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조회 수 1760 추천 수 0 2007.01.16 12:14:00

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 스파이더맨이 어딨었냐 하면 >


아주 가끔 구름이 해를 가리웠습니다.
산에 갔지요.
민주지산으로 이어진, 이 산골을 둘러친 산들은
그 골이 깊기도 하여서 쌓인 이야기도 많습지요.
“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까진 아니고,
조선도 전에 고려도 전에 통일신라와 발해도 전에
삼국시대 백제 중흥기쯤 됐다던가,
그땐 만 여덟 살이 되면 형님이 되는 의식을 치렀더란다.
마을에 사는 모든 여덟 살 아이들이
새해 아침 마을에서 멀지는 않되 가장 높은 산을 다녀왔대지,
마치 부모를 떠나 스스로 서는 연습을 하러 너희들이 이곳에 왔듯.
산꼭대기에서 그전 해에 선배들이 두고 온 표적을 들고 오고
내년에 산을 오를 이들을 위해 들고 간 표적을 남겼다는구나.”
그런데 한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 겝니다.
돌아온 아이들도 자기들끼리만 왔다는 죄책감으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겠지요,
형제처럼 자란 아이들이니.
몇 날 며칠이 흐른 뒤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들머리에서 이른 아침 호랑이가 울부짖었는데...
오늘 ‘산너머’는 바로 그 바우산을 향해갑니다.
바우가 실패한 형님의식을 홀로 다시 치르러갔다가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건너 무사히 내려와
평화를 위해 애쓰는 훌륭한 장정이 되었더라는데...
“우리 학교가 있는 마을이 예전엔 여우골이었더란다.
불이 난 뒤 큰대자에 바다해,
그러니까 큰 바다라는 뜻으로 대해리가 된 것처럼
방울산이었던 그 산도 뭐가 돼?”
“바우산요.”
아니, 이것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더란 말인가요.

오늘은 느지막히 햇살 퍼져서야 움직입니다.
“산에 가는 날은 안하잖아요.”
오늘 아침은 해건지기까지 하고 말입니다.
아침을 먹고 모여앉아
명사 ‘너머’와 동사 ‘넘어’의 차이를 온 몸으로 설명도 하고
바우산 전설도 들려주었지요.
학교 뒷마을 댓마를 지나 논두렁 밭두렁을 밟고
산 들머리를 들어섭니다.
죽창부대가 일행을 지키기 위해 앞에 서고,
아이들 긴 줄이 이어졌지요.
길도 없는 길을 뚫고 나가는 물꼬 겨울 산오름을 모르지 않는 정우 동휘가,
더구나 지난주에 오뉘산을 올랐던 그들이
기꺼이 같이 걸음을 해주었지요.
여독이 풀리지 않아 쉬고 싶댔다가
이번엔 샘들도 많지 않으니 길잡이가 돼주면 좋겠다는 요청에
공동체 아이 류옥하다도 힘을 보탰습니다.

외나무다리가 있지요.
우리가 건널 곳은 아니나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쓰러져있는 낙엽송은 아이들을 유혹합니다.
류옥하다를 시작으로 승호도 다녀오고 성식이도 건이도 우식이도 건넜지요.
“우리 어머니 말씀이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말라고...”
우식이의 어투에 또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기민이였나 성래였나, 벌써 오줌 마렵다 총총거리는 녀석도 있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이들을 기다리는 행렬 앞에 세우고
살짝 가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저 끝에 기덕 기민 연정 승아 정우 현선형님이 오고
맨 끝의 상범샘도 보이네요.
종수는 친구들 틈에서 잘도 옵니다.
“출발해야 되나요?”
성식 재화 종훈 승호 건 기수 동한 현우 우식이로 이뤄진 죽창부대가
제 바로 뒤에서 전열을 가다듬었지요.

주욱 죽 앞으로 나아갑니다.
차츰 거리가 벌어지지요.
“샘, 같이 가요!”
늦어지면 뒤에 오는 이들과 같이 오면 될 것이지
굳이 불러 세우고 따라 붙습니다.
신청(들은 척)도 않다가 한참을 가서 뒤를 돌아봅니다.
입에 욕을 달고 가는 녀석이 있습니다,
보고 섰는 줄도 모르고.
힘이 든 게지요.
코앞까지 와서도 앞에 사람 있는 줄 모르고 욕설인데,
저(자기)가 민망할까 돌아서버렸답니다.

능선에 닿았지요.
“오뉘산에 가는 길이랑 똑 같잖아요.”
“조기까지만 같지.”
동휘랑 정우는 지난 계자랑 견주고 있습니다.
죽창부대가 젤 시끄럽지요.
“나 계급 좀 올려줘.”
건이가 요청합니다.
“요새는 위생병이라 안 그래. 의무병이라 그래.”
종훈이가 무슨 말 끝에 그러는데,
군대는 늘 군대 안간 놈들이 할 말이 더 많답니다.
그때 재화가 씩씩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재화야, 그래서 우리를 지켜주겠어?”
“아, 샘, 저 자신도 못 지키겠어요.”
“그러면 어찌 믿고 우리를 맡기겠어?”
“옥샘, 여기 케이블카 없어요?”
“에라이, 이눔아...”
멀어서 쥐어박지는 못하고...

자잘한 고개를 넘어넘어가려니
파이부터 먹는 게 좋겠지요.
“파이껍질은 점심밥을 먹는 표야!”
아리샘이 얼른 엄포를 놓습니다, 혹 산에 버릴까 하여.
“아리샘, 맨날 애들한테 그러지, 치사하게?”
“어찌 아셨어요?”
뭔가 오늘도 유쾌한 산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숙샘은 민상이의 신발을 벗기고 양말을 추슬러주고 계셨지요.
민상이가 또 어머니 그립다 하였나 봅니다.
“너는 세 번 보고 싶구나. 나는 어머니가 다섯 번 보고 싶어.”
사숙샘의 말씀에 민상이 울지도 못하였지요.
산에 사는 것들의 집이니 예의를 갖추자,
산에서는 서로를 어찌 부르자,
지킬 것들에 대한 안내를 한 다음 다시 걸음을 시작합니다.

능선을 타고 가다 어디쯤에서 오늘은 길을 틀어야 하나...
눈이 제법도 깊은데, 어느 만큼이 적절한 코스가 될 것인가...
내리막길로 트니 눈 아래 수북이 쌓인 낙엽이 털퍼덕 엉덩이를 붙이게 하고
어렵지 않게 내려가도록 합니다.
“이것 보세요.”
늘어진 굵은 밧줄 같은 덩굴도 있네요.
한 명씩 매달려 타보고 가지요.
“저기를 오를 수 있을려나?”
뭐 해보자 하데요.
아무렴 그리 말하고 못하겠네 하진 않지요, 저들이 한 말이 있으니.
조금 거칠겠네 하면서도 이제 오름길로 나아가봅니다.
예사롭지 않은 가파름이었지요.
먼저 왔던 아이들이 팔을 뻗쳐주기도 하고
대나무지팡이를 내밀어 다른 이들이 잡고 올라오게도 합니다.

눈(目) 위로 한 마루를 타고 나면 다시 능선을 만날 수 있겠습니다.
“다들 왔네요. 이제 저 꼭대기에서 사탕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어올라 넘의 무덤가에 철퍼덕 주저앉았지요.
죽은 자의 집은 길 없는 길을 가는 모험가들에게
늘 훌륭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먼저 따라 붙었던 아이들이 다음 선이 잘 이어지고 있나 아래를 보며
수시로 보고를 해왔습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 오르는데
아, 글쎄 정현이랑 건이가 한판 붙었다나요.
앞서 기어오르던 이들은 뭔 일인가 돌아보느라 더디고
오르는 이들은 진도가 안나니 궁금해서 목을 빼고...
무덤가에서는 윤정이와 류옥하다가
도착하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 왔어요?”
아니 몇 걸음을 왔다고, 몇 시간을 왔다고 이리 묻는답니까.
“얼마나 힘이 들었다고, 이제 겨우 시작인 걸.”
호일이가 동생들 잘 돌보아주고
수연이와 연정이가 용빈이를 살펴주고
경주랑 태겸이가 현진샘을 의지하며 닿았습니다.
사탕을 빨며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낸 이와 특별한 마음을 나누고들 있었지요.
그간 가깝지 않았던 이들과 얘기를 해보는 계기도 됩니다.

"일어나도 되나요?"
능선을 따라 갑니다.
오르락내리락은 해도 능선이니 걷기야 어렵지 않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짐승의 발자국은 우리를 긴장케도 했지요.
“아무래도...”
곰 발자국도 봅니다.
“우리는 호랑이 봤어요.”
기민이와 동휘가 호랑이를 보았다고도 하는데,
이 산에 어디 호랑이만 살까요.
얼마쯤을 가서 남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너무 동쪽으로 치우쳐왔습니다.
계속 간다면 산 너머 골짝으로 가다가
곧장 가면 백두대간이 흐르는 우두령에 이르게 될 겝니다.
숲을 헤치고 봉우리를 타거나 휘두르며 나아갑니다.
“이제 몇째 고개예요?”
“넷째고개!”
또 무덤가를 만나지요.
아이들 옷도 추슬러주고
작은 아이들의 호흡을 고르게도 돕습니다.

다시 오르막.
“아이들 서로 도와주며 이끌어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런 상황 앞에선 상대랑 어떤 관계였더라도 도와주기 마련이지요.
이래서 산오름은 훌륭한 연대의 장입니다.
가파른 비탈의 눈길을 기어오르며 살짝 뒤를 돌아보지요,
좀 무리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하며.
꾸역꾸역 잘도 타고 옵니다.
샘들이 아이들 사이사이에서 무척 흐뭇해합니다.
“큰 녀석들이 알아서 비탈진 곳에 서서 작은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것이,
‘아이들나라’가 만들어지면
이런 모습들은 그 아이들의 일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서 감동하고 그랬어요.”
물꼬의 꿈에 꼬박 십년을 함께 한 아리샘은
2024년에 물꼬가 세우려는 아이들나라 ‘아이골’을 그리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리샘은 물꼬를 늘 그리 표현하지요.
물꼬는 바로 그런 품앗이들이 만든 공간입니다.
“이제 몇째 고개예요?”
우리 가는 길 열두 고개,
이제 여섯째 고개를 지나지요.

아이들이 배고플 때도 되었습니다.
큰 나무들 사이를 헤칠 때는 외려 그것이 버팀목이 되어 길이 어렵지 않은데
떨기나무류를 만나면 저들 키 같아 자꾸 얼굴을 때리니
힘이 듭니다.
앞 사람이 젖히고 지난 것이 다음 사람 얼굴을 때리는 거지요.
“아얏!”
“미안, 미안.”
“미안해.”
걸음을 서둘러 벗어납니다.
또 무덤이 반기지요.
“바우산 전설에 따르면...”
동쪽 방향으로 무덤 세 개가 계단식으로 나 있다 했습니다.
그러니 그 무덤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요.
나침반을 꺼내봅니다.
그게 아니어도 겨울의 이 시각 해의 위치로 방향을 읽을 수 있음도 알려줍니다.
점심을 예 눈 위에 서서 당장 먹을까 물으니
다행히도 너른 평지에서 먹자는 의견이 주였습니다.
길을 더 가지요.
능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덤이다!”
“진짜 계단식이다!”
“그런데 두 개만 있잖아.”
“아까 우리 쉰 거까지 하면 셋이잖아.”

다시 남쪽으로 길을 틉니다.
“와!”
시원시원하게 앞이 뚫리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낙엽미끄럼틀입니다.
그냥 미끄러지는 거지요.
“아아아아아....”
그러다 떨기나무류가 가로막으면 살짝 방향을 틀면 됩니다.
두어 명이 넉넉히 지남직한 길 하나가 아래에서 우리를 반겼지요.
밥상이 되어줄 길입니다.
“이제 몇 고개 넘었어요?”
여덟 고개입니다.
정오가 훌쩍 넘어있네요.
배가 고프기도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려와서 반대편으로 가지 않도록
먼저 닿은 이들이 계속 부릅니다.
“어이!”
그러면 저어기서 대답을 하며 오지요.
“어이!”
“모두가 모일 때까지 군밤타령도 할까?”
중창으로 군밤타령까지 세 차례 부르고나니
온 식구들 다 모였지요.“샘, 이제 내려가요.”
“여덟 고개를 돌아갈래 네 고개를 가서 마을에 닿을래?”
누군들 그 답을 모를까요.
“배고파요!”
김밥을 꺼냅니다.
“여기요!”
아이들이 정말 파이 껍질을 내밀던 걸요.
사탕껍질은 물이랑 바꾸겠다 했더니
정말 모든 비닐이 다 아이들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저기 가면 사탕껍질 없이 물 줘.”
저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무슨 시골장터에 와 있는 것 같았지요.
유쾌한 점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밥이 모자랍니다.
샘들은 6시 40분부터 나와서 김밥을 쌌더랬지요.
지난주는 90줄을 쌌다는데
먹성이 더 좋다는 이번 아이들한테는 어째 80줄을 쌌을꼬,
그것도 담는 과정에서 한 봉투의 반절은 또 남겨놓고 왔다네,
어디서부터 계산이 잘못된 건지...

남은 사탕을 마저 나누어 다시 길을 떠나려지요.
아이들 입성을 챙깁니다.
발이 젖어 있기도 하지요.
“하하, 괜찮아, 우리는 다 있지롱.”
큰 소리를 칩니다.
겨울 산에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아무렴 그 정도 준비쯤이야...
아침부터 수민샘은 옷방에서 여벌옷들을 챙겼지요.
“옷가방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이런! 없습니다.
분명 가마솥방에 쌓여있는, 개켜놓은 빨래들과 섞인 겝니다.
길 떠나기 전 마지막 상황에서
그 짐이 꾸려졌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던 겝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리 되면 샘들이 희생을 치르지요,
뭐, 다들 양말 두 켤레는 껴 신었을 것이니.
저도 등산양말 안에 있는 양말을 벗습니다.
하늘이를 신겨주고 준비한 비닐도 덧신겼지요.
젖어있는 신발이 더 이상 양말을 적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해요.”
깊은 숲 속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에나 나옴직한
숲의 비밀의 정원 같은 너른 공터가 나옵니다.
정말 저 먼 어떤 세계로 나가는 통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해 봄, 덮쳐오는 봄볕을 이고 숲으로 탐험을 떠났을 때 만났던
거짓말 같던 딸기나라가 이리 생겼더랬습니다.
신세계를 가로질러 여덟 번째 고개를 넘기 시작합니다.
비탈을 단거리라 하여 곧게 올라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것도 눈 덮인 산을.
사선을 그리며 오릅니다.
아, 스파이더맨은 겨울에 바우산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겁니다요.
경주도 혼자 어찌나 잘 가던지요.
절절매는 새끼샘들한테 호일이며 큰 녀석들이 손을 내밀기도 하였습니다.
현우는 계속 종수를 잘 챙겨주고 있었네요.
“아이들이 다 하늘에 있어요?”
용빈이가 먼저 오르고 있는 이들을 보며 소리쳤지요.
아래서 보니 정말 모두 하늘을 둥둥 걷고 있더랍니다.
용빈의 곁을 연정이와 수현이가 내내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것들이 오늘 몸살을 하고 말지 싶데요.
용빈이의 무게,
보는 것으로도 짐작되지만 밀려보면 알거든요.

“다 왔다, 다 왔어.”
바우산 전설에 따르면
열한 고개에서 열두 고개를 가는 길에 능선 하나를 만난다지요.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타면 대해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하였습니다.
바우산은 열 두 고개 어드메를 지나는 곳에 숨어 있는 게구요.
벌거벗는 임금님의 우아한 외투처럼
눈이 밝은 자나 마음이 맑은 자의 눈에 보이게 되는 걸까요?
남겨져있던 파이, 물, 귤을 나눠 먹습니다.
이제 더는 길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비상식량을 남기도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웬걸요,
사람 발길 닿은 지 오래인 산은 짙기도 짙어 너무나 짙어
날쌘 족제비처럼 덤불 사이를 다랑이 호두밭으로 나아가는 길이
나절가웃은 걸린 것만 같았습니다.
“지붕이다!”
예, 동석이아저씨네 집 마당에 보이고
심씨네 집 지붕이 보이고...

이제 작은 개울을 타면 대해리 골목입니다.
규빈 석진 재화 범순 류옥하다 종훈 현진 성식 호일 예령 동휘 수현,
열둘이 바짝 뒤를 붙어왔지요.
“뒤에 있는 애들을 데려올 테니까....”
하다에게 열 하나를 붙여 마을로 내려 보냅니다.
이곳에 사는 아이는 이럴 때 큰 도움이지요.
십여 분이 흐르고
뒷패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지막 덤불을 빠져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지요.
“왼쪽으로 틀어요!”
그렇게 모두 너른 산 아래,
어제인 듯 눈 내려 쌓인 밭으로 다 돌아왔습니다.

“작은 아이들에게는 좀 힘겨웠을지 몰라도
오르막내리막하는 산의 느낌이 정말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어요.”
“완만하고 재미있는...
주구줄창 올라야 하는 민주지산 같은 산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으로...”
“산 자체는 무난했으나 눈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넘어지고...”
날씨 좋고 바람이 없어서 또 하늘에 고맙고 감사했지요,
우리들 하는 일이 늘 그러하듯.
“산행도 너무 스릴 넘쳐서...
이번 일정 분위기, 캐릭터가 일관성 있게 산까지 이어간, 잔잔하고...
지난 여름은 여름대로 그 일정에 어울리는 거칠고 모험이 넘치는 산행이었고...”
샘들이 마을길에서 한마디씩 갈무리를 했지요.
“어디 외국 갔다 오셨어?”
산골 작은 마을에 살아도 얼굴 보기가 쉽잖습니다.
겨울은 더하지요.
저만치에서 수달이아저씨네 아줌마가 칡즙을 들고 계셨지요,
우리를 맞으려고(사실은 달이고 짜고 계셨지요.).
그 시커먼 약물로 우리는 피로를 다 풀었더이다.
고마울 일입니다, 모다 고마울 일입니다.

10시가 멀지 않은 시간에 떠나 세 시 조금 넘어 돌아왔습니다.
학교를 끼고 둘러친 동쪽 산자락을 돈 거지요.
모두 살아 돌아왔지요.
“자누는 뭣 좀 먹었어요?”
몇 가지 준비를 일러두고 갔는데 도저히 먹질 못하더랍니다.
이번 독감이 그렇다데요.
장염을 동반해서 왔단 소식을 들었던 터입니다.
천상 그거겠습니다.
숨꼬방에 들어서니 요강이 옆에 놓여있었지요.
곁에서 이것저것 바라지를 좀 하다
방이 어찌나 따땃한지 노곤해지더니 까부룩까부룩 졸음에 겹더니만...

아이들은 여전히 넘치는 힘으로 안팎으로 좇아다니다
샘들이 샤워준비가 다 되자 불려 들어왔습니다.
남자쪽은 사숙샘과 상범샘이 그 많은 놈들 다 건사하느라
아주 혼이 났을 겝니다.
여자쪽은 샘들이 손발이 좀 안 맞아서 힘이 들었다네요,
안에서 씻는 걸 돕고 있으면
밖에서 애들을 착착 들여보내줘야 하는데.
“이거 화영이 거예요.”
한 움큼 나온 머리카락을 집어 들고 와서 한 녀석이 말했지요.
정신없는 화영이 머리를 저가 빗겨주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정이 흠뻑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참 좋습니다,
은근히 꾸준히 깊어가는 관계,
어떤 순간적인 이벤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날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살가운 게 식구 같고...”
애들이고 어른들이고 그러합니다.
함께 길을 떠났다 거친 모험을 하고 돌아와 더하겠지요.
“물꼬는 장애통합학교를 꿈꿉니다.
딱 이정도의 학교에 이 정도 규모의 샘이 같이 살면 좋겠다 싶데요.
그 꿈으로 행복했던 실험의 장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산사람으로 키우고 싶지요.
오늘 같은 시간들을 일상 안에서 하는, 그리고 산이 우리를 가르치는...”

한데모임은 그간의 모든 손말, 그간의 모든 노래,
그리고 오늘 진한 산오름 갈무리로 이루어졌습니다.
강강술래를 위해 노래도 익혔지요.
“노래를 익히고 가니까 집중이 더 잘되더라구요.”
아이들이 그간 말 안 듣던 모두모임시간을
오늘 고래방에서 강강술래하며 다 만회해버렸답니다.
잘하데요, 잘 놀데요.
“잡았네 잡았네 뒨쥐새끼는 잡았네.”
“콩 하나 팥 하나 던졌더니 오곡백과 절씨구!”걷고 뛰고 남생이로 놀다가 멍석도 말고 청어도 엮다가
고사리도 꺾고 손치기도 하고 기왓장을 팔고는 대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꼬리따기를 하는 서슬로 모두 뛰쳐나와
장작불가로 달려갔더랬습니다.
젊은 할아버지는 설치미술에 하트를 만들던 돌들을 가져다
불가로 사랑의 동그라미를 꾸며놓으셨지요.
“마지막날답게 마무리 대동놀이 참 좋더라구요.”
영화샘이 그랬나요.
노래 이어달리기를 하다가
감자가 익는 동안 우리가 같이 보낸 날들을 돌아보고
잘 구워진 감자를 꺼내 곱슬곱슬 익은 속을 꺼내 먹은 다음
숯검정을 묻혀 인디언놀이도 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지요.

아이들이 빠져나간 모둠방을 영화샘 수민샘이 치우고 있었습니다.
‘저것들이 어른들이랑 가면 쩔쩔맬 텐데 애들 잘 챙겨주고...’
산오름에서 상범샘이 새끼일꾼들 보며도 그런 생각하였다지요.
일일이 일마다 확인하고 지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면
샘들도 많지 않은 계자에서 얼마나 일이 들었을지요.
그런데 알아서들 필요한 일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샘들이 없다고 걱정했던 이번 계자가 이토록 수월했던 것이
바로 이들의 이런 움직임이었겠지요.
새끼일꾼들이 그렇게 아이들 사이에 너무나 잘 섞여있었고,
품앗이샘들은 전체 일정이 순조롭도록 시스템을 잘 만들었던 계자였습니다.

“돌아갈 생각을 하면 두고 온 것이 그리워지지만,
한편으로는 두고 갈 것에 대해 그리워진다.”
수민샘이 썼듯이 모두 마음이 그러한 밤입니다.
“아이들 입에서 들먹여지는 이름자들-소희샘 수진샘 기표샘 재신샘,
너무 반가웠어요.”
오래된 관계들입니다.
해서 옛적 이야기도 자주 나오기 마련이지요.
“백 명이 하는 계자도 있었지, 샘들만 서른에 가까웠어,
겨울 별이 쏟아지는 마당에서 촛불에 촛불을 이어가며 붙이고
한사람 한사람이 나와 소원문을 태우던,
그때 우리는 왜 그토록 진지했던 걸까,
어떻게 그 숫자가 그토록 진지할 수 있었던 걸까...”

계자를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자리도 되는 셈입니다,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보내고 샘들 갈무리가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이도 있고,
학교에서 역으로 나가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
“전혀 사람 손이 부족해서 힘든 걸 몰랐고,
다른 때에 비해 더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화 수민샘 현진샘이 너무 잘 움직이고,
새끼일꾼 현선 다옴 선아 지은,
그리고 논두렁들 김상철아빠 홍사숙샘,...”
아리샘이 고마움을 전했지요.
“돕기보다 참여하는 시간이었어요.
손말, 노래 너무 신나고...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였습니다.
아이들은 늘 부산스러운 존재고 통제해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자신의 모습 스스로 자기 긍정하지 못했는데 아이들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사실 저는 애들 생각하고 오는 게 아녜요.
여기가 좋아서 오는 거지요.
집에서 안하던 일하고 여기 있는 시간 동안 힘들지만...”
수민샘입니다.
영화샘이 이리 잇네요.
“수능 끝나면 당연히 가는 것처럼 왔고, 이런 인연도 있구나,
몇 년 만에 왔는데 낯설지 않고...
장애아들 많이 와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20대입니다.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10대의 마지막을 뭐 하나 얻은 느낌의 계자였어요.”
“아무래도 평생 올 것 같습니다.”
“내 의지대로 온 게 아니어서 기회가 된다면 제 의지로 오겠습니다.”
새끼일꾼 다옴이와 현선이가 그리 약조를 해주었지요.
이들이 지켜갈 물꼬이겠습니다.

부엌과 불을 지킨 가마솥방엄마들과 젊은 할아버지를 향해 박수를 치며
(비록 곁에 계시지 않으셨지만)
새벽 두 시 모든 샘들도 아이들 사이 잠자리로 가고,
큰 마당을 가로질러 아이들 이야기를 쓰러 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136 2007.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147
1135 2007.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149
1134 2007. 1.31.물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081
1133 습관이란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옥영경 2007-02-08 1103
1132 2007. 1.30.불날. 거친 저녁 바람 / 왜냐하면... 옥영경 2007-02-03 1159
1131 2007. 1.29.달날. 맑음 옥영경 2007-02-03 1170
1130 117 계자 닫는 날, 2008. 1. 27.흙날. 눈발 옥영경 2007-02-03 1364
1129 117 계자 닷샛날, 2007. 1.26.나무날. 흐리다 눈 / 노박산 옥영경 2007-02-03 1227
1128 117 계자 나흗날, 2007.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1-30 1363
1127 117 계자 사흗날, 2007. 1.24.물날. 맑음 2007-01-27 1283
1126 117 계자 이튿날, 2007. 1.23.불날. 맑기가 시원찮은 옥영경 2007-01-25 1308
1125 117 계자 여는 날, 2007. 1.22.달날. 흐리더니 맑아지다 옥영경 2007-01-24 1396
1124 2007. 1.21.해날. 맑음 / 117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7-01-23 1406
1123 2007. 1.19-21.쇠-해날. 청아한 하늘 / 너름새 겨울 전수 옥영경 2007-01-22 1421
1122 2007. 1.16-18.불-나무날. 맑았던 날들 옥영경 2007-01-20 1303
1121 2007. 1.15.달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49
1120 2007. 1.14.해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71
1119 2007. 1.13.흙날. 맑았다데요. 옥영경 2007-01-19 1097
1118 116 계자 닫는날, 2007. 1.12.쇠날. 흐려지는 저녁 옥영경 2007-01-16 1234
» 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옥영경 2007-01-16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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