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계자 여는 날, 2007. 1. 7.해날. 눈에 반사되는 햇볕

조회 수 1469 추천 수 0 2007.01.11 01:01:00

116 계자 여는 날, 2007. 1. 7.해날. 눈에 반사되는 햇볕


< 괜찮아요 >


이른 아침 교무실에 모여 계자에 쓰일 글집을 마저 엮은 뒤
아이들을 맞으러 영동역으로 나가거나 학교에 남아서 맞을 채비를 하고,
열택샘은 장작을 패서 부엌에 쌓아놓고 다시 대구를 나갔습니다.
꼭 대처에 나가 사는 아들이 노모가 계신 집에 돌아와 하드끼.

눈이 멎기는 하였으나 10센티미터도 더 되게 쌓였지요.
영동역에 나가는 차편도 다른 때보다 훨씬 여유를 두고 떠났습니다.
버스는 마을까지 들어오려나,
혹 마을로 들어오는 들머리에서 아이들이 내리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미리 가늠을 하고 움직입니다.
그런데, 햇살 너무나 다사로와
두터웠던 눈을 녹히고 있었지요.
고맙고 또 고마울 일입니다.

“2006 겨울, 백열여섯 번째 계절 자유학교
- 겨울에도 꽃피네, 꽃이 피네  2”
2006학년도 겨울 계자 두 번째를 엽니다.
늘처럼 아이들을 맞자고 큰 대문으로 나갈 참인데
버스가 마당까지 들어왔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차를 돌려나가던 여느 때와는 달리
미끄러운 길 때문에 안전하게 들어온 것이지요.
아이들은 쏟아지자마자 눈을 밟느라 부산하데요,
교실로 들어갈 생각도 않고.

계자를 다녀간 10명의 아이들(실제는 14명이더군요) 명단에는 없었는데
수현이를 쳐다보는 순간 샘이 하나 더 늘어난 것같이 든든했습니다.
동생 현진이도 너무나 반기데요.
아저씨 같은 표정으로 따박따박 말도 잘하는 일곱 살 재용이,
드물게 ‘우리 어머니는’이라고 부르는 민상이,
“제가 왜 하늘인지 아세요?” 이름 풀이해주는 하늘이,
누가 소꿉친구 아니랄까 어찌나 친한지 시끄러워죽겠는 승아와 기덕이,
심심해서 왔다는 찬호,
분홍색 곰돌이 모자를 예쁘게 쓰고 다니는 기민,
젊은 날 탁구선수였다는 엄마를 가진 정건,
살포시 잘 웃는 지선이가 왔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전화놀이를 좋아하는 은하,
부쩍 자라서 온 나은이,
말이 너무 야물어 2학년인가 다시 쳐다보던 해온,
언니랑은 다르게 표현이 작고, 그러나 결코 여리지는 않아 뵈는 자누,
딸랑이를 달았거나 용수철을 단 것같이 말이고 몸이고 오르내리는 일곱 살 경주,
한 눈에도 누나 몫 하겠구나 뵈는,
딸린 식구들(함께 온 동생들; 경주, 태겸, 정현)이 많아 무겁겠다 싶은 예령,
누나 꽁무니만 따르는 태겸,
지난 여름 우르르 같이 와서 여름날의 대해리를 빛내주었던
감수성이 풍부한 용빈이와 여전히 해맑은 종수와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정말 좋은 게 있을 때 좋다고 말하는 조은이와
그리고 안다고 반갑게 좇아와 손을 잡아끄는 기현이도 왔지요.
“집안 내력인가 봐.”
경상도 말을 충청도 말의 속도로 하는 호일이,
그리고 회사에서 농사도 짓는(환경운동계열의 간사?) 엄마를 소개하는 윤정,
노란 털조끼를 입고 떼꿈한 눈으로 쉰듯한 목소리를 내는 성래,
함께 왔던 울산동네처럼 예쁜 사투리를 썼구요.
왕할머니랑 할머니 할아버지랑 가족을 이루고 사는 동한,
같이 온 아이들도 있는데 별로 구애받지 않고 일정에 아주 몰입하고 있는,
웃는 눈을 가진 석진,
변하지 않은 큰 목소리에 한결같이 순수함직하고 순진함직한 재화,
평소에는 별로 만날 일 없는 사촌 형 기수의 그늘 밑에서 재미난 현우,
모든 나이대를 왔다 갔다 하며 노는 우식,
뭐든지 ‘싫어요’가 먼저여서 다 ‘좋아요’로 들리는 동휘,
만화에 나오는 아이처럼 까만 얼굴에 커다란 눈을 꿈뻑이는 규빈,
너무나 조용하게 앉았다가 화를 드러내는 정현,
우직하고 힘 좋은, 큰 아이들을 휘몰고 다니는 승호,
미술샘의 소개로 왔다며 제 목소리 잘 내고 있는 연정,
목소리도 높고 말도 많이 쏟는 성식이가 등장했네요.
성실한 화영,
이름이 주는 어감만큼이나 순한, 반가웠던 범순,
꼭 6학년이 더는 없어서만은 아닌 듯 보이는, 심드렁한 기수,
서글서글한 종훈이,
뭐나 재밌어 하는 정우,
그 사이를 공동체 아이와 마을에 사는 아이가 끼어들었다 말았다 하니
모두 마흔 넷인가요?

지내는 동안 필요한 안내와 물꼬 소개가 있었고,
점심을 먹은 뒤엔 눈밭에 모두, 정말 모두 쏟아졌습니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눈에 구르고,
자전거도 공도 끌고 나오고,
배를 밀고 그네를 타고...

큰 모임에선 비어있는 글집 표지를 채웠습니다.
새해소망들을 담았지요.
‘평화’라고 쓰기도 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며 ‘미술’이라고 쓰기도 했고,
기쁜 한 해되고 싶다며 ‘기쁨’을 담기도 했습니다.
그 바램 차고 넘쳐서 이뤄지길 바랍니다.

‘두멧길’을 나갔지요.
두 모둠은 마을 앞 계곡으로,
두 모둠은 마을 뒤 티벳길로 갔습니다.
대해계곡의 새터수영장에서 검은바위를 지나 원래수영장까지
계곡을 탔던 이들 사이에선
승호형과 새끼일꾼 다옴이형님에 대한 칭송이 컸습니다.
다옴이가 손으로 아이들 발을 받쳐 올려주면
승호가 위에서 끌어주며 바위벽을 올랐다지요.
그 고생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는데,
시퍼렇게 돌아온 만큼 들려준 이야기도 많았답니다.
티벳길에 이르렀던 시간들 역시
어떤 말로도 그 정취를 표현할 수 없었지요.
눈 내린 산골 마을, 그리고 인적 없는 산길에 길을 만들며 나아가면서
눈 쌓인 나뭇가지도 툭 치고, 한 움큼 눈도 집어먹고...
맨 뒤에 오던 용빈이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씩씩하니까.”
괜-찮-아-요,
예, 다 괜찮을 거예요,
우리가 가진 슬픔, 우울, 고통, 절망, 회의, 좌절,... 다 다 괜찮을 거예요.
“성빈이에게
성빈아 내가 게임안해서 미안해
이몬난 형을 용서해조 미안해 재발 나를 용서해조 성빈아
재발 나를 먼곳에서 보내지마 이제 우리 화해하자 부탁이야. 김용빈”
그 성빈이 동생한테 오늘 편지도 썼지요.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이놈아!”

저녁 먹고 대동놀이하러 고래방 갔지요.
수민샘과 영화샘한테 진행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저들이 아이였을 적 계자를 와서 대동놀이를 했고
이제 아이들을 위해 진행을 합니다.
가슴이 뭉클했지요.
오랫동안 같이 호흡해오는 상범샘이 다른 일을 보러 나가 있어
적이 걱정일기도 하더니 어찌나 척척 움직이던지요.
그래서 얼마나 원활하던지요.
열심히 반응하는 아리샘과 사이 사이에서 흐름을 타는 새끼일꾼들,
아이들이 어리니 아기자기한 맛이 더해져
산골 밤이 푹하기도 하였더이다.

‘한데모임’을 하러 모둠방으로 다시 모였고,
손말을 배우고 함께 노래도 하다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한 마디씩 나누고
모둠끼리 모여 하루 갈무리도 하였습니다.
이번 계자도 교실에서 자지 않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열밖에 되지 않아 숨꼬방에서 넉넉하게 잘 텐데
아무래도 남자 아이들은 조금 비좁기도 하겠습니다.
그래도 아무렴 덩그마니 큰 교실보다 낫겠지요.

아이들을 재우고 샘들 갈무리가
늦은 시간 가마솥방에서 있었습니다.
“초등 때부터 계자를 와서 새끼일꾼이 되었다가
이제 스무 살, 처음으로 품앗이일꾼이 되었습니다...
물꼬는 딱 하루만 되면 너무 잘 동화돼요, 아이도 어른도.
모둠하루재기 때 정우가 쓴 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아까 두멧길 가다 의도치 않게 싸웠다.
친구는 아파서 화가 났고 자기는 자기대로 화가 났다’고.
물꼬에 와서 생활하는 아이나 이 아이를 물꼬로 보낸 분이나
그래도 역시 물꼬다, 오는 애들은 뭔가가 참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샘들이 없어서...
의지가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될 거 같애요.”
며칠 일손을 보태러온 김광옥엄마 차례입니다.
“계자는 엄마가 참여하면 안 된다, 객관적이기 어렵고...
왜 안하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힘든 것, 갖고 있던 것 푸는 게 되니까 좋아보였어요.
누나를 동생도 돌보고 가족의 화합을 위해 새끼일꾼으로 보냈는데,
물꼬 계자 왔던 아이들이 새끼일꾼으로, 또 사회로 나가 다른 나눔을 주고...
나눔의 물꼬, 물꼬에서 물꼬를 정말 트는 것 같아 정말 좋네요.”
기차도 처음 탄, 처음 온 새끼일꾼 지은이형님이네요.
“와서는 추워서 힘들었고... 샘이 돼서 방도 따로 쓰는 줄 알고...
티벳길도 가고 눈싸움하며 다시 동심으로...
책임감 가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새끼일꾼 선아형님은 대동놀이 때 자신도 모르게 줄을 섰다지요,
아이 때처럼.

특수학급을 맡고 있고, 그 학급 아이들과 함께 계자를 온 아리샘은
아무래도 고민도 많고 할 말도 많습니다.
“물꼬가 해가 갈수록 어린 아이의 비율이 높고,
나이가 많으나 어린 아이들이 많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물꼬라는 공간을 신뢰하고,
학교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다고...
여기서는 자연스레 섞여주고 받아들여주고 하니까...
아이들을 어떻게 평가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지내게 해줄까를 고민하는 곳이고...
그런 아이들을 위한 자리가 되면 좋은 거지요.”
물론 요즘 고학년이 되면 해외로 나가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까닭이겠지만
다른 곳에 보낼 수 없는 특수아동을 받는 비율이 물꼬는 참 높은 편이지요.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아의 비율의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모든 계자가 그러하였습니다만
이번의 큰 특징이라면 어느 때보다 장애아로 분류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덕으로 우리는 서로 더 깊이 배우는 귀한 시간을 얻을 테지요,
힘이 좀 들지는 모르나.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아, 혹은 말하고 싶지 않아
아이의 정황을 잘 말해주지 않는 경우까지 더하면
9명의 아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을 겝니다.
반대로 장애라 하더라도 저 아이의 장애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도대체 그 잘난 의학에 반감이 가는 예도 있지요.
널린 게 장애구나 입이 딱 벌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구분에 그만 섬뜩해지지요.
누구 편의와 누구 편리를 위해 그렇게 하는지 분노하게도 되고.
예전 우리 어릴 적 좀 별났던 놈들일 뿐일 때도 많은데 말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좋아요.
좋아하는 것도 가식이 아니고, 어른들이 좋아할까봐 그런 게 아니고,
작은 기쁨에 대해서 그것을 표현하고...”
아리샘의 학급 아이들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답니다.

“미리모임 할 때와 안할 때의 차이가 커요.
이 공간에 대한 시스템 파악하는 건데, 스위치 위치 이런 것들,
아이가 없는 속에, 아이들이 오고 나면 정신 없으니까,
내가 훑고 있으면 내가 체크하게 되니까,...”미리모임을 참석하지 못한 반성도 있었고,
갓 품앗이가 된 수민샘과 영화샘과
미리 움직이고 있던 현선샘과 새끼일꾼들의 움직임이 좋았다는 칭찬 칭미도 있었습니다.

오후, 작은 싸움이 있었지요.
두 아이의 싸움을 갈라놓은 뒤
한 아이가 아주 호되게 한 샘한테 혼이 나고,
그 아이는 아이대로 거칠게 대들고 있었습니다.
“장애아라는 정보가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그건 꼭 장애아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대하는데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갈등상황에서 계속 통제하려는,
혹은 제압해서 해결하려는 태도가 더 심각한 것 아니겠냐 했습니다.
흔히 교사는 아이들을 통제하려 들지요.
그리고 그걸 유능하다고 착각합니다.
강한 아이를 앞에 놓았을 때
논리를 이기는 건 논리가 아니고 힘으로 힘이 안 되듯이
아이가 아니라 견디지 못하는 어른의 문제이기에
교사의 강경함이 상황을 다르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네요.

“처음, 그 두근거림과 두려움의 묘한 조화.
그 묘함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수민샘은 오늘 그리 쓰고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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