들을 향한 규정은 무서운 겝니다.
다행히도 그는 같이 산책하고 불가에서 얘기하는 가운데
기분이 나아졌지요.
자유는 토굴 안에 들어서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지요.
창살이 존재의 영혼을 가둘 수는 없는 거니까요.

계곡에 내려간 아이들은 얼음을 깨고 놀았답니다.
아침에도 지안 재호는 동쪽 개울에서
망치 하나로 얼음을 깨며 즐거워했지요.
그 큰 애들도 그거 하나로 행복해 합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왔지.”
일곱 살 문종이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을까요?
장갑!
그런데 벌써 손은 다 젖어서 장갑이 들어가야 말이지요.
지가 서 있는 얼음을 깨니 젖지 않을 수가 있나요, 어디.
아주 얼음 위에서 뒹굴었습니다.
지석이도 얼마나 잘 놀던지요.
윤종이도 자기 나름대로 재밌어 하며 데굴거렸구요.
“어른의 어떠한 말 한마디도 필요치 않고...”
상범샘이 그랬습니다.
오늘 물꼬 논에 불려간 세상의 모든 평화의 남은 부스러기가
또 거기 계곡에 모여 있었더이다.

밤마다 늦도록 학교 서류 일을 보느라 계자 기록을 못하고 있다가
오늘 점심부터는 짬을 좀 내보지 하는데,
웬걸요, 아이 하나가 따로 떠돌길래,
즐기면서 한가로이 그러고야 있다면 나름대로 자기 기쁨을 찾겠거니 하겠지만,
양상이 다른 듯하여 불러야했지요.
처음엔 이곳이 싫은 이유를 대다가
이것 저것 설명을 해나가니까 또 다른 까닭을 말하다가
결국 귀결되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적응을 못하다 보니까 선생님 말을 자꾸 안 듣고
그러면 샘이 기분이 안 좋아서 절 잘 못 대하니까 제가 더 짜증내고...”
여기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러질 않았음을 알기에
얘기를 따라 더 가보니까
혼자 지레 자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지요.
결국 어깨 툭 치며 별 일 아니네 했더니
다음부터 그냥 잘도 놉디다.
말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아이 얘기를 듣느라 앉아 있었지요.
양말도 안 신고 겉옷도 입지 않고 목을 드러낸 쉐터에 밖으로 나와서는
감기 기운 있다고 엄마랑 통화 좀 하겠다 찡찡(?)거린 것도
다 얘기 나눌 사람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싶습니다.

"10분을 앉았을 수가 없네."
밀린 교무실 일로 네다섯 밤을 정신없다가
이제 날이 더 가기 전에 아이들 이야기를 쓰겠다고 잠깐 짬에라도 사택에 들면
뽀르르 누가 와서 불러냅니다.
영철이 때문에도(자기가 오든 다른 어른이 데리고 오든) 대여섯 차례는 불려나왔지요.
엄마를 보면 금방 낫겠다는 겁니다.
영철을 데리고 열심히 사택을 오르내린 보름샘은
처음 와서 이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곁에서 마음이 가라앉도록 들려줄 수 있는 얘기들이 있었을 텐데 해주지 못해)
아쉽다 하였습니다.
“아픈 아이 곁에 같이 있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요!”
수시로 아이를 챙기러 숨꼬방을 드나들고
죽을 들고 가고 무즙을 끓여 꿀차를 멕이고...
오후에는 열을 내리느라 밀가루와 두부를 섞은 해열제를
이마에 놓아주었습니다.
집 떠나 아프니 서러움으로 더 대성통곡을 하는데, 열은 좀 잦아들었데요.
“몇 밤 자면 집에 가요?”
엄마를 찾는 4학년 영철이의 울음은
금새 동생들한테 번져 종일 아이들이 그리 묻기도 하여더랬습니다.
영철이 아니어도 감기가 돌 기미가 보이길래
이곳에서의 치유법을 모두에게 알리는 시간도 잠깐 있었지요.

1단계: 기다린다.
시냇물이 스스로 깨끗해지는 자정력을 지닌 것처럼 사람의 몸도 그러할 거다.
2단계: 우리 몸도 자연에서 왔기에 그 치료법도 자연에 있을 거다.
풀 나무, 먹을거리 들을 써서 약으로 쓴다.
3단계: 이곳에 준비해둔 상비약을 쓴다.
4단계: 병원
그런데 집을 떠나온 아이들의 많은 병은
실제 그 병 크기보다 불편한 마음이 더 큰 경우가 많지요,
대부분의 병도 그러하듯이.
그래서 그 마음을 살펴주려 애를 씁니다.
그저 아이들을 안고 또 안고 하는 게 치료인 게지요.

오후에는 연극놀이를 하였습니다.
모둠끼리 옛 얘기 한 편을 네 장면으로 나눠 이어달리기 하였지요.
아팠던 영철이를 빼고는 배역을 맡지 않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1모둠은 베갯잇을 두건처럼 쓰고 나오더니
상중(喪中)이라데요.
부섭이가 아주 적극적이어서 다른 아이들의 흥도 돋우었다 합니다.
문종 선우 예린 정인 동휘 성진 영후 한익 원하 수나가 같이 했지요.
2모둠은 정성스럽게
자기 역할들을 상징하는 혹은 알리는 머리띠를 쓰고 나왔습니다.
소품 준비도 잘하였지요.
상욱 상범 김현지 양현지 동효 승훈 연재 태오 은영 재호 남수였네요.
3모둠은 사연이 많았는데요,
“지안 동진 원일 이놈들! 말을 징그럽게 안들었다.”
보름샘이 이리 쓰고 있을 만치 애를 먹인 모양입디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니 다들 멀쩡하던 걸요.
지석 용범 다혜 송원 희성 승엽 세이 지후도 같이 했지요.
4모둠은 해인이가 연출자 역할을 잘 해내었습니다.
말 많고 딴지쟁이 도연이도 열심히 참여하고
민지하고 수연이가 분위기를 도왔지요.
박이 되고 박 넝쿨이 되고 도깨비가 된
윤종 하준 채현 연호 서연 정우도 있었습니다.
서연이가 자꾸 밖으로 도는데
아이들은 끈질기게 그를 불러 기어이 같이 하데요.
아이들이 고맙습디다.

연습을 마무리하고 고래방에 모였습니다.
관객입장 음악부터 틀었지요.
조명 조절을 하고 있으니 목소리들이 착 가라앉았습니다.
다른 때보다 대사나 표현에서 연극적 재미는 덜했지만
음향을 입히니 맛도 나고
조명을 더하니 그럴싸해지면서 배우들도 진지해졌으며
절까지도 예쁘고 정성스럽게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데요.

저녁에는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폭풍우 치는 밤에’를 보았지요.
염소 메이와 늑대 가브의 ‘친구를 위해 죽어도 좋은’ 우정 이야기였습니다.
제법 긴 길이에다 이야기의 호흡도 꽤 길어 어떨까 싶었는데
말로는 ‘액션영화 틀어주세요’하지만 잘도 보아서 샘들이 놀라라 하데요.
“집중해서 보는 게 놀라웠어요.”
“좀 지루해하고 딴 짓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누워있던 영철인 계속 아파하며도 어느새 화면에 눈이 가 있고,
민지는 오빠(재호는 다른 생각하는데)랑 자고 싶다고 징징대고,
부섭이가 깨진 유리조각에 발이 찔려 피가 나는 일이 있더니,
상범이는 흔들리던 이가 빠졌고...
그 조용한 영화관에서도 그림자 쪽에선 결코 고요할 수 없었네요.

사흘째 밤쯤 되니 하루를 돌아보고 날적이를 쓰는 하루재기도
소소한 재미가 있나 봅디다.
따뜻하고 평화롭더라지요.
사흘쯤 되니 아이들도 자기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납니다.
처음 만나는 긴장이 사라지고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엄청난 감지력으로
가리고 있던 모습들이 풀어지고 편하게 지내고 있지요.
‘빛나는 일곱 살’은 늘 우리들의 눈길을 끕니다.
이듬해 학교 들어간 뒤 오면
어찌나 달라져있는지, 그것도 썩 예뿌지 못한 모습으로,
그래서 학교 욕을 왕창하는 계기가 되고는 하였습니다.
빛나는 일곱 살 지석은
너무나 재밌어 해서, 너무나 의젓해서,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네 살 때부터(엄마가 여기 보내려고) 기다렸다잖아.”
그 아이가 이 고운 모습을 잃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엄마 아빠 무슨 일 하셔?”
물론 직업을 물은 것이지요.
“아빠는 면도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엄마는...”
아빠가 아직 무슨 회사를 다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모른다데요.

기록을 끝낸 뒤에도 생각나는 풍경들이 있지요.
그제 계곡에 갔을 적 용범이가 얼음판에서 놀다 물에 빠졌더랬습니다.
발목만 빠졌지만 자꾸만 물 쪽으로 몸이 미끄러지니 놀랬을 겝니다.
물론 울었지요.
바위에 올라 서 있던 제 쪽으로 다가와 제 바짓단을 꼭 잡고
엉엉 울었댔지요.
안아주니 더 크게 우는데,
다른 아이들이야 제 놀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물 속에 아무것도 없어요?”
아직 타고 흐르던 눈물이 볼에 달려있는데 얼굴이 말짱해져서는
재미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부러워라 보며 그랬습니다.
젖어서가 아니라 무서웠던 겁니다.
맞아요, 어린 날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웅덩이는 그래서 무서웠지요,
뭐가 나올까봐.
계곡을 빠져나올 때 얼어붙어 위험한 곳이 있었는데
원일이가 아이들을 일일이 잡아 끌어올려주며 형님노릇을 잘 하였지요.

어제 윤종이는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새해 첫날 설거지 하면 거지 된데요.”
아니,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정확한 정보가 중요한 게야.”
핀잔을 주었습니다.
여튼 들은 것도 많고 할말도 많은 일곱 여덟 살 문종이와 윤종이 형제는
‘양브라더스’로 불리며 온 데를 휘젓고 다닌답니다.
저것들이 없어 부모님은 얼마나 무료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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