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계자 닷샛날, 2007. 1. 4.나무날. 맑음 / 오뉘산

조회 수 1369 추천 수 0 2007.01.08 21:45:00

115 계자 닷샛날, 2007. 1. 4.나무날. 맑음 / 오뉘산


< 겨울에 길을 떠나 가을 산을 올랐고 봄날이 갔으며 여름을 지나다 >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있었지요.
떡을 팔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피해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을 타고 올라간 그들 말입니다.
이야기는 전해지는 과정에서 더해지고 빠지며 완성됩니다.
언제나 진행형인 거지요.
오누이설화의 실제 배경이
삼국시대 백제 중흥기 화전민부락이고,
그곳이 바로 이 백두대간이 지나다 가지 뻗친 석기봉 아래 어디쯤이라던가요.
이름하여 ‘오뉘산’.
믿을 래면 믿으시고 말래면 마시길.
반도 남쪽 끝 마라도 앞의 이어도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것처럼
오뉘산도 누구는 있다고 하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도 하는데,
오래전부터
그곳을 이리 그리고 저리 찾아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고 전해진다는데,
이것도 믿거나 말거나.

오늘 아이들과 ‘오뉘산’을 찾아 나섰습니다.
오뉘산의 전설에 따르면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떠나버린 산골 집 뒤란
오누이가 사라지고 댕기가 꽃잎처럼 둥둥 떠 있던 우물과 나무 한그루가
그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하였지요.
가마솥방에서 새벽 4시 30분부터 90줄의 김밥을 쌌고
아이들도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밥을 먹었습니다.
오뉘산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며
모두 고고학자가 한 번 되어 보면 어떨까 하는데
또 그런다고 하데요.
“짐을 샘들만으로는 다 들 수 없는데...”
마음을 내서 도시락가방을 큰 아이들 가운데 누가 좀 지고 가자 하였더니
원일 영철 승엽 지안 재호 동진 부섭 남수 정우 태오 은영 지후 해인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마음을 내어서...”
현진샘 때문에 낯설게 물꼬 보기를 하는 이번 계자,
누구 누구 하라가 아니라 마음을 낸 이가 하는 것도
특징 아닐까 싶습니다.

길을 나섭니다.
곰 사냥을 떠나고 멧돼지사냥을 떠나는 긴장감이 있던 다른 계자도 좋았지만
탐험가로 떠나는 길도 참 좋습니다.
학교 뒷마을 댓마를 지나 양지 바른 곳 무덤도 지나
논도 지나고 밭도 지나니 바로 산길로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험해요?”
“같이 가요?”
벌써부터 등 뒤에서 쟁쟁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그저 나아가기만 합니다.
몇 해 전 폭풍에 쓰러져 외나무다리를 이룬 낙엽송 위를 건너보기도 했지요.
사내 녀석들도 따라 건너다 아래 덤불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등성이 다 가서야 경사가 급할 뿐
길도 좋고 날도 좋으니 금새 고개에 닿습니다.

마침 오늘 우리는 산등성이에서 있는 작은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다리쉼을 하며 참석했지요.
산오름의 필수조건인 쉰한 명을 위한 초코파이가 껍질이 벗겨져 쌓였고
가운데 양초가 불을 밝혔네요.
“...사랑하는 정우의 생일 축하합니다!”
파이를 선물로 다 받은 정우는 모두에게 그걸 나눠주었지요.
한참은 산길을 걸을 밑천이 되겠습니다.

“저보다 앞에 가면 오늘 저녁이 사라지고
상범샘보다 늦게 오면 오늘 밤 운동장에서 자야 합니다.”
그 사이를 형길샘이 오고 가며 아이들을 도와 앞 뒤 간격을 조절하고,
아이들 사이 사이 현진샘 보름샘 현선형님 다옴형님이 걷고 있었습니다.
지쳤다고 투덜대고 울면서 가다가도
어느새 다른 일 다른 상황에 금새 눈을 돌리는 아이들입니다.
“썰매다!”
수북히 쌓인 비탈은 낙엽썰매장이지요.
날 좋은 가을산 같았습니다.
워낙 심한 경사지가 의지를 갖지 않아도 썰매를 타게 했지요.
계곡이라 부르기에는 좁은 물길이 가로 막기도 하였는데
맞은편에 먼저 올라 내려다보니
휘휘 돌며 끊이지 않고 잘도 헤치고 나아옵니다.

돌밭과 가시밭을, 소나무숲을 지나 뻥 뚫린 곳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쉼을 또 하지요,
땅이 축축하여 철퍼덕 앉기는 어려웠으나.
누가 이리 깊이 뫼를 썼을까요?
죽은 자의 집은 산자를 위한 좋은 쉼터가 되어줍니다.
사탕을 좀 나누었지요.
“오뉘산 전설에 따르면...”
마치 발아래 있는 것처럼 마을이 보이지만
실제 그곳으로 향해 가면 한 달이고 두 달을 가도
여전히 그 거리에 마을이 있다 하였지요.
저 골짝 끝에 마을이 뵈는데,
이 길이 오뉘산에 이르는 길이 맞다면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저 마을은
서울에서 부산까지보다 더 먼 거리일 겝니다.

길이 거칠어집니다.
길 없는 길이니 더하지요.
사람 발길 닿은 지도 옛적이었을 길입니다.
가파르기도 심했지요.
“샘!”
“같이 가요!”
“좀만 쉬어요!”
신청(대꾸)도 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하니 아이들이 목소리를 모아 부르기
뒤로 돌아 대답해 주었더라지요, “어이!” 하고.
서로 뵈지 않을 때 어찌 불러야할 지를 알려 주었던대로.
“어이!”
“어이!”
산은 산에 사는 것들(이들)의 집이니
남의 집에 가서 함부로 하지 않듯 예의를 지키자 하였지요.
그래서 멀리 있는 다른 이를 부를 때도 여기서 저기서 삐죽삐죽 부르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모아 잘 다듬어 부르자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부르며 존재를 확인하는 오름이었지요.

볕 좋은 비탈에서, 숨을 몰아쉬며 깔끄막을 올라
다리를 턱 놓고 철퍼덕 앉았습니다.
날이 좋으니 누워 쉬기도 좋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지요.
“저기 정도가 정상이겠다!”
밥을 가지고 가서 기다리마 하고
앞장서서 또 오릅니다.
더는 못가겠다고 아이들도 주저앉고 말겠는 꼭대기였지요.
하지만 밥 먹으러 또 올라야지요.
상범샘이 재호 지안이랑 얘기 나누며 꼬리를 챙기며 오는데
김현지 다혜 용범이 자꾸 퍼지더랍니다.
“관두니 올라오데요...”

먼저 온 아이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하기야 어디고 다 푹신푹신한 낙엽방석입니다.
“레인보우...”
남자 아이들은 끼리끼리 레인보우놀이를,
그러자 여자 아이들은 또 모여앉아 “루돌프 사슴코는...”하며 놀데요.
상범샘까지 다 왔습니다.
점심을 꺼내지요.
늘처럼 오달지게 먹습니다.
해가 썩 밝지 않아 아쉬웠지요.
한기가 느껴지데요.
바람을 조금 피해 정상 아래서 먹을래도
사방이 깎아내리고 있어 엄두도 못냅니다.
“샘, 여기서 대구 보여요?”
송원이가 턱 아래서 물었습니다.
“안보이지.”
곁에 있던 연호가 대답하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느냐는 핀잔입니다,
연호 저도 지난 여름에 민주지산 올라가서 영천이 보이냐 물어놓고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어?”
송원이가 연호에게 물었지요.
“지도에 관심 있으니까...”
목에 힘들어간 표정이었지요.

웬만큼 쉬고 일어섰습니다.
“제가 지금 나침반을 들고 있습니다.
저 쪽이 북쪽입니다.
오뉘산의 전설에 따르자면 정오 무렵 북쪽을 향해 섰을 때
등 뒤에, 그러니까 남쪽으로 해가 있고!”
아이들이 돌아서서 ‘어, 정말이다’ 소리쳤지요.
“동북쪽으로 마치 발아래 있는 것처럼 마을이 펼쳐지고!”
“어, 진짜다!”
“정상에는 졸참 굴참 갈참 상수리 같은 참나무가 있고,
그 아래로 소나무군락이 이어지며! 있니?”
“네!”
뭔 나무인지 잘 모르면서 대답이 먼저입니다.
그곳에 감나무가 있어도 참나무이며 팽나무가 있어도 참나일 테지요.
우물도 감나무도 흔적은 없었으나 그곳이 전설의 오뉘산이 아닐까,
우리는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아이들이 패가 갈렸지요,
우물까지 찾아보자는 큰 아이들과 그냥 가자는 패들로.
어쨌든 내려섭니다.
가야지요.
“우물도 가는 길에 찾아보지, 뭐.
학교로 가더라도 내려가야지...”
그러고 앞장서니 아무 소리 없이 따릅니다.

내리막은 지독한 비탈입니다,
수직이라 느낄 만큼.
“(길이) 왜 이래요?”
아주 굴러 내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길이 눈길이라도 되면...
“지름길이야.”
“지름길이래.”
뒤로 주욱 전달되어갑니다.
“아!”
“맞아!”
“그래, 여기가 바로 그 지름길인가 봐.”
아이들은 오뉘산 전설에 나오는,
엄마가 장에 나가 떡을 팔고 돌아올 때
지름길로 오느라 변을 당했다는 얘기를 기억해내고 수군거립니다.
어, 뭔가 이야기가 자꾸 깊어져갑니다요.

“어, 썩은 동아줄이다!”
도연이가 외쳤습니다.
굵은 넝쿨이 말라비틀어져 맥없이 늘어져 있었지요.
“저기! 오누이가 탔던 동아줄!”
정말 거긴 말짱한, 동아줄 같은 덩굴입니다.
앞에 내려오던 스물 댓 명은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지요.
“진짜다!”
“정말!”
껍질이 온통 벗겨진 나무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호랑이가 타고 올랐던 나무라고들 짐작합니다.
“와!”
게다 우리는 호랑이 핏자국도 보고야 말았습니다.
노박덩굴 붉은 속열매가 우수수 떨어져내려 있는 걸 발견했지요.
호랑이가 오누이를 따라 썩은 동아줄로 하늘을 오르다 그만 떨어져
나무들에 엉덩이를 긁혀 흘린 피,
그것이 노박덩굴 붉은 속열매로 맺혔다는 거 아닙니까.
뭐가 점점 이야기가 되어갔지요.
그곳에는 전율이 올만큼 절묘하게 이야기의 배경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때 선우가 나서며 외쳤지요.
“여기, 우물 같애요!”
얕은 물줄기가 지난 자리는 축축했고
움푹한 것이 마치 먼 옛날 어느 시간쯤에
우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곳을 가리키데요.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우물은 말랐고 우물터는 뭉그러져
흔적이 지워졌을 거라는 게 중론입니다.
“제가 잘 발견했죠?”
이제 도연이는 고고학자의 자부심으로 어깨에 힘이 한껏 들었습니다.
“우와!”
아, 게다 어른이 감싸고도 팔이 더 필요한 아름드리 나무가
긴 세월을 증명하기 위해 거기 서 있었지요.
저기도, 저어기도, 저 만치도...
한익이도 안아보고 너도 안아보고 나도 안아보고 하였습니다.
사람 손이 닿기 힘든 뉴질랜드의 어느 깊은 숲이 그러하듯이
동아줄은 여기 저기 늘어져 있고
떨기나무류들이 이리 저리 얽혀있어
다른 계절 아니어도 충분히 숲의 짙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름 아니라 이른 봄이어도 엄두내지 못할 모험길이었을 겝니다.
“왜 이렇게 가시가 많아요?”
“비밀스러운 곳이니까.”

뒤에 오는 아이들은 타잔놀이도 하였답니다.
늘어진 덩굴에 매달려 타보기도 하였나 봐요.
앞의 패는 이야기의 진지함에 되려 엄숙하기까지 하였는데,
뒷 패는 반면 장난스런 도깨비가 등장하는 옛 이야기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나 봅니다.
“샘, 우리 영화 찍었어요.”
지후가 촬영감독이었다고 하지요, 아마.
스탭으로 연재 민지들이 뛰고
킹콩역은 형길샘이 맡았답니다.
제인역으로 세이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킹콩과 도저히 어울릴 수없다는
스탭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나 어쨌다나요.
우리의 김현지선수는 오르막에서 깨룩깨룩하며 그랬더라지요.
“힘 다 닳았어요.”
그런데 내리막길이 시작되자 그러더랍니다.
“내가 내리막길은 좀 가지.”
현지는 정말 잘 갔을까요?

어느 댁 묘에서 산에서의 마지막 다리쉼이 있었습니다.
딱 우리 규모가 넉넉히 들어가는 자리였지요.
이 죽은 자도 덕을 전해 주었습니다.
남은 사탕으로 지친 몸에 윤활유도 넣었지요.
아무래도 우리가 오뉘산을 다녀온 게 맞겠다는 흥분에서부터
산에서 붙은 모든 얘깃거리들이
자신의 영웅담으로 윤색되어 나옵니다.
상욱 다혜, 두 투덜이에게 형길샘은 이리 붙여주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마지막 깊디 깊었던 숲이 샘들 사이에도 화젯거리입니다.
“정말 숲이 짙데요.”
“덩굴 하나만 봐도 스스로 재미를 붙여가던데요.”
“학부모들이 본다면 깜짝 놀랐을 거야.”
길도 아닌 길을 거칠기가 한없는 바위와 덤불을 헤쳐
전진 또 전진하는 걸 본다는 그럴 거랍니다.
스스로 믿음을 느끼게끔 하느냐,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묻느냐,
이런 것이 아이들을 잘 키워나가는 관건이 아닐까,
국문학을 전공하고도 오랜 길을 돌아 곧 교단에 서게 될 형길샘은
물꼬에서 하는 이런 작업이 그런 좋은 길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을 하나 봅니다.

바위 아래서 토종꿀을 모으는 벌통도 보고
가시나무들을 지나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큰 산 하나를 주욱 오르거나 한 길로 능선을 탄 게 아니라
능선에서 골로 다시 능선으로 다시 아래로
그 험함만큼이나 거리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겝니다.
갑자기 앞이 환해지데요.
화면을 밝은 파스텔톤으로 연출하는 감독처럼
거기 환하게 펼쳐진 무대가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줄줄이 걸어갔지요.
“여기는 여름이에요.”
눈앞에 펼쳐진 대나무숲이 어찌나 싱싱하던지요,
어쩜 그리 진한 초록이던지요.
활을 하나 만들어 달라던 재호가 마침내 대나무가지 하나 구하기도 하였지요.
우리는 쓰러진 긴 대나무를 이 편에서 또 저편에서 두 줄도 잡고
마치 전장에 나가 이기고 돌아온 전사들처럼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겨울에 길을 떠나 가을산을 올랐고 봄날이 갔으며 여름을 만났던
오랜 여정이었더이다.

마을로 드니 폐교 하나 있습니다.
물꼬가 산을 넘어 종종 만나기도 하는 곳이지요.
깨진 창문들이 적막함을 더하였답니다.
“우리 다 살아 돌아온 거 맞아?”
기차놀이를 하며 줄줄이 붙어 운동장 한 바퀴 도는 사이
모두가 다 모였지요.
지석이만 아직 닿지 않고
저만치서 사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 계세요. 다 누면 부를 테니까.”
빛나는 일곱 살이 형길샘한테 그랬다데요.
“예까지 오면 화장실 있는데...”
아, 윤종이도 다사로운 겨울 한낮의 볕을 받으며
임산에서 물한계곡 갈림길에 들 적 둑방길에서 볼일을 봤다지요.
불편한 화장실보다 뻥 뚫린 자연 해우소가 아이들은 더 좋았나 봅니다.
김현지도 가고, 정우도 가고, 저이도 가고, ...

마을을 벗어나 큰 길로 나왔습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라지만
한 쪽으로 긴 행렬을 이루어 걷습니다,
볕 좋은 날 나들이 가는 사람들 마냥 도란거리며,
바람도 다사롭고.
“차 안 잡아요?”
오늘 우리들의 모험은 산오름만이 아닙니다.
모두 지혜를 모아 대해리 학교까지 해지기 전에 닿는 거지요.
올라가는 차는 많은데 우리 가는 길로는
어째 한 대가 안보입니다려.
소용도 없는 오토바이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 대 지나갔을 뿐.
"저기요!"
앞에 가던 이들이 차가 오나 보려고 뒤를 돌다 소리쳤지요.
현진샘과 보름샘이 한껏 트럭에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스물 남짓은 됐을 걸요.
앞에서 걷는데 먼저 타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뭐라 달래 해줄 말이 있을려구요.
“사람이 다음 순간을 모르는 게야.
나중된 자가 먼저 되기도...”
타라고는 하였지만 영 찜찜한 운전사 아저씨가 소리쳤습니다.
“걸리면 책임지세요.”
앞뒤 뭘 재랴, 애들은 트럭에 매달렸고,
현진샘은 얼른 고개 끄덕이고 아이들 마조 태웠다지요.
그들은 임산까지 닿아 내렸고,
길이 달라서 태워주지 못하는 트럭 몇 대를 보냈답니다.
그제야 둘로서 너무 많은 아이들을 데려왔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나눠서 차를 잡을 수도 없고
그래서 끝까지 큰 차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도로 가라 자꾸 마음이 쓰여
영철이와 지안이랑 재호 형아들에게 동생들을 잘 보라 일러놓으니
도로로 한발이 삐죽 나갈 기미만 보여도 단도리를 해주었고,
동생들도 말을 잘 들어주었더라지요.
그러다 정말 큰 차가 왔지요, 버스.
이 동네 다시 안 올 각오로 통사정을 하여 결국 무임승차를 했답니다.
애들 꼬락서니는 말이 아니고 젊은 여자 둘도 몰골이 영 시원찮으니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쑥덕거리거나 힐끔거렸겠지요.
흘목에서 내려 걸었답니다.
그런데 난관이 바로 거기 또 있더라지요.
30분 걸으면 된다는 마을길이 두 시간은 걸린 거 같다나요.
뒤에서 보면서 올라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좀 올라가서 뒤를 보고
샘들이 애가 탔습니다.
저 앞엔 연호 세이가 느릿느릿,
중간엔 선우 성진이가 세월이 없고,
한참 뒤엔 용범 다혜가 멈춰 서서 레인보우놀이를 하고 있질 않나,
김현지 예린이는 아프고 지쳐서 못 온다고 처지고,
하도 진도가 안나가서 빽 소리도 한 번 지르기까지 했다 합니다.

앞서 트럭에 아이들 절반을 실어 보내고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 걷고 있었지요.
어찌 이리 차가 없단 말인가요.
여태 다녔어도 이리 차 없기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쉬었다 갈까, 날도 좋은데...”
길가 마른 풀더미에 철퍼덕 앉거나 드러누워
볕을 바랬지요.
이것도 행복이겠습니다,
재잘대는 아이들, 두터운 볕, 달디 단 바람,
아직 갈길 남았으나, 이 순간도 진한 기쁨입니다.
“한꺼번에 다 타기가 어려우니까...”
형길샘은 채현 지후 영후 상범을 데리고 먼저 일어섰지요.
가는 길에 차를 얻어 타고
임산에서 주유소 앞에 길게 앉은 현진샘네들을 만났다 합니다.
채현은 주유소 앞의 패에 합류하고 대신 양브라더스를 붙여
다시 걷다가 물한계곡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대해리로 들어오는 들머리 흘목에서 내렸다지요.
지후와 영후와 노래 부르며 오던 길이 얼마나 좋았으려나...

길가에서 늘어지게 앉았다
해가 많이 기울었기 더는 안 되겠다고 가자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눈을 붙이기까지 했지요.
“왜 이렇게 안와요?”
동휘는 곁에서 내내 툴툴거리고
괜히 곁의 은영이랑 티격태격하며 걷습니다.
다리는 아프고 차는 안 오고 다른 애들은 먼저 갔고...
“원래는 걷는 게 계획이었던 거고, 운 좋으면 차를 타는 거지.”
저어기 구비만 돌면 임산이 보이겠네 싶은데,
마침 벤이 하나 달려옵니다.
세웠지요.
타랍니다.
우르르 탔지요.
그런데 이 황씨 아저씨 물꼬를 안답니다.
임산에 사신대요.
2003년 교보생명의 지원으로 지역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공부를 할 적
친구 분의 아이가 물꼬에 오기도 했다네요.
“지역에 와서 이리 하는데 아무것도 못해주고...”
말씀이 이러하였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외지인이 지역에 들어오면 여러 유형의 지역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보적입네 하는 이들이 들어온 이를 더 경계하기도 하고,
잘 모르면서 그저 외부인이라는 까닭만으로 욕하고 트집 잡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지지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다시 고맙습니다.
학교마당까지 올라와 내려주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흘목을 지나 마을길을 거슬러 오르는데
맨 처음 트럭을 타고 떠났던 아이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벤 안의 환호성이라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기도 한다던가,
그 말, 바로 증명해버린 순간이었지요.
정말 학교에 맨 먼저 닿았거든요.

마지막에 남아있던 상범샘네는 그예 임산까지 다 걸었답니다.
부섭 원일 승엽 서연 태오 정우 현선형님이 같이 있었지요.
대단한 그들입니다.
다시 물한계곡 쪽으로 조금을 더 걸었을 때
울 동네 농장아저씨 벤을 만나 학교까지 타고 들어왔다 합니다.

모두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힘이 남은 아이들, 샤워하자는 말 뿌리치고 또 놀데요.
징헙니다.
밥 먹고 씻으러 가기 시작했는데
샘들이 붙어 샤워를 도왔지요.
“지석이는 정말 말랐더라, 연호보다도.”
“애들 씻기며 힘도 들었지만
아이들의 알몸을 보며 평소의 느낌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내 새끼 같은 느낌을 말한 걸까요?
“애들 챙겨 씻게 하는 것도 큰일이었어요.
고래고래 지르며 옷 챙기고, 없어졌다고 칭얼대는 애 얼르고...
씻긴 후 옷 갈아입고 오줌 싸서 다시 씻기고...”
샘들이 많이 힘든 하루였답니다.
더구나 이곳의 불편함을 바로 그 손발도 다 메우니...

내일 일정이 아직 남았다고는 하나 마지막 밤이지요.
샤워하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져
한데모임을 하기 위해 모인 시간 역시 한참을 지났습니다.
그래도 산오름의 감흥은 나누어야지요.
스스로들도 마냥 대견합니다.
고래방으로 옮겨가 강강술래 한 번 돌고
장작놀이 하러 마당에 쏟아졌지요.
불가에서 감자를 기다리며 소리 높여 노래도 하고
감자가 아쉬워, 혹여 잘기도 하여 건지지 못한 게 있을세라
재를 뒤적이기도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영후 다혜 상욱 송원 채현 상범 문종 세이며 작은 아이들은
졸려도 하고 샤워 뒤라 한기도 커서
방에 들어 이불을 깔고 모여 앉아 놀이 하는 걸로
장작놀이를 대신했지요.

샘들 하루재기는 자정에야 시작되었네요.
“장작놀이 때 설레발레하고, 정신없게 하고, 참 밉더라...
불가에서 정리가 되는 느낌이 아니고 붕붕 뜨는...”
“불가에서 서로의 말들을 마음들을 나눌 수 있다면,
서로 느끼고 있다는 걸 공감한다면 더욱 좋았을 것인데...”
원하 영철 지안 태오 재호 동진 정우 도연 한익 동휘들에게(주로 큰 남자애들이네요)
샘들이 많이 아쉬워라 했는데,
애들이 또 그렇기도 하지요, 뭐.
늘 감자를 구워주시는 젊은 할아버지가 아이들 잘 방 불을 때시느라
(계자 내내 무려 아궁이 넷을 학교를 중심으로 앞마을 뒷마을을 오가며
낮에는 본관 건물 보일러에 불을 지피시고
책방 교무실 가마솥방 고추장집 연탄을 챙기시고)
진행자가 불을 살리고 감자를 구워낸다 쭈그려 있으니
아이들을 두루 살피고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한 까닭도 컸지요.
“산 가는 걸 싫어해서... 애들이 날 살피고...”
현선이형님입니다.
“혼자서 인터넷에서 찾아 오게 되었는데, 이런 곳이 있었구나 놀랍고,
교대 4학년이 되도록 몰랐어요.
더구나 여기 품앗이샘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알고 왔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어야겠구나...”
많이 배웠다는 보름샘이었습니다.
그때 형길샘이 그러데요.
“왔다는 게 중요하지요.”
예서의 배움으로서야 현진샘도 못잖았다 합니다.
귀한 연입니다, 이곳에서 그들을 맞아 고맙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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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136 2007.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147
1135 2007.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149
1134 2007. 1.31.물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081
1133 습관이란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옥영경 2007-02-08 1103
1132 2007. 1.30.불날. 거친 저녁 바람 / 왜냐하면... 옥영경 2007-02-03 1159
1131 2007. 1.29.달날. 맑음 옥영경 2007-02-03 1170
1130 117 계자 닫는 날, 2008. 1. 27.흙날. 눈발 옥영경 2007-02-03 1364
1129 117 계자 닷샛날, 2007. 1.26.나무날. 흐리다 눈 / 노박산 옥영경 2007-02-03 1227
1128 117 계자 나흗날, 2007.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1-30 1363
1127 117 계자 사흗날, 2007. 1.24.물날. 맑음 2007-01-27 1283
1126 117 계자 이튿날, 2007. 1.23.불날. 맑기가 시원찮은 옥영경 2007-01-25 1308
1125 117 계자 여는 날, 2007. 1.22.달날. 흐리더니 맑아지다 옥영경 2007-01-24 1396
1124 2007. 1.21.해날. 맑음 / 117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7-01-23 1406
1123 2007. 1.19-21.쇠-해날. 청아한 하늘 / 너름새 겨울 전수 옥영경 2007-01-22 1421
1122 2007. 1.16-18.불-나무날. 맑았던 날들 옥영경 2007-01-20 1303
1121 2007. 1.15.달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49
1120 2007. 1.14.해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71
1119 2007. 1.13.흙날. 맑았다데요. 옥영경 2007-01-19 1097
1118 116 계자 닫는날, 2007. 1.12.쇠날. 흐려지는 저녁 옥영경 2007-01-16 1234
1117 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옥영경 2007-01-16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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